소설리스트

AI로 갑질하는 양아치 재벌-67화 (67/183)

또라이와 더한 또라이 (4)

나는 인천공항에 내렸다. VIP 전용 통로로 따로 빠져나가서 수속을 밟고 나가려는 참이었다. 나를 픽업하기로 온 한서진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사장님! 이쪽으로 나오지 말고 지하 주차장으로 바로 내려오세요.”

“네?”

한서진의 다급한 목소리에 나는 의아해했지만, 곧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출국장 앞, 수십 명의 기자가 진을 치고 있었다.

"음?"

수십 쌍의 눈이 나를 돌아보았다.

"어? 이건우 나왔다!"

"잡아, 잡아!"

마치 좀비 영화의 한 장면처럼, 나를 향해 기자들 수십 명이 달려들었다.

어어? 이거 방역수칙위반 아니야?

포비드 때문에 해외 출장 말고는 비행기를 이용하는 사람이 없어졌기 때문에 홀은 한적했고, 나를 막아줄 인파는 없었다.

그렇게 나는 손쉽게 기자들에게 둘러싸였다.

“···?”

이건 무슨 상황?

그 와중에 뿌듯한 건 전부 KW 에코 브레스를 쓰고 있다는 것이다.

“한양일보 조현민 기자입니다. 다이아몬드 엠페러 호는 어떤 상황이었습니까?”

“로날드 대통령과는 어떤 담화가 오갔는지요?”

“지금 미국의 상황은 어떻습니까?”

“중국이 치료제를 빼돌리려고 했던 것에 대해는 하실 말씀이 없나요?”

캐리온에서 들어서 지금 내 인기가 한국에서 꽤나 좋다는 것은 알고 있었는데···. 이 정도 일 줄 몰랐지.

하지만 가뜩이나 장거리 비행으로 피곤해진 나는, 기자들도 이러니까 신경이 거슬려왔다.

“나중에 따로 기자회견을 하겠습니다. 참고로 저 미국에서 온지라 저도 모르게 밀접접촉을 했을 수도 있습니다.”

당연히 구라다. 지금 미국은 미니온-트래킹이 꽉 잡고 있다. 접촉이 있었으면 제일 먼저 알았겠지.

하지만 내 마지막 말은 꽤 효과가 좋았다. 기자들이 겁먹은 표정으로 후다닥 뒤로 물러섰고, 나는 그사이를 여유롭게 걸어 나와 황당한 표정으로 서 있는 한서진에게 다가갈 수 있었다.

한서진이 차 문을 열어주며 말했다.

“진짜 밀접접촉했어요?”

“아니요. 호텔이랑 백악관에만 있었는데 걸렸을 리가요. 그래도 검사받고 격리는 해야죠.”

당분간 불편함을 감수해야겠지만 어쩔 수 없다. 다행인 것은 내가 그렇게 대외적인 활동을 많이 하는 건 아니라는 거고, 내 일들을 캐리온이 얼마든지 대신할 수 있다는 거다.

나는 차 뒷좌석에 몸을 묻으며 한서진에게 물었다.

“카메라와 도청장치는 달았어요?”

“네. 사장님이 CCTV랑 보안장치까지 다 꺼두셨는데요. 그 정도도 못하면 일 그만둬야죠. 이제 원하신다면 성윤식이 똥 싸는 모습도 보실 수 있을걸요?”

한서진이 키득거리며 말했다.

아무리 캐리온이 보안을 해제했다지만 그렇게 쉬운 작업은 아니었을 텐데.

하긴, 지난번에 우리 집에도 몰래 침입한 걸 보면 아무 도움이 없어도 해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대단한 여자다.

“그런데 카메라가 조금 특이하게 생겼던데요.”

“그거 미국에서 특별히 받아온 겁니다. 방송용 카메라를 초소형화시킨 물건이더라고요. 주파수를 송수신할 수 있는 장치가 장착되어있습니다.”

이번에 한서진이 설치한 CCTV는 로날드에게 특별히 받아왔다.

중국을 엿먹일거라고 하니까 껄껄 웃으면서 넘겨주더라. 역시 미국에는 별게 다 있다니까.

“방송용이요?”

나는 씩 웃으며 말했다.

“화질도 좋고, 음성도 선명하게 잡아내더군요. 성윤식이 중국에게 치료제를 팔아먹으려고 했다는 사실을 전국민한테 알려야지요.”

지금 성윤식이 중국과 연락할 수단은 다 막혔다. 하지만 오늘 밤, 내가 하나를 뚫어줄 것이다.

성윤식이 중국과 연락을 하는 그 순간, 그의 정치 생명에는 사형선고가 내려질 것이다.

*

내가 한국에 온 다음 날. 나와 파이저 제약 CEO인 엘렌 홉스는 공동 성명을 발표했다.

“KW 제약과 파이저 제약은 중국의 국가안전부 부부장 링윈이 영업비밀을 부당하게 취득하려고 했음을 인지하였고, 미국 경제스파이방지법(EEA)에 의거해 소송을 할 예정입니다.”

파이저 제약 쪽에서는 로펌을 고용해 전문 변호인단을 만들었고, 우리 쪽에서는 당연히 온캐리 변호사가 나섰다.

중국 측에서는 시종일관 묵묵부답이었고, 미국의 로날드는 연일 중국을 때리고 있었다. 덕분에 파이저의 소송은 국가의 대리전 양상을 띠고 있었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정부는 중국을 따라서 입을 꼭 다물었다.

자국 회사인 KW 제약을 돕기는커녕 침묵만 하고 있으니 보다 못한 국민들이 정부를 규탄하기 시작했다.

- 로날드는 맨날 중국한테 손해배상하라고 하는데, 우리 대통령은 뭐함?

ㄴ 중국 눈치 보잖아

- KW 제약이 한국 방역 다 했는데 대통령은 손 놓고 있네

- 내년 대선에는 야당 찍는다

- 국민청원 올렸어요. 동의해주세요

ㄴ 링크: https://wwwl.president.go.kr/petitions/

사람들은 대통령이라도 나서서 뭐라도 하라고 성화였고, 심지어 국민청원까지 50만 명이 동의를 받았다.

어쩔 수 없이 나온 청와대 대변인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미국에서 일어난 일은 미국에서 처리해야 하는 게 옳은 일입니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면 내정 간섭으로 비칠 수 있으며···.”

물론 안 하느니만 못한 말이었다. 불나는데 기름을 부은 꼴인지라 사람들은 더 빡쳤다.

- ㅋㅋㅋㅋㅋㅋㅋㅋ내정간섭ㅇㅈㄹ

- 웃기려고 노린 거면 성공했다

- 우리가 미국을 내정간섭한다고?

- KW 제약은 그냥 미국 가는 게 나을 듯

ㄴ 로날드가 두 팔 벌려 환영하지 않을까?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정부에서는 대변인의 발언을 끝으로, 아무런 발표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국민들이 KW 제약이 안타깝다며 아우성이었다.

하지만 나는, 전혀 개의치 않고 있었다.

이제 조만간이다.

대통령의 입에서 그렇게 싸고도는 중국을 비난하는 말을 강제로 뱉어내게 만들어줄 테니까.

*

크리스 워녹이 미국에서 그 꼴을 당한 후, 성윤식은 똥줄이 타고 있었다.

중국이 크리스 워녹에게 내렸던 명령과 똑같은 명령을 성윤식 또한 들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익명의 제보자라고 했지만, 누가 손을 썼을지는 뻔했다. 분명 로날드 대통령이나 파이저 제약에서 알아낸 정보겠지.

그들이 크리스 워녹과의 대화를 도청했으면, 자신과의 대화 역시 도청했을 수도 있다.

지금 미국에서 제일 신경을 쓰는 것이 바로 치료제의 개발인 만큼, 자신의 스파이 행위에도 예민하게 반응할 게 뻔했다.

물론 그런 거물들이 한국의 일개 의원에게까지 신경쓰지 않을 수도 있지만, 한국의 KW 제약이 치료제를 공동개발하고 있기에 관심을 두고 한국을 지켜볼 수도 있었다.

언제 걸릴지 모른다는 생각에 성윤식은 하루하루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있었다.

심지어 중국과 연락도 끊겼다. 늘 통화하던 전용폰으로 하루에도 몇 번씩 눌러봤지만 신호음조차 가지 않았다.

그리던 어느 늦은 저녁, 성윤식은 습관처럼 중국과 연락을 하던 핸드폰에 전화를 걸고 있었다.

뚜루루루

“헛!”

신호음이 울렸다. 성윤식은 혹시라도 끊어질세라 휴대폰을 꽉 붙잡았다. 이윽고 상대방이 전화를 받았다.

- 누구시오?

“나입니다. 성윤식이요.”

- 음? 내가 그대와의 연결은 다 끊으라고 했는데 어떻게 통화가 연결됐지?

“뭐, 뭐라고?”

그 말에 성윤식은 귀를 의심했다. 연결을 끊는다고? 그렇다는 말인즉슨,

“지금 나를 버리려고 했다고?”

- 버리려고 한 게 아니라 잠시 연락을 끊은 거요.

지금까지 느낀 불안감, 스트레스가 한 번에 폭발하면서 성윤식의 귀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링윈 당신이 어떻게 나한테 그럴 수 있어!”

- 거 참, 시끄럽네. 도청될 수 있으니 끊으시오.

“당신이 나한테 자료를 빼돌리라고 해서 내가 이 꼴이 됐잖아! 워녹처럼 나도 버리려는 거 아니야! 여보세요? 야, 야!”

하지만 이미 전화는 끊어진 후였다. 성윤식은 씩씩대며 핸드폰을 바라보았다. 마음 같아서는 집어 던지고 싶었지만, 중국 측의 연락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초인적인 인내력으로 마음을 다잡는 그 순간, 아내가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여보!”

그녀의 얼굴은 새하얗게 질려있었다.

*

성윤식의 아내 김경숙 여사는 9시마다 뉴스를 챙겨보는 편이었다.

평소에는 남편도 함께 나와서 보지만, 요즘 남편은 무슨 일이 있는지 늘 짜증이나 부리고 서재에 처박혀 나오지 않기 일쑤였다.

뉴스는 지금 포비드 상황과 그리고 미국에서 일어난 산업스파이 사건을 위주로 다루고 있었다.

- 오늘 KW 제약 이건우 사장과 파이저 제약은···.

그때였다.

치지지직

화면이 흔들리면서 앵커의 모습이 사라졌다가, 익숙한 방이 나타났다.

남편의 서재였다.

“헙”

김경숙 여사는 입을 틀어막았다. 그렇지 않으면 비명이 터져 나올 것 같았다.

남편이 전화 너머의 상대방에게 소리를 지르는 모습이 보였다.

- 당신이 나한테 자료를 빼돌리라고 해서 내가 이 꼴이 됐잖아! 워녹처럼 나도 버리려는 거 아니야! 여보세요? 야, 야!

그리고 화면이 흔들리더니,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TV에서는 다시 9시 생방송 뉴스가 흘러나왔다.

김경숙 여사는 소름이 돋았다. 본능적으로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게 느껴졌다. 그녀는 남편의 서재로 달려가 문을 벌컥 열었다.

“여보!”

하지만 상황은 이미 끝이었다.

성윤식이 중국의 링윈과 연락하는 모습이, 그것도 라이브로, 모든 국민에게 전송되었다.

*

방송용 카메라에는 주파수를 송수신할 수 있는 장치가 달려 있었다.

나는 캐리온에게 지상파 3사에 전달되는 주파수를 탈취해 CCTV 장치에 연결하도록 명령했다.

능력 좋은 캐리온은 그렇게 30초도 안 되는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성윤식의 통화 내용을 전달할 수 있었다.

아쉽게도 통화 내용에 링윈이 성윤식에게 어떤 내용을 명령했는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았다.

하지만 ‘자료를 빼돌리라고’나 ‘워녹처럼 버리려는’ 등의 말을 통해 어떤 내용인지 충분히 유추할 수 있었다.

그러나 대놓고 말하는 것보다 은근히 비밀을 슬쩍 흘리는 것만큼 더 사람들을 자극하는 게 없다.

사람들은 상상력에 상상력을 더해 그게 무슨 내용인지 끊임없이 고민할 테니까.

주파수가 탈취당한 것에 관해서 말하는 기사는 거의 없었다. 이 상황에서 그런 기사를 쓰는 것은 지면 낭비다.

다들 성윤식의 통화 내용을 통해 중국과 성윤식이 어떤 관계인지 소설을 써 내려가고 있었고, 밤늦은 시간인데도 성윤식의 집 앞은 기자들로 둘러싸여 있었다.

<중국 국가안전부 부부장 링윈, 성윤식 의원에게도 접근했나>

<성윤식 중국에게 정치자금 받았다?>

<성윤식 통화내용··· ’워녹처럼 버려져’ 무슨 뜻으로>

<성윤식 통화중 ‘자료를 빼돌려’··· KW 제약을 가리키나?>

하루를 마무리해야 할 밤 9시. 성윤식 덕분에 대한민국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커뮤니티에서도 난리가 아녔다.

- 누군지 모르겠지만 주파수 탈취는 미쳤다

- 이렇게 뉴스가 재밌던 적은 처음임

- 그때 최고시청률 찍었다는데

국회의원 집에 CCTV를 달아서, 지상파 3사의 주파수를 탈취한 뒤 송출하다니! 영화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일이지 않은가!

성윤식의 대화에서 모든 사람이 추론할 수 있듯, 그는 크리스 워녹처럼 KW 제약의 임상 자료를 빼돌리려다가 지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처했다.

아직 범죄를 저지른 건 아니지만, 그가 중국과 작당을 해 산업 기밀을 유출하려고 했던 건 만천하에 까발려진 사실.

그때 누군가가 말했다.

- 대통령은 뭐라고 하려나

지금까지 그랬듯 입을 다물까, 아니면 중국에게 사과하라고 규탄을 할까.

사람들의 시선이 청와대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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