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비 (1)
다음날.
나는 KW 제약 응접실에서 대전 시장을 맞이했다.
이번 미팅은 대전 시장의 요구로 인해 성사된 것인 만큼, 지난번 미팅과는 상황이 많이 달랐다.
나는 다리를 꼰 채 응접실 상석에 앉아있었고, 대전 시장은 내 옆에서 연신 진땀을 흘렸다.
이제는 민선 시장이 내 앞에서 쩔쩔매다니. KW 코퍼레이션의 입지가 성장했다는 것이 새삼 느껴졌다.
나는 무심한 듯 손톱을 튕기며 말했다.
“미니온은 어땠습니까? 계약을 거절하신 걸 보니 영 마음에 안 드셨나 보네요. 나름 쓸만하다고 생각했는데. ”
“어휴, 사장님이 마음에 안 들다니요. 쓸만한 정도가 아니라 천군만마입니다. 그게 없으니까 대전시가 돌아가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렇게 직접 찾아왔잖아요.”
성윤식에게 홀랑 넘어가서 내 계약을 거절할 때가 바로 어제였는데, 언제부터 내 편이었다고 친한 척이야?
나는 속과 겉이 일치하는 사람이라서 대놓고 기분 나쁜 티를 내며 말했다.
“그런데 이제야 저를 찾아오셨네요? 저는 좀 더 일찍 찾아오실 줄 알았는데 말이죠.”
“아이고 사장님. 좀 봐주십시오. 저도 난처한 입장이란 거 아시잖습니까.”
사실 나도 대전 시장도 다 알고 있었다. 지난번 계약이 왜 어그러졌는지, 그리고 어째서 이 관계가 이렇게 되었는지.
성윤식. 그 욕심 많은 국회의원 때문이다.
"물론 잘 알지요. 뒤를 봐주겠다는 말에 대전시를 홀라당 팔아넘기셨지요."
내 말에 대전 시장이 화들짝 놀랐다.
"아니, 팔아넘기다니요! 누가 듣겠습니다."
나는 이쯤에서 대전 시장을 압박하는 것을 그만두기로 했다.
어차피 내 제품을 써야 하는 사람인데, 더 몰아붙이면 서로 조금 껄끄럽잖아.
대신 이참에 성윤식에게 한 방 먹여줘야겠어.
“좋습니다. 그럼 제 부탁을 들어주시면 당장 계약을 해드리지요.”
“···부탁 말입니까?”
대전 시장은 불안해 보였다. 내가 웬만한 조건으로는 성이 차지 않는다는 걸 눈치챘겠지.
그러길래 누가 처음에 계약하지 말래?
이제 급한 건 내가 아니라 대전 시장이다.
나는 이 상황을 최대한 이용하기로 했다.
내가 또 협상의 귀재라고 불리지 않던가.
[협박의 귀재입니다.]
캐리온이 딴지를 걸어왔지만 나는 무시하고 말했다.
“제 부탁은 간단합니다. 지금 서울시에서 여당 소속의 지역구만 미니온-트래킹을 사용하지 않고 있더군요.”
"아 예. 그, 그렇지요."
대전 시장의 표정이 어색해졌다. 설마 하는 눈치였지만 그 설마가 맞다.
나는 대전 시장을 영업맨으로 쓸 생각이다.
"여당 소속 구청장이 한 명도 빠짐없이 계약하도록 만드세요. 그렇지 않으면 미니온은 없습니다."
“그, 그건 좀 힘들 것 같은데 말이죠.”
“싫으면 안 하셔도 됩니다.”
“아니, 하기 싫다는 건 아니고···.”
대전 시장은 당황한 모양이었다.
뭐 당황할 만하다. 내가 방금 요구한 것은 정면으로 성윤식에게 반기를 들라는 말이니까.
“딱히 어렵지 않을 거라고 생각이 드는데요. 어차피 그 사람들도 지금 시장님이랑 같은 입장 아닙니까?”
"으음. 그건 그렇지만···."
내 말에 대전 시장은 곰곰이 생각했다.
‘이건우 사장의 말처럼 여당에 대한 국민의 반감은 심각한 수준이지.’
딱 이틀이 지났을 뿐이다.
그런데도 역학조사관의 피로도는 높아지고, 구민들의 일상생활은 불가능한 수준이었다.
아마 여론은 시간이 갈수록 더 안 좋아지겠지.
그들도 지금 미니온-트래킹 생각이 절실할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입장에서도 혼자서 계약을 하는 것보다는 다른 구청장들과 함께 계약하는 편이 더 좋다.
어차피 여기까지 온 이상 자신은 성윤식의 눈 밖에 났다. 이건우를 만나서 계약하려고 했던 사실이 금방 성윤식에게 들어갈 것이다.
하지만 성윤식의 분노를 혼자가 아닌 여럿이 감당한다면?
충분히 해 볼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계산이 선 대전 시장은 결심 어린 표정으로 말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제가 서울시의 구청장들을 한번 만나보겠습니다.”
대전 시장은 그렇게 결연한 표정으로 응접실에서 나갔다.
좋아, 그럼 얼마나 일을 잘하나 지켜보자고.
*
대전 시장은 KW 제약에서 나오자마자 구청장들에게 연락을 돌렸다.
다들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이다 보니 미니온-트래킹 얘기가 나오자 부랴부랴 달려 나왔다.
지금 확진자의 증가로 인해 실시간으로 지지율이 박살 나고 있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공천은 둘째치고 다음 구청장 자리도 위태로워 보였다.
여당 내부에서도 이대로 방역에 실패한다면 구청장들을 중심으로 책임론이 돌 게 뻔했다.
위로 올라가기는커녕, 자신들의 자리도 지키지 못할 것이다. 어찌 되었든 자리는 보전하고 봐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 동일한 마음을 가지고 여당 소속 구청장과 대전 시장이 한자리에 모였다.
그들은 모이자마자 지금 상황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였다.
“요즘 구민들의 반발이 너무 심합니다. 지금 구청 전화랑 홈페이지가 마비된 상태에요.”
“이러다가는 다음 선거에서도 야당에게 패배하게 생겼어요.”
한참을 불안을 뱉어내던 중, 이번 모임을 주선한 대전 시장이 말을 꺼냈다.
"제가 오전에 이건우 사장을 만나고 왔습니다. 다행히 이건우 사장은 우리에게 미니온-트래킹을 판매할 의사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거 참 듣던 중 다행이군요."
"괜히 지난번에 거절했다고 퇴짜를 놓을까봐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대전 시장은 적당히 각색해서 오전에 이건우를 만난 이야기를 해줬고, 구청장들은 모두 환영하는 분위기였다.
들리는 바로는 미니온-트래킹의 효과가 엄청나다고 한다. 미니온-트래킹만 어찌어찌 들여온다면 확산세를 막을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그렇게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이건우와 공급계약을 체결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으려는 찰나, 한 구청장이 말했다.
"그런데 말입니다. 다들 성윤식 의원님의 전화는 받으셨지요?“
그 말에 다들 움찔했다.
잠시 잊고 있었다. 어째서 그들이 미니온-트래킹 계약을 하지 못했는지를.
여당에서 엄청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성윤식과 정면으로 충돌하게 된다면 좋은 꼴을 보지 못할 게 뻔했다.
누가 나서서 총대를 메자니 성윤식에게 찍힐 것 같아서 이도 저도 못하자, 결국 대전 시장이 나섰다. 그만큼 절박했기 때문이다.
"지금 성윤식 의원님의 눈치를 보는 게 아니라 우리 자리를 걱정해야 할 상황입니다."
“성윤식 의원님이야 이번에 알바트리온에서 손해를 봤다고 쳐도, 우리가 굳이 이건우와 척을 질 이유가 있습니까?”
"그리고 아무리 성윤식 의원님이라고 하더라도, 우리 모두가 함께 행동을 한다면 크게 제재를 하실수는 없을 겁니다."
여기에 모인 사람들만 하더라도 열 명이 넘는다.
다 같이 행동을 하면 아무리 성윤식 의원이라 하더라도 쉽게 어찌하지 못할 것이었다.
"좋습니다. 저는 미니온-트래킹을 구매하겠습니다."
"저도요. 지금 상황에서 더 나빠져 봐야 뭐 있겠습니까."
그렇게 모든 구청장들은 미니온-트래킹 구매 계약을 결정하였고, 이건우가 준 임무를 겨우 완수한 대전 시장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계약을 체결했다.
흔들리는 민심을 잡기 위해 구청장들은 계약을 체결하였다는 보도자료를 바로 내보냈고, 자연스럽게 성윤식의 귀에도 이 모든 사실이 들어갔다.
*
성윤식은 보좌관에게서 보고를 들었다.
“···그래서 여당 소속의 지역구 모두 미니온-트래킹을 도입하는 것에 찬성했으며, 이에 서울시에서 자체적으로 KW 제약과 공급계약을 체결하기로 했습니다.”
성윤식은 말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눈은 분노로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었다.
“그들로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겁니다. 예상과 다르게 미니온의 성능이 너무 뛰어나···”
보좌관은 눈치를 보며 덧붙였지만, 성윤식은 말을 뚝 자르고 축객령을 내렸다.
“꺼져”
“죄송합니다.”
보좌관은 반듯하게 인사하고 나갔다. 문을 닫는 소리와 함께 성윤식은 책상 위를 쓸어버렸다.
와장창창!
“으아아아! 이건우!!!!!”
고함을 내지르는 성윤식은 흉악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그가 직접 전화를 돌린 시의회 의원과 구청장들은 모두 그의 영향력 아래 있던 사람들이었다.
그런 사람들이 자신의 말을 어기고 이건우와 계약한 것이었다.
즉, 지금까지 키운 그의 세력이 흔들린다는 말이나 다름없다.
고작 이건우 같은 애송이 때문에.
패착의 원인은 하나였다.
단지 그가 만든 미니온-트래킹이 너무 뛰어났을 뿐이었다.
미니온-트래킹이 팬데믹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무기였다는 사실을 미리 알았었다면, 그도 다른 수를 썼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 사실을 몰랐고, 그래서 지금 감히 아랫것들이 그를 무시하며 이건우에게 달라붙는 처지까지 왔다.
이 사건은 이제 곧 정치판에 돌면서 자신의 위신을 깎아내릴 것이다.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야 해.’
이건우를 깔아뭉개고 흔들리는 세력을 다시 잡아야 한다. 성윤식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팬데믹을 잘 이용하면 다시 입지를 다질 수 있을 것 같은데···.’
뭔가 떠오르려는 찰나, 휴대폰에서 진동이 울렸다.
그가 평소에 쓰던 휴대폰이 아닌, 오직 하나의 전화번호만이 저장된 것이었다.
- 성윤식 의원. 그동안 잘 지냈소?
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유창한 중국어.
성윤식의 뒷배인 중국 국가안전부 부부장, 링윈이었다.
성윤식은 금세 분노를 가라앉히고 공손하게 전화를 받았다.
“안녕하십니까. 요즘 많이 바쁘신가 봅니다. 연락이 통 없으셔서 걱정했습니다.”
- 그놈의 바이러스 때문에 내 정신이 없어 연락을 하지 못했소. 지금 의원에게 특별히 부탁하고 싶은데 말이에요.
“어이쿠 부부장님 부탁이라면 뭐든지 들어. 말씀만 하세요.”
- 그러면 편하게 부탁하지요. 한국에 있는 KW 제약을 아시오?
‘KW 제약? 중국에서 이건우에게 왜 관심을 갖지?’
성윤식의 머리가 비상하게 돌아갔다.
어쩌면, 그의 입지를 강화할 방법이 생길지도 모른다. 그는 빠르게 대답했다.
“KW 제약이라면 잘 알고 있습니다.”
- 그럼 얘기가 빨라지겠군. KW 제약에서 이번 포비드 바이러스 치료제 개발에 들어갔다고 합디다. 전임상도 이미 마치고 조만간 임상 1상을 신청할 거라는데, 성 의원이 그 자료를 빼내 줬으면 좋겠소.
링윈 부부장의 말에 성윤식은 눈이 번쩍 뜨이는 느낌이었다.
그래! 이거였다.
임상 1상을 통과시켜주고 실험 데이터가 모이면, 승인을 차일피일 미뤄 그사이에 중국에게 자료를 전달한다.
그 사이 중국이라면 빠르게 치료제를 개발하고 출시할 수 있을 것이다.
보건복지위원회에 오랫동안 몸담은 성윤식은 백신이나 치료제를 만드는 데 시간이 많이 든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중국이 수많은 인력을 갈아 넣는다면 못할 것도 없어 보였다.
그리고 쉬쉬한다지만 포비드가 북경 연구소에서 새어 나왔다는 건 다들 아는 사실 아닌가.
‘이건우가 아니라 중국에서 백신을 개발할 수만 있다면? 그리고 내가 그 백신을 한국에 먼저 들고 올 수 있다면?’
그러면 자신은 팬데믹을 종식할 영웅이 될 것이고, 청와대에 입성하는 꿈도 멀지 않아 보였다.
이건우를 눌러버리고, 중국에게 점수를 따고, 자신의 입지를 강화할 수 있다.
완벽한 계획에 성윤식은 자기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물론이죠. 저만 믿으십시오. 제가 KW 제약의 치료제, 제가 무슨 일이 있어도 빼 오겠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대화는 캐리온에 의해서 도청되고 있었다.
*
[···라고 성윤식 의원과 링윈 부부장이 말했습니다.]
성윤식 의원의 뒷배가 국가안전부 부부장이라니. 꽤 급이 높았다. 그랬으니 원하오 제약회사 같은 거대 기업도 쉽게 움직일 수 있었겠지.
“어쨌든 임상 1상을 통과시켜주겠다는 거지? 그럼 고마운 일인데.”
저들의 계획이야 이미 알았으니 충분히 대비할 수 있다. 임상 1상을 하는 데만 일 년이 넘게 걸리니 그동안 차근차근 준비하면 된다.
그리고 치료제 승인을 받을 수 있는 곳이 식약처만 있는 것도 아니고, 안 되면 미국 FDA라도 가면 되지 뭐.
그때 캐리온이 말했다.
[그보다 긴급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감람나무교회 교주가 지령을 내렸습니다.]
“지령?”
[음성 파일을 전송합니다.]
음성 파일을 다운받자 교주 석동희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대전에 퍼진 포비드를 모두 우리 교회 탓으로 돌리고 있어요. 이런 비난을 막기 위해서는 사회에 잠입해서 병을 퍼뜨려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줘야 해요.
나는 귀를 의심했다.
이게 무슨 개소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