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로 갑질하는 양아치 재벌-59화 (59/183)

다이아몬드 엠페러 호 (2)

서구권에서는 포비드에 대한 공포가 크지 않았다.

감염 사례가 아예 없던 건 아니었지만, 대부분 불확실한 경로로 발견된 확진자만 몇 명 있었을 뿐. 한국이나 중국처럼 집단 감염 사례는 아직까지는 없었다.

따라서 포비드에 대한 경각심은 거의 없었고, 대부분 국가는 먼 나라 이야기로만 알았다.

서양 특유의 자유로운 분위기도 방역에 큰 방해가 되었다. 개인주의 사상이 뿌리 깊게 박혀있는 탓에, 정부에서 억지로 마스크를 쓰게 하는 등의 정책에 강하게 반발해 온 것이다.

소위 선진국이라고 하는 나라에서도 길거리에서 마스크를 쓰고 돌아다니는 사람을 보기가 힘들었다.

물론 럭셔리 여행을 모토로 하는 다이아몬드 엠페러 호는 입항하기 전에 나름 사람들을 체크하긴 했다. 하지만 정말 열체크나 문진을 하는 등 최소한의 조치만을 취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 방만함의 결과가 나타났다.

세 번째 집단 감염이 발생한 것이다.

그것도 대형 크루즈라는 폐쇄된 시설 안에서.

나는 업그래이드 된 캐리온에 보고 덕분에 빠르게 이 소식에 대해서 알 수 있었다.

이번 알바트리온의 주가조작 사건으로 조 단위의 돈을 쓸어 담으며, 다시 한번 자본금을 늘릴 수 있었다.

그렇게 번 돈 중 수익의 25%인 총 5000억 규모의 자본을 캐리온 전용 데이터센터에 투자했다. 아직 시설에 서버가 가득 차지 않았음에도 국내 최대규모의 데이터센터가 되었다.

서버 용량이 늘어난 캐리온은 이제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의 상황에도 눈을 돌릴 수 있게 되었다.

[대형 크루즈 다이아몬드 엠페러 호에서 감염자가 나타났습니다.]

다이아몬드 엠페러 호는 뉴욕항에서 입항해 로드아일랜드, 워싱턴 등의 미국 동부를 여행한 후, 캐나다를 거쳐 다시 뉴욕으로 돌아오는 일정이 있었다.

사건은 뉴욕항에 돌아오기 이틀 전에 벌어졌다.

[첫 확진자는 일본계 캐나다인으로 뉴욕에서 탑승하여 토론토에서 하선했는데, 집에서 증상이 발현됐습니다. 아직 PCR 검사는 받지 않은 상황이고, 격리 조치도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뉴욕에서부터 여행을 시작해서 토론토까지 돌아다녔단다. 그 감염자가 밖에서 싸돌아다니면서 얼마나 많은 2차, 3차 감염자를 만들어냈을지 짐작조차 가지 않는다.

바깥 상황도 문제지만 크루즈도 문제다. 운동장 3개 합친 것보다 더 큰 크기였지만, 그래도 폐쇄된 공간이 아닌가.

그 감염자와 같이 밥을 먹고 수영도 하고 클럽에서 놀았다고 생각하면···.

승객 및 직원 중 90% 이상이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고 생각해도 무리가 아니었다.

“그럼 그 크루즈는 어떻게 됐는데?”

[지금 확인하고 있습니다. 아직 발진이 일어난 사람은 없지만, 의료실에서 약을 산 사람은 50명 가까이 됩···]

캐리온이 말을 하다가 멈췄다. 흔치 않은 상황에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긴급 보고 드립니다. 선내 CCTV 확인 결과 크루즈에서 발진이 올라온 환자를 발견했습니다.]

우려하던 일이 일어났다.

캐리온은 내 모니터에 CCTV 화면을 띄워줬다.

화면 속에 한 남자는 온몸에 수포와 진물이 가득한 채로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전염력이 가장 강하다는 발진기였다.

더욱 놀라운 것은 주변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확진자의 주변에 마스크를 쓴 사람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세상에. 마스크도 쓰지 않고 확진자와 저렇게 가까이 있다니.

장담컨대 저기에 있는 사람 중 절반 이상은 2차 감염이 됐을 것이다.

더 큰 문제라면 저 사람들의 국적이 40곳 이상이라는 것이다.

과연 어떤 국가에서 나서서 저 문제를 해결하려고 할까? 그리고 그 사람들이 귀국하면 국가에서 제대로 케어를 할 수 있을까?

미국 당국에서는 일단 다이아몬드 엠퍼러 호에 입항 금지 조치를 내렸다.

동아시아에서 시작된 이 바이러스는 이제 아메리카를 넘어 전 세계적인 문제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이 거대한 재앙을 기회로 바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마침 국내에서도 많은 일이 마무리되어가고 있겠다, 계획대로만 된다면 미국과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을 것이다.

“잘 하면 미국 대통령이랑 커넥션을 맺을 수 있겠는데?”

당연한 말이지만 지금 내 신분으로는 대통령을 만나기는커녕 백악관에 발도 못 디딜 것이다.

하지만 내가 누군가. 나는 이래 봬도 제일 가의 사람 중 하나이다.

그래서 나는 오랜만에 할아버지께 애교를 떨러 갔다.

*

나는 할아버지를 설득하러 갔다. 물론 가서 우는 소리를 좀 할 거지만, 할아버지에게 어쭙잖은 애교는 통하지 않는다.

무조건 이득이 있어야 움직이실 분이다.

그래도 오랜만에 보는 손자가 반갑기는 하신 모양이다.

지금도 할아버지가 나를 보며 투덜거리시지 않는가.

“네가 올 때마다 일이 터지더라. 소금 뿌리기 전에 썩 꺼져라.”

“그냥 할아버지 보고 싶어서 온 건데 왜 이렇게 쌀쌀맞으실까.”

나는 할아버지의 어깨를 주무르며 애교를 떨었다.

내 안의 아저씨가 부끄러움에 오그라들었지만 꾹 참았다.

“어, 어 거기. 거기 좀 더 주물러봐.”

나는 한참을 안마를 해드리다 손이 저릴 때쯤 할아버지가 말을 꺼냈다.

“그래. 여기는 무슨 일로 왔느냐.”

참 일찍도 물어보신다. 안마의자도 바로 옆에 있는데 굳이 손으로 해야 됐었나.

나는 속으로 투덜거렸지만 그 이유는 알고 있었다.

당신의 아들인 이정혁을 집행유예로 빼내느라 한동안 스트레스를 받은 것에 대한 작은 화풀이였겠지.

나는 할아버지 앞에 마주 앉으며 말했다.

“제일 그룹에 좋은 제안입니다.”

“그러니까 그게 뭐길래 아침부터 호들갑을 떨면서 오는 게야.”

“다이아몬드 엠페러 호는 알고 있으지요?”

“그래. 엠페러 그룹에서 만든 초호화 크루즈 아니더냐.”

“거기에 포비드 확진자가 있었습니다. 크루즈 전체가 감염되어서 지금 하선도 못 하는 모양이더군요.”

“흠···. 네 녀석이 그런 정보를 어디서 알아왔을꼬. 나도 오늘 새벽에서야 들은 얘기인데.”

나는 빙그레 웃었다.

“제가 다른 건 몰라도 뒷조사 하나는 기가 막히게 합니다. 할아버지도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이용하세요. 가족 할인해드릴게요.”

“에잉 쯧 말은 잘하는구나. 그래서 미국을 도와주자는 게야?”

“네. 물론 공짜로는 아니겠지요. 지금 상황을 파악해본 결과, 식자재를 모두 폐기해서 식사가 부실하게 나온답니다.”

할아버지는 내가 말하는 바를 알아차렸다. 첫째 삼촌이 식품 산업을 맡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에 공급 계약을 체결하면 돈도 되고, 미국에 우리 제일 식품을 알릴 수 있겠구나.”

“그렇습니다. 그리고 당뇨, 고혈압 등 지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은 처방약이 모자랍니다. 고모의 도움을 받을 수 있겠지요.”

“그러면 제일 중공업만 붕 뜨게 되는데?”

둘째 삼촌은 해운과 건설을 맡고 있다. 지금 포비드 때문에 한국에서 출항하는 배는 모두 막혀버렸다. 덕분에 건설 자재 값도 훌쩍 뛰고 있고.

“화물선이기는 하지만 사람을 태울 수는 있지요. 지금 크루즈 안에는 3700명의 사람이 모여 있습니다. 그들을 나눠서 여러 척의 배에 태우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전염을 방어할 수 있습니다.”

할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좋은 방안이긴 한데 중요한 문제가 있구나. 과연 미국이 제일 그룹과 공급 계약을 체결해주겠느냔 말이다. 아마 세계 곳곳에서 미국을 도와주려 나설텐데 우리가 끼어들 가능성이 있겠느냐?”

나는 할아버지의 말을 듣고 씨익 웃었다.

“아마 미국은 무조건 우리 제일 그룹과 계약을 맺을 겁니다. 전세계에서 죽음의 계곡이라고 불리는 전임상을 통과한 치료제는 KW 제약밖에 없거든요. 그리고 집단 감염 사태를 성공적으로 막은 나라도 한국뿐입니다.”

할아버지는 고민하는 표정이 되었다.

확실히 집단 감염을 이렇게 성공적으로 막은 나라는 한 곳뿐이었다.

‘녀석이 이렇게 확신을 하는 것을 보면 치료제가 성공할 가능성이 큰 모양인데···. 내 손자지만 난 놈이긴 난 놈이란 말이지.’

“그렇지만 다른 문제도 있다. 내가 들은 바로는 대통령께서 미국 지원을 거부했다고 하더구나.”

“아마 중국의 눈치를 보는 것일 테지요. 하지만 저는 이미 현 여당과는 척을 진 사이입니다.”

“그건 네놈이 여기저기 들이받고 다니기 때문이겠지. 쯧”

그렇게 타박하셨지만 할아버지의 기분은 썩 나빠 보이지 않았다. 왜냐하면 현 대통령의 집권 초기에 재벌을 길들인다며 제일 그룹을 엄청나게 두드려 팼기 때문이다.

국세청과 금융위의 조사를 동시에 받는 수모를 겪은 할아버지로서는 대통령에 대한 감정이 좋을 리가 없다.

지금은 고개를 숙이고 있지만 언제든지 틈을 보인다면 물어뜯을 기세이다.

“미국이 직접 아쉬운 소리를 했지만 거절했습니다. 이 순간 저희가 도와준다면 로날드 대통령과 좋은 인연을 맺을 수 있겠지요.”

나는 지금 이미 성윤식과 척을 진 상태이다. 그렇다면 여당 전체를 적으로 두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미국 대통령을 빽으로 둔다면?

상황을 역전시킬 수 있다. 더이상 그 누구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된다.

“게다가 크루즈 선에는 40개가 넘는 국적의 사람들이 모여 있습니다. 저희 그룹의 인지도를 세계적으로 높일 기회입니다.”

홍보비 예산에만 수백억이 나간다. 그런데 미담과 함께 돈을 받고 제품을 홍보할 기회가 왔다?

반드시 잡아야 한다.

“좋다. 백악관과 연락할 수 있는 사람을 소개해주마. 그럼 이번 일은 네가 맡아서 잘 처리해 보아라.”

삼촌과 고모가 있는데도 나에게 전권을 위임한다는 말은 그만큼 나를 신뢰한다는 뜻이다.

“사랑합니다. 할아버지”

“에잉 썩 꺼져!”

좋으면서 안 그런 척하시기는.

*

할아버지를 만나고 난 후 나는 바로 오성 그룹으로 향했다. 내 어머니의 친정. 내가 이건우의 몸에 빙의하고는 처음 가본다.

“건우야 오랜만에 보는구나.”

외할아버지인 전병철 회장은 나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 순간 이건우의 기억이 겹치면서 전병철과 보낸 기억이 스르륵 스쳐 지나갔다.

“죄송해요. 진즉 찾아뵀어야 했는데···.”

“아니다. 요즘 사업하느라 바쁠 텐데 한가한 노인네를 시간 내서 찾아올 필요는 없지.”

···우리 할아버지, 삐지신 게 틀림없다.

나는 농담으로 물었다.

“에플(A+)을 뛰어넘을 수 있는 선물을 가지고 왔는데, 그럼 돌아갈까요?”

전병철 회장이 벌떡 일어났다.

“흠흠, 오랜만에 손자가 왔으니 서재로 들어가서 얘기하자꾸나.”

나는 미소를 지었다. 전병철 회장은 오성 전자를 직접 챙기고 있으시다. 그리고 전자에서는 오로라 폰 매출로 높은 이윤을 남긴다.

전자제품으로는 유명한 LJ전자도 오성 전자 앞에서는 한 수 접어줄 정도면 말 다 했지.

하지만 국내에서는 오성 전자의 점유율이 높지만, 세계 전체로 보면 에플이 압도적이다.

에플은 고급스러운 디자인을 바탕으로 한 훌륭한 마케팅으로 오로라 폰의 점유율을 점점 뺏어오고 있다.

에플을 뛰어넘을 기회가 있다니, 눈이 번쩍 뜨인 느낌일 것이다.

나는 이만호 회장에게 했던 말을 그대로 전해주었다. 미국이 지금 어떤 어려운 상황에 부닥쳤는지, 그리고 세계에 어떤 위험이 닥칠지.

그리고 대안을 제시했다.

“갇힌 사람들에게 ‘알람온’ 앱이 디폴트로 깔린 휴대폰을 제공하는 겁니다. 그리고 바깥과 단절되어있으니 ‘와칭’ 같은 즐길 거리도 깔아놓는 게 좋겠지요.”

“녀석. 다 네가 런칭한 작품들 아니냐.”

“이게 꿩 먹고 알 먹고 아니겠습니까?”

전병철 회장은 넉넉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계획이다. 다국적 사람들이 모여 있으니 제품을 홍보할 수도 있고, 이미지도 챙길 수 있으니까. 내일 바로 옮길 수 있도록 내가 직접 챙기마.”

오성 직원들의 영혼이 갈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오는 것 같았다.

*

다이아몬드 엠페러 호 내부.

객실 상황은 좋지 않았다. 모두 객실 내에서 대기 조치를 받았다.

그중 한 명인 카터 부부는 안색이 어두웠다. 그들은 영국인으로 미주 여행에 참여했다가 봉변을 당했다.

에밀리 카터가 말했다.

“승무원한테 들었는데 최소 14일 동안 여기에 갇혀있어야 한대요.”

호화로운 시설을 한껏 누리다가 좁은 방 안에 갇혀있어야 하니 사람들은 겨우 하루가 지났는데도 답답해했다.

야외 산책 정도는 잠깐 할 수 있지만, 다들 무서워서 못 나가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식재료를 모두 폐기 처분했기에 식사도 부실했다.

바이러스가 공기감염이 가능하므로 식자재가 오염됐을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정부에서 도시락을 공급해주기는 했지만···. 너무 맛이 없었다. 제임스 카터는 투덜거렸다.

“차라리 영국 음식이 나았어.”

에밀리 카터는 걱정스러운 얼굴을 했다.

“약도 떨어지고 있어요. 빨리 약을 공급받아야 하는데···.”

에밀리의 말에 제임스의 얼굴도 안 좋아졌다.

바이러스 치료제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에밀리 카터는 당뇨 질환이 있었고, 처방약을 받아왔는데 그 약이 슬슬 떨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승객의 대부분이 중장년층이어서 대부분 지병이 있었다. 선내에도 의무실이 있기는 했지만, 일반의약품을 파는 것이지 이런 전문 의약품은 취급하지 않았다.

제임스가 그녀를 달랬다.

“그래도 미국에서 검진 후 차례대로 내보내준다니까 조금만 기다려봅시다. 그놈의 중국 때문에 난리도 아니군.”

정작 중국인은 전세기를 보내서 자국민을 태워갔다. 이는 외교적 결례이지만 중국은 원래 그런 건 신경쓰지 않았다.

그 때문에 승객들은 어이없어하면서 중국의 태도를 비판했다.

누구 때문에 난리를 겪는데, 발은 제일 먼저 빼다니.

승객들 사이에서 반중 감정이 치솟고 있었다.

그때였다.

부우우우

경적이 울리며 한 무리의 배가 그들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태극기와 미합중국기가 같이 걸린 한미연합 지원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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