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으로 (1)
미국 대통령인 로날드 클린턴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대선이 바로 8개월 뒤인데 뉴욕항 앞바다에서 집단 감염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는 당장 관련 행정 조직인 국무부, 보건사회복지부, 연방재난관리청을 소집했다. 로날드는 그들을 둘러보았다.
“각 부처에서는 대응방안을 준비해왔겠지요?”
그렇지 않아도 매서운 눈매에 노기가 어리니, 한가락 한다는 장관들과 청장들도 괜히 긴장되었다.
먼저 국무부 장관이 총대를 멨다. 그는 정치적으로 생각했다.
“일단 하선을 금지해야 합니다. 대선이 코앞인데 하선을 시킨다면 많은 국민들이 불안감에 떨 것입니다. 그리고 ‘안전하고 청결한 미국’이라는 프레임에 부정적인 인식이 박힐 수도 있고요. 이는 야당에 명분을 주는 행위이며, 전체적인 지지율을 떨어뜨릴 겁니다.”
그 말에 보건사회복지부 장관이 바로 반박했다.
“안 됩니다. 알다시피 포비드는 두창 바이러스에 기원을 두고 있으며, 감염성이 높고 치명률도 높습니다. 일례로 의료 선진국이라는 한국도 지금 사망률이 10%에 달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빠르게 격리를 하고 치료에 들어가서 사망률이 낮아졌지, 최소 사망률은 30%로 봐야 합니다.”
“크루즈같이 격리된 상황에서는 사망률이 50~75%까지 올라갈 겁니다. 하선을 금지하면 배 안에서 국민들이 모두 죽어 나갈 겁니다. 국민을 보호하지 못했다는 명분만큼 치명적인 건 없습니다.”
두 사람의 의견 모두 타당했다. 로날드는 두 장관의 의견을 듣고 절충안을 생각해보았다.
“그럼 크루즈 안에 격리한 후 차례로 검사를 받아 확인 후 하선시키면 되지 않소?”
이번에는 연방재난관리청 청장이 고개를 저었다.
“불가능합니다. 크루즈는 배수, 하수 처리 때문에 잠시 동안 항구를 떠나 항해한 후 다시 정박해야만 합니다. 사람들을 조기 하선시킬 수밖에 없습니다.”
“끄응”
로날드는 머리가 아파왔다.
사람들은 하선시키면 감염자를 사회에 풀어놓는다고 떠들어댈 거고, 반대로 하면 국민을 죽게 놔둔다고 욕먹을 거다.
문제는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이번 다이아몬드 엠페러 호는 미국 동부와 캐나다 주요 지역을 돌았다.
미국 동부에서는 워싱턴, 로드 아일랜드, 뉴욕.
관광지로 유명한 나이아가라.
캐나다에서는 토론토, 몬트리올, 그리고 프랑스인이 많이 사는 퀘벡까지.
모두 유동인구가 어마어마한 곳들이다. 그 모든 지역에 바이러스가 전파됐을 거라 생각하니 기분은 더욱 끔찍해졌다.
한국에서 일어난 집단 감염이 미국 전체에서 일어난다고 생각하면···.
“맙소사”
재선은 물 건너가고 자신은 바이러스를 막지 못한 최악의 대통령이 될 것이다.
그는 방역의 모범 케이스로 꼽히는 한국을 떠올렸다.
“한국은 어떻게 대처했다고 한가? 성공적으로 막아냈다고 들었는데.”
연방재난관리청 청장이 대답했다.
“미니온-트래킹이라는 프로그램과 각종 위생용품 덕에 초기에 바이러스가 퍼지는 것을 진압했다고 합니다.”
그 이면에는 이건우의 많은 노력이 있었지만, 조사 기간이 짧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저 ‘초동 조치를 잘 했구나’ 정도로만 생각하고 넘어갔다.
로날드는 국무부 장관에게 명령했다.
“일단 모든 책임을 중국에게 돌리고, 어떻게든 한국에게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하세요.”
“예. 알겠습니다. 그런데 한국이 요즘 친중국 노선을 타고 있어서 저희의 요청을 거부할 수 있습니다.”
로날드는 ‘자국민우선주의’를 내세우며 주한미군을 철수시키려고 한 전적이 있으며, FTA 협상에서도 미국에 유리한 방향으로 강압적으로 바꾸었다.
그 일로 한국과는 마찰이 좀 있었던데다, 한국 대통령은 중국에게 지원을 받아서 당선된 대통령이었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아쉬운 사람이 먼저 찾아야지.
“그건 국무부 장관이 알아서 해결해야지요.”
어떻게든 무조건 해결해내란 소리다. 국무부 장관은 한숨을 삼키며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
국무부 장관은 회의가 끝나자마자 한국 정부에 도움을 요청했다. 하지만 한국 외교부 장관은 짐짓 안타까운 목소리로 말했다.
- 도와드리고 싶지만, 아시다시피 저희도 지역사회감염이 심각한 수준이라 여력이 없습니다.
“현재 크루즈에는 귀국의 국민도 있습니다. 체류 중인 한국인의 안전을 위해서라면 나서야 하지 않겠습니까?”
“한국이 이번 사건을 겪으면서 진단 시약기법(PCR) 개발 및 역량이 높아졌다고 들었는데, 정보 공유와 협력을 통해 상생할 방안을 찾는 게 좋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 물론 그렇습니다만 저희가 확인해본 바로는 전부 미국 시민권을 가진 재미교포이더군요. 말씀하신 부분은 한 번 고려해보겠습니다.
말만 고려해본다는 것이지 퇴짜를 놓은 것이나 다름없다.
전화를 끊은 국무부 장관이 긴 한숨을 내쉴 때, 뜻밖의 곳에서 희망이 찾아왔다.
테슬라 CEO인 일론 머스크가 연락을 해온 것이다.
- 장관님. 제일 그룹에서 지원을 하고 싶다는데요.
국무부 장관은 고개를 기우뚱했다. 제일 그룹은 그의 기억 속에도 있는 대기업이다.
“제일 그룹? 거기는 한국의 대기업 아닌가?”
방금 한국에게서 퇴짜를 맞았는데 같은 곳의 대기업이 도와준다는 게 이상하게 느껴졌다.
- 그렇습니다. 예전에 자율주행에 투자할 때 제일 그룹과 컨소시엄을 맺은 적이 있는데, 그게 인연이 되었습니다. 국가가 아니라 개인으로서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도움을 주고 싶다고 하더군요.
“그거 참 고마운 일이구려.”
국무부 장관은 시큰둥하기만 했다. 기업이 할 일이야 뻔하다. 적당히 기부 좀 하다가 이미지만 챙겨서 돌아가겠지.
일론 머스크는 그 마음을 눈치챘는지 다시 물었다.
- 그럼 KW 제약에 대해서는 혹시 들어보셨습니까?
국무부 장관은 보고서 속에 스쳐보았던 이름을 떠올렸다.
“들어는 봤네만···.”
그가 말끝을 흐리자 일론 머스크가 작게 웃었다.
- 조사를 조금 더 하셔야 하겠습니다. KW 제약이 이번 한국 방역의 주역이거든요. 그가 우리 미국을 돕기 위해서 찾아왔습니다.
*
사람들이 남아서 준비하는 동안, 나는 가장 빠른 비행기 티켓을 끊고 미국에 먼저 도착했다.
고급 호텔의 라운지바.
내 앞에 앉아있던 일론 머스크가 전화를 끊으며 눈을 찡긋했다.
“어때요. 이 정도면 마음에 드나요?”
“마음에 드는 정도가 아니지요. 정말 감사합니다.”
할아버지가 나에게 연결해준 사람은 일론 머스크.
세계 최고의 부자이자 전기차를 생산하는 기업의 CEO이다.
그가 지금 미쳐있는 건 자율주행과 화성에 로켓을 보내는 것.
그리고 나에게는 최고의 인공지능인 캐리온이 있다.
캐리온이 들어간 자동차라면 완전 자동화 단계의 상용화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나는 그것을 미끼로 일론 머스크에게 딜을 걸었고, 캐리온이 만든 자율주행 알고리즘의 데모 버전을 본 일론 머스크는 눈이 뒤집혀져 바로 나를 국무부장관에게 연결시켜주었다.
일론 머스크는 열망에 가득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당신이 보내준 프로그램은 잘 봤습니다. 더 발전시키면 완벽한 자율주행차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은데, 그 프로그램 개발자를 소개해줄 수 있을까요?”
“아, 그건 어려울 것 같습니다. 개발자가 대인기피증이 있거든요.”
캐리온은 내 머릿속에서 나갈 수 없으니 틀린 말은 아니다.
“대신 저와 이야기를 나눠보지요. 저도 자율주행차에 관심이 많습니다. 특히 소프트웨어 쪽으로요.”
“흐음. 당신이 자율주행차에 관심이 있다고요?”
“아시다시피 저희 회장님께서는 자동차 사업을 직접 챙기실 정도로 중요하게 여깁니다. 당신도 회장님과 같이 일해봤으니 아실텐데요.”
나는 본격적으로 설명했다.
“저는 인공지능 개발에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있습니다. 저희 회사에서 이번에 개발한 미니온-트래킹 프로그램도 그 일환이고, 또다른 인공지능인 미니온-메딕은 지금 제약 분야에서 포비드 치료제 개발에 힘을 박차고 있지요.”
“미니온-트래킹은 들어봤습니다. 이번 한국의 포비드 사태를 막은 엄청난 인공지능이라 들었어요.”
그렇게 말하는 일론 머스크의 눈빛이 점점 더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맞습니다. 인지 능력을 갖춘 다양한 기계와 시스템, 인프라가 모빌리티 생태계로 빠르게 편입되고 있지요. 저는 장기적으로 자율주행차, 드론, 도심항공교통(UAM) 등 움직이는 것을 하나로 묶는 생태계를 구축하고 싶습니다.”
“와우!”
일론 머스크는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벌떡 일어났다.
“지금까지 나와 같은 비전을 가진 사람은 처음입니다! 맞아요. 앞으로 세상은 디지털화가 될 겁니다. 그리고 테슬라의 자율주행은 그 선두에 설 거고요.”
나는 진하게 미소를 지었다.
테슬라가 ECU와 배터리 등의 하드웨어를 만든다면, 나는 그 소프트웨어를 만든다.
미국에서 만나게 된 또다른 인연을 향해 나는 손을 내밀었다.
“그럼 구체적인 사업 얘기는 자리를 옮겨서 할까요?”
*
로날드 클린턴은 국무부 장관의 보고를 받았다. 국무부 장관이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한국의 기업에서 저희를 도와주겠다고 나섰습니다.”
하지만 보고를 듣는 로날드는 시큰둥하기만 했다. 한국이 우방국인 미국이 아니라 중국의 눈치를 보는 게 아니꼬웠기 때문이다.
“겨우 기업 갖고 별 수를 낼 수 있겠는가? 어차피 그들도 대통령 눈치를 보느라 시늉만 하다가 이미지만 챙긴 후에 돌아갈 텐데.”
조금 전에 똑같은 생각을 했던 국무부 장관은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그게 아닙니다. 혹시 KW 제약이라고 들어봤습니까?”
“KW 제약?”
로날드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되물었고, 국무부 장관이 KW 제약에 관해서 설명해주었다.
일론 머스크의 말을 듣고 바로 KW 제약에 대해서 조사했다. 실무진을 한 시간 동안 갈아넣자 KW 제약이 어떤 곳인지 대략적으로는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겉으로 드러난 것만으로도 엄청난 기업이었다.
국무부 장관은 흥분으로 말이 꼬이려는 걸 간신히 억누르며 침착하게 말했다.
“제일 그룹에서 뻗어 나온 기업입니다. 또한 오성 그룹과도 한 가족이고요.”
“아, 그쪽 CEO들은 다 이리저리 엮여있었지. 오성 그룹은 내가 잘 알아. 에플이랑 경쟁하는 회사 아닌가.”
“예. 어쨌든 KW 제약이 이번 한국의 집단 감염 사태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소식을 전달받았습니다. 알고 보니 사장인 이건우는 12월부터 팬데믹을 준비하고 있었더군요.”
로날드는 깜짝 놀랐다.
“12월? 그건 중국 바이러스가 퍼지기 전부터가 아닌가!”
“그러니까 말입니다. 어떻게 알았는지는 몰라도, 그때부터 마스크와 진단키트, 역학조사 시스템, 그리고 치료제 개발까지 혼자서 다 해냈습니다. 이번 대전 사태를 초기 진압한 것도 그의 공이 가장 크다고 합니다.”
로날드는 혹하는 눈치였다.
이번에 일어난 대전 사태에 대해서는 그도 잘 알고 있었다.
그 때문에 한국에 대해 입국거부 조치를 내릴까 말까 고민했었으니까.
“호오. 그렇다면 한국의 도움을 받는 것보다는, 그 사장의 도움을 받는 게 훨씬 낫다는 말인가?”
“맞습니다. 사람들은 K-방역이 아니라 KW-방역이라고 부를 정도로 대단한 역할을 했습니다. 혼자서 집단 감염이라는 쓰나미를 막아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국무부 장관이 이렇게나 강조하자 이미 설득당한 로날드가 말했다.
“내일 스케줄이 어떻게 되지?”
“빠듯합니다. 파이저 CEO와 만나서 현 상황에 대해 논의하기로 했습니다.”
“그렇군. 그래도 잠깐 얼굴 볼 시간은 있겠지. 실무진에게 협상할 준비를 하라고 지시해두고, 그의 일행을 백악관으로 초대하게.”
“알겠습니다.”
*
백악관 응접실에 이건우를 비롯한 다섯 명의 남녀가 모였다.
먼저 제일 그룹의 세 명.
제일 식품을 맡은 둘째 이민혁.
제일 중공업을 맡은 셋째 이우혁
제일 제약을 맡은 막내 이정혜.
그리고 오성 전자의 사장이자 이건우에게는 외삼촌이 되는 전재용.
이건우를 향한 네 명의 시선은 각자 달랐다.
먼저 이민혁과 이우혁 형제는 이건우를 아니꼽게 보았다.
‘회장님은 왜 저런 꼬맹이한테 이 중요한 일을 맡기는지.’
‘KW 세우면서 제일 그룹에서 떠난 줄 알았는데, 아직도 엉겨 붙어있네.’
겉으로는 티를 내지 않았지만 불편한 시선은 이건우를 콕콕 찔러댔다. 이건우는 그 나름대로 그런 대접이 기분이 나빴다.
‘하여튼 욕심은 많아서. 기회를 줘도 지랄이야.’
하지만 그들 역시, 감정과는 별개로 이건우가 엄청난 기회를 들고 왔다는 점은 알고있다. 이 기회를 이용해서 백악관을 비롯한 정계에 줄을 댄다면 앞으로 사업 확장에 도움이 될 것이다.
처음에는 반발했지만, 이건우를 대표로 인정하지 않는다고 하면 그냥 협상단에서 빼버린다길래, 불편한 마음을 감추고 한발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고모인 이정혜는 그냥 이건우가 기특했다. 그녀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걸었다.
“요즘 KW 제약이 무섭게 치고 올라오더구나.”
“제가 제약에 대해서 뭘 아나요. 연구원들이 힘써 준 덕분이죠.”
이건우가 데려온 세 팀은 국내외에서 한가락 하는 사람들이었으며, 구성하는 팀원들도 면면이 인재들이었다.
캐리온이 그런 사람으로 골라 뽑았으니까.
“듣자 하니 인공지능을 활용하고 있다면서?”
캐리온에 대한 소식이 거기까지 흘러 들어갔나보다. 나는 손사래를 쳤다.
“그냥 업무를 보조하는 정도에요. 연구는 사람이 다 하죠.”
이정혜는 눈을 반짝였다.
“제일 제약에서도 지금 포비드 치료제를 만들려고 하는데, 컨소시엄을 구성해서 임상해볼래? 우리는 노하우가 많단다.”
혹하는 이야기였다. 제일 제약이라면 신생 회사인 KW와 달리 수많은 임상 경험을 보유하고 있다.
“한 번 생각해볼게요.”
그리고 그때 로날드 대통령이 들어왔다. 이건우는 깜짝 놀라서 벌떡 일어났다.
여기에 대통령이 직접 나올 줄은 몰랐던 것이다.
‘로날드 대통령이 파격적인 것을 좋아하는 줄은 알았는데 직접 나올 줄이야.’
그래도 그는 능숙하게 당황함을 감추며 인사했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대통령 각하.”
로날드는 눈에 이채를 뛰었다. 젊은 사업가라고 했지만, 서른도 안 되어 보이는 사람이 한국에서 성공적으로 방역을 이끌어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하지만 그게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는 지금껏 천재를 많이 만나왔다. 이건우도 그런 부류이리라.
로날드 대통령은 호탕하게 웃으며 악수했다.
"반갑네. 그쪽이 KW 제약의 이건우 사장이군. 무슨 얘기를 하러 왔는지 들어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