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잽과 어퍼컷 (3)
성윤식 의원이 개입하니 일 처리 속도가 장난이 아니었다.
그는 위기상황을 맞이한 우방국을 도와야 한다며 중국에만 몇몇 업체의 수출 허가를 내줬다.
그에 대한 답례로 중국은 원하오 제약이 알바트리온과 백신 사업에서 협력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원하오 제약, 한국 알바트리온 제약과 협력!>
「국내 최대 제약회사인 원하오가 한국의 제약회사 알바트리온과 백신 사업 협력방안을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원하오는 현지에 대규모 제약단지를 조성하고 있으며 장기적으로 백신과 바이오의약품 생산을 모색하고 있다. 알바트리온 제약과 협력을 통해 어떤 방식의 백신 사업을 구체화할지 주목된다.
앞서 알바트리온 제약은 포비드 백신 개발을 위해 TF팀을 구성한 바가 있으며···.」
이에 맞춰 언론도 연일 알바트리온의 백신 개발 착수 소식을 보도했다.
당연히 알바트리온 제약은 백신을 개발할 생각이 1도 없었지만, 백신 개발 준비가 완료되었다는 뉘앙스의 기사들이 퍼지기 시작했다.
<국산 포비드 백신 나온다, 알바트리온 제약 계획 제출>
<알바트리온 포비드 치료제 개발 추진, ‘팬데믹’ 준비>
<한국 세계 백신의 요람이 되다, 알바트리온-원하오 제약이 맺은 협력의 영향은?>
기사만 보면 곧 알바트리온이 백신 개발을 완료할 것만 같은 분위기였고, 이에 따라 사람들의 기대심리가 주가에 반영되기 시작했다.
각종 커뮤니티에서도 알바트리온의 백신 개발에 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 국내에서 백신 개발한다는 거 실화임?
- 근데 왜 하필 중국? 중국 제약 허접 아닌가?
L 요즘 중국 제약 회사가 많이 올라왔다고 하더라고요
- 응 중국 못 믿어
- 그래도 중국에서 온 바이러스라서 중국이 제일 잘 안다는데요
ㄴ 너 댓글 알바지
백신을 개발한다는 사실에 대해서 긍정적인 여론이 꽤 많은 편이었다.
하지만 물밑을 들여다보면 성윤식이 중국에서 동원한 알바부대들이 여론의 흐름을 조종하고 있는 게 눈에 뻔히 보였다.
어찌 되었든 각종 기사와 커뮤니티에 열심히 홍보한 효과는 분명히 있었다.
주가가 급등하기 시작한 것이다. 알바트리온의 주가는 가격제한폭 (29.92%)까지 올라 31만 7천 원에 장을 마쳤다.
그리고 알바트리온은 기다렸다는 듯이 호재를 계속해서 터뜨렸다. 알바트리온 유종근 회장이 발표했다.
“알바트리온의 면역항암제 관련 기술을 수출할 예정입니다.”
그리고 그가 발표할 때마다 한양일보 사장이 지원사격을 날려주었다.
<알바트리온 주가 올라, 기술수출 기대에 투자심리 살아나>
<오성 바이오로직스와 알바트리온 주가 동반 상승해, ‘대장주’ 경쟁 치열>
이렇게 되자 외국인 투자자와 기관투자자들이 알바트리온 주식을 사들이며 주가 상승을 이끌었다.
밝혀진 정보에 따르면 기관투자자들이 407억, 외국인 투자자들도 153억원어치를 순매수했다고 한다.
*
그리고 성윤식 의원, 알바트리온 사장, 한양일보 사장이 다시 모였다.
성윤식의 기분은 최고였다. 전 재산의 절반이 들어간 알바트리온이 매일 고점을 갱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성윤식은 껄껄 웃으며 알바트리온 사장에게 물었다.
“알바트리온에 호재가 겹치는군요. 그나저나 이 상승세가 언제까지 이어갈 것 같습니까?”
“아직 발표할 소식이 두 개 남았습니다. 이번에 바이오 최대 행사인 ‘바이오 USA’에 참가하면서 위탁개발생산(CDMO) 사업을 강조할 것입니다.”
성윤식은 무릎을 탁 쳤다.
“오호라. 또 한 가지 소식은 뭡니까?”
“저번에 금융감독원에게 연구개발비 회계 관련 특별회계감리를 받았잖습니까.”
“아, 맞아요. 내가 그쪽 친구들에게 특별히 신경 써달라고 했지요.”
“덕분에 혐의없음 처분을 받고 회계 관련 불확실성이 해소될 것 같습니다. 이 두 가지를 시간차를 두고 발표하면 주가를 한 번 더 크게 끌어올릴 수 있습니다.”
“하하하. 아주 좋아요. 잘 하고 있습니다.”
성윤식은 크게 웃음을 터뜨렸고, 알바트리온 사장은 겸손을 떨었다.
“아닙니다. 박근형 사장님이 지원을 많이 해준 덕분이지요.”
실제로도 한양일보 사장이 열심히 좋은 기사만 뽑아냈기 때문에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었다.
정치, 경제, 언론의 거물들이 움직이니 못할 게 없었다. 지금까지 그랬듯, 세 사람의 판 만드는 솜씨에 감탄이 나오기만 했다.
세 사람은 술을 마시며 웃고 떠들다가 화제를 돌렸다. 한양일보 사장이 말했다.
“그건 그렇고 지금쯤이면 이건우도 똥줄이 타고 있지 않을까요?”
“하하. 그렇겠지요. 지금쯤이면 재고를 처리 못 해서 곤욕을 치르고 있을 겁니다.”
성윤식이 차갑게 미소지었다.
우연이기는 했지만, 그는 지난번에 마스크 기부 사건으로 이건우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았다.
의도가 없었다지만 덕분에 자신의 체면이 구겨졌기에 좋게 볼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이건우를 끌어들이면 도움이 된다는 것 정도는 인지하고 있었다. 이건우가 숙이고 들어온다면 그는 너그럽게 아량을 베풀 용의도 있었다.
그리고 그는 이제 이건우에게 슬슬 목줄을 채워 줄 타이밍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자, 그러면 망나니에게 목줄을 채워볼까요.”
*
나는 매일 고점을 갱신하는 알바트리온 제약의 주가를 보며 흐뭇한 웃음을 지었다. 알바트리온의 주식에 4천억 원, 관련 파생상품에 천억 원을 투자했다.
기분이 안 좋을래야 안좋을 수가 없군.
그때 휴대폰이 진동을 했다. 모르는 번호였다. 전화를 받자 사무적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 안녕하십니까. 이건우 사장님. 성윤식 의원님의 보좌관인 지석훈이라 합니다.
나는 귀를 의심했다.
성윤식 의원? 그 사람의 보좌관이 왜 나한테 연락을 한 거지? 그는 분명히 나에 대해 감정이 좋지 않을 텐데.
물론 나도 내 마스크 사업에 제동을 건 그가 마음에 들지 않았고.
하지만 티를 내지 않고 말했다.
“반갑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로 전화하셨나요?”
- 의원님께서 사장님을 뵙고자 하십니다. 오늘 저녁에 시간 되십니까?
무슨 일로 성윤식이 나를 보자고 하는 걸까? 흥미를 느낀 나는 일정을 체크했다. 마침 오늘 저녁은 시간이 비어있다.
“네. 괜찮습니다.”
- 그럼 정확한 장소와 시간은 문자로 남겨드리겠습니다. 수고하십시오.
뚝
할 말을 마친 보좌관은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나는 생각에 잠겼다.
갑자기 온 성윤식의 초대. 그쯤 되는 사람이 초대하는 것은 분명 다른 속셈이 있어서인데.
‘이정혁은 성윤식 사모임의 멤버였지. 내가 이정혁을 쳐냈는데도 나에게 접근을 해온 다라···.’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성윤식이 무슨 말을 할지 짐작이 갔다.
아마 내게 이정혁의 역할을 대신해주길 바라는 거겠지. 그리고 이번 마스크 수출 건을 막은 건 내가 조금 더 고분고분해지길 원했던 거고.
그런데 어쩌지?
나는 성윤식이 원하는 대로 해줄 생각이 없는데.
초대를 받았으니, 나도 준비를 좀 해야겠군.
*
고급 일식집. 나는 프라이빗 룸에서 성윤식 의원과 만났다.
그는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인상 좋은 아저씨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정혁 사장의 아들이라 들었어요. 내가 이 사장이랑 친분이 좀 있어서 한번 보자고 했지요.”
나는 그 손을 잡으며 진심을 담아 말했다.
“만나 뵙게 되어서 반갑습니다.”
나는 정말 반가웠다. 이 사람이 아니었으면 알바트리온 주가가 이렇게 올라갈 수가 없는데 말이야.
“허허허. 이 사장이 아들을 아주 잘 키웠군요.”
과연 그럴까? 우리 아버지가 나한테 가르쳐준 건 없을 텐데.
나와 이정혁이 관계가 어떤지 아는 사람이 이런 말을 하니 기분이 나빴지만, 그래도 나는 입에 발린 말을 했다.
“감사합니다. 의원님도 티비에서 보시던 것처럼 인상이 좋으세요.”
“어이쿠. 이 친구가 사람 띄어줄 줄도 아네. 자, 일단 먹고 얘기하지요.”
우리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주로 이정혁과 내 미디어 사업에 관련된 이야기였다. 서로 좋은 이야기만 늘어놓다가 성윤식이 천천히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번에 제약 쪽으로 사업을 확장했다는 말을 들었어요.”
“맞습니다. 위생용품 쪽으로 유통판매를 하고 있었고, 최근에서야 제대로 된 연구소를 세웠습니다.”
그 연구소는 지금 미니온-메딕의 진두지휘 아래 백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성윤식이 짐짓 안타까워하는 얼굴로 말했다.
“쯧쯧, 알아보니 위생용품 판매업이 주 사업인 것 같던데 이번에 수출 판로가 막히면서 힘들어졌겠어.”
그걸 막은 사람이 누구인데 이런 얘기를 꺼내는 건지. 모든 사실을 알고 있는 나는 어이가 없지만, 성윤식의 장단에 맞춰줬다.
“의원님께서 제 회사에 관심이 많으신가 보군요.”
“이 사장의 아들인데 내가 당연히 신경 써줘야지요.”
특별히 신경을 써서 직접 수출 판로를 막았냐?
얘기를 들을수록 가관이었다. 이쯤 되니 다음번에는 무슨 말을 할지 기대가 되는 수준.
“중국 쪽에서 마스크 수입을 하고 싶다고 해서 말이에요. 몇몇 업체를 선정해서 납품하려고 하는데···.”
성윤식이 말을 살짝 끌며 본론을 말했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도 아니고 내 부탁만 하나 들어주면, KW 제약을 납품업체로 선정을 해줄 수 있어요.”
“부탁이라···. 어떤 부탁 말씀입니까?”
“뭐, 어려운 건 아니에요. 그냥 지금 있는 KW 미디어에 연예인 연습생들 있죠? 그런 친구들을 종종 우리 모임에 보내주면 좋겠네요. 이 정도만 들어주면 내 우리 이건우 사장 마스크 사업이 다시 활기를 찾게 도와줄 수 있어요.”
“하하하”
어이가 없어서 말이 나오지 않는군.
감히 내 소속사 직원들은 건드리려고 해? 그리고 내가 뭘 믿고 너네들한테 약점을 보이겠냐?
내가 성윤식의 말을 따르는 순간, 놈들은 내가 성매매 알선 및 성 접대를 한 증거를 가지고 내 목줄을 죄고 날 협박할 것이다. 그렇게 한번 약점을 잡히고 나면 평생 놈들에게 끌려다니며 살아야겠지.
어찌 놈들은 내 예상에서 한 발짝을 벗어나질 않는다. 4선 국회의원이라는 놈이 내가 생각한 대로 움직인다는 게 우스워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성윤식은 내 웃음을 좋은 의미로 생각했는지 은근한 미소를 지었다.
“어때요. 서로 도움이 되지 않겠어요?”
“두말할 것도 없지요.”
어차피 성윤식과는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없다. 알바트리온 주식에서 손해를 보는 순간, 성윤식은 누가 주도했는지 알아내려고 할 것이고 그의 인맥이라면 주가 하락의 뒤에 내가 있다는 것을 눈치챌 것이다.
그리고 굳이 성윤식에게 내 약점을 쥐여줄 필요도 없고.
나는 저런 쓰레기들의 힘을 빌리지 않고서도 혼자 잘 해낼 자신이 있다. 내 옆에는 내가 만든 최고의 인공지능인 캐리온이 있거든.
여기서 숙일 거라면 진즉에 이정혁에게 숙였을 거다, 이 영감탱이야.
“의원님”
성윤식은 내 대답을 기대하며 미소지었다.
하지만 내 입에서 그쪽이 원하는 대답은 나오지 않을 거다.
“저는 그쪽의 개가 될 생각은 없으니까 개소리는 집에 가서나 하세요”
좆까 이 새끼야.
내 대답을 들은 성윤식의 표정이 보기 좋게 일그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