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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재 모집 (2)
나는 한 시간 휴식하고 다음 후보를 만났다.
이름은 신재현.
알바트리온에서 이중나선 DNA 바이러스에 관해 연구하던 연구원이다. 참고로 두창 바이러스도 이중나선 DNA 바이러스에 속해있다.
한국을 넘어 세계에서도 이중나선 DNA 바이러스에 관해서라면 손에 꼽히는 석학 중 한 명이며, 현재는 알바트리온에서 잘릴 위기에 놓여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성과를 내지 못했으니까.
알바트리온은 제약회사이며 모든 연구는 상품화를 전제로 하여 진행되어야 한다.
신재현은 유전자 가위가 단일 촉매 활성 부위만으로 이중 가닥의 DNA를 완전하게 절단하는 분자 기전을 규명하는 연구를 하고 있었다.
캐리온에 의하면, 해당 연구는 이중가닥 DNA를 절단하는 데 실패했지만 두창 바이러스 백신을 연구하는 데 기초가 될만한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하지만 알바트리온에서는 그 가능성을 보지 못했고, 단지 신재현을 연구비만 축내는 연구원으로 분류해버렸다.
신재현이 맞은편에 앉으며 인사했다.
“반갑습니다. 그런데 KW 미디어 사장님이 저를 왜 보자고 하신 건지요?”
대외적으로 나는 KW 미디어 사장으로 잘 알려져 있다.
“지금은 KW 제약 사장으로 온 겁니다. 신재현 씨를 우리 연구소에 스카우트하고 싶습니다.”
“저를요?”
신재현은 눈알을 이리저리 굴렸다. 누가 봐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눈치였다.
알바트리온은 시총으로 재계 10위 안에 드는 대기업이며, 제약회사로는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다.
그런 회사를 떠나 신생 회사인 KW 제약으로 오라니 내키지 않겠지.
그럼 이쯤에서 자신의 처지를 한번 상기시켜줘야겠군.
“얼마 전에 사장에게 불려가 성과가 없으면 해고당할 수 있다는 말을 들었지요?”
신재현의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그, 그건 어떻게···.”
물론 신재현은 처음부터 성공 가능성이 낮은 제제연구를 맡았기 때문에, 성과가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신재현은 책임자의 위치에 있다.
직접 자르지는 않지만, 평가가 낮게 나오거나 진급을 못 하게 되어 알아서 나가도록 압박이 들어온다.
“사내에 소문이 파다하던데요. 뭐, 조금만 알아보니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정보더군요.”
“흠흠, 그래도 저 불러준다는 곳 아직 많습니다.”
“글쎄요. 이직도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성과가 없어서 해고당했는데 누가 불러주겠는가?
“그래도 당신 짬밥이야 해고당해도 먹고 살길이 있겠죠. 그런데 함께 일하던 연구원들은 어떨까요? 당신이 잘리면 책임지고 있던 연구원들도 모두 낙동강 오리 알 신세가 된다는 거 모르지 않잖아요.”
“······.”
내 말이 정곡을 찔렀는지 신재현은 고개를 떨구었다.
그를 믿고 따라와 준 팀원들에게 미안해서이다. 지금까지 동고동락하며 지내온 팀원들이 다른 팀으로 흩어져 눈칫밥을 먹을 것을 생각하면 마음이 좋지 않았다.
나는 신재현의 표정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이제 채찍을 휘둘렀으니 당근을 줄 차례이군.
나는 일단 제일 그룹의 이름부터 아낌없이 팔았다.
“제일 그룹에서는 KW 제약을 만들어서 제약 쪽으로 발을 넓히려고 하고 있습니다.”
신재현은 이해가 안 간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제일 그룹에는 제일 제약이 이미 있지 않습니까?”
그건 그렇지. 하지만 나는 입에 침도 안 바르고 거짓말을 늘어놓았다.
“제일 그룹은 이번 포비드 사태를 위기이자 기회로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를 연구하기 위한 특수 법인을 독립적으로 만들었는데 그게 KW 제약이지요.”
잘 생각해보면 이게 얼마나 말도 안 되는 낭비이며 비효율적인 일인지 알 수 있지만, 나는 그런 생각을 못 하도록 몰아붙였다.
“그래서 신재현 연구원님이 우리 연구소에 오시면 1000억 원을 개발비를 지원해 드리려고 합니다. 그 범위 안에서는 하고싶은 연구를 마음껏 하셔도 됩니다. 물론 두창 바이러스 치료제 개발 연구가 가장 우선되어야 겠지요.”
신재현의 입이 떡 벌어졌다.
“처, 처, 처, 천···.”
이 돈이면 평생 하고싶은 연구는 다 할 수 있다.
나는 빙그레 웃으며 그의 말을 받았다.
“네. 천억 원이요. 물론 초기 자금은 300억 원을 드리고, 이후 성과에 따라 추가 개발비를 지원해 드릴 겁니다. 참고로 팀원들을 모두 데리고 오셔도 됩니다.”
잠시 후, 나는 돈의 힘은 역시 위대하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달았다. 신재현은 당장 팀원들을 데리고 퇴사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돌아갔다.
*
나는 앞서 두 사람을 만나고 쉬고 있었다. 미팅하는 게 은근히 진이 빠지는 일이다.
계약하려면 온캐리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서 법률적인 부분도 검토를 해야 하고, 계약서 내의 세항을 조율하는 등 세부적인 부분에서 신경을 쓸 필요가 있다.
나는 백하영에 대해 캐리온이 조사한 자료를 보았다. 과거의 동료였기에 내가 대부분 알고 있는 것들이었다.
백하영은 생물학 연합 연구소 출신인 그녀는 생물학 무기 프로젝트에 가담하긴 했지만, 생물학 무기 연구에는 큰 관심이 없었었다.
그녀의 전공은 세포조직을 이용한 피부재생과 관련된 분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캐리온이 나에게 넘어오고 프로젝트가 흐지부지되자, 가장 먼저 프로젝트에서 빠지면서 연구년을 선언하기도 했다.
보통 연구년은 휴식의 의미가 많지만, 그녀는 진짜 그동안 하지 못했던 피부조직에 관해 연구하기 위해서 연구년을 가졌다.
그녀가 그렇게 열성적으로 연구하는 이유는 바로 어머니 때문이었다.
어릴 적 집에서 화재가 일어났는데, 어머니가 어린 그녀를 구하느라 얼굴에 화상을 입은 것.
이후에 수술을 받긴 했지만 이미 녹아내린 피부는 복구할 수 없었다.
결국 흉한 피부를 가진 채 생활해야만 했고, 어머니의 피부를 볼 때마다 그녀는 부채감을 느꼈다.
그 이후 그녀는 한 가지 목표를 위해서 피부조직에 관한 연구를 시작하였다.
완벽한 피부조직의 재생. 그것이 그녀가 이루려던 바였고, 마침 내 목표와도 일치했다.
‘두창 바이러스의 큰 특징은 발진. 그것도 피부에 흉터를 남기지.’
괜히 옛날에 천연두를 앓은 사람이 곰보가 되는 게 아니다.
특히 요즘 같이 미용에 민감한 시대라면, 피부에 특히 얼굴에 흉이 지는 것은 견디지 못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백하영이 연구하는 피부재생술은 나에게 꼭 필요했다.
만일 성공만 한다면 벌어들일 수 있는 돈의 단위가 지금과는 차원일 달라질 터였다.
그렇게 한 시간을 쉬고 나자 백하영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
백하영은 사십 대이면서도 관리가 잘 된 몸매와 깨끗한 피부를 가진 여자였다.
그녀는 무심한 얼굴로 내 앞에 앉았다.
후원자가 되어주겠다는 말에 오기는 했지만 크게 기대는 안 하는 눈치였다. 아직 나는 KW 미디어 사장으로 알려졌으니까.
“제 연구를 지원해줄 수 있다고요? 저는 이미 연구소의 지원을 받고 있는데 말이지요.”
“하지만 온전히 연구에 몰두할 수 있는 환경도 아니지요. 얼마 전 생물학 무기 프로젝트에 가담한 것도 연구원님의 의지와 벗어난 일이었잖습니까.”
나는 예전에 백하영이 투덜대면서 세포배양을 이용한 피부조직 재생을 연구하고 싶은데, 이사회에서 쓸데없이 프로젝트에 밀어 넣었다고 투덜거리는 것을 떠올렸다.
백하영이 눈썹을 꿈틀거렸다.
“프로젝트는 분명 기밀이었는데 당신이 어떻게 알았죠?”
“제가 어떻게 알았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제가 당신의 연구를 전폭적으로 지지할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하지요.”
나는 빙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천억.”
“네?”
내 뜬금없는 말에 백하영이 이게 뭔 소리야? 하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천억을 지원하겠습니다. 물론 한 번에 내는 건 아니고 꾸준히 성과를 낸다면 최대 천억까지 하고싶은 연구를 자유롭게 하시면 됩니다.”
이렇게 된다면 나는 포비드 치료제/백신 개발 및 관련 연구에 3000억원을 쓰는 셈이다.
보통 제약회사가 이 돈의 10-20%로 연구비를 쓴다는 점을 생각하면, 상당한 돈지랄이 아닐 수 없다.
그렇지만 내 생각은 변함이 없었다. 원래 돈을 쓸 때는 제대로 써야한다. 뒤에 0하나쯤은 더 붙여야 사람들을 뒤흔들 수 있다.
그리고 캐리온의 지휘 아래 이들이 훌륭하게 백업한다면, 벌어들이는 수익은 조 단위가 될 것이다.
“그것참···.”
백하영은 당황스러움이 역력한 표정으로 어쩔 줄 몰라 하다가 겨우 말을 이었다.
“···저한테 그렇게 기대하는 이유가 뭔가요?”
그거야 당신이 프로젝트에서 캐리온을 가장 잘 이해하고 이용하던 연구원이었으니까 그렇지.
나는 대답 대신 USB를 하나 내밀었다.
캐리온의 네 번째 부캐인 미니온-메딕이다.
캐리온의 모든 성능이 담겨있지는 않고, 연구에 특화된 버전으로 다운그레이드했다.
“박사님의 연구를 도와줄 프로그램입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복제는 안 되고 일주일 후에 자동 폐기됩니다.”
백하영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내게서 USB를 받았다.
“제 마지막 제안입니다. 만일 이 프로그램이 박사님의 연구에 도움이 된다면, 저와 함께 해주십시오.”
“한 번 생각해볼게요.”
백하영은 복잡한 얼굴로 일어났다.
*
백하영은 연구실에 가서 미니온 프로그램이 담긴 USB를 꽂았다.
‘인공지능이라고 했었지?’
그녀가 생물학 무기 프로젝트에 가담한 건 전적으로 캐리온이라는 인공지능 때문이었다.
캐리온의 역할은 전세계에 생물학 무기 감시망을 만들어, 엄청나게 많은 데이터 연산을 처리하고 시뮬레이션을 돌리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인공지능을 활용해 신약후보 물질을 도출하고 적절한 약물 효능 평가를 진행한다.
연구원이 하루를 꼬박 새운다고 해도 겨우 백, 이백 건 정도의 문서밖에 검토할 수 없는데, 캐리온은 그 똑같은 시간에 수백만 건의 문건을 검토하고 후보물질을 도출한다.
일의 효율 자체가 달랐다.
그런 면에서 캐리온은 국내 최고의 유전체 빅데이터와 바이오인포메틱스 기반을 갖춘 인공지능이었다.
심지어 당시의 캐리온은 완성이 된 상태도 아니었었다. 완성된다면 얼마나 더 연구에 도움이 될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백하영은 캐리온을 자신의 연구에 활용할 수 있다는 소장의 확답을 받고 프로젝트에 참여한 것이다. 그런데 프로젝트를 진행하던 도중 소장이 죽으면서 캐리온도 같이 증발했다. 어디로 갔는지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백하영으로서는 닭 쫓던 개가 된 셈이다. 그녀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때 소장님이 돌아가시지만 않았더라도···.”
캐리온을 개발한 뛰어난 천재는 음주운전에 의한 어이없는 죽음을 맞이했다.
연구원들이 다시 자료를 바탕으로 캐리온 넘버 투를 만들려고 했지만, 핵심을 지휘하던 소장이 빠지니 진행이 제대로 될 리가 없었다.
어떻게 된 일인지 구성하던 코드들조차 하나도 남김없이 모두 사라져버린 것이었다.
그렇게 프로젝트는 흐지부지되었고, 캐리온을 이용해 피부조직 재생에 관한 연구를 진척시킨다는 계획 또한 무산되었다.
그녀는 의심과 기대를 반반 담고 프로그램이 깔리고 있는 컴퓨터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다운로드가 완료된 순간, 미니온의 목소리가 컴퓨터에서 흘러나왔다.
[반갑습니다. 백하영 연구원님. 저는 백하영 님의 연구를 도와드릴 인공지능, 미니온입니다.]
캐리온의 부캐, 미니온은 곧장 백하영이 진행하던 연구를 분석하기 시작했다.
[바이오 지표를 스크리닝하고 과학 문헌을 파악하겠습니다.]
[오믹스 기술과 센서 및 IoT 장치에서 수집된 데이터를 분석하여 솔루션으로 전환 중입니다.]
[신약 후보물질을 추출합니다. 핵산가수분해효소 기술과 분자가위 기술을 이용해 유전자를 편집합니다. 목록은 지속적으로 업데이트될 예정입니다.]
“······.”
백하영은 할 말을 잃었다.
미니온은 빅데이터를 활용하는 것을 넘어, 유전자 편집 기술, 합성 생물학, 세포조직공학 기술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면서 연구를 스스로 발전시키고 있었다.
소름이 쫙 돋았다.
‘···이건 캐리온에게나 볼 수 있는 수준의 인공지능이야.’
캐리온. 고도의 사고능력을 바탕으로 스스로 연구하고 발전하며 해답을 도출해내는 세계유일의 강인공지능.
앞으로 노벨상은 캐리온이 싹 쓸어갈 것이라는 농담을 할 정도로 뛰어난 강인공지능이었다.
그는 웃으며 미니온을 건네주던 이건우를 떠올렸다.
‘어떻게 일개 미디어 사장이 이런 인공지능을 가지고 있는 거지?’
기밀 프로젝트에 대해 알고 있는 것 하며, 자신이 이런 인공지능을 필요로 한다는 것까지 알고 있는 것도 수상했다.
생각을 이어가던 백하영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뭐, 내가 알 바는 아니지.”
그녀는 그냥 피부조직재생술에만 집중하면 된다. 뛰어난 성능의 인공지능을 가진 것은 좋아해야할 일이지, 굳이 의심하며 파고들 필요는 없다.
백하영은 고개를 내젓더니 연구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미니온이 있다면 연구는 곧 진척을 보일 것이다.
이건우가 제시한 기간은 일주일. 그 후에 미니온 프로그램은 자동으로 폐기된다.
그 전까지 미니온이 가진 모든 기능을 시험하고 확인해봐야 한다. 미니온이 정말로 자신의 연구에 도움이 될지 말이다.
그렇게 꼬박 연구실에 처박혀있던 백하영은, 일주일은커녕 사흘도 지나지 않아 잔뜩 흥분한 얼굴로 이건우를 찾았다.
“이 완성된 버전을 저한테 주세요. 당장 계약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