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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러스 침투
2월 4일
한 무리의 학생들이 홍콩 공항에서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두 명의 남학생과 두 명의 여학생으로 구성된 그들은 방학 동안 여행을 다녀오는 길이었다.
이제 다음 코스인 제주도로 가려는데, 그들 중 한 남학생의 상태가 좋지 않아 보였다. 입술이 붉게 부풀고 호흡이 가빠지는 것이 영 이상했다.
아픈 남학생은 생각했다.
‘설마 북경 바이러스?’
그런 의심이 먼저 들었지만, 북경 바이러스는 북경에서 일어났다고 들었다. 홍콩은 아직 안전한 셈.
‘아니야. 그냥 감기겠지.’
남학생은 쉽게 생각했다. 너무 피곤해서 몸살 기운이 돌고 단순 포진이 올라왔을 뿐이라고.
그리고 만일 북경 바이러스라면 그들은 모두 격리 대상이 된다. 집중치료실로 가서 최소 2주는 격리를 받아야 한다는 말.
한껏 제주도 여행을 기대하는 친구들에게 폐를 끼칠 수는 없었다.
그렇게 아픈 남학생은 친구들 몰래 해열제를 사서 입에 털어 넣었다.
해열제 한 통을 모두 먹은 덕분에 일시적으로 열이 떨어졌고, 홍콩에서 수속을 밟아 제주도에 도착하는 동안 아무런 제지도 받지 않았다.
아픈 남학생은 열이 가라앉으니 금세 팔팔해져서 돌아다녔다.
문제는 숙소에서 일어났다.
다들 씻고 2차를 하려고 거실에 모였는데, 아픈 남학생이 쓰러져서 거품을 물며 헛소리를 지껄였다.
“아파···아파, 살려, 살려주세요.”
해열제의 효과가 떨어지면서 아픈 남학생의 증상이 더 심해졌던 것.
그를 처음 발견한 학생이 호들갑을 떨며 친구들을 불렀다.
“진석아, 너 왜 이래. 야, 니들 일로 와 봐봐. 진석이 좀 이상한데.”
술을 꺼내고 고기를 굽던 아이들이 모였다.
“몸이 불덩이같이 뜨거워.”
“잠깐만. 여기 입 주변에 발진이 일어났는데. 이거 북경 바이러스 증상 아니야?”
그제야 심각성을 깨달은 아이들이 상황을 파악하기 시작했다.
“일단 내가 119에 신고할 테니까, 너는 술부터 치워.”
다행히 금방 구급차가 와서 아픈 남학생을 실어갔다.
당연하게도 남학생은 양성 판정을 받았고, 함께 한 학생들은 아직 음성 판정을 받았지만 확진자와 밀접 접촉했기 때문에 격리되어야 했다.
시청에서 나온 역학조사관이 학생에게 질문했다.
“제주도에 입국하고 어디에 있었는지 빠짐없이 말해주시겠어요?”
하지만 그들은 솔직하게 말할 수 없었다.
신분증을 빌려 렌터카를 빌리고 엄마 카드로 술을 사서 마셨다.
이 사실이 드러난다면 처벌을 받는 것을 물론이요, 학교에 돌아가서도 문제가 생길 수 있었다.
결국, 학생들은 거짓말을 하기로 했다.
“어···. 피곤해서 계속 숙소에만 있었어요. 숙소 앞에 편의점에 다녀온 게 전부예요.”
“알겠습니다.”
아이들의 카드 사용 내역을 확인해보니 정말로 숙소 근처 편의점에서 과자 몇 개를 산 것이 전부였다.
역학조사관은 아이들의 말을 믿고, CCTV 조사는 건너뛴 채 조사를 마무리했다.
*
캐리온이 내 밑에서 여러 부캐로 활동하고 있지만, 애초 캐리온의 개발 목적은 생물학 무기에 대한 감시망을 만드는 것이다.
각종 업무를 하는 와중에도 서버의 가장 큰 부분은 바이러스의 연구 및 감시를 위해 기능하고 있었다.
특히나 캐리온은 확진자 감시에 힘을 쏟고 있었는데,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 보건당국보다 더 빠르게 감염의심자를 확정 짓고 동선을 추적하는 중이었다.
엄청난 연산처리 과정이 필요한 일이지만 눈물을 머금고 투자한 이천억은 그 일을 가능하게 했다.
[이건우 님. 제주도에서 갑자기 발진 증상을 보이는 사람을 발견했습니다.]
“제주도? 갑자기?”
[예. 제주공항 기내 CCTV를 확인한 결과, 한 남학생의 입가에 특유의 반구진 발진이 발생했습니다.]
[해당 학생은 세 명의 친구들과 함께 홍콩에서 입국했습니다.]
학생 네 명의 신상에 대한 자료가 전송되었다.
아픈 학생은 여행으로 피곤해서 단순 포진이 올라온 것으로 생각했지만, 이건 누가 봐도 포비드의 증상이었다.
“그래서 격리가 됐나?”
[아니요. 해열제를 한 통 다 먹고 제주도를 돌아다녔습니다.]
“······.”
언젠가 이런 일이 일어날 줄 알았다. 이 많은 사람 중에 자기 욕심을 위해서 증상을 숨길 사람이 설마 하나도 없을 리가.
그런데 이건 좀 심각했다.
[SNS를 확인한 결과 그곳에서 삼박 사일 동안 여행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다행히 지금은 숙소에 있습니다.]
요즘에는 SNS가 잘 되어있어서 시시콜콜한 내용까지 다 파악할 수 있었다.
캐리온이 그들이 방문한 제주도 맛집과 여행지들에 대한 리스트를 뽑아줬는데, 그 기다란 목록에 나는 머리가 아득해졌다.
“다섯 시간 만에 이렇게 싸돌아다녔다고?”
역시 애들 체력은 무시할 게 못 된다.
“그리고 미성년자인데 운전은 어떻게 한 거야?”
[가족의 신분증을 빌려서 렌트를 한 모양입니다. 심지어 관광지에서 술을 마시고 음주운전도 한 모양이군요.]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벌써 음주운전이라니. 요즘 애들은 참··· 어마무시하구나.
동시에 의문이 들었다. 캐리온이 어째서 이렇게 늦게 발견한 거지?
캐리온은 내 생각을 읽고 말했다.
[저는 기내 CCTV를 확인한 즉시 제주 방역 당국에 제보를 세 번이나 했습니다. 하지만 역학조사관이 늦장 대응을 했습니다.]
이런.
캐리온은 문제들을 1차적으로 처리하고, 최종 결과나 중요한 안건만 나에게 보고한다.
하지만 방역 조치가 계속해서 늦어지자, 결국 나에게까지 보고가 올라온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역학조사관에게 계속 숙소에 있었다고 거짓말을 한 것입니다. 본인들의 카드를 사용하지 않은 까닭에 역학조사관도 더이상의 조사는 하지 않은 모양입니다.]
[추가적인 방역 조치가 늦어지면 감염자가 급증할 수 있습니다.]
제주도의 방역 체계가 상당히 느슨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나는 심각한 얼굴을 했다. 다행히 우리나라는 확진자들을 빠르게 격리 조치하고, 밀접접촉자들을 대상으로 빠짐없이 조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국민도 조사에 협조적으로 임하고 있기에, 그나마 확진자의 통제가 잘 이루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여기에 구멍이 나버린다면?
지금 보건당국 인력으로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쓰나미가 몰려올 것이다.
나는 고민했다. 내 이름으로 이 사실을 방역 당국에 알릴 수 있지만, 그러려면 카드 사용내역과 같은 개인 정보를 어떻게 수집했는지 밝혀야 한다.
이 모든 것을 말하려면 일이 귀찮아질 게 뻔하니, 나는 내가 애용하는 방법을 사용하기로 했다.
바로 익명의 제보를 통한 공개.
나는 즉시 윤단아에게 연락했다.
*
나는 한달음에 윤단아의 스튜디오도 달려갔다.
다급한 연락을 받은 윤단아는 스튜디오에 미리 나와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윤단아는 캐리온이 깔끔하게 정리해놓은 상황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애들이 겁도 없이 이런 짓을 하다니···.”
“겁만 없는 게 아니라 책임감도 없지요. 이러다가 제주도 전역에 바이러스가 퍼질 수도 있습니다.”
보통 사망률이 높으면 전염성은 낮다. 전파되기 전에 숙주가 죽어버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 발견된 포비드는 공기감염이 가능하기에, 확진자 옆에서 가만히 숨만 쉬고 있어도 바이러스에 감염될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면역체계가 전혀 형성되어있지 않기 때문에 전염성이 높다.
지금 이 학생들이 돌아다닌 지역에서는 이미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한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한 윤단아가 말했다.
“이건 동영상을 편집할 시간도 없겠네요. 바로 스트리밍에 들어갈게요.”
“대본이 없어도 됩니까?”
“어차피 사장님이 자료를 잘 정리해오셔서 괜찮아요. 프롬프트만 간단히 작성하고 바로 들어갈게요.”
윤단아의 행동은 냉철하고 재빨랐다. 그녀는 한 시간도 되지 않아서 자료의 내용을 완벽하게 파악하고 바로 스트리밍에 들어갔다.
“안녕 단이들, 단아에요!”
- 단하!
- 어? 갑자기 스트리밍?
- 마침 뉴튜브 보고 있었는데 타이밍 지린다
- 언니 오랜만이에요!
- 진짜 스트리밍은 완전 오랜만에 하는 듯
“응. 어쩌다 보니 공지도 없이 스트리밍하게 됐어. 이번 일은 너무 급해서 말이야. 우리 단이들한테 포비드에 대해 말할 게 있어가지구.”
- 포비드? 그 짱깨 바이러스?
- 그거 걸릴까봐 무서워요ㅠㅠㅠㅠ
공지도 없이 스트리밍한 건데 벌써 천 명이 넘는 사람이 모였다.
이대로라면 만 명은 가뿐히 모을 수 있을 것 같다.
과연 이백만 스트리머의 위엄이랄까.
윤단아가 한마디 할 때마다 채팅창이 빠르게 주르륵주르륵 올라갔다. 이걸 어떻게 다 읽고 반응을 하는 것인지, 스트리머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익명의 제보자에게 제보를 받았거든?”
화면에는 모자이크 처리가 된 네 명의 학생이 올라왔다.
“양성 판정을 받은 확진자가 제주도를 여행했다고 하네. 검역을 피하고자 해열제를 먹고 돌아다녔대.”
“그러니 제주도에 사는 우리 단이들 꼭꼭 조심해야 해.”
“여기에 확진자들이 돌아다닌 동선을 공개할게. 출처 안 밝혀도 되니까 스샷 찍어서 많이 공유해줘!”
사진과 주소가 올라왔고 채팅창은 말 그대로 뒤집혔다.
- 씨발 나 제주도에 사는데
- 헐 저기 우리 엄마가 운영하는 식당인데? 어떡해
- 저 새끼들은 개념이 있는거야 없는거야.
- 제주도민들은 ㅈ됐네
윤단아는 간곡한 어투로 부탁했다.
“그리고 이번 바이러스는 진짜 위험하니까, 동선이 겹치는 단이들은 꼭 선별진료소에 가서 검사를 받아봐. ”
마지막으로 내 차례가 왔다.
“그리고 바이러스 전문가이신 이건우 사장님을 소개할게.”
이번에 새로 개발한 확진자 동선과 관련된 앱을 공개할 시간이었다.
채팅창은 곧이어 물음표로 가득 찼다.
- 이건우? 양소희 스캔들의 이건우?
- 윤단아 소속 사장이지 않나?
- 걔가 언제부터 바이러스 전문가였음?
내가 직접 방송에 나오는 건 처음이라 다소 긴장된 얼굴로 카메라를 봤다.
“안녕하세요. KW 미디어 사장 이건우입니다. 또한 KW 제약을 운영하고 있기도 합니다.”
“저는 두 달 전부터 북경에서 일어난 포비드에 관해서 연구했고 그에 대해 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마스크 공장을 인수하고 제약 회사를 만든 것도 그 일환이지요.”
채팅창에 뭔가가 주르륵 올라왔다. 힐끗 봤는데 올라오는 속도가 너무 빠른 탓에 하나도 읽을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그냥 무시하기로 했다.
다행히 그게 정답이었나 보다. 윤단아는 잘한다는 표시로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그렸고, 덕분에 나는 안심하고 계속 말을 이어갔다.
“포비드는 이미 소멸한 두창 바이러스에 연원을 두고 있으므로 여러분에게는 면역체계가 형성되어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망률이 높을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기존의 바이러스에서 많이 변형되었기 때문에, 종전에 만들어진 백신 또한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이 착각하는 것과 달리 두창 바이러스는 원래 치료제가 없습니다. 보통 감염되자마자 백신을 접종하는 것으로 치료를 대체했지요. 따라서 백신도 없는 지금 상황으로서는 예방이 최선입니다.”
“여러분은 마스크를 꼭 쓰고 다니길 바라며, 제주도민께서는 불편하시겠지만 확진자들의 동선을 참고하셔서 자발적으로 격리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이제부터 본론이 시작된다.
“그래서 저희는 확진자의 동선을 공개하는 앱을 만들었습니다. 여러분의 사생활 침해를 걱정할 수도 있지만, 그럴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캐리온이 개발한 앱은 ‘알람-온 (Alarm-On)’ 프로그램이다.
확진자의 신원을 공개하지 않고도 그들이 돌아다니는 장소를 알려주는 앱이었다.
물론 사람들이 앱을 깔아야지만 효과가 있긴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이 방법이 최선이다.
나는 침을 튀기며 지금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그리고 예방을 위해서 앱이 얼마나 좋은지 광고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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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잠시 뒤, 나의 말발에 넘어간 사람들이 홀린 듯이 앱을 다운받기 시작했다.
윤단아의 스트리밍은 성공적이었다.
사람들은 짧은 스트리밍은 각자 편집해서 페이스책, 인별그램, 트위트 등으로 퍼뜨렸고, 나는 캐리온에게 실검에게 올릴 수 있도록 지시했다.
내가 만든 알람온 앱은 윤단아의 방송 이후 수십만 건의 다운로드를 기록하며 수많은 사람의 핸드폰에 무사히 안착하였다.
캐리온이 공식적으로 사람들의 스마트폰에 접속할 기회를 얻는 순간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