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3)
그런 이건우의 행보를 유심히 지켜보고 있던 사람이 있었다. 바로 성윤식.
얼마 전 투자한 알바트리온의 주가는 이건우 때문에 50퍼센트나 떨어졌다. 그로 인해 입은 손실이 수십억이다.
그 때문에 성윤식은 이건우를 엿먹일 상황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이건우가 대전 시장을 만났다는 소식은 즉시 성윤식에게 들어갔다.
“이 새끼가 무슨 꿍꿍이지?”
뭔가 노리는 바가 있는게 분명했다.
어차피 대전 시장도 여당 소속이겠다, 성윤식은 지체없이 전화를 했다.
대전 시장은 4선 의원이 친히 연락을 준 것에 대해 감격을 하며 반갑게 전화를 받았다.
“아이고 의원님께서 무슨 일이십니까?”
“시장님께서 이건우를 만났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대전 시장은 단도직입적인 성윤식의 말투에서, 이건우에 대한 부정적인 뉘앙스를 캐치했다. 둘이 어떤 사이인지는 모르겠지만, 썩 사이가 좋아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일단 지금은 성윤식 의원의 편을 들어야 했다.
이건우는 고작 젊은 기업가일 뿐이지만, 성윤식은 여당의 중진 의원이다. 누가 보더라도 성윤식이 훨씬 도움이 되는 사람으로 보였다.
판단을 마친 대전 시장이 사실대로 털어놓았다.
“예. 이건우 사장이 찾아와서 새로 개발한 프로그램으로 계약을 맺고 싶다고 하더군요.”
그 말을 들은 성윤식의 눈이 날카롭게 빛냈다.
그러니까 제품을 팔려고 직접 대전까지 갔다, 이 말이지?
그럼 당연히 막아야지. 내가 잃은 돈이 얼마인데, 이건우가 이득을 보는 꼴은 절대 두고 볼 수 없다.
성윤식은 대전 시장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이런 젊은 정치인들이 뭘 원하는지는 뻔했다.
“시장님께서도 이번 임기를 끝내시면 도지사로 가야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국회에도 입성하셔야지요. 같은 당원끼리 서로 돕고 살아야지요.”
성윤식이 직접 밀어주겠다는 말이다. 성윤식이 밀어준다면 다음번에는 시장이 아니라 도지사도 노려볼 만했다. 장밋빛 미래를 꿈꾼 대전 시장은 입이 찢어져라 웃었다.
“허허허.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제가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다만 한 가지 일만 해주시면 됩니다.”
“네. 무엇입니까?”
“이건우와 계약하지 마세요.”
이건우의 얘기를 할 때부터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막상 미니온-트래킹을 포기하려니 쉽지 않았다.
미니온-트래킹 프로그램을 써 본 결과 너무 편리했다. 정확도며 시간이며 기존의 역학조사관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효율적이었다. 그리고 사람을 쓰는 것보다 훨씬 저렴했다.
세 시간이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오백 명이나 파악했고, 가장 효율적인 동선을 제시해서 보건 인력을 투입해 사람들을 차근차근 격리시키고 있었다.
방역은 걱정했던 것이 무색할 만큼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덕분에 대전 시장은 뛰어난 리더십을 발휘해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며 사람들에게 칭찬을 듣고 있었던 상황.
그런 까닭일까? 대전 시장은 포비드의 위험성을 과소 평가했다.
‘이틀이 지나면 폐기된다고 했지만, 그 안에 충분히 접촉자를 파악할 수 있을 것 같고···.’
이대로라면 이틀이 지난 후에는 거의 모든 사람을 격리시킬 수 있을 거다. 나머지 밀접접촉자는 현재 보유한 역학조사관으로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심지어 부탁하는 주체가 당 내에서도 방귀 좀 뀐다는 4선 의원이다.
이미 방역은 성공한 것 같으니, 이제 그에게 중요한 것은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것.
이건우와의 계약보다는 성윤식의 밑으로 들어가는 것이 더욱 확실한 미래를 보장해 주는 것처럼 보였다.
"물론이지요 의원님. 그 계약, 절대 맺지 않겠습니다."
그런 생각으로 대전 시장은 성윤식과 손잡는, 평생 후회할 결정을 내렸다.
*
대전 시장과 통화를 마친 후, 성윤식은 생각에 잠겼다.
이건우. 확실히 난 놈이었다.
그는 예전에 한양일보 사주가 이건우에 대해 평가한 말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 보통 권력욕을 가진 놈이 아닙니다. 벌써 기획을 짤 줄 알아요.
- 자기한테 유리한 상황을 만들고 상대를 서서히 궁지에 몰아넣으며 끝장을 내버리는 게 보통 솜씨가 아닙니다.
실제로도 그는 이정혁이 어떻게 파멸하는지 똑똑히 보았으며, 한양일보 사주는 지금 이건우 때문에 구속 수사를 받고 있다.
사모임의 멤버는 이제 알바트리온 제약과 성윤식, 둘밖에 남지 않았다.
성윤식은 위협을 느꼈다. 십 년이 넘게 국회에 있으며 갈고닦은 본능과도 같은 감각이, 이건우는 보통 놈이 아니라고 끊임없이 외치고 있었다.
지금 당장이 아니더라도 언제고 기회가 되면 자신을 물어뜯으려 할 게 뻔했다.
어떻게든 끝장을 봐야 할 사이라면 놈이 성장하기 전에 빨리 해치우는 편이 좋아 보였다.
최근 이건우는 KW 제약에 공을 들이고 있고, 마침 그는 보건복지위원회의 위원장이다. 그가 식약처에 미치는 영향력으로 이건우의 KW 제약에 제동을 걸 수 있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그는 바로 식약처장과 약속을 잡았다. 식약처장 배정남은 영문도 모른 채 처장실에서 그를 맞이했다.
“의원님께서 여기까지는 무슨 일입니까?”
성윤식은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KW 제약에서 이것저것 허가 신청을 많이 하고 있다지요?”
배정남 역시 성윤식이 KW 제약과 안 좋은 사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고위공무원이라면 모를 수가 없을 만큼 알바트리온 주가 하락은 큰 사건이었다.
그 때문에 성윤식이 한동안 기분이 상해 말도 붙이기 힘들었던 걸 식약처장은 몸소 체험한 터였다.
성윤식의 분위기를 보아하니 그가 무슨 말을 할지 짐작이 갔지만, 배정남은 일단 대답은 해줬다.
“스마트 마스크와 진단키트를 인증해달라는 요청이 들어와서 지금 최종심사만 남았습니다. 그리고 포비드 치료제가 전임상에 들어간 걸로 알고 있어요.”
“그렇군요. 전임상에 들어간 건 어쩔 수 없지만, 임상 1상은 승인을 내려주지 마세요. 그리고 스마트 마스크와 진단키트 승인을 거부해주시면 합니다.”
배정남은 어이가 없었다. 아무리 4선 의원이라지만 명령하듯 식약처장의 권한을 건드리는 것도 그렇고, 지금 상황이 어떤지는 알기나 하고 이딴 말을 지껄이는 건가?
“의원님. 지금 대전과 서울의 확진 상황이 심각합니다. 그리고 국내에서 진단키트를 만들 수 있는 곳은 KW 제약뿐이에요. 하루라도 빨리 심사를 해서···.”
“처장님”
성윤식이 차가운 눈빛으로 배정남을 쏘아보았다.
“제가 지금 상황을 몰라서 이러는 줄 압니까? 진단키트는 중국에서 생산을 하려고 한다 하니 그걸 쓰면 되고, 마스크도 국내 공장이 얼마나 많이 생겼는데 거기 것을 사서 쓰면 되잖아요! 그리고 만들어진 지 겨우 몇 달밖에 안 된 작은 기업이 치료제를 만든다는 게 말이 됩니까?”
그리고 마지막으로 배정남을 압박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처장에 올라온 지 5개월밖에 안 됐는데 벌써 퇴임하기에는 이르지 않습니까? 차기 정권에는 보건복지부 장관도 한 번 해보셔야지요.”
“······.”
그 뻔뻔함에 배정남은 할 말을 잃었고, 성윤식은 경고를 남기며 문을 나섰다.
“그럼 좋은 답변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그가 나간 후 배정남이 재떨이를 문에 던졌다.
“아오씨, 저딴 능력도 없는 게 어떻게 4선이나 됐는지. 중국 똥꼬도 적당히 빨아야지. 입만 열면 중국, 중국이야.”
그렇지 않아도 중국발 바이러스 때문에 머리털이 빠질 것 같은데, 대한민국 국회의원이란 놈이 자기 배만 채우려고 한다.
배정남이 보기에 이건우의 제품은 좋았다. 아니, 좋은 것을 넘어 획기적이었다.
전임상에서도 (약간의 부작용이 있긴 했지만) 치료제는 동물을 상대로 충분한 효과를 보고 있었고, 스마트 마스크는 그도 끼고 다니고 싶을 만큼 좋았다.
심지어 진단키트는 PCR검사를 하지 않아도 빠르고 정확하게 감염 여부를 확인할 수 있었다.
모두 팬데믹을 해결할 수 있는 열쇠였다. 그런데 만약 이걸 거부한다면? 국민들이 바이러스로 더욱 오랜 기간동안 고통받을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책임을 자신이 져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성윤식의 말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이제 식약처장에 오른지 5개월 차. 그리고 성윤식은 방금의 협박을 현실로 이뤄낼 수 있는 사람이다.
차기 보건복지부 장관의 꿈을 가진 그인데, 여기서 퇴임하면 평생 그 불명예가 꼬리표처럼 따라붙을 터였다.
배정남은 그렇게 고민에 빠져들었다.
*
서울 시장을 만나러 가는 길.
회의에 들어간 서울 시장을 기다리는 동안, 나는 캐리온에게서 두 가지 보고를 들었다.
첫 번째, 성윤식과 대전 시장이 손을 잡았다는 것.
[···그리하여 대전 시장과 성윤식이 손을 잡았습니다.]
“그렇군. 생각이 뻔히 보이네. 이틀 동안 미니온으로 어떻게든 뽕을 뽑아서 초기 진압을 하고, 나머지는 인력을 때려 박겠다는 생각이겠지.”
참, 시장이라는 사람 머릿속에서 나온 거 치고는 너무 허접한데. 그게 가능할 거라고 생각하다니.
그리고 참 괘씸하단 말이지.
사업 얘기를 할때는 그렇게 반가워하고 좋아하더니, 금세 성윤식한테 붙어?
그에게 복수를 하자면 캐리온을 이용해 대전에 있는 미니온-트래킹 프로그램의 성능을 떨어뜨린다거나 하는 방법으로 훼방을 놓을 수 있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그랬다가는 정말 대전은 전염병으로 가득찰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대전의 상황은 진짜로 심각한 수준이다.
앞에서는 온갖 친한 척을 다 해놓고 뒤에서 뒤통수를 치는 시장의 행태에 화가 났지만, 그렇다고 해서 일반 시민들에게 피해가 가는 일은 없도록 해야 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미니온-트래킹의 추적 능력으로 이틀 동안 모든 접촉자를 가려낼 수는 있다. 애초에 캐리온의 목적이 그것이었고, 캐리온은 이 기능을 더 발전시켜 미니온-트래킹을 만들었으니까.
‘하지만 사람들이 가만히 집구석에 처박혀 있기만 하는 건 아니지.’
대전 시장은 확진자와 밀접접촉자가 발견되는 즉시 문자를 보내서 외출을 자제하라고 했지만, 사람들이 그렇게 말을 잘 들을 리가 없다.
분명히 어딘가 싸돌아다닐 테고 그러면 추가 감염자가 발생하는데, 미니온이 폐기된 이상 그 사람들은 순수하게 역학조사관의 힘만으로 해결해야 한다.
확인해야 하는 접촉자 수는 늘어나는데, 현장 인력의 업무는 느려지는 상황.
갈수록 격차는 심해질 것이고, 한번 격차가 벌어지기 시작하면 그때부터는 더욱 혼란에 빠질 터였다.
아마 진정한 팬데믹이 시작되겠지.
그럼 똥줄 좀 탈거다.
대전 시장은 어차피 나에게로 돌아올 사람이다. 한번 미니온을 쓴 사람은 그 효율성을 절대 잊지 못한다.
복수는, 그때 실컷 해주면 된다.
나는 두 번째 안건으로 넘어갔다.
“성윤식이 식약처장을 만났다고?”
[네. 아마 마스크와 진단키트를 판매하는 데 손을 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후 CCTV에 담긴 배정남의 행동과 표정을 분석한 결과 그렇게 달가워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식약처장의 뒷조사는 했나?”
[네. 제약회사에 몇 가지 편의를 봐준 것 외에는 특별히 부당이득을 취한 행위가 없었습니다.]
편의를 봐주는 거야 사람이 부대끼며 사는 이상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일이니 귀엽게 보고 넘어갈 수 있다.
식약처장은 내가 지금까지 만난 사람 중에서 그나마 청렴한 축에 속한다고 봐도 된다.
“그럼 설득할 여지가 남아있다는 말이군.”
대전 시장은 알아서 찾아올 것이고, 식약처장은 협박보다는 설득을 사용해봐야겠다.
그렇기에 나는 그쪽은 신경 끄고, 눈앞에 피곤한 얼굴로 앉아있는 서울 시장 김병학부터 상대하기로 했다.
*
서울 시장 김병학은 쉽게 만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워낙 정치계에서 오래 묵은 사람이기도 했고, 현재는 야당에서 차기 대선 후보로 가장 유망한 사람이었다.
다행히도 나에게는 든든한 빽이 있다. 나는 할아버지에게 다리를 놓아 달라고 부탁드렸고, 할아버지도 지금 상황을 듣고 흔쾌히 부탁을 들어주셨다.
그러면서 한 마디를 덧붙였다.
“성윤식 의원을 건드렸더구나. 감당할 수 있겠느냐?”
성윤식과 나의 사이가 틀어지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된 알바트리온 주가 하락 사건을 말하는 것이었다.
욕심 많기로 유명한 성윤식은 손해를 보는 것을 참지 못하는 사람이다. 할아버지께서는 성윤식이 내 사업에 훼방을 놓을까 걱정이 되시는 모양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쪽에서 먼저 제 수출판로를 막았습니다. 그리고 제가 길들여진다고 해서 길들여질 사람입니까?”
이만호 회장은 피식 웃었다.
손자의 당당한 모습을 보니 옛날 생각이 났다.
현 대통령의 집권 초기에 재벌 길들이기를 했었다. 제일 그룹을 타겟으로 잡고 공권력을 휘두르는 바람에, 제일 그룹은 큰 손해를 입고 대통령 밑에 숙이고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이 당돌한 손자 녀석은 어떻게 상황을 헤쳐나갈지 궁금하기도 했다.
“하긴 네 녀석이 길들여질 놈은 아니지.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서울 시장과 만날 수 있도록 해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