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아몬드 엠페러 호 (1)
현재 대전시는 시장에 의해 긴급 봉쇄령이 내려진 상태이다. 당연히 시장을 비롯한 고위공무원들은 시청에서 비상대기해야 하는 상황.
하지만 그들은 지금 시청이 아닌 대전에 있는 한적한 골프장에서 즐겁게 골프를 치고 있었다.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니었다. 대전 시장은 골프를 한 뒤, 시원하게 사우나까지 즐겨주었다.
뜨끈한 탕 속에 있는 그의 얼굴은 너무나도 편안해 보였다.
옆에서 한 사람이 시장에게 아부를 떨었다.
“요즘 시장님께서 방역을 잘 하신다고 칭찬이 자자합니다.”
대전 시장이 껄껄 웃었다. 이건우가 준 미니온의 성능은 확실했다. 확진자와 밀접접촉자가 발생하는 족족 경로를 파악해 추가 확진을 빠르게 막아 주었다.
아직까지는 치료제가 없어서 영유아 및 노년층에 사망률이 늘어나고 있기는 했지만, 그것까지는 그가 손쓸 수 없는 일이다.
지금 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은 시장이 일을 잘 한다며 칭찬을 받는 중이었다.
이건우한테 거의 빌다시피 해서 미니온을 받아온 것을 생각하면 자존심이 상했지만, 그래도 괜찮은 판단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방역으로 인기를 얻었으니 시장이나 한두 번 더 하다가, 운 좋게 기회가 되면 도지사 정도에는 도전해볼 수 있겠지.
이번 위기도 무사히 넘어갔다는 생각에, 흐뭇한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사우나까지 마친 그들은 뒷문으로 빠져나와 기사가 차를 가져오길 기다렸다. 하지만 기다리던 차 대신, 저 멀리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몰려왔다.
사장단 중 한 명이 말했다.
“저거··· 기자 아니야?”
카메라와 마이크를 들고 뛰어오는 걸 보면 딱 기자였다. 심지어 한두 명이 아니었다. 수십 명의 기자가 카메라를 들고 뛰어오고 있었다. 대전 시장은 뭔가 잘못됐음을 느꼈다.
뒤돌아서 다시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지만 이미 기자에게 잡힌 후였다.
기자들이 질문을 쏟아냈다.
“시장님. 골프장에는 왜 계신 겁니까?”
"현대 대전은 봉쇄 중인 게 아니었습니까?”
“골프장과 사우나는 이용불가 시설이 아닌가요?”
날이 선 질문이었다. 기자들은 모두 대전 사람이었으며, 모든 시민은 고생하는 판국에 최고 책임자라는 사람이 방역 수칙까지 어겨가며 놀고 있으니 곱게 보일 리가 없었다.
기자들의 압박에 당황한 대전 시장은 허둥지둥 변명했다.
“골프를 친 게 아니라 그냥 여기 서 있을 뿐이에요.”
입고 있는 골프복 하며, 방금 사우나를 끝내고 온 홍조가 오른 보송보송한 얼굴.
누가 봐도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타이밍도 좋게 캐디가 골프 가방을 들고 와서 차에 실었다. 기자들의 눈빛이 한층 더 매서워졌다.
“그럼 골프 가방을 왜 가지고 있으신 겁니까?”
“방역 수칙을 위반한 것을 인정하십니까?”
대전 시장은 기자들에게 대답조차 하지 못하고 허둥지둥하며 차를 타고 도망쳤다. 이제 기자들의 시선이 보좌관을 포함한 고위공무원단으로 돌아갔다.
“아니,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시장이 부르는데 안 올 수는 없잖아요.”
그들은 모든 책임을 대전 시장에게 떠넘기며 도망갔다.
그날 골프장에서 있었던 모든 일이 기사로 올라왔다.
특히 최고 책임자인 대전 시장은 온 사람의 비난을 받았다.
- 내가 저딴 걸 시장이라고 뽑았지
- 골프장에 있었는데 골프는 치지 않았다라, 손만 잡고 잘게. 뭐 이런 건가요?
- 누구는 좆빠지게 고생하는데, 시장은 놀고 있었다는거죠?
여론은 걷잡을 수 없이 박살 났다. 이제 도지사는커녕, 차기 시장도 불가능해 보였다.
나는 기사를 보며 씨익 웃었다.
"그러게, 처음부터 잘 하시지 그랬어."
*
2월 임시 국회가 열렸고 감염병 관련 긴급 법안들이 줄줄이 통과되었다.
나는 TV로 성윤식이 법안을 개정한 내용을 발표하는 것을 들었다.
‘아마 링윈 부부장이 지시한 대로 치료제 개발 기간을 단축하겠지.’
“저희 여야 3당은 원내수석부대표 회동을 갖고 임시 국회를 열어 「감염병예방법」과 「검역법」 등 시급한 법안을 처리하기로 뜻을 모았습니다. 먼저 모든 국민은 마스크를 실내외에서 의무적으로 착용해야 합니다. 그리고 감염병 검사 및 치료를 거부할 경우 ‘테러’로 규정할 것입니다.”
여당의 얼굴마담 성윤식. 역시 이번에도 그의 얼굴이 텔레비전에 나왔다.
중요한 발표를 할 때마다 성윤식에게 몰아주니 인지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또한 감염병 지역을 체류, 경유한 자에 격리, 조사, 진찰 등을 조치하며, 그 대상국은···.”
웃기게도 대만과 홍콩은 대상국에 들어갔는데, 중국은 북경을 방문한 사람만 격리 대상이 되었다. 나머지 지역은 안전하다나 뭐래나. 미친 소리였다.
이후에도 개정된 법안이 줄줄이 흘러나왔다. 소상공인 지원, 원격 교육과 재택근무의 활성화 등등.
그러고 마지막으로 내가 기다리던, 백신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마지막으로 긴급히 공급하는 백신과 치료제의 경우 표시기재 및 품질 검사 의무 면제가 됩니다. ”
“보건복지위원회에서는 현 포비드 상황을 심각하게 인식하고, 전임상을 생략한 후 1, 2차 임상만 3개월씩 시행하기로 했습니다. 또한 충분한 효과가 나타나면 긴급 승인을 해주기로 했습니다.”
나는 미소를 지었다. 완전히 나에게 유리한 조건이다.
지금 전세계에 백신 개발에 뛰어든 곳은 중국 보건부 산하에 있는 국립연구소와 KW 제약밖에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나의 KW 제약이 만들고 있는 치료제는 전임상에서도 큰 효과를 보고 있다.
원래 백신 개발 과정은 다음과 같다.
15~30개월 사이의 전임상을 거친 후, 1~3차까지 90개월의 본 임상을 거치고, 최종적으로 승인을 받는다. 즉, 백신 하나 개발하는 데 최대 120개월이 드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 발표로 그 모든 과정을 뛰어넘을 수 있게 되었다.
전임상을 생략한다면 지금 바로 본 임상에 들어갈 수 있다. 웨슬러와 신재현에게 이 소식을 알려주면 뛸 듯이 기뻐하겠지.
성윤식은 나의 자료를 빼먹으려 들겠지만, 글쎄. 그게 과연 그의 마음처럼 쉽게 될지 모르겠네.
애초에 관련 데이터는 캐리온에 의해 보호되고 있으며, 나는 미국과 연을 맺어서 FDA 승인을 받을 예정이었다.
그리고 그 기회가 곧 다가오고 있었다.
*
감람나무교회 사건이 있고 일주일 째.
방역은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고, 대통령과 여당의 몇몇 인사들은 “K-방역의 위대함”이라며 모든 일이 훌륭한 정부 정책 덕분이라고 과시했다.
물론 많은 사람의 빈축을 샀다.
- 대통령이 뭐 했더라?
ㄴ 중국 눈치 봤지
- K-방역은 무슨, KW-방역 아니야?
일주일 동안 알아낸 전국 확진자는 총 8,563명이었으며 자가격리자 수는 그 여섯 배에 달했다. 사망자 수도 천 명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한국은 암울한 상황 속에서도 희망적인 분위기가 맴돌았다. 하지만 주변 국가에서는 여전히 한국을 위험한 지역으로 분류했다. 그도 그럴 것이 세계에서 2번째로 집단 감염이 일어난 곳이기 때문이다.
KW 제약에서 치료제를 개발한다고는 했지만, 아직 국제적인 인지도가 낮아도 너무 낮았다. ‘겨우 너 같은 게 할 수 있겠어?’라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이에 따라 일본에서 제일 먼저 한국을 입국 거부했고, 그다음에는 무려 중국에서 한국에서 오는 모든 비행기에 탄 사람들을 격리하겠다고 나섰다.
웃기지 않은가? 바이러스를 퍼뜨린 나라가 피해국에 조치를 취하다니
사람들은 어이없어하며 분노를 터뜨렸다.
- 잘하는 짓이다. 중국한테 입국거부나 당하고
ㄴ 당연히 해야지요. 한국인들 때문에 우리가 역으로 피해를 볼 수는 없잖아요?
ㄴ 너 조선족이지?
- 일본이 제일 먼저 손절할 줄 알았음.
- 외교부 뭐하냐. 국제적 망신이 따로 없네.
외교부는 부랴부랴 초치했지만 별 효과는 없었다.
오히려 이 두 국가를 보며 대만, 영국, 이스라엘 등 다른 나라들도 줄줄이 입국거부 조치를 취했고, 심지어 우방국인 미국도 입국 금지를 고려하고 있다는 말이 나왔다.
이렇게 다른 나라들은 한국을 배척했지만, 몇몇 국가들을 제외하면 전 세계 상황도 한국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한국은 캐리온의 실시간 감시 덕분에 확진자를 빠르게 찾아내서 감염을 최소화하고 있었다. 캐리온에 의하면 다른 나라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고 했다.
그들은 모르겠지만 이미 바이러스 보유자들이 일상 속에 침투한 상황이었다.
아직 전구기라서 증상이 발현되지는 않았을 뿐이지, 발진이 일어나는 순간 폭발적인 전파력을 보이며 국가 행정이 마비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들에게는 미니온도 없고, 마스크나 소독제 방역용품도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상태라는 것이다.
결정적으로, 한국에서는 전임상이라도 치료제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지만, 저들은 치료제 개발의 첫발도 제대로 떼지 못한 상황이다.
바이러스가 퍼지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퍼질 게 뻔했다.
*
다이아몬드 엠페러 호.
럭셔리 크루즈 회사 중 하나인 엠페러 크루즈는 약 17척의 크루즈를 운행하고 있다.
루비, 로얄, 퍼시픽 등 각 크루즈는 크기가 다르며 지역별 운항 시기에 맞추어서, 알래스카, 유럽, 미주, 아시아, 아프리카 등 전세계를 돌아다닌다.
그중 다이아몬드 엠페러 호는 11만 6천톤 급의 거대 크루즈이며, 총 2700명의 승객을 태울 수 있다.
유명 회사의 거대 크루즈인 만큼, 다이아몬드 엠퍼러 호에는 세계 방방곡곡에서 온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타고 있었다.
미국인과 영국인 등 서구권 사람들이 제일 많았으며, 그다음으로는 홍콩, 한국, 일본인 등 아시아인도 다양하게 탑승하고 있었다.
이번 다이아몬드 엠페러 호는 퀘벡 시티에서 승선해서, 뉴욕항에 하선하는 일정으로 미주여행 코스로 출항했다.
최소 20개국의 사람들로 구성된 탑승객들은 중간중간 크루즈에서 내려 도시 관광을 하기도 하고, 선상 파티를 벌이기도 하며 럭셔리한 여행을 즐겼다.
그리고 여행의 마지막 시기, 로드 아일랜드를 거쳐 뉴욕항으로 들어갈 때.
한 홍콩인이 비명을 지르며 객실에서 뛰쳐나왔다.
“으아악 살려줘! 몸에 이상한 게···.”
그리고는 입에 거품을 물며 쓰러졌다. 몇몇은 의사를 불렀고, 몇몇은 그를 도와주러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 모든 사람은 볼 수 있었다. 그의 온몸 가득히 징그럽게 올라와 있는 반투명한 수포들과, 그 수포에서 흘러나온 진물을.
포비드였다.
“꺄아아악!”
“오, 온몸에 발진이!”
“확진자야! 확진자가 우리 배에 있어!”
사람들은 비명을 질렀고, 다가갔던 사람들은 재빠르게 뒤로 물러났다.
그들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저렇게 발진이 일어났을 때는 확진자 근처에서 숨만 쉬어도 감염이 된다는 것을.
잠시 후 의료 인력이 마스크를 끼고 다가왔고, 홍콩인은 곧바로 격리 조치가 취해졌다.
하지만 이미 바이러스는 퍼질 대로 퍼진 상태. 대부분 승객과 승무원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 포비드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
그리고 다이아몬드 엠페러 호는 하선을 거부당했다.
승객 2700명, 직원 1100명이 모두 해상에 갇혀버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