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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어지는 콩고물 (2)
KW 미디어의 일은 깔끔하게 마무리 지었다. 이제 KW 미디어는 내가 신경쓰지 않아도 알아서 잘 굴러가는 수준에 이르렀다.
이제 바이러스가 확산세를 넓혀가고 있는 만큼, 제약에 몰두해야 할 때가 왔다.
그전에 나는 캐리온의 보고를 들었다.
[성윤식, 박근형, 유종근이 밀실에서 만났습니다.]
꽤 익숙한 이름들. 세 사람은 이정혁이 대가를 받고 성 상납을 하던 사람들이다.
이정혁의 개인 컴퓨터를 터는 동안 몇 번이고 그 이름이 나왔기에, 나도 주시하고 있었다.
[대화 내용이나 사진은 확보하지 못했습니다.]
CCTV도 전화도 없는 완벽한 밀실이었다. 아쉽게도 캐리온은 시스템이 없는 곳에는 관여하지 못한다. 아직까지는.
대신 전후관계를 파악하여 합리적인 추론을 내릴 수는 있다.
[하지만 그 만남 이후 새로운 정보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제약회사 알바트리온이 백신 개발에 나선다고 합니다.]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벌써 백신을 만든다고? 아니 백신을 만들 수 있기나 한 거야?”
샘플은 아마 보건복지위원회 소속인 성윤식 의원이 줬을 게 뻔하니 그건 넘어가고, 긴급상황이니 임상시험을 다 패스한다고 치더라도 만드는 데 십수 년이 걸리는 백신 개발에 제약회사가 나선다고?
그것도 국내 제약회사가?
물론 나설 수야 있다. 하지만 이들이 그런 좋은 의도를 가지고 불확실한 일에 도전할 것 같지는 않았다.
구린 냄새가 폴폴 났다.
내 짐작을 캐리온이 확신시켜주었다.
[그 세 사람의 차명 계좌에서 알바트리온의 주식을 쓸어 담고 있습니다. 주가를 조작할 조짐이 보입니다.]
나는 씩 웃었다.
주가 조작이라. 이런 판에는 내가 또 빠지지 않을 수가 없지.
*
나는 이 삼인방이 짜놓은 판에 끼기로 했다. 알고서도 못 먹으면 바보지.
심지어 자본도 내가 훨씬 많다. 이들이야 많아봤자 수십억에서 수백억 대로 투자를 하겠지만 나는 규모가 다르거든.
내가 지금 가진 자금은 6천억 원.
원래는 1조 5천억가량 있었지만 제일 ENM을 사 오는데 돈을 많이 썼던지라 절반으로 줄어들었고, 캐리온에게 2천억 원을 추가 투자해서 남은 돈은 6천억가량 됐다.
나는 1천억을 제외한 남은 돈 5천억을 모두 투자하기로 했다. 4천억으로 주식을 매수하고, 파생상품 시장에 1천억 원을 투자했다.
물론 이대로 5천억을 투자하면 주가가 널뛸 수 있다. 나는 캐리온을 시켜 아주 천천히, 계좌를 여러 개로 분산시켜서 야금야금 매수했다.
“캐리온. 알바트리온 제약회사 상황을 실시간으로 체크하고, 백신 개발 발표가 나면 언제든지 발을 뺄 수 있도록 준비를 해놔.”
[알겠습니다. 그러다 체하겠습니다.]
“체를 해? 왜?”
[날로 먹어서요.]
“······.”
나도 모르게 피식 웃고 말았다. 부끄럽다.
내 안의 아저씨가 이딴 개그에 반응하다니.
[이번에 배운 농담이 더 있습니다. 더 해드릴까요?]
“아니야. 하지마.”
[이상합니다. 이건우 님의 안면분석 결과 매우 즐거워하고 있습니다. 왜 굳이 부인하시는지요?]
“시끄러”
업그레이드 시켜놨더니 이상한 것만 배우고 있어.
2000억짜리 업그레이드를 거치면서 캐리온의 성능이 대폭 증가했고, 지금까지 쓰지 못했던 기능도 생겼다. 특히 능동적으로 사고하고 감정을 해석하는 부분에서 사람보다 능숙해졌다.
또한, 캐리온의 다운그레이드 버전인 ‘미니온(Mini-On)’ 시리즈를 만들었다.
캐리온의 네 번째 부캐이자, 캐리온을 다운그레이드시켜 각 분야의 특성에 맞게 발전시킨 것이었다.
화성공장 자동화 시스템인 미니온 오토.
KW 미디어 경영 시스템인 미니온 매니저.
KW 제약 연구 시스템인 미니온 메딕.
그리고 앞으로 새로운 분야에 진출하게 된다면 캐리온이 알아서 새로운 미니온을 만들어 낼 것이다.
캐리온의 지휘 아래 미니온들은 일사불란하게 일하며 점점 더 발전하고 있었다.
*
바쁜 일이 모두 지나고, 나는 마침내 한서진의 금괴를 꺼내기로 했다.
이정혁 사건이 있은 이후 자기 금괴를 가지러 가자고 어찌나 눈치를 주던지.
정확히는 한서진의 것도 아니지만, 눈먼 돈이라면 먼저 줍는 게 임자라나 뭐라나.
콘크리트를 철거하는 일은 두께와 면적에 따라서 전문장비와 인력이 나누어질 수 있다.
특히 내력벽이나 옹벽일 경우 하중 때문에 건물이 무너질 수 있어서 위험한 일이기도 하다.
원래대로라면 전문가를 부르는 게 맞지만, 이 일은 밖에 새어나가면 안 되는 일이기 때문에 우리 둘이서만 직접 처리하기로 했다.
다행히 시공 단계에서 원주인이 금고를 나중에라도 뺄 생각을 하고 숨겨두었기에, 금고 앞을 가로막은 건 가벽 정도에 불과했다.
이 정도라면 공업용 드릴과 절단기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일이었다.
나는 본격적으로 작업을 시작하기 위해 공업용 드릴들 들었다.
끙차.
“···?”
근데 이거 조금 무겁네. 왜··· 안 들리지?
나는 공업용 드릴을 들기 위해 끙끙거리며 씨름을 했고, 한서진은 그런 나를 보며 한심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거밖에 힘을 못 써요? 사장님, 운동 좀 해야겠어요.”
그리고서는 가볍게, 내가 한참을 씨름하던 드릴을 들어 올렸다.
“······.”
한서진은 능숙하게 드릴을 조작하여 가벽을 부수었고 나는 옆에서 ···한서진을 응원했다.
그렇게 드르륵 쾅쾅거린 후, 가벽이 부서지고 사람 몸만 한 금고가 나왔다.
“저기에 금괴가 얼마나 들어있다고요?”
“당시 돈으로 60억 가까이 됐다고 해요. 그게 십 년 전이니 지금 가치로는 훨씬 높아졌겠죠.”
금고에는 잠금장치가 달려있었지만, 준비한 산소절단기를 이용하여 깔끔하게 잘라버렸다. 당연하게도 작업은 모두 한서진의 몫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금괴가 그 자태를 드러냈다.
어두운 금고를 환하게 비출 정도로 찬란하게 빛나는 금괴.
1kg짜리 골드바가 차곡차곡 쌓여있는 모습을 보노라니 현실감이 없어 보였다.
숫자를 세던 한서진이 중얼거렸다.
“모두 1kg짜리 120개가 있네요. 지금 1kg에 8800만 원이니까···.”
“105억 정도 됩니다. 서진 씨 이제 부자 됐네요. 출근 안 하는 거 아니에요?”
한서진이 웃었다.
“그러게요. 출근하지 말까요?”
농담이었다. 어차피 지금 한서진에게 중요한 것은 돈이 아니다.
금괴를 찾으려는 목적도 모두 아들의 치료를 위한 것.
한지우가 제일 의료원에서 치료를 받는 한, 한서진은 내 옆을 떠나지 않을 것이다.
한서진은 나에게 골드바 하나를 주며 농담을 던졌다.
“별로 도움은 안 되었지만, 이건 수고비에요.”
나는 피식 웃었다.
“아무 도움도 못 됐는데 이걸 받아도 되는지 모르겠네요.”
우리는 금고에 기대서 잠시 쉬었다. 금괴를 찾아 기분이 좋아진 한서진이 나에게 물었다.
“사장님은 이제 뭘 할 생각이에요?”
“미디어 사업은 정리가 끝났으니까 본격적으로 제약에 뛰어들 겁니다.”
바이러스의 샘플을 얻게 되면 캐리온을 시켜 전용 필터도 생산하고 백신 개발에도 착수할 것이다.
아마 이게 완성이 되면 세계 제약 시장은 KW 제약을 중심으로 개편될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번 돈으로 사업을 하나씩 하나씩 확장해 나가는 것이다.
나는 내 장밋빛 미래를 그리며 웃었고, 한서진은 금괴 더미를 바라보면서 함께 웃었다.
*
한서진은 나에게 9:1로 수익 배분을 해주겠다고 했지만 나는 사양했다.
이미 나에게 수천억 원의 돈이 있는데 십억 정도 더 가진다고 해봐야 별 의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럴 바에는 모두 한서진에게 주어 조금이라도 점수를 따는 게 낫지.
그렇게 금괴 문제는 깔끔하게 해결이 되었고, 나는 바이러스 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바이러스의 기세가 심상치 않다. 한국을 비롯하여 수많은 국가에 중국발 바이러스 확진자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아직 명확한 이름조차 없는 그 바이러스는 북경에서 발생했다고 해서 북경 바이러스라고 불렸다.
중국 보건당국은 지금까지 북경 바이러스라고 불리던 것에 반발하며 정식으로 바이러스의 이름을 붙여주었다.
‘POVID (POx VIrus Disease)’ 또는 ‘팍스 바이러스’가 신종 바이러스의 공식 명칭이 되었다.
이번 바이러스가 천연두(Pox)와 비슷한 양상을 띠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었다.
또한 지금까지 중국은 지금까지 알게 된 바이러스에 대한 특징이라든지, 구조에 대해서 발표했다.
그 와중에 자기네가 알아낸 것을 세계를 위해 공개한다는 뉘앙스로 생색을 낸 건 덤이다.
당연히 많은 사람의 빈축을 샀다.
- 북경 바이러스를 북경 바이러스라고 하지, 뭐라고 부름?
- 짱깨 바이러스
- 지네가 안 퍼뜨렸으면 이럴 일 없었음
ㄴ ㅇㅈ
어쨌든 포비드는 한국뿐만 아니라 싱가포르, 홍콩, 대만, 인도 등 동아시아 각지로 슬금슬금 퍼져나가며 대유행의 조짐이 보였다.
한국 또한 확진자가 계속해서 증가하는 추세였지만,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아직 통제 가능한 범위에서 증가하고 있었다.
바이러스에 대해 공식 발표가 나자 나는 캐리온에게 명령했다.
“캐리온. 신형 바이러스를 분석해서 공기 감염을 막을 수 있는 필터를 디자인해봐.”
현재까지 마스크, 공기청정기 등의 기술은 공기 감염에 대한 메커니즘을 충분히 이해한 기술이라고 하기에는 부족하다.
보통 알려진 두창 바이러스는 입자 크기가 큰데, 이번 변종 바이러스는 유달리 입자가 작아서 KF94로도 전파를 막을 수 없다.
그렇다면 KF99를 쓰고 다녀야 하는데, 이걸 써본 사람은 알겠지만 온종일 쓰고 있으면 답답해서 미칠지도 모른다.
따라서 감염자에게서 나오는 비말의 크기, 속도, 농도에 따른 이동 경로를 예측하고 공기역학적 특성 연구를 진행할 필요가 있으며, 나는 여기에 인공지능을 접합한 기계식 필터를 만들 생각이었다.
이런 연구를 바탕으로 필터를 개발한다면, 기술공학적 분야에서 방역체계를 확립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물론 돈을 버는 데도 도움이 될 테고.
캐리온이 방대한 빅데이터를 바탕으로 디자인을 하면, 신소재개발연구소에서 필터에 관해 연구하고 제품화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그리고 기술 특허를 내서 내가 모든 이익을 독점할 것이다.
다른 필터와 다르게 공기 감염 바이러스를 효과적으로 막을 수 있는 유일무이한 필터! 심지어 사용자 편리성도 뛰어나다.
누가 봐도 돈이 되는 그림이다.
그때 캐리온이 물었다.
[그러면 기존의 생산 설비는 어떻게 할까요?]
지금 화성공장에서는 마스크를 대량으로 찍어내고 있으며, 재고를 거의 남기지 않고 팔아치울 정도로 수요가 많다.
스마트 마스크가 나오는 순간, KF94 마스크는 필요가 없어지겠지.
하지만 일회용 KF99 마스크와 그에 준하는 재사용 필터가 들어간 마스크는 여전히 수요가 있을 것이다.
아무래도 스마트 필터는 기계식이다 보니 단가가 높다.
또한 일회용 마스크는 의료용으로 쓰일 수 있고, 가성비를 따지는 사람들은 재사용 필터를 사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공장장에게 KF99와 재사용 필터가 들어간 생산 설비만 남겨두고 나머지는 다 매각하라고 해.”
마침 마스크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면서 마스크 공장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는 시기였다.
즉, 돈을 많이 받고 팔 수 있다는 뜻이다.
자고로 제대로 된 투자자라면 저점에서 매입하고, 고점에서 팔아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