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로 갑질하는 양아치 재벌-54화 (54/183)

협상 (1)

김병학과 할아버지의 관계가 꽤나 좋았던 것인지, 만남은 즉시 성사되었고 김병학도 나에게 꽤나 호의적이었다.

김병학이 먼저 말을 꺼냈다.

“반가워요. 회장님께서 가장 아끼시는 손자라고 들었는데 훤칠하네요.”

“감사합니다. 할아버지께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로 보자고 했습니까? 회장님께 듣기로는 서울에서 심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하던데요.”

“이게 보통 일이 아닙니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분위기를 잡고는, 슈퍼전파자의 신상이 첨부된 서류를 건네주었다.

“이 여자는 누구인가요?”

“대전의 슈퍼전파자입니다. 지금 대전은 이 슈퍼전파자 때문에 대략 10,000명이 넘는 사람들을 전수조사하고 있지요.”

김병학은 의아한 눈치였다. 내가 왜 서울 시장 앞에서 대전의 이야기를 하는지 모르는 것 같았다.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대전의 슈퍼전파자와 서울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짐작도 못 하겠지.

“이 사람이 잠복기 동안에 홍대 클럽에 갔습니다. 무려 11군데를 돌았더군요.”

내 말과 동시에 김병학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클럽을, 열한 군데나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김병학은 머리가 아파오는지 관자놀이를 문질렀다. 피곤해 보이던 얼굴에 피로감이 더욱 짙어진 느낌이었다.

“맙소사. 정말 큰일이군요. 알려줘서 정말 고마워요.”

홍대는 유동인구가 많은 곳 중 하나이다. 홍대 클럽에 모여든 사람이, 서울 각지로 퍼져나가고, 그중 몇 사람들은 또다시 수도권이나 지방으로 이동하겠지.

이러면 전국적 팬데믹이 닥칠지도 모른다.

“이미 전염은 시작됐습니다. 이번에 새로 감염된 사람들은 전구기라서 전파력이 낮은 상황입니다. 지금 초동조치를 잘 취하지 않으면 나중에는 손쓸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접촉한 사람만 수만 명일 텐데, 보건소 인력을 총동원한다고 해도 무리에요.”

김병학은 답답한 듯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서울시의 힘으로는 무리였다.

하지만 그 대책을 세워주기 위해서 내가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니겠는가. 나는 그에게 준비한 서류를 건네며 말했다.

“제가 만든 인공지능 프로그램이 있는데 한 번 이용해보겠습니까? 미니온-트래킹이라고 확진자를 비롯한 밀접접촉자의 동선을 추적해주는 프로그램입니다.”

“대전에서는 이미 데모를 사용하고 있는데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습니다. 한 시간에 접촉자를 150~200명 단위로 찾아내고 있습니다. 물론 그들을 격리하는 건 사람이 해야할 일이긴 하지만요.”

김병학의 눈이 크게 뜨였다. 특히 대전에서 이미 검증을 하고 있다니 더욱 혹한 눈치였다.

"호오. 확실히 도움이 되겠군요.”

물론이지. 서울시라면 대전보다 규모가 크니 서버도 많이 사용할 거고, 그럼 단가도 올라가겠지? 나의 호갱2가 될 서울 시장을 바라보며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시장님께서도 프로그램의 효과를 한 번 체험해보시죠. 정식 계약하기 전에 프로그램을 이틀 동안 무료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해드리겠습니다.”

“이만호 회장님이 손자를 아끼는 이유가 있었네요. 서울시를 위해 나서줘서 고마워요.”

그래. 감사해야지.

이번 사태만 잘 막으면 지지율이 올라가고 대선을 향한 길이 활짝 열릴 테니 말이야.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김병학의 얼굴은 썩 밝지 않았다.

“그런데 저야 물론 당장 도입하고 싶다만, 시의회에서 동의할지 모르겠네요. 무료 이용은 상관없으나, 정식 계약을 위해 예산을 집행하려면 의회의 의결을 먼저 받아야 하거든요.”

시장은 야당이지만, 시의회의 80%는 여당의 의원으로 구성되어있다. 그래서인지 정책을 집행하려고만 하면 시의회에서 반대를 하고 나섰다.

아마 이번 계약 건도 가만히 두고 보지는 않을 것이다.

아니, 평소보다 더 극렬하게 반대하겠지.

왜냐하면,

“사장님은 성윤식 의원과 사이가 좋지 않잖습니까.”

“알고 계셨군요.”

“알바트리온 사태로 성윤식 의원이 많은 돈을 잃었다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배후에 있었던 게 KW 홀딩스였다지요?”

그는 이미 나와 성윤식의 관계가 틀어진 것을 알고 있었다.

알바트리온 주가 하락 사건 때문에 잃은 돈이 수십억이라 들었는데, 그게 꽤 소문이 났나보다.

어쩌면 고위공직자들은 이미 다 알고 있을지도.

돈도 잃고 쪽도 팔린 성윤식이 나를 잡아먹기 위해서 뭔들 못하랴.

내가 대전 시장을 만나자마자 훼방을 놓고, 식약처를 압박하는 걸 보면 화가 단단히 났나 보다.

서울 쪽도 마찬가지다. 시장이 미니온-트래킹을 도입한다고 해도,

“성윤식 의원 말 한마디면 시의회 의원들은 모두 거부하겠군요.”

김병학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제가 선결처분을 내려서 도입할 수도 있지만, 의회에서 승인을 받지 못하면 도루묵이에요.”

“게다가 그 시스템이 기술인증을 받았더라고 해도, 이제 첫 상용화를 한다는 것도 명분이 될 겁니다. 알다시피 정치인들은 검증되지 않은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거든요.”

괜히 새로운 것을 시도했다가 실패를 하면 그에 대한 책임을 온전히 져야 한다.

그렇기에 정치인들은 새로운 시도보다는, 그저 안정적이고 비슷한 것들만 찾으려고 한다.

모험보다 자기 보신을 중요하게 여기니까 말이다.

그래서 내가 대안을 내주었다.

“그러면 이 건은 구청장들에게 맡기는 게 어떻습니까? 시장님을 따르는 야당 소속 지역구에 먼저 보급하겠습니다. 그리고 여당 쪽에서도 관심만 보인다면 바로 공급하겠습니다.”

김병학의 얼굴이 대번에 밝아졌다. 묘수였다.

최근 대통령을 비롯한 여당이 친중 성향을 드러내면서 사람들의 반감이 커졌고, 덕분에 작년에 있었던 구청장 선거에서 야당이 많은 지역구를 차지할 수 있었다.

“좋은 방안입니다. 마침 주요 지역구는 우리 야당이 잡고 있으니 피해도 최소화할 수 있을 겁니다.”

그 이후에는 일사천리였다. 김병학은 야당 소속의 구청장들에게 연락했고, 북경 바이러스에 골머리를 썩이고 있던 그들은 부랴부랴 미니온-트래킹의 사용 계약을 체결했다.

메인 뉴스란에도 대문짝만하게 실렸다.

<서울시-KW 제약, 역학조사 시스템 도입 계약 체결>

「2월 22일. 서울시에서 지역사회 감염에 대비하여 발 빠르게 대처에 나섰다.

25개의 자치구 중에서 강남구, 서초구, 송파구를 비롯한 15개 구가 KW 제약의 역학조사 시스템, ‘미니온-트래킹’ 공급계약을 체결한 것이다.

대부분 야당 의원이 구청장으로 있는 지역구였으며, 여당은 개인정보 유출을 문제 삼으며 유보적인 입장을 취했다.

이 계약이 서울과 대전의 바이러스 확산에 어떤 도움이 될지 이목이 쏠리고 있다.」

캐리온이 바이러스 확산 방지를 위한 공식적인 첫걸음을 뗐다.

*

아직 일반 시민들은 대전 슈퍼전파자 사건이 얼마나 심각한지 잘 몰랐다. 기껏해야 대전 사람들만 발등에 불이 떨어진 정도랄까.

김병학도 내가 말해줘서 서울이 좆됐다는 걸 알았으니, 다른 사람들은 남의 집에 불났구나 하는 심정으로 구경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경각심을 심어줄 필요가 있다.

나는 내 전용 스피커를 찾아갔다.

조금은 늦은 저녁, 나는 캔맥주와 간단한 안줏거리를 사서 윤단아의 집에 찾아갔다.

오늘도 깔끔한 셔츠와 바지 차림의 윤단아가 집에서 나왔다. 처음에 윤단아를 봤을 때, 사람이 저런 옷을 입고 집에서 생활한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었는데 이제는 오히려 안 그러면 이상할 것 같다.

그만큼 서로에게 익숙해진 모양.

“들어오세요. 어, 치킨이다!”

“같이 한잔할까 하고 왔어요.”

“아, 이 시간에 야식 먹으면 살찌는데···.”

하지만 윤단아의 손은 빠르게 치킨을 꺼내 들고 있었다.

요즘 윤단아의 인기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중이었다. 특히나 시사 부문에서는 대한민국에서 한 손가락에 꼽히는 채널이 돼가고 있었다.

그녀의 제보 때문에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지훈부터 시작해서 그의 친구들, 이번에는 한양일보 사주까지.

그녀가 다루기만 하면 사건이 뻥뻥 터지는데, 이게 재미가 없을 리가 있나.

그리고 나와 계약한 이후 캐리온이 주기적으로 팩트에 기반한 소스를 제공해줬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제 윤단아가 올리면 일단 믿고 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윤단아는 닭다리를 뜯으며 물었다.

“그런데 오늘은 또 누구랑 싸웠어요?”

그렇게 말하니까 내가 양아치 같잖아. 누가 들으면 맨날 싸우는 줄만 알겠다.

“···싸운 게 아니라 대전시 슈퍼전파자 때문입니다.”

나는 시장에게 설명해준 내용은 다시 말했고, 윤단아는 들고있던 닭다리를 내려놓았다.

눈치 빠른 그녀는 내가 치킨까지 싸들고 방문한 목적을 금방 알아차렸다.

“지금 닭다리가 문제가 아니네요. 바로 스트리밍 들어갈게요. 공지 없이 하는 거라 사람이 많이 안 모일지도 몰라요.”

캐리온이 정리한 자료를 받은 윤단아는 지체없이 방송을 켰다.

<대전 클럽녀 동선 공개 / 접촉자가 10,000명이나? / 방역 이대로 무너지나>

그녀의 걱정이 무색하게도, 방송을 틀자마자 벌써 많은 사람이 들어와 있었다.

나는 스튜디오 한쪽에서 댓글창을 훑어봤다.

- 나 대전에 사는데···진짜 미치겠음ㅠㅠㅠㅠㅠㅠ 나가지를 못해

- 기사 보니까 엄청 싸돌아다닌 것 같더라

- 역시 윤단아. 이거 건드릴 줄 알았음.

- 그런데 사이비 종교는 또 뭐야?

대전에 사는 사람들은 슈퍼전파자에 대해서 알고 있었지만, 보통은 ‘아 그거?’ 하면서 관망하는 태도를 취했다.

바로 이런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내가 윤단아에게 스트리밍을 부탁하러 온 것이다.

아무리 정부가 대책을 세운다고 한들 사람들이 스스로 주의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안녕하세요 단아입니다. 포비드가 요즘 심각해서 관련 영상을 찍으려고 라방 틀었어요.”

- 포비드는 무슨. 짱개 바이러스지.

- 언니 저 대전 사는데 무서워요ㅠㅠ 밖에 나가지를 못해요ㅠㅠㅠㅠ

- 어 나도 오늘 뉴스에서 읽은 것 같은데

- 대전 좀 심각한 것 같더라

윤단아는 채팅창을 읽으며 소통을 했다.

“진짜 대전에 살아요? 지금 모 교회에서 큰 집회를 여는 바람에 확진자가 무더기로 나오고 있다잖아. 알람온 어플은 꼭 깔고, 주변에 사는 사람들은 무조건 검사받아봐요.”

윤단아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모은 뒤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그거 알아요? 대전뿐만 아니라 서울에 사는 사람도 지금 큰일 났어요. 이번에 슈퍼감염자가 홍대 클럽을 다녀갔다고 하더라고.”

- ?

- ????

- 갑분서?

- 대전에서 서울로? 누구 설명 좀

- 잠깐만. 이번에 투어데이 있었는데

역시 사람들은 잘 모르고 있었다. 하긴 확진 판정을 받은 게 오늘 아침이었다.

내가 발 빠르게 돌아다니지 않았으면 조치가 더 늦어졌을 것이고, 그러면 감염된 사람들도 더 늘어났을 것이다.

“맞아요. 투어데이 때문에 서울로 와서 클럽 열한 군데를 돌아다녔다더라구. 서울시에서 구 단위로 밀접접촉자를 파악하고 격리 조치를 취하고 있기는 한데, 우리도 조심해야죠. 마스크 꼭 끼고 가급적이면 외출은 하지 말고요.”

이후로 윤단아가 지자체들과 KW 제약과의 공조, 미니온 트래킹 프로그램에 대한 소개 등등을 이어나갔지만 이미 채팅장은 그런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남의 일인 줄만 알았던 중국 바이러스가 어느새 옆에 다가와 있었다.

이제 모든 사람이 깨달았다.

전국적으로 좆됐다는 것을.

*

같은 날, 22일 밤. 나는 거의 기절하기 직전의 몸으로 식약처장 배정남의 집을 찾아갔다.

성윤식이 나를 감시하고 있기에 공적으로 찾아가면 또다시 훼방을 놓을 게 뻔했다.

배정남이 아무런 접점이 없는 나를 사적으로 만나주지도 않을 거란 생각에, 부득이하게 망나니다운 방법을 사용하기로 했다.

나는 배정남이 살고있는 아파트에 들어갔다.

보안이 철저한 아파트였지만, 이미 캐리온이 해킹을 끝내놓은 덕에 문은 부드럽게 열렸다.

자연스럽게 집 안으로 들어온 나는 초인종을 눌렀다.

하지만 안에는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아니, 알면서도 안나와보는건가?

캐리온에 의하면 배정남이 퇴근한 후 집 밖으로 나간 적이 없다고 했다. 분명 인터폰으로 내 얼굴을 알아보고는 의도적으로 무시한 것이 틀림없다.

이거 속상한데. 내가 특별히 서로를 위한 좋은 제안을 가지고 왔는데 말이지.

마음이 조금 상한 나는 문을 쾅쾅 두드리며 속상한 마음을 풀었다.

예의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행동이었지만, 식약처장님이 나와보지 않으니 어쩔 수 없는걸.

나의 신나는 노크 소리에 위아래 집 사람들이 무슨 일인지 나와볼 때쯤, 매우 짜증난 얼굴의 배정남이 나왔다.

“이건우 사장. 남의 집에 쳐들어와서 무슨 횡포요?”

나는 씩 웃었다. 드디어 나오셨군.

이제 협상을 한 번 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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