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인재 모집 (1)
먼저 앱을 다운받은 사람이 확진될 경우, 확진자의 스마트폰에 내장된 위치 정보시스템, 블루투스, 와이파이, 관성 센서 신호를 수집한다.
그다음에 일반 개개인의 이동 경로가 확진자의 동선과 겹치면 ‘위험 신호’만을 알려준다.
따라서 확진자의 신원 공개도 하지 않아도 되고, 업소들의 피해도 줄일 수 있다.
“당연히 광고도 없고 유료결제도 없습니다. 순전히 공익을 위해 만든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클린하게 사용하면 됩니다.”
설명을 마친 나는 윤단아에게 자리를 비켜주었다. 그제야 폰을 들어 채팅창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 저 어플 당장 깔아야지
- 우리나라에 저런 재벌만 있으면 좋겠다
- 난 실감이 안 나는데 바이러스가 위험하긴 한가 보구나···.
- 감사합니다. 잘 쓰겠습니다.
- 정부는 뭐하냐. 저 어플 깔라고 홍보 좀 해라
사람들의 반응이 폭발적이자 윤단아가 마무리 멘트를 날렸다.
“그럼 윤단아 TV의 단아였습니다.”
좋아요, 구독, 알림 설정 멘트를 빼먹지 않고 날린 뒤 윤단아는 방송을 껐다.
이렇게 보니까 윤단아의 모습이 뭔가 프로 같았다. 지금까지 윤단아가 해오던 일들이 참 대단하게 느껴졌다.
나는 턱을 긁적이며 물었다.
“제가 잘 한 거 맞나요? 방송은 처음이라···.”
“처음 한 것치고는 잘했어요. 사람들의 반응도 좋아요. 채팅창 보니까 바이러스 전문가 다 됐던데요.”
“아하하”
나는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캐리온이 불러준 걸 출력했을 뿐인데···.
그래도 내가 해야 할 말들은 온전하게 잘 전한 것 같아서 다행이다.
이제 그 결과를 지켜보는 일만 남았다.
*
반응은 곧바로 나타났다. 윤단아의 화력은 기대 이상이었다.
윤단아 채널의 조회수는 순식간에 수십만을 찍었고, 덕분에 알람온 앱의 다운로드 수도 실시간으로 계속 늘어나고 있었다.
나는 이번 사태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
뭐든 초동조치가 중요한 법이다. 초기에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줘서 바이러스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을 경우, 캐리온의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3차, 4차 감염까지 일어나 수천 명의 확진자가 속출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제주도 사건은 사람들에게 하나의 선례이자 예시가 될 수 있다.
윤단아의 방송이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자 그걸 눈여겨본 기자들도 방역수칙을 어긴 학생들을 비판하는 기사를 하나둘씩 올리기 시작했다.
[포비드 증상 여행한 미성년자들, ‘처벌해달라’ 국민청원 올라와]
[포비드 미성년자 동선 밝혀··· 제주도에서 확진자 속출]
[미성년자들, 또 솜방망이 처벌받나?]
[제주여행 논란 미성년자에게 제주도, 손해배상 청구하나?]
하지만 여기서 끝내면 섭섭하지.
방역에서 거짓 증언은 심각한 혼선을 줄 수 있는 중대한 위반 행위이다.
고등학생이면 사리 분별은 할 수 있는 나이인데, 수많은 사람을 위험에 빠트릴 수 있는 짓을 벌였다.
심지어 음주운전까지 하는 것을 보면 딱 봐도 싹수가 노래보였다.
나는 캐리온에게 시켜 녀석들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게 했고, 아니나 다를까. 놈들은 학교 내에서도 질이 좋지 않은 녀석들이었다.
소위 말하는 일진이랄까.
흡연과 음주는 기본에, 동급생을 상대로 폭행 및 금품을 갈취한 흔적까지 있었다.
나는 그 즉시 녀석들의 신상과 지금까지 저지른 악행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여 여러 커뮤니티에 뿌려버렸다.
내가 올린 글들은 이곳저곳 퍼져나가기 시작했으며, 해당 학교의 학생들이 사진인증을 하거나 추가 증언을 하면서 진실임을 입증해주었다.
- ㅉㅉ원래부터 인성 빻은 놈들이었네
- 얘들이랑 같은 학교인데 이렇게 될 줄 알았음
- 학교는 뭐하고 있냐. 저런 놈들 놔두고
- 생긴 것도 딱 양아치임
이놈들의 행적은 뉴스에도 나왔고, 전국적으로 얼굴이 팔리며 망신을 당하게 되었다.
결국 해당 학교에서는 사건이 사건이니만큼 징계위원회를 열기로 했다.
뭐, 최소 강제전학에 퇴학까지 당할 수 있다고 하더라.
그리고 제주시에서 수억 원에 달하는 손해배상을 청구했으며, 음주운전 및 명의도용에 대해 형사 고발을 진행한다는 기사가 올라왔다.
<제주도 화났다··· ‘무개념 여행’에 업체들까지 소송>
「제주특별자치도청은 학생들에게 3억 원대의 손해배상을 청구하겠다고 밝혔다. 이 학생은 발진이 있었고 의심증상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여행을 강행했다는 점에서 고의가 있다고 봤다.
이들이 다녀간 숙소, 식당, 카페 등 20여 곳, 143명과 접촉하였다.
접촉자들은 2주간 생업을 중단하고 자가격리에 들어갔고, 영업을 재개한 이후로도 '확진자가 다녀간 곳'이라는 낙인이 찍혀 매출이 급격하게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다.
이에 따라 제주시는 도민들의 피해 금액과 업소들의 피해, 시의 행정력 낭비 등을 고려해 손해배상 청구를 하기로 결정했다.」
다행히 셧다운이라는 최악의 사태는 피할 수 있었다. 내가 밝힌 확진자의 동선 덕분이었다.
그런데도 빠르게 퍼진 바이러스에 사람들은 이번 사태를 심각하게 여기기 시작했고, 그곳에 방문한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선별 진료소에서 검사를 받았다.
덕분에 양성 판정을 받은 사람들이 조기에 확인되었고, 절차에 따라 격리되었다.
수많은 사람이 양성 판정을 받았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겁에 질린 시민들이 더욱 검사를 받기 위해 몰렸고, 제주도는 인력 부족으로 다른 지역에 지원을 요청하기도 했다.
그래도 안 받는 것보다는 받는 게 낫지.
다행히 제주도 사건은 확진자 수백 명만을 기록하며 초기 진압에 성공하였다.
수백 명도 많은 수이지만, 캐리온의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방역에 실패하였을 경우 최소 수천 명의 확진자를 발생시킬 수 있었다.
이거에 비하면 양반이지, 뭐.
그리고 여기에 윤단아의 활약이 있었음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었다. 윤단아를 칭찬하는 기사들 수십 개가 포털의 메인을 장식하고 있었다.
나는 흐뭇한 심정으로 기사를 클릭했다.
<뉴튜버 윤단아, 포비드 확산 속 ”모범 선례 내놨다”>
「오늘 2월 5일, 뉴튜버 윤단아 (전 한국일보 기자)가 동영상을 공개했다. 유증상자가 해당 증상을 숨기고 제주도를 여행한 것이다.
윤단아는 익명의 제보자를 통해 동선을 공개하고, 시민들의 자발적인 검사를 촉구했다.
빠른 초동 대응 덕분에 확진자들을 빠르게 격리할 수 있었고···.」
윤단아에게 또 하나의 미담이 쌓이면서 인지도가 한층 상승하는 효과를 낳았다. 그리고 나의 KW 제약 또한 부가효과를 받았다.
윤단아의 방송에서 좋은 이미지를 쌓은 덕분에 KW 제약의 존재가 알려지면서, 사람들이 우리 회사 마스크를 찾기 시작한 것이다.
미리미리 재고를 쌓아둔 덕분에 마스크 수요량을 충분히 감당할 수 있었고, 그것들은 다 돈으로 바뀌어 내 계좌에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다.
아이고 배부르다. 꺼억!
*
이제 중요한 것은 바로 KW 제약을 키우는 일이다.
지금 마스크와 손 소독제, 그리고 소독용 알코올은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왜냐하면 지금 동아시아에서는 (특히 중국에서) 마스크를 사재기하고 있는데, 공급은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그 국가들이 필요로 하는 공급량을 맞춰줄 공장은 내가 가진 화성 공장밖에 없다.
포비드에 효과가 있다는 KF99와 재사용 필터 마스크는 재고가 쌓이기 무섭게 빠져나갔고, 한 단계 떨어지는 KF94나 비말차단 마스크조차 없어서 못 파는 지경에 이르렀다.
덕분에 제품들에 프리미엄을 붙여서 비싸게 팔 수 있었고, 특별히 중국에는 프리미엄을 듬뿍 붙여서 수출하고 있다. 중국 사람들은 치를 떨면서도 내가 제시한 가격에 사 갔다.
그러길래 누가 그딴 바이러스 퍼뜨리래?
물론 우리나라도 곧 있으면 비슷한 상황을 맞이할 것이기 때문에, 공급에 차질이 없도록 마스크 자재는 충분히 비축해두었고 재고량 또한 일정 비율을 남길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놓은 상황이다.
남의 나라에 잘 팔다가 정작 우리나라에서 팔 물량이 없으면 그것대로 큰일이니까 나도 그 부분은 특별히 신경 쓰고 있었다.
이렇게 마스크 하나로 꿀을 빨고 있지만, KW 제약은 아직 제대로 된 제약회사라고 할 수 없다.
신약 개발을 주도할 연구소가 없기 때문이다.
이제 바이러스의 정체가 드러났으니 슬슬 연구소를 인수해야 한다.
목표는 신약의 개발.
내가 연구소를 인수하던가, 아니면 직접 사람들을 모아서 연구소를 만들면 된다.
알바트리온 제약에 투자하면서 자금력이 많이 줄어들었지만, 아직 초기 자금을 댈만한 여유는 있다.
나는 캐리온에게 포비드를 연구하는 데 적합한 연구소나 연구원을 물색해보라고 명령했다.
며칠 후, 캐리온은 명단을 주며 새로운 방법을 제시해주었다.
[연구소보다는 팀을 스카우트해오는 걸 추천합니다.]
[후보와 이력을 첨부했습니다.]
하긴. 어차피 연구를 주로 하는 것은 캐리온이 될 것이다. 캐리온이 큰 줄기를 잡아주면 그것을 백업해줄 수 있는 인력들 정도면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캐리온이 추천한 후보는 총 세 명.
그들의 이력을 보며 나는 중얼거렸다.
“하나같이 멀쩡한 사람들이 없네. 일단 이 사람들이랑 전부 약속 잡아봐.”
[알겠습니다.]
그리고 후보 중에서 나는 그리운 이름을 발견했다.
“백하영이라···.”
내가 이건우의 몸에 빙의하기 전, 생물학 무기 연구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사실이 있다.
그때 생물학 연합 연구소와 합동 연구를 진행했는데, 백하영 연구원은 그곳에 있었던 연구원이며 당시 소장이었던 나와 친하게 지냈었다.
지금은 일선에서 물러나 연구년을 보내고 있다는데 캐리온이 어떻게 알고 찾아낸 것이었다.
오랜만에 동료를 만날 생각에, 반가운 미소가 입가에 그려졌다.
*
약속 당일. 나는 호텔 룸을 빌려서 자리를 마련했다. 그리고 첫 손님이 들어왔다.
“Hello. Nice to meet you, Mr. Lee.”
리암 웨슬러는 나에게 반갑게 인사했다.
보다시피 미국인이며 바이러스 분야에서는 최고 전문가이지만, 학계 이단아로 불릴 정도로 파격적인 주장을 하고 있다.
나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교수님이 저술하신 논문은 모두 찾아보았습니다. 굉장히 감명 깊더군요.”
“모두 읽어봤다고요?”
물론 내가 읽어본 건 아니고 캐리온이 읽었다. 하지만 캐리온이 내 머릿속에 있으니 그게 그거 아니겠는가?
“물론입니다. 어찌나 흥미롭던지 며칠 동안 밤을 새웠지요.”
우리는 잠시 웨슬러 교수가 저술한 논문에 관해서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물론 나는 하나도 이해하지 못했고, 캐리온이 읊어주는 말을 기계적으로 내뱉는 출력기에 불과했지만 웨슬러 교수는 정말 감동한 눈치였다.
“정말 다 읽어봤군요!”
“특히 소아마비와 천연두의 백신 상관관계를 연구하면서 이를 위나선균에 적용하는 논문은 정말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개소리다. 논문이 재미있어봤자 얼마나 재미있겠는가.
다만 캐리온은 이 논문을 발전시키면 변종 두창 바이러스의 백신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될 것이며, 나아가 치료제의 단서를 발견할 수 있는 위대한 논문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웃기게도 학계에서는 이 대단한 논문이 헛소리 취급당하며, 웨슬러가 매장당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덕분에 후원자를 잃은 그와 그의 팀은 새로운 후원자를 찾으러 여기저기 발품을 팔고 있었고, 그러던 차에 나의 연락을 받은 것이었다.
“당신과 당신의 팀에 1억 달러를 지원하겠습니다.”
금액을 듣고 웨슬러는 눈이 튀어나오려고 했다.
“1억 달러요?”
1억 달러이면 한화로 1000억이 넘는 돈이다.
물론 지금 캐리온에 투자하고, 알바트리온 제약회사에 투자하느라 남은 자금이 얼마 없다. 하지만 블러핑은 쎄게 해야하지 않겠는가?
“물론 초기 자금으로 2500만 달러이고 추후 1억 달러까지 더 지원이 이루어질 겁니다. 다만 지금 유행하고 있는 바이러스에 대한 백신과 치료제를 개발해 주십시오. 돈이 얼마가 들어가도 상관없습니다.”
“두창 바이러스는 제 관심 분야이지요. 백신과 치료제를 만드는 건 큰 도전이 되겠지만, 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일입니다. 다만 인선은 제가 정해도 됩니까?”
“물론입니다. 연구에 관한 모든 건 당신에게 일임하겠습니다.”
웨슬러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팀원들에게 당장 짐 싸 들고 한국으로 오라고 해야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