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로 갑질하는 양아치 재벌-61화 (61/183)

미국으로 (2)

로날드 클린턴.

사업가로 성공하다가 갑자기 정치계에 뛰어든 이단아. 그리고 단숨에 미국의 대통령까지 뛰어오른 입지적인 인물.

초기에는 뛰어난 카리스마와 자국민우선주의로 지지율이 높았지만, 요즘에는 러시아 스캔들이나 여러 가지 악재가 겹치면서 나락을 가고 있었다.

로날드에 대해서 많이 들은 말 중 하나는 그가 굉장히 원색적이며 거침이 없다는 것이다.

그 명성대로 그는 우리 협상단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리곤 다른 사람들에겐 눈길도 주지 않은 채, 나를 향해 똑바로 다가오며 손을 내밀었다.

"반갑네. 그쪽이 KW 제약의 이건우 사장이군."

나는 그의 손을 마주 잡았다. 움켜쥔 손에서 강한 압박이 느껴졌다.

하지만 나는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태연하게 대답했다.

"반갑습니다, 대통령님.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요즘 나도 운동을 하거든. 얼마 전 한서진 씨가 나보고 약골이라고 얼마나 타박을 하던지.

그리고 로날드 대통령의 악수 방법은 이미 파악한 지 오래다. 악수하는 척 강하게 움켜쥐어 상대를 당황스럽게 하는 수법에 당하기에는 내 성격이 용납하지 못한다.

강하게 마주 잡아 오는 손에 로날드 대통령은 짐짓 놀란 표정을 짓다가 씨익 웃었다.

"아주 좋군. 한국에서 천재 사업가가 나왔다고 하던데, 패기도 있고 무척 마음에 드는구만."

우리는 그렇게 손을 풀고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상석에 앉은 로날드 대통령이 먼저 입을 열었다.

“한국 대통령이 요즘 중국이랑 친하게 지내서, 이렇게 지원이 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네. 하하하.”

대놓고 한국을 까는 말에 나를 제외한 사람들은 당황했다.

하지만 나는 태연하게 말을 받았다.

나도 현 정부에 대해서는 감정이 썩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로날드 대통령과 한배를 타기로 마음먹었으니 솔직하게 내 생각을 말했다.

“저도 대통령의 행보가 썩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뭐, 각자 가치관에 맞게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로날드는 내 직설적인 말이 마음에 들었는지 껄껄 웃었다.

“선약이 잡힌 게 이렇게 아쉬울 줄이야. 기회가 된다면 나중에 또 보도록 하지.”

그냥 얼굴을 비추러 온 거였군. 하긴 정상과의 만남이 쉬울리가 없다.

그래도 한국 대통령 얼굴도 못 만나봤는데, 미국 대통령과 악수까지 했으니 자랑할만한 일이 생긴건가?

조금은 풀어진 분위기 속에서, 우리는 본격적인 회의에 들어갔다.

연방재난관리청 청장이 말했다.

“먼저 사람들을 격리시킬 장소가 필요합니다. 지금 저 크루즈 안에 4000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모여 있습니다. 객실 내에 대기시킨다고는 해도, 최소한의 거리를 둘 넓은 공간이 필수적입니다. 게다가 지속적으로 공기를 환기시켜줄 시스템이 필요하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무리겠지요.”

청장의 말에 나는 미소를 지었다.

“그 환기가 되는 격리시설, 저희가 이미 준비했습니다."

내 말에 연방재난관리청 청장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뭐가 필요한지 말하자마자 준비가 되었다니.

하지만 나는 (사실 캐리온은) 이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전문가이다. 이런 상황에서 뭐가 필요한지는 꿰고 있다.

나는 청장에게 준비해온 서류를 보여주었다.

"저희 제일 중공업에서 화물선을 끌고 왔습니다.”

포비드의 확산세로 요즘 대한민국의 화물선들은 당분간 개점휴업 상태였다. 그래서 나는 작은 아버지에게 부탁해서 놀고 있는 화물선을 끌고 왔다.

“화물선 말입니까?”

“예. 많은 수는 아니지만 치료실로 쓸 수 있도록 임시 개조를 했고, 바이러스를 충분히 차단할 수 있는 공기청정기 필터를 달았습니다.”

“바이러스를 차단하는 공기청정기가 있단 말입니까?”

“KW 제약에서 특허를 낸 필터로 만들었습니다. AI 구동 환기 시스템을 가진 최초의 필터이지요. 내부 팬 모듈은 공기를 빨아들여 양압을 만들고, 5중으로 된 필터는 병원체를 99.7%까지 걸러내고 소독할 수 있습니다.”

나는 청장의 마스크를 가리키며 말했다.

“지금 청장님이 쓰고 있으신 마스크도 같은 원리로 만들어진 제품입니다.”

재미있게도 청장을 비롯한 실무진들은 모두 KW 에코 브레스를 착용하고 있었다. 분명히 수출한 기억은 없는데, 어디선가 구했나 보다.

청장은 웃으며 말했다.

“지인에게 선물 받은 것입니다. 덕분에 회의할 때 쾌적하더군요.”

“공기청정기는 여분으로 삼백 대 정도 들고 왔습니다. 뉴욕항에 있는 배를 징발해서 선박 위에 임시 치료소를 만들어도 좋을 듯합니다.”

“또한, KW 제약에서 충분한 물량의 자가진단키트와 마스크를 제공할 것이며, 제일 식품에서 식자재는 준비를 마쳤습니다. 최대 격리 기간인 총 14일 동안 깨끗하게 소독한 시설에서 음식을 제공할 겁니다.”

당연히 공짜는 아니고 미국이 구매해야 할 물량이다. 화물선의 이용 비용부터 공기청정기, 자가진단키트까지 모두 비용청구를 할 예정이다.

하지만 미국에게 중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사람이다. 어떻게든 국민의 안전을 보장해준다는 그 이미지를 위해서라면 이 정도 돈은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여기서 대충 품목들을 정리하고 그 이후에 구체적인 가격 협상이 이뤄지겠지만, 뭐 그건 실무진들이 알아서 하겠지.

우리는 그다음 안건으로 넘어갔다.

“그리고 오성 전자에서 알람온과 와칭 앱이 디폴트값으로 설정된 휴대폰을 기부할 예정입니다. 이것으로 확진자의 동선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그러자 청장이 곤란하다는 듯이 말했다.

“흐음. 미국은 사생활 침해에 아주 민감한 나라예요.”

“알람온은 사생활을 침해하지 않습니다. 일단 격리 기간인 2주가 지나면 개인정보는 자동으로 폐기됩니다.”

“그리고 이 어플 하나로 3가지 시스템을 동시에 활용할 수 있습니다. 일반인을 위한 '바이러스 노출 자가진단 시스템'과 감염병 관리기관을 위한 '확진자 역학조사 시스템', '격리자 관리 시스템' 이지요.”

“현재 약 30여 종의 스마트폰이 사용되고 있는데, 다양한 센서의 스마트폰에 이식하고 테스트하는 과정까지 모두 마쳤습니다.”

내 브리핑을 들은 청장은 입을 떡 벌렸고, 주위에 있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알람온이 좋다고 사용하기는 했지만, 이 정도로 좋을 줄은 몰랐던 것이다.

정신을 차린 청장이 눈빛을 빛냈다. 한국의 방역체계는 그의 생각보다 훨씬 뛰어났다.

“한국이 뛰어난 기술로 이번 방역을 성공적으로 했다는 말은 들었습니다만. 그··· 좋은 시스템이 하나 있다더군요.”

나는 진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미니온-트래킹 말입니까?”

미니온-트래킹이 이번 협상의 메인 디쉬이다. 미국 땅덩어리는 우리나라의 수십 배이며, 인구도 대한민국의 6배가 넘는다. 당연히 가격은 비싸질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미니온-트래킹은 사용하시려면 전용 서버실을 따로 운영하셔야 합니다. 지금 제 쪽에서 운영하는 서버 용량이 거의 한계치에 달했거든요. 미국 측에서 서버실을 제공해주시기만 한다면 언제든지 판매 가능합니다."

공짜로 서버를 늘릴 수 있거든. 당연히 미니온들이 사용하게 될 서버들은 캐리온의 통제 하에 다른 업무들도 처리하게 될 것이다.

미국 곳곳에 합법적으로 내 눈들을 깔아놓을 수 있는 것은 덤이고.

청장은 내 제안에 흔쾌히 대답했다.

"미니온-트래킹만 들여올 수 있다면 서버를 운영하는 비용은 우리 측에서 담당할 수 있습니다. 덕분에 한시름 놓겠군요. 감사합니다."

"하하, 제가 더 고맙죠."

자발적으로 내 호갱이 되어주신 분인데.

우리는 그렇게 웃으며 악수를 나눴다.

KW 제약의 미국 진출이 성공적으로 끝났다.

*

로날드 대통령은 제약회사 CEO를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협상은 청장이 알아서 잘 할 것이고, 실무진들이 구체적인 사항을 정리해서 빠르게 보도자료를 뿌릴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자신의 뛰어난 방역 리더십으로 이어질 것이기에 로날드는 어느 때보다 신경을 쓰고 있었다.

로날드 대통령은 늘 그를 따라다니는 수행비서에게 물었다. 조금 전부터 한 사람이 계속해서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와 악수를 할 때 건넨 말 때문이었다.

- 중국을 압박할 방법을 알고있습니다.

“이건우 사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수행비서 역시 조금 전에 이건우를 만날 때 같이 있었다. 그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답했다.

“글쎄요. 단정 지어서 평가내리기 어려운 듯합니다.”

대통령 앞에서도 위축되지 않으면서도, 또 어떻게 보면 노련한 장사치 같기도 하며, 팬데믹 상황을 예견한 것을 보면 통찰력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종잡을 수 없는 사람.

그게 두 사람이 이건우에 대하여 내린 평가였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수행비서가 말했다.

“그자는 미국에 호의적입니다. 게다가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치료제 전임상을 마치고, 임상 1상에 들어갈 준비를 한다고 합니다. 우리 편으로 둬야할 인물이지요.”

“흐음. 최대한 그의 편의를 봐주게. 나중에 따로 불러서 얘기해보는 게 좋겠군.”

청장과 협상하는 건 가벼운 사안밖에 없었다.

한국에서 호의로 물자를 보내고 미국이 저렴한 가격에 사들인다. 대신 미국에서 각종 보조와 혜택을 받는다. 끝.

하지만 지금부터 할 얘기는 그와 다르다.

포비드 치료제와 관련된 이야기니까.

세계 곳곳에 퍼지고 있는 질병을 잡을 수 있는 치료제. 개발에 성공한다면 그 이익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엘렌 홉스는 도착했는가?”

“예. 방금 도착했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엘렌 홉스. 미국 최대 제약회사인 파이저의 CEO였다.

*

일처리는 빠르게 진행되었다. 실무진은 빠르게 협의한 후 각종 물자를 공급받는 계약을 체결했다. 그리고 오성 전자의 휴대폰 3000만 대의 통 큰 기부 소식도 전해졌다.

나는 로날드를 만난 지 한 시간도 안 되서 사진을 찍고 보도자료를 내었다.

로날드는 즉시 “미국인의 안전은 미국이 책임진다. KW 땡큐!”라고 트윗을 올리며, 자신이 이 협상을 주도해서 수많은 미국인을 비롯한 세계의 방역에 앞장서고 있다는 것을 과시했다.

물자는 계약이 체결됨과 동시에 바로 크루즈선으로 즉시 전달되었다.

제일 중공업의 화물선과 뉴욕항에서 긴급 징발한 수십 척의 선박이 태극기와 성조기를 달고 뉴욕항 앞바다에 등장했다.

*

보건 당국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진단키트를 이용해 확진자를 가려내는 일이었다.

발진기에 접어든 확진자는 따로 진단키트가 없어도 구별할 수 있기에 그들은 치료소로 보내졌다. 하지만 아직 전구기에 든 사람은 겉으로 보기에는 증상 구별이 어려웠다.

그들은 진단키트를 통해 빠르게 검사를 했고, 다행히 카터 부부는 음성 판정을 받고 격리시설로 사용 중인 선박 중 하나에 들어갔다.

제일 그룹의 로고가 그려진 화물선이었다. 제임스 카터는 간이침대에 퍼지며 말했다.

“크루즈는 끔찍했어. 이제야 살 것 같군.”

당연히 크루즈가 시설이 더 좋았지만, 거기는 편하게 돌아다닐 수 없었다. 잘못 했다가는 바이러스에 걸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잘 때도 마스크를 끼고 잘 정도였다.

에밀리 카터는 국가에서 지급해준 KW 로고가 박힌 마스크를 끼면서 말했다.

“누워만 있지 말고 마스크나 빨리 바꿔요. 어우. 이제야 살 것 같네.”

버튼을 누르자 내부 팬이 작동하면서 공기를 밀어내 통기성을 증가시켰다. 그리고 일반 마스크에 비해 눌리지 않아 너무 편했다.

그냥 평소에 숨 쉬듯이 쉬면 되었다.

에밀리는 마스크의 로고를 확인하며 말했다.

“KW? 집에 돌아가면 여기 회사 마스크를 사놓아야지. 나는 검은색보다는 빨간색이 더 나은데.”

“당신은 그러면서 돈을 너무 많이 써.”

“당신이나 쓸데없는 데 돈 쓰지 마요!”

제임스는 한마디 했다가 한 대 맞았다.

조금 기다리자 방호복을 입은 사람이 도시락을 가져다주었다. 모두 살균 처리되어 밀봉된 음식이었다. 그리고 그 위에도 제일 그룹 로고가 대문짝만하게 박혀있었다.

“제일 그룹이면 오로라폰 만드는 데 아니야? 여기 식품도 하는 곳이었네.”

포장을 뜯자 생소한 음식이 나왔다. 메뉴는 하얀 쌀밥에 소불고기, 그리고 삼첩반찬이 나왔다. 외국인도 부담없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이었다.

쌀밥 위에 소불고기를 올려 먹으니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제임스는 이 맛을 절대 잊지 못할 것만 같았다. 한국 음식은 최고였다!

“역시 영국 음식은 쓰레기야.”

*

늦은 밤. 나는 대통령의 은밀한 초대를 받았다.

보좌관을 따라 거대한 홀을 지나 깊은 밀실에 들어갔다.

그리고 그곳에는 대통령과 세계 최대 제약회사의 CEO인 엘렌 홉스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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