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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 (2)
2월 21일. 슈퍼전파자가 확진 판정을 받기 전날.
캐리온이 감염자들을 능동적으로 감시하고는 있지만, 현재 시스템상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캐리온이 조사를 하는 방법은 해킹해서 CCTV, 카드 사용내역, 대화 내용, 도청 등의 방법을 통해 확진자의 동선을 파악하고 제공해주는 것이다.
이건 불법에 가까운 일이기 때문에 우회로를 이용하는 트래픽도 추가로 소모되고, 결과를 활용하는 것도 제한적이다.
심지어 포비드의 초기 증상은 발열 및 목과 구강의 작은 혈관에 바이러스가 감염되는 것인데, 전국 도처에 열 감지 시스템이 깔렸으면 모를까 위의 방법으로는 잠복기에 들어선 감염자를 찾아내는 게 불가능에 가깝다.
해열제나 목감기약을 사가는 모든 사람을 감시하는 것도 비효율적인 일이고.
하지만 이런 답답함 속에서도, 캐리온은 대전의 한 여성이 포비드에 확진된 것을 파악했다.
이미 발진이 일어난 채로 대전 거리를 싸돌아다닌 덕분에 레이더망에 걸린 것이다. 손에 붉은 발진이 올라온 상태로 북북 긁고 다니니 안 걸릴 수가 있나.
캐리온이 말했다.
[대전에서 확진자가 발생했습니다. 20대 초반의 여성입니다.]
[카드 사용 내역 및 문자를 확인한 결과 월요일 밤에 피부약을 사갔습니다. 아마 그때 발진 증상이 일어난 것 같습니다.]
포비드 증상은 다음과 같이 일어난다.
먼저 전구증상이 나타난다.
증세가 전신으로 퍼지기 전에 우선 피부와 입, 목의 작은 혈관들에 증상이 집중되는 것이다.
세포에서 세포로 옮겨 다니기 때문에 전구기에는 감염력이 높은 편이 아니다.
하지만 4-5일 정도가 지나면 세포들이 용해를 일으키고 혈류 속에서 바이러스가 대량으로 검출되기 시작한다.
이때부터 바이러스가 몸 전체로 퍼져나가면서 피부조직을 공격하기 시작하는데, 이때부터 반구진 발진이 일어난다.
발진이 일어나는 순간부터 전염성이 강해진다. 발진은 수포로, 수포 다음에는 농포로 변하며 2주가 지나고 나서야 딱지로 변한다.
참고로 딱지에도 전염성이 있다.
역사상 최악의 바이러스다운 엄청난 전염력이 아닐 수 없다.
“가족, 약국, 회사 사람들은 이미 바이러스에 전염이 됐겠군.”
[예. 그들도 지금 감시 중입니다.]
[문제는 이 여자가 지난주 금요일에 홍대 클럽에 다녀왔다는 것입니다.]
나는 잠시 머리가 띵해졌다.
“대전에서 홍대까지 클럽을 갔다왔다고? 어째서?”
[그날이 홍대 클럽 투어데이 였습니다.]
나는 연구만 해서 클럽 투어데이가 뭔지 몰랐지만, 대신 이건우의 기억 속에는 또렷하게 있었다.
무의식의 저 안쪽에서 기억을 끄집어낸 나는 더욱 끔찍한 기분이 되었다.
하루 만에 11개 클럽을 돌아다닐 수 있는 이벤트라니! 그딴 이벤트는 대체 왜 만든 거야.
그럼 도대체 그 여자랑 접촉한 사람이 몇 명인 거지?
라운지 클럽 같은 작은 클럽의 경우 최소 300~500명을 수용하고, 대형 클럽은 2000~3000명까지도 가능하다.
그렇다면 최소 만 명은 접촉했다는 뜻이다.
“미친”
어마어마한 규모에 다시 한번 머리가 띵해졌다.
[다행인 건 그때는 발진도 없는 극초기 증상이라서 감염 전파력이 아주 높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러니까 그때에는 입과 목에 있는 작은 혈관 속에서만 바이러스가 활동했다는 뜻이다.
하지만 클럽이란 곳이 원래 물고 빨고 부비는 곳이 아닌가.
분비물에 의해서 전염될 가능성이 무척이나 농후했다.
내 생각을 읽은 캐리온이 말했다.
[여자가 다녀간 클럽과 상가, 그리고 주변 거리에 있었던 사람들 모두 추적을 시작하겠습니다.]
[이번 사건을 위해서 미니온-트래킹을 별도 분리해서 발전시켜, 접촉자를 추적하는 동선을 만들었습니다.]
역시 캐리온이야. 내가 없어도 알아서 잘 하는군. 내가 그렇게 마음을 달래는 순간,
[이게 끝이 아닙니다. 진짜 문제는 여성이 이틀 뒤 일요일에 교회를 간 것입니다. 발진이 일어난 것이 확인된 시기가 월요일이니 교회를 방문했을 때는 감염 전파력이 충분했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나는 할 말을 잃었다.
“······.”
클럽과 교회를 다니는 여자라···. 상당히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군.
“그 교회는 어떤 교회인데?”
[감람나무교회라는 신흥종교단체입니다. 반기독교 단체로 교주를 신으로 받들고 있습니다.]
교주를 신으로? 그러니까 사이비라는 말이잖아.
[그런데 감람나무교회의 교리 중 하나가 죄를 지은 자만이 질병에 걸린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여자는 증상을 숨기고 집회에 참여했습니다.]
“집회? 참석자는 몇 명이지?”
[안타깝게도 이번 주 일요일에는 신도 3000명가량이 모이는 대규모 기도 집회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집회에 다녀온 후에는 친구를 만나 술을 먹고 길을 돌아다니며 영화관과 노래방에 갔습니다.]
나는 이마를 짚었다.
맙소사. 산 넘어 산이군.
대체 뭐 하는 여자길래 이렇게도 열심히 돌아다니는지 원.
[일단 알람온 어플에 이 여성과 밀접접촉자들의 동선을 실시간으로 업데이트 중입니다.]
[또한 밀접접촉자 중에서도 증상이 발현하는지 유심히 지켜보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일시적인 예방 조치에 불과하며, 집회 참석자를 비롯하여 영화관과 노래방 이용자를 대상으로 전수조사를 해야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결국 이렇게 되고 말았다. 중국에서 시작된 쓰나미가 한국으로 몰려오고 있었다.
다행히 나는 이 몸에 들어온 작년 12월부터, 두 달 반 동안 이 사태를 준비하고 있었다.
진단키트와 마스크 물량도 넉넉하게 준비했으며, 전임상에서도 부작용을 최소화할 방안을 찾고있다고 했다.
그리고 캐리온은 미니온-트래킹이라는 역학조사관을 대체할 시스템을 만들어놓은 상태이다.
이 정도면 방파제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겠지.
“일단 대전과 서울의 시장과 약속을 잡아야겠군.”
지금까지 조사하던 방식으로는 더이상 확진자가 퍼지는 것을 막을 수 없다. 이제는 공식적으로 정부와 협력할 때이다.
나는 바로 한서진을 불렀다.
“서울 시장과 대전 시장과 약속을 잡아주겠어요? 제일 그룹의 이름을 팔아서라도 최대한 빨리요.”
내 얼굴에서 심각함을 읽었는지 한서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진행할게요.”
“그리고 지우 말인데요.”
나는 그녀의 아픈 아들인 한지우가 걱정되었다. 아이라서 면역력이 약할 텐데 걸리기라도 하면···.
“지우는 왜요?”
“당분간 유치원은 보내지 않는 게 좋겠습니다. 자세한 건 나중에 다 모였을 때 설명해 드리겠지만, 지금 바이러스 상황이 심각해요.”
강해 보이는 한서진도 엄마인가 보다. 늘 평온하던 그녀의 입술이 살짝 떨렸다.
“알았어요. 일단 약속을 먼저 잡을게요. 그런데 지금 지우가 유치원에 있는데 잠시 들러서 집으로 데리고 와도 될까요?”
“물론이지요. 그리고 마스크는 꼭 착용해주시고요.”
나는 비품실에서 마스크를 꺼내 주며 말했다. 이번에 새로 개발한 스마트 마스크 ‘에코 브레스’이다.
아직 식약처 인증을 받지는 못했지만, 정식으로 판매하는 것도 아니고 직원에게 선물로 주는 것 정도는 괜찮다.
오히려 효과는 시중에 있는 마스크보다 훨씬 뛰어나고.
“배려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한서진이 나가고 나는 눈을 감았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이번 사태는 심상치 않았다. 자칫 잘못하다간 수만, 수십만 명의 피해자가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이다.
과연 내가 막아낼 수 있을까 하는 불안한 마음도 들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을 위해서 많은 것들을 준비했다. 무엇보다 내 옆에는 캐리온이 있다. 지금까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던 일들을, 캐리온은 모두 보란 듯이 해결해냈다.
나는 마음을 굳게 잡고 이번 위기도 잘 이겨낼 수 있을 거라고 굳게 믿기로 했다.
*
2월 22일.
대전 시장과의 약속이 먼저 잡혔다. 제일 그룹의 이름을 판 덕분인지 바로 다음 날 그를 만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서둘러 시장을 만나기 위해 대전으로 내려갔다.
예전에 대통령실에서 행정관을 하던 경력이 있던 그는, 대전에서 구청장을 하다가 이번에 대전 시장이 되었다.
나이는 40대 초반으로 젊은 편이었는데, 여당인 더불어국민당 소속이며 시의회 또한 여당이 꽉 잡고 있다.
덕분에 시의회와 젊은 시장이 으쌰으쌰 해서 추진력 있게 다양한 사업들을 벌이는 중이었다.
새로운 사업에 관심이 많은 그는 제일 그룹에서 투자라도 하는 줄 오해하고 있었다. 대전 시장은 나를 보자마자 노골적으로 투자 이야기부터 꺼내왔다.
“요즘 KW 제약이 무섭게 발을 넓히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저희 대전에도 과학적 역량이 뛰어난 인재가 많은데, KAIST와 협력하여 연구소를 지어보시는 건 어떻겠습니까?”
“물론 연구소도 중요하지만, 제가 온 것은 다름이 아니라 대전 시민 중에 포비드 확진자 있기 때문입니다.”
“아, 확진자요.”
원하는 이야기가 나오지 않자 대전 시장은 김이 팍 샌 듯 보였지만 끝까지 미련을 놓지 않았다.
“혹시 연구소에서 확진자와 관련된 공조가 필요한 겁니까?”
“물론 그렇기는 합니다만, 정확히는 연구소와의 공조가 아닙니다. 일단 이것부터 보십시오. 대전에 사는 이 여성분은 오늘 오전에 양성 판정을 받았습니다.”
내가 준 자료는 여자의 동선과 접촉자들이었다. 수십 장을 넘어가는 긴 목록에 대전 시장은 심각성을 느꼈다.
“슈퍼전파자가 있다는 소식은 오늘 아침에 보고받았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걸 어떻게 파악하셨지요? 저희 역학조사관은 아직 조사 중인데요.”
해킹했다고 할 수 없으니 대충 둘러댔다.
“미니온-트래킹이라고 저희 회사에서 개발한 인공지능이 있습니다. 얼마 전 공개한 ‘알람온’ 어플과 연동하여 확진자와 밀접접촉자를 파악하고 추적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지요. 역학조사관 수백 명이 달라붙어서 할 일을 이 프로그램 하나로 해결할 수 있습니다.”
나는 본격적으로 사업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새로운 사업에 몸이 달아있던 대전 시장은 확실히 혹하는 눈치였다.
내가 말한 대로라면 행정력의 증대와 예산의 절감 두 가지를 모두 잡을 수 있어 보일테니까.
우리의 슈퍼전파자가 접촉한 사람이 대전에서만 무려 만 명이 넘는데, 이들을 전부 파악하려면 보통 인력 가지고는 해결할 수 없다.
인력을 쓴다 하더라도 속도나 정확도 면에서는 밀릴 수밖에 없고. 그리고 그 인력을 쓰는 게 다 돈이다.
내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이것은 대전 시장에게 있어서 기회였다.
나는 분위기가 좋게 흘러가자 떡밥을 뿌렸다.
“물론 바로 계약할 수는 없지요. 시장님도 성능을 파악하셔야 하니, 저희가 이틀만 사용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보내드리겠습니다. 한번 사용해보고 판단해보세요. 이번 사태를 해결하는 데 확실히 도움이 될 겁니다.”
“우리 대전을 위해서 이렇게 신경 써주시니 감사합니다.”
무슨 소리를. 내가 더 고맙지. 내 호갱이 될 분이신데 당연히 신경 써줘야 하지 않겠는가?
한번 미니온을 쓰고나면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하거든.
참고로 미니온-트래킹은 절대로 해킹할 수도 없고, 복제될 수도 없다.
만약 미니온을 해킹하려는 시도가 있다면, 캐리온과 모든 미니온들이 끝까지 쫓아가서 해킹을 시도한 놈들의 모든 네트워크를 박살내 줄 것이다.
나는 빙긋 웃으며 진심을 담아 말했다.
“시장님이라면 대전이 처한 어려움을 극복해내실 수 있을 겁니다.”
물론 내 도움을 받아서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