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로 갑질하는 양아치 재벌-49화 (49/183)

────────────────────────────────────

────────────────────────────────────

────────────────────────────────────

────────────────────────────────────

잽과 어퍼컷 (4)

성윤식은 귀를 의심하는 눈치였다. 하긴, 그 자리에 있으면서 이런 직설적인 말을 들어본 적은 없었겠지.

“뭐라고?”

잘 못 들었으면 친절한 내가 한 번 더 말해줘야지.

“연로하셔서 귀가 잘 안 들리시나 보군요. 그쪽 개가 될 생각은 없다고 말했습니다.”

성윤식의 얼굴이 황당함으로 물들었다가, 이윽고 분노로 붉게 변했다.

새파랗게 젊은 놈한테 이런 소리나 듣다니. 평생 들어본 적도 없는 모욕이었다.

“허, 이 싸가지 없는 새끼가. 감히 내 앞에서 그따위 말이나 내뱉어?”

그는 나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책임도 못 질 사람이 나를 거스르는 건 만용이야.”

나는 빙그레 웃으며 일어났다. 책임이라. 책임지지도 못할 말을 할 거면 이곳에 오지도 않았다.

피차 할 얘기는 끝난 모양이니, 여기에 더 있는 건 시간 낭비였다.

“글쎄. 내가 책임을 질 수 있는지 없는지는 두고 보면 알겠지.”

말을 마친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방안에 남겨진 성윤식은 무서운 시선으로 나의 뒷모습을 쫓았다.

*

다음 날 아침. 나는 성윤식의 경고를 눈으로 볼 수 있었다.

한양일보 1면에 나에 관련된 기사가 나왔기 때문이다.

누가 찍었는지는 몰라도 사진 하나는 잘 찍었네. 저거 꽤 오래전 사진인 거 같은데 말이야.

기사에는 최진태 형사가 나를 경찰서로 연행하는 모습이 인쇄되어 있었는데, 얼굴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생겼다.

「제일 ENM의 폭로가 계속해서 쏟아지고 있어 이제는 놀랍지도 않다는 반응마저 나온다.

16일 업계에 따르면 이번 사태의 뿌리가 잘못된 세습경영에 있다는 목소리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KW 미디어를 물려받은 이건우 사장으로서는 가시방석에 앉게 된 셈이다.

오너 일가의 횡포로 여론이 악화하면서 ‘왜 제일 그룹은 아직도 가족을 사장 자리에 앉히냐’는 비판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그는 제일 그룹 계열사에 입사한 지 1년 만에 임원이 됐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건우 사장의 젊은 시절 사고도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그는 2015년 운전을 하다 70대 할머니에게 폭언한 혐의로 경찰에 입건됐고 2016년에는 1인시위를 하던 시민단체 관계자에게 심한 말을 했다.

... 후략.」

“······.”

참 이력도 화려하다. 족벌 경영에 대한 비판과 함께 과거에 이건우가 저질렀던 망나니 짓거리가 줄줄이 나왔다.

오죽하면 최진태 형사가 전화해서 ‘네 덕분에 나도 신문 1면에 나왔다’라며 놀려댔을까.

메인 포탈 뉴스도 나에 관한 내용으로 쫙 도배되었다.

<재벌의 족벌 경영 개선 논의 필요하다>

<젊은 CEO 내세운 KW 미디어, 하지만 오너 경영은 ‘그대로’>

그뿐만 아니다. 이제는 내 과거가 아닌 내 자산을 증식하는 과정을 꼬투리 삼기도 했다.

<슈퍼리치 이건우 “자산 증식 과정이 불투명”, 금융위에서 촉각 세운다>

기사를 쭉 보며 4선 국회의원이 가진 힘을 실감했다. 국회의원 한 마디에 국세청과 금융위가 움직이다니.

그러나 잘못한 게 없는 나는 꿇릴 게 없었다.

벌어들인 돈에 대해서는 꼬박꼬박 세금을 납부하고 있었으며, 계열 분리를 하는 과정에서도 할아버지에게 십 원 하나도 빠트리지 않고 모조리 지불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사태를 마냥 가볍게 생각해서도 안 됐다.

조사가 시작되더라도 결과가 나오는 데까지는 시일이 걸리기 때문에 그 전까지는 언론에 흔들린 사람들이 나를 비판할 게 뻔했다.

여론이 나를 비난하는 쪽으로 흘러가면 오너 리스크 때문에 주가가 하락하게 될 것이다. 실제로도 KW 미디어의 주가가 조금씩 떨어지고 있기도 했고.

KW 미디어의 주식을 구매한 사람들은 나를 성토하고 있었다.

사장이 바뀌었다길래 잘 할 줄 알았는데, 그놈이 그놈이라며.

이럴 바에야 구관이 명관 아니겠냐는 둥 말들이 나오는 상황이었다.

이대로 당하고만 있는 건 내 성미에 맞지 않는다. 나는 바로 이준호 과장을 불러서 조치를 취했다.

“이 과장님. 저희와 친한 기자들에게 해명 자료 돌려주세요.”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만···. 지금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 기사를 올린다고 해도 메인에 걸릴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빙긋 웃었다.

“그건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정확히는 캐리온이 알아서 할 것이다. 늘 그랬듯 캐리온의 여론 조작 능력은 훌륭했다.

이제는 뉴스 배열 및 추천 알고리즘을 이용해서 성윤식이 지시한 기획 기사는 다 내려버리고, 나와 친한 기자들이 쓴 기사가 뜰 수 있도록 조작을 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다.

일단 언론 쪽은 이정도로하고, 전체적인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 윤단아와 미팅을 했다.

윤단아는 오늘도 스튜디오에 있었다. 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건네며 물었다.

“단아 씨. 기사 보셨나요?”

“네. 그런데 이거 사장님을 저격하는 기획을 누가 한 것 같은데요.”

“맞습니다. 제가 이번에 성윤식 의원이랑 한바탕 했거든요.”

“······.”

윤단아는 황당하다는 듯이 나를 쳐다보았다.

“어쩌다가 국회의원 하고까지 엮인 거예요?”

나는 사정을 설명했다. 이정혁과 성윤식 간의 친분. 거기에 엮여있는 한양일보와 알바트리온.

그리고 어제 성윤식을 만나 한바탕하고 온 것까지.

내 말을 들은 윤단아는 이마를 짚었다.

“사이즈가 점점 커지네요. 다음번에는 대통령이랑도 한판 하는 거 아니에요?”

억울하다. 누가 들으면 내가 폭탄이라도 되는 줄 알겠네.

"그래도 잘하셨네요. 저 같아도 그 자리에서 바로 들이받았을 거예요. 내가 이래서 사장님을 좋아한다니까."

아, 그러고 보니 윤단아도 보통 여자는 아니었지.

새삼 내 주변에 정상적인 여자가 없다는 것이 느껴졌다.

“···크흠. 어쨌든 이걸 기회로 삼아, 저는 남들과 다른 깨끗한 경영인이라는 걸 보여주려고 합니다. 그래서 뉴튜브를 통해 해명하고 싶은데요.”

“저는 KW 미디어 소속이라, 제 채널에 나오면 신뢰성이 떨어질 텐데요.”

“뭐 그렇겠죠. 그래서 단아 씨의 인맥을 좀 빌리려고 하는데. 혹시 아는 뉴튜버나 스트리머 중에 공신력이 있으면서도 화력도 강한 사람이 있을까요?”

윤단아는 잠시 고민하더니 말했다.

“’쉬림프월드’라고 경제나 상식 쪽으로 유명한 뉴튜버가 있어요. 제 대학 동기이기도 해서 예전에 한 번 합방한 적도 있거든요. 한번 연락해볼게요.”

*

나는 윤단아와 함께 ‘쉬림프월드’ 채널의 주인, 전자영을 만났다.

전자영은 한국대 경제학부로, 한국대 언론정보학과를 나온 윤단아와는 같은 동아리에서 알게 됐다고 한다.

졸업한 후 오성 증권에서 펀드매니저로 일하다가 그만두고 뉴튜버가 되었다.

지금은 지상파 경제 방송에도 고정으로 나오며, 뉴튜브 내에서는 경제 부문 1위 뉴튜버가 되었다.

재미있는 점은 지금까지 별다른 사고나 논란에 휩싸이지 않고 꾸준히 방송을 해왔다는 것이다. 덕분에 전자영의 방송은 업계에서는 신뢰도로 꽤 인정을 받고 있다고 한다.

그런 탓일까, 그녀는 꽤 신중한 사람인 것처럼 느껴졌다. 미팅 전에도전자영은 나에게 의혹이 제기된 문제에 관한 해명할 모든 자료를 요청했다.

나는 서류박스 하나를 들고 전자영의 사무실에 찾아갔다. 그런데 그녀는 생각보다 시원시원한 성격이었다.

전자영은 하하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반갑습니다 사장님. 전자영이라고 합니다. 단아에게서 얘기는 들었어요. 요즘 많이 곤란하시다면서요?”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네요. 요청하신 자료, 여기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빨리 준비해오셨네요.”

“시간이 생명이니까요.”

온캐리 변호사가 모든 자료를 빠르게 준비해준 덕분에 거의 출력하는 시간밖에 들지 않았다.

“그런데 이 자료들 다 검토할 수 있나요? 하루 안에 볼 수 있는 양이 아닌데.”

전자영은 눈을 찡긋거렸다.

“이게 제 일이니까요. 그리고 전 사장님을 믿어요. 윤단아 걔가 얼마나 깐깐한 애인데 저한테 그런 부탁을 할 정도면, 누가 악의적으로 저격한 게 맞겠지요.”

나는 윤단아에게 고마웠다. 평소 누구한테 아쉬운 소리 하지 않는 사람인데, 나를 위해서 일부러 신경을 써준 것이다.

“뭐, 정황도 그렇고요. 사실 모든 언론에서 갑자기 사장님께 적대적인 기사를 쏟아낸다는 것도 좀 말이 안 되기는 하잖아요. 그래서 일단은 언론에서 집중적으로 다루는 기사들에 관한 자료들 위주로 살펴볼게요.”

역시 경제 분야에서 최고의 뉴튜버라더니. 일을 처리하는 방식도 꼼꼼하고, 통찰력도 있었다.

그녀는 빠르게 내가 정리한 자료들을 훑어보았다. 유능하신 온캐리 변호사께서 워낙 정리를 잘 해주신 덕에 그녀의 검토는 금방 끝났다.

"가지고 오신 자료들이 자세해서 좋네요. 정리도 잘 되어있고요. 이 정도면 이번 사건에 대해서 충분한 해명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잠시 뜸을 들인 전자영이 말을 이었다.

“그나저나 이쪽 문제가 해결된다고 해서 사장님의 이미지가 확 좋아지지는 않을 거예요. 지금 과거 사건들도 폭로가 되고 있으니까요.”

선행도 하고 당시 피해자들에게는 충분한 보상과 진심 어린 사과를 했지만, 내 진심이 전해지는 건 쉽지 않겠지.

누가 망나니 재벌 3세가 개과천선을 했다는 걸 쉽게 믿어주겠는가.

그리고 내 머릿속에는 이미 고전적인 작전이 세워져 있었다.

일명 물타기.

논란을 더 큰 논란으로 덮는 것이다.

“그거는 어쩔 수 없죠.”

옛날에 이건우가 저질렀던 일들은 나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놈이 이렇게 망나니였을 줄 누가 알았겠어.

“대신 엄청난 폭로를 할 예정입니다. 제가 어마어마한 정보를 알고 있거든요.”

전자영의 눈빛에 흥미가 돌았다.

“어마어마하다라···. 이거 궁금해지는데요?”

나는 진한 웃음을 지었다.

나를 공격한 놈들을 가만히 놔둘 수는 없지. 당한 만큼 돌려줘야 수지가 맞지 않겠어?

“알바트리온 제약이 주가조작을 했다는 사실을 퍼트릴 겁니다. 동시에 한양일보가 알바트리온을 돕지 못하도록 손을 써야겠지요. 두 놈이 한통속 이거든요. 한양일보는 부당내부거래가 있었다는 제보 정도면 적당하겠지요.”

전자영의 눈이 커다랗게 커졌다. 그녀도 알바트리온 제약에 투자했기 때문이다.

이런 고오급 정보를 줬으니, 나를 도와주는 값 정도는 치렀겠지?

놀란 눈이 된 전자영이 물었다.

“알바트리온 제약이 주가조작을 했다고요?”

“네. 그러니까 알바트리온에 투자했으면 얼른 털어버리세요. 여기 증빙자료도 가져왔습니다. 자영 씨가 이 문건을 터뜨려 주겠습니까?”

알바트리온 제약은 전자영에게, 한양일보 부당내부거래는 윤단아에게 맡겨서 터뜨려, 나에게 주목된 시선을 돌리려는 계획이었다.

그러면 알바트리온은 시세조종행위로 감사를 받느라 정신이 없을 테고, 한양일보 사주는 구속되어 수사를 받겠지.

그러게 나를 왜 건드리고 그래.

세상 착한 나를 양아치로 만들었으니 억울해서 잠을 잘 수나 있겠나.

그놈들의 눈에 피눈물이 나는 꼴을 꼭 봐야겠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