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상 (2)
배정남은 어쩔 수 없이 나를 따라 나왔다. 나를 여기 두었다가는 더욱 난동을 피울 것 같아 불안했겠지.
뒤에서 아들이 무슨 일인지 빼꼼 쳐다보았지만, 나는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하는 여유를 보여주었다.
밖으로 나오자마자 배정남이 화를 냈다.
“이건우 사장님. 이거 너무 무례한 거 아닙니까?”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제가 뭘요?”
“야밤에 남의 집에 쳐들어와서 이게 무슨 민폐입니까! 지금 당신 때문에 위아래층이 피해를 보잖소.”
나는 피식 웃었다.
“글쎄요. 겨우 이 정도 가지고 민폐라니요. 진짜 민폐는 처장님이 저지르고 있지 않습니까.”
“뭐요?”
배정남의 얼굴에는 황당함과 어이없음이 뒤섞였다.
“성윤식 의원이 시킨다고 의약품 승인을 안 내줬잖아요.국민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감염되야 하는건데. 이런 게 진정한 민폐죠.”
“뭐? 내, 내가 언제 그랬다고.”
배정남은 눈에 띄게 당황했다. 이건 뭐, 캐리온의 안면분석능력이 없어도 당황했다는 걸 알겠다.
나는 더이상 말하지 않고 그를 쳐다만 보았고, 배정남은 시선을 피하며 물었다.
“후우. 그건 또 어떻게 알아낸 거요.”
나는 빙긋 웃었다.
“세상에서 제가 모르는 일은 없습니다.”
배정남은 기본적으로 나쁜 사람이 아니다. 식약처장으로서도 책임감이 있고 청렴하게 일을 처리했다. 제약회사와도 깔끔하게 선을 지키고 흔한 비리도 없었다.
다만 성윤식의 압박에 고민이 깊어진 것뿐.
배정남이 말했다.
“나도 성윤식 의원의 부탁이 꺼림칙해요. 하지만 이건 앞으로 내 커리어가 달린 일이기도 합니다.”
사명감을 가지고 일하던 배정남에게, 성윤식의 부탁으로 KW 제약의 의약품 승인을 막은 것은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성윤식의 협박을 그냥 넘기기에는, 그가 가진 힘이 너무나 막강했다.
나는 그를 살살 달랬다.
“처장님. 우리 좀 솔직해집시다. 솔직히 처장님도 성윤식의 부탁이 마음에 안 드시잖아요? 어디 제 말이 틀렸습니까?”
배정남은 여전히 입을 다물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눈동자는 자연스럽게 나를 향했다.
“오히려 성윤식의 말을 들으면 처장님의 커리어에 문제가 생길 겁니다. 생각해 보세요. 승인을 내주지 않아 바이러스 전파가 더 심해지면, 그게 누구 책임이 되겠습니까?”
그 부분은 생각해 보지 않은 모양이다. 배정남의 표정이 굳었다.
“성윤식이 겉으로는 잘해줄 것 같아 보이지만, 그게 언제까지 가겠습니까? 차라리 저와 손을 잡고 이 사태를 주도적으로 해결하는 쪽이 커리어에 좋지 않겠습니까?”
나는 마지막으로 배정남을 흔들었다.
“어렵지도 않아요. 단지 스마트 마스크와 진단키트를 통과시켜주세요. 그럼 사람들이 빠르게 검사를 받을 수 있고, 확진자의 수도 줄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전국에 미니온-트래킹을 깔아서 확진자의 동선을 추적할 수 있도록 조치해주세요.”
“지금 아무도 나선 사람이 없습니다. 대통령조차 침묵하는 지금, 처장님이 나서서 주도권을 쥐면 사람들은 분명 처장님을 기억할 겁니다.”
“끄응”
내 말은 배정남의 감정을 뒤흔들었다.
지금까지 공무원이라는 직업에서 느낀 자부심.
국민들을 위해야 한다는 식약처장으로서의 책임감.
조금 더 큰 뜻을 펼쳐 보고 싶다는 야망.
모든 감정이 뒤섞이며 배정남의 마음을 바꾸어 놓았다.
그리고 마침내 배정남이 내가 던진 떡밥을 물었다.
그는 투덜거리듯 말했다.
“좋습니다. 내 이건우 사장의 장단에 한 번 맞춰 드리지요. 하지만 다른 건 어렵지 않은데, 시스템을 설치하는 건 내가 아니라 질병관리청에서 해야할 일이에요.”
나는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 이 상황에서도 권한을 따지다니. 그러나 나는 꽉 막힌 이 사람이 왠지 싫지는 않았다.
“그럼 ‘권고’ 형식으로 여론을 바꾸면 되지요.”
여론몰이는 내가 가장 잘하는 것 중에 하나거든.
나는 배정남에게 쐐기를 박았다.
“사람들은 이제 처장님을 기억할 겁니다. 제가 그렇게 만들어 드리지요.”
배정남은 여전히 굳은 얼굴이었지만, 그의 눈 속에는 한줄기의 열망이 불타고 있었다.
*
2월 23일. 슈퍼전파자가 확진 판정을 받은 다음 날.
내가 열심히 싸돌아다닌 덕분인지, 포비드에 관한 기사들이 우후죽순으로 쏟아져나오기 시작했다.
<슈퍼전파자, 주말 동안 밀접접촉자가 무려 만 명?>
<‘슈퍼전파자’ 한 명 때문에···. 불똥 튄 서울 클럽들>
<대전發 슈퍼전파자, 포비드 확산으로 이어지나>
대부분의 기사가 대전 슈퍼전파자에게 주목하면서 북경 바이러스가 확산될 것을 우려하는 어조였다.
하지만 암울한 기사들 속에서, 식약처장의 발표는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는 한 줄기의 빛이 되었다.
“식약처에서는 KW 제약에서 개발한 진단키트가 정확하고 빠르게 검사를 할 수 있다고 보았으며, 바로 의료현장에 사용할 수 있도록 긴급 승인했습니다.”
“스마트 마스크인 ‘에코 브레스’는 KF 99와 동일한 성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고 인증을 마쳤습니다.”
“또한, 서울시에서 미니온-트래킹을 도입한 지역구에서는 빠르게 확진자를 색출하고 있습니다. 효과적인 방역을 위해 각 지방자치단체는 해당 시스템을 사용하는 것을 권고합니다.”
이 정도면 KW 제약을 대놓고 광고해준 것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효과는 확실했다.
KW 제약의 제품은 그만큼 방역의 프레임을 뒤바꿀 만큼 혁신적이었고 충분히 기삿거리가 될 만했다.
기자들이 식약처장의 말을 퍼다 나르기 시작하면서, 배정남은 이름도 모르던 식약처장에서 획기적인 일을 한 사람으로 바뀌었다.
나로서는 배정남에게 한 약속을 지킨 셈이다.
그리고 식약처의 발표가 나자마자 서울 시장인 김병학이 먼저 달려와서 진단키트 공급계약을 체결했다. 무려 백만 장이나.
또한, 화성공장에 애물단지처럼 구석에 쌓여있던 마스크도 트럭에 실려 대량으로 빠져나갔다. 그 많던 물량이 순식간에 전국 각지로 퍼져나갔다.
공장장이 그 모습을 보며 얼마나 행복해하던지.
내가 시키니까 마스크를 계속 생산해냈지만, 쌓여가는 재고를 보며 그동안 마음을 졸였나 보다.
그동안의 준비가 팬데믹 상황에서 빛을 발휘하고 있었다.
*
식약처가 마스크와 진단키트를 승인해준 후로 매일 KW 제약을 찬양하는 기사가 올라왔다.
특히 마스크는 일상생활 속에서 실감할 수 있는 부분이라 매일 많은 후기가 올라왔다.
- 마스크 KF 99 쓰고 출근하느라 미치는 줄 알았는데, 에코 브레스 넘 편해
- 진짜 완전 짱 좋아
- 근데 가격대가 좀 있어서···.
ㄴ 본체가 비싸긴 한데 필터만 바꾸면 되서 장기적으로 ㄱㅊ은듯
- 난 깔별로 쟁여놨음ㅎㅎ
내가 광고를 따로 하지 않아도 될 정도다. SNS 스타, 연예인 등등 많은 사람이 알아서 커스텀해서 다양한 디자인으로 인별그램 등에 올렸다.
심지어 고료를 주지 않았는데도 에코 브레스를 광고하는 기사가 나올 정도.
<방역체계의 혁신이 될 스마트 마스크 ‘에코 브레스’>
「KW 제약은 세계 최초로 스마트 마스크를 개발해서 특허를 냈다. 상품명 ‘에코 브레스’는 내부 팬을 사용하여 공기를 물리적으로 밀어 마스크의 통기성을 증가시키는 AI 구동 환기 시스템을 갖췄으며, 저자극성 실리콘을 장착해서 눌림도 없다.
또한, 최대 정화를 위해 5층 헤파 마스크 필터를 사용했고, 활성탄 성분이 있어 미생물과 냄새 분자를 중화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 ···(후략)」
창고에 쌓여있던 마스크는 어느새 다 팔린 지 오래고, 지금은 정신없이 새로운 마스크를 찍어내고 있는 중이었다.
마스크뿐만 아니라 미니온-트래킹 시스템과 진단키트의 도입도 방역에 큰 도움이 되었다. 그 둘은 최고의 조합을 보여주며 확진자를 찾아내고 있었다.
이전에는 PCR 검사를 통해서 확진자를 판별할 수 있었다면, 이제는 미니온-트래킹이 찾아낸 밀접접촉자에게 진단키트를 이용해 확진자를 빠르게 색출해내고 있었다.
물론 확진이 아니더라도 밀접접촉자들도 포비드 바이러스의 잠복기인 최대 2주는 자가격리를 해야 했다.
이에 따라 많은 사람이 격리되면서 업무는 거의 마비가 되고 사회는 셧다운이 됐지만, 이는 사회가 조만간 정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일종의 신호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건 미니온을 가져간 야당 소속 의원이 구청장으로 있는 지역구만 해당이 됐고, 여당 쪽은 오히려 사람들의 비난만 샀다.
- 왜 관악구는 미니온 안 들여와?
- 오늘도 손님이 한 명도 없네요···.
- 개인정보가 유출될 수도 있다잖아
ㄴ 니 개인정보 이미 다 털렸음.
- 아 진짜 답답해 죽겠네. 다음에 내가 이 새끼 구청장으로 찍나 봐라
특히 서울에서는 미니온을 가진 지역구와 그렇지 않은 지역구에서 업무의 속도 차이가 나면서, 그에 따른 시민들의 불편함도 천차만별로 달랐다.
어떤 구에서는 확실하게 확진자를 파악하여 시민들을 안심시키고 최대한 활동을 보장하는 반면, 어떤 구에서는 접촉자와 확진자 파악도 끝내지 못한 상태였다.
이렇게 대놓고 비교되자 사람들은 여당 소속 지역구를 비난하기 시작했다.
- 관악구는 뭐하냐. 내가 다음에 이 새끼 뽑나 봐라.
- 개인정보도 일정 시기 지나면 삭제된다며.
- 내 정보는 이미 털렸으니까 빨랑 미니온 가져와라.
- 내년 대선에는 무조건 야당 찍는다.
겨우 하루가 지났을 뿐이다.
그런데 미니온-트래킹을 도입하지 못한 구에서는 아직도 확진자 동선도 파악하지 못한 채, 도시 곳곳에서 중구난방으로 나오는 감염자들을 막기에 바빴다.
여당은 말 그대로 멘붕상태였다.
성윤식의 말만 믿고 역학조사관으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확진자가 퍼지는 속도가 그들의 예상보다 너무 빨랐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지금 대전 시장만큼 똥줄이 타고 있는 사람은 없었다.
이미 기사에는 미니온-트래킹을 이용해서 효과적으로 확진자와 밀접접촉자들을 파악하고 있다고 했지만, 미니온-트래킹의 유효기간은 진작에 끝나버렸다.
그리고 미니온-트래킹의 데모 버전이 미리 파악한 확진자도, 파악만 한 것이지 격리까지 이루어지진 못했다.
이게 동선을 파악한다고 해서 바로 잡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격리를 하지 못하니 확진자와 밀접접촉자가 계속해서 새로 나왔고, 자신이 밀접접촉자임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끊임없이 돌아다니며 새로운 감염자를 만들고 있는 상황이었다.
심지어 감람나무교회 사람들은 계속 거짓말을 하고 서로서로 숨겨주는 덕에 기껏 파악한 동선이 무용지물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단 하루, 겨우 하루 동안 미니온을 안 썼는데 역학조사관들의 업무에 마비가 걸릴 지경이었다.
그 모든 곳을 방역하고 2차, 3차 접촉자를 찾아내야 하는데, 그걸 사람의 힘으로 하려니 보건 인력을 총동원해도 손이 모자랐다.
대전 시장은 미쳐버릴 노릇이었다. 자기도 미니온-트래킹을 안 쓰고 싶어서 안 쓰는 게 아니건만, 이대로 가다간 걷잡을 수 없이 확진자가 퍼질 것 같았다.
아마 이대로 가다간 미니온-트래킹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사실도 드러날 것이고, 방역도 실패할 게 뻔했다.
그렇게 되면 그 모든 책임은 온전하게 자신에게 돌아오는 셈.
자신의 정치 생명이 위태로워질 수도 있다는 생각에 대전 시장은 고민했다.
‘어차피 미니온을 안 쓰고 망하나, 성윤식 의원에게 밉보여서 망하나 그게 그건데.’
어차피 선거에서 제일 중요한 건 민심이다. 미니온-트래킹을 들여올 수 있으면 방역에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았고, 그렇다면 대전 시민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다.
한참을 고민한 그는 이건우에게 연락하기로 결심했다.
“안녕하세요 이건우 사장님. 별일 없으셨습니까?”
“아, 네 뭐. 그냥 지내고 있습니다. 누가 계약을 손바닥 뒤집듯 엎어버려서 기분이 썩 좋지는 않네요.”
이건우의 말에는 대놓고 가시가 있었지만, 지금 급한 것은 대전 시장이다. 그는 꾹 참고 대화를 이어나갔다.
“하하, 제가 그 계약 때문에 이렇게 전화를 드렸습니다. 미니온-트래킹. 우리 대전에서 구매하겠습니다. 혹시 언제쯤 오실 수 있으실까요?”
하지만 이건우는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대전에 제가 왜 갑니까? 직접 KW 제약으로 오시면 고려는 해보죠. 저는 미팅이 있어서 그만.”
뚝
일방적으로 끊어진 전화. 대전 시장은 멍하니 끊어진 전화만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