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로 갑질하는 양아치 재벌-38화 (38/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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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이사냥 (7)

이만호 회장은 생각에 잠겼다. 얼마 전 새해에 이건우가 다녀갔을 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 그 바이러스 때문에 세계적인 팬데믹이 일어날 거로 생각합니다. 차원이 다른 대공황 말이에요.

손자놈은 그 바이러스가 확산이 될 거라는 확실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가진 모든 자산을 바이러스 관련 사업에 투자하는 걸 보니 할아버지 된 도리에서는 당황스럽기는 했지만, 손자놈이 워낙 신신당부했기에 속는 셈 치고 알아봤다.

그것 하나 알아본다고 돈이 드는 건 아니니까.

제일경제연구소에 명령해서 중국에 있는 바이러스에 대해 알아보고, 그것이 경제에 미칠 파장에 대해 우선하여 연구하라고 지시했다.

회장이 직접 내린 지시였기에, 연구소에서는 직원들을 갈아 넣어 사흘 만에 두툼한 보고서 하나를 올릴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분석한 결과는 한 달 전에 캐리온이 예측한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북경은 이미 패닉에 빠진 상태였다.

내수는 침체하고 흔들리는 경제를 주석이 강제로 틀어막고 있었으며, 사람들의 이동이 제한되고 항공과 선박, 기차는 모두 검열 대상이 되었다.

이쯤 되자 이만호 회장은 직접 중국 쪽 인맥에 전화를 돌렸다.

그들은 처음에는 주저주저하며 말을 아끼려고 했지만, 이만호 회장이 바이러스에 대해서 언급하자 중국의 현 상황을 말해주었다.

- 심각합니다. 지금 짧은 비상조치를 취하고는 있지만, 고착화될 가능성이 큽니다.

- 바이러스 이후의 세상은 완전히 다른 세상이 될 겁니다. 일하는 방식, 소비하는 방식, 여행하는 방식에 대해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하게 될 거예요.

그들의 확언을 듣고 나서야 이만호 회장은 깨달았다.

‘이번에도 건우의 안목이 정확했구나.’

이대로 아무것도 모르고 바이러스를 맞이했으면 제일 그룹도 큰 손실을 피하지 못했을 것이 분명해 보였다.

사실 확인이 끝나자 이만호 회장은 직접 나서서 경영에 적극적으로 개입했다. 회장이 일선에 나서 업무를 처리하자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미래에 가치가 떨어질 게 분명한 사업은 일찌감치 정리해버리고, 바이러스의 수혜를 입을 종목에는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그렇게 빠르게 조치를 끝날 때쯤, 마침내 터질 것이 터졌다.

중국에만 머무르던 바이러스가 홍콩, 대만, 싱가폴로 퍼져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아직 한국에 들어오지는 않았지만, 그것도 조만간일 것으로 보였다.

옆집에서 불난 것을 구경하고 있자니, 이번 불길의 크기는 예사 사이즈가 아니었다.

덕분에 중국 쪽 시장은 벌써 격변을 겪고 있었고, 그에 맞춰 세계 시장도 변화할 조짐이 보였다.

이만호 회장은 다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건우의 말을 듣기를 잘했지.’

그 생각과 동시에 이건우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 제 말이 맞으면 값은 제대로 치러주셔야 할 겁니다.

이만호 회장은 홀홀 웃었다.

“이놈이 또 뭘 달라고 할꼬.”

덕분에 다른 기업들보다 한발 앞서서 대비할 수 있었으며, 큰 손실을 면했다.

폭락할 사업은 제값을 받고 처리할 수 있었고, 앞으로 오를 사업에는 염가로 많은 지분을 확보할 수 있었다.

사업 구조의 변경으로 일시적인 손해는 있었지만, 그것은 말 그대로 일시적인 것이다.

이번에 투자한 종목이 바이러스 수혜를 덕을 봐서 오른다면 손실이 아니라 엄청난 이득을 볼 수 있다. 게다가 자신은 미래를 앞서가는 회장으로 위치를 굳건히 할 수 있겠지.

이건우에 대해서라면 늘 마음이 넉넉하던 이만호 회장이었지만, 이번에는 특히 아낌없이 선물 보따리를 풀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때가 왔다.

‘이건우 이 녀석이 또 말썽을 피우는구나.’

이정혁과 이건우의 싸움. 평소에는 이정혁이 먼저 시비를 걸었지만, 이번에는 정반대의 상황이었다.

이건우가 먼저 이정혁을 공격하고 나선 것이다.

인터넷 포탈에는 아들놈이 경쟁사를 제거하기 위해서 해킹을 하고 주가를 조작했다는 뉴스들로 도배되어 있었다. 물론 제보자는 익명의 누군가였지만, 이만호 회장은 한눈에 손자의 작품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걸 지켜보는 할아버지로서의 마음은 착잡하기만 했다.

아들과 손자의 불화.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아무리 그가 이건우를 아낀다고 해도, 그것은 안타까운 마음에 비롯된 것이지 이정혁을 사랑하는 마음에 비할 바가 못 되었다.

하지만 이정혁은 계속 엇나가기만 했다.

후계자로 키우기 위해 엄하게 대해서 그런 걸까.

오성 그룹과 연을 맺어주기 위해서, 전옥란과 결혼을 시켜서 그런 걸까.

사랑하는 여자를 데리고 오겠다는 걸 막아서 그런 걸까.

너무 첫째 손주만 이뻐하는 모습을 보여줘서 그런 걸까.

이만호와 이정혁의 사이는 점점 멀어지기만 했다.

그리고 이 모든 상황은 이건우를 향한 증오로 바뀌었다. 아무리 원치 않는 아들이라지만, 이정혁은 이건우를 너무나도 모질게 대했다.

특히 얼마 전 이건우가 분가한 이후, 이건우가 사업에 나서며 이정혁과 대립각을 세우니 더욱 심해졌다.

전옥란에 대한 잘못된 증오.

이지훈을 보호하려는 마음에서 생긴 반발심.

번번이 앞길을 가로막는 아들에 대한 어긋난 열등감.

늦었지만 이제는 돌려놓고 싶었다.

이번 상황을 보아하니, 손자 놈이 작정하고 일을 벌인 것 같았다. 이정혁의 역량으로는 막는 것이 불가능해 보였다.

‘어쩌면 이번 악재가 새옹지마가 될 수도.’

제일 ENM의 사장이라는 자리에서 내려오고 나면, 아들놈이 뭔가 다른 것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아들이 가지고 있는 분노와 증오를 한꺼풀 벗겨 낼 수 있지 않을까?

어쩌면 이건우의 이번 공격이, 이 모든 것을 끝낼 마지막 방법이 될지도 모르겠다.

그렇기에 연이은 악재로 제일 ENM의 악재는 곤두박질쳤지만, 이만호 회장은 일단은 관망했다.

손자가 원하는 게 뭔지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곧 건우 녀석이 찾아오겠구나.”

그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저택으로 향하는 철문이 활짝 열렸다.

이건우였다.

*

할아버지는 나를 평소와 다름없이 반갑게 나를 맞아주셨다.

“작작 오거라. 누가 보면 여기가 네 집인 줄 알겠구나.”

“에이. 제가 아니면 누가 할아버지랑 놀아드립니까.”

“이 징글징글한 놈.”

그렇게 말씀하시는 할아버지의 안색은 슬퍼 보였다. 어쩔 수 없는 경쟁 과정이라고는 하지만 집안싸움을 보는 게 즐겁지는 않으시겠지.

“그래. 여기는 왜 왔느냐?”

“당연히 채무 관계를 청산하러 왔지요. 저한테 빚진 거 하나 기억나지 않으십니까?”

할아버지는 아무 말 하지 않으셨다. 할아버지는 내가 뭘 원하시는지 짐작하고 계시는 모양이었다.

기업의 이미지를 끔찍하게도 생각하시는 분이, 내가 이정혁을 건드리는 걸 보고도 아무 말 하지 않으시는 걸 보면 말이다.

나는 서류가방을 열어서 파일 네 개를 꺼냈다.

“시청률 조작 사건”

“마약 유통에 가담”

“제일 ENM 사옥 건설자금 횡령”

“성 상납”

할아버지는 눈 하나 깜박하지 않으셨다. 표정을 보니 이미 다 알고 계셨던 모양이었다. 이정혁이 아무리 몰래 수작을 부린다 한들, 다 할아버지의 정보망을 피할 수는 없었나 보다.

이미 알고 계시니 내가 따로 설명할 필요는 없겠군.

"기밀 정보를 유출해 주가를 하락시킨 건 제일 가벼운 사안이었습니다. 이 중에 하나만 더 터뜨려도 아버지는 바로 구속되겠지요.”

“기어코 네 손으로 아비를 감옥에 보내야겠단 말이냐?”

“그게 아니니까 제가 여기를 찾아왔지요.”

이정혁은 나에게는 원수이지만, 어찌 되었든 할아버지에게는 아들이었다.

내가 이대로 모든 걸 터뜨리면 이정혁은 당연히 감옥에 가겠지만 아마 할아버지가 많이 속상해하실 게 뻔했다.

그래서 나는 할아버지와 협상하는 걸 선택했다.

할아버지와 잘 협상하면 굳이 이정혁을 보내버리지 않아도 내가 목표한 바를 이룰 수 있을뿐더러, 나중에 또 할아버지의 도움을 받을 수 있겠지.

할아버지가 말했다.

“제일 ENM 주식을 잘도 모으고 있더구나. 그래, 내가 너를 차기 제일 ENM 사장으로 밀어주면 되는 게냐?”

역시 할아버지께서는 내가 원하는 것을 정확히 짚고 계셨다.

그리고 이것이 나와 이정혁의 관계를 해소하는 유일한 방법이기도 했다.

이정혁이 패배를 인정하고 깔끔하게 물러나는 것.

하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제일 ENM의 사장이 분명 탐나는 자리지만, 그거보다는 조금 더 나아가길 원했다.

“할아버지께서 가진 주식을 제가 전량 매입하고 계열 분리를 하고 싶습니다.”

할아버지는 놀란 듯 나를 쳐다보았다.

“계열 분리를 하고 싶다고?”

“네. 제일 ENM이 아니라 KW 미디어라는 이름을 달고 새로 시작하고 싶습니다.”

표면적으로는 대기업인 제일 ENM이 중소기업이 KW 미디어를 인수하는 그림이겠지만, 간판이 KW 미디어로 바뀐다.

이름이 갖는 힘을 생각한다면 제일 그룹의 영향력이 줄어드는 셈.

할아버지는 눈살을 찌푸렸다.

“안 된다. 네가 제일 ENM의 사장이 되는 것까지는 양보할 수 있다. 지금까지 그럴 능력을 입증해왔고 말이야. 하지만 제일에서 KW로 이름이 바뀌는 건 다른 문제다.”

나는 할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했다.

그렇게도 소중히 여기는 ‘제일’의 이름이 KW로 바뀌는 게 마음에 들지 않으시겠지.

나는 할아버지를 설득했다.

“할아버지. 저도 제일 가의 일원입니다. 제가 KW 미디어로 이름을 바꿨다고 해서 제일 가의 사람이 아니게 되는 건 아니지요. 제 회사인 KW 코퍼레이션도 범제일가의 일원이라 생각하시고 받아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범 제일가.

제일 그룹의 역사가 오래된 만큼, 그 뿌리에서 파생된 수많은 방계 그룹이 있었다. 나는 계열 분리를 하더라도 그 안에 남아있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범 제일가라···.”

할아버지가 반쯤 넘어오는 것처럼 보이자 나는 재빨리 말했다.

“그리고 합병함으로써 지금의 위기를 딛고 더 크게 키울 수 있습니다. 지금 제일 ENM의 오너 리스크는 컨트롤 할 수 없다고 봅니다. 저는 제일 ENM이 이렇게 쓰러지는걸 원치 않습니다."

나는 눈을 빛냈다. 지금이 쐐기를 박을 타이밍이다.

"어머니의 유산을 받을 때 약속했잖아요. 허투루 쓰지 않고 더 키우겠다고. 저는 그때의 다짐을 잊고 있지 않았습니다. 저도 제일 그룹의 한 사람이라는 걸 잊지 말아 주세요.”

“녀석. 말도 잘 하는구나.”

할아버지의 이마에 진 주름이 살짝 펴졌다. 나는 속으로 호재를 외쳤다.

“좋다. 내 주식을 전부 넘겨주고 계열 분리를 시켜주겠다. 하지만 값은 제대로 치러야 할 거다.”

“물론이지요.”

*

사흘 후, 나는 할아버지가 가진 지분 40%, 그러니까 900만 주를 블록딜로 넘겨받았다.

1주당 8만 원으로 총 7200억 원. 내가 코인으로 벌어들인 돈의 절반 정도이다.

지금 주가가 40% 정도 떨어져서 다행이지 원래대로였다면 1조가 넘는 돈을 지급해야 했다.

나는 나름대로 손자 디스카운트를 생각하고 있었는데, 백 원 하나 빼먹지 않고 다 챙겨가시더라.

우리 할아버지, 얄짤 없으시다.

일부러 시장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장이 끝난 후에 지분을 넘겨받았다. 덕분에 장중 주가 급락을 피할 수는 있었지만, 블록딜을 했으니 다음날 주가가 하락하는 건 어쩔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때쯤이면 사람들도 알게 되겠지.

제일 ENM의 대주주가 바뀌었다는 걸.

내가 원래 가지고 있던 지분 4.99%와 할아버지에게서 넘겨받은 지분 40%.

거의 절반 가까이 가지고 있으니 제일 ENM은 내가 손아귀에 넣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는 셈이다.

내 쪽과 제일 그룹에서는 바로 보도자료를 냈고, 아마 지금쯤이면 이정혁 또한 제일 ENM의 주인이 바뀌었다는 것을 알게 됐을 것이다.

그럼 아버지의 은퇴를 축하드리러 가볼까?

*

이정혁은 포털의 메인 뉴스란에 올라온 기사를 보고 눈을 부릅떴다.

<제일 ENM, 최대 주주 KW 미디어로 변경>

<제일 그룹, 7200억 원 규모 최대주주 지분 매각>

하룻밤 사이에 제일 ENM의 최대주주가 바뀌었다. 그것도 자신이 기밀 유출 건을 수습하느라 정신이 없는 사이에, 아버지와 아들이 벌인 일이다.

‘어떻게 아버지께서···.’

이건우야 그렇다 치더라도, 아버지가 자신을 뒤에서 물 먹였다는 사실에 배신감과 분노가 치밀어올랐다.

그가 이 자리를 어떻게 차지했는지 알면서, 후계위를 위해서 치열하게 노력하고 있는 것을 알면서도 자신이 아니라 손자를 택하다니!

그는 당장 이만호 회장의 저택으로 쳐들어갔다.

“아버지!”

만류하는 비서를 밀치고 서재 문을 열어젖혔다. 서재 안에는 이만호 회장과 이건우가 책상을 두고 마주 앉아있었다.

책상, 그는 한 번도 가까이 가본 적이 없는 자리이다.

이정혁은 또 한 번 열등감을 느꼈다. 자신에게 보인 적이 없는 애정을 아들에게는 보란 듯이 주다니.

이만호 회장과 이건우는 그가 올 줄 알았다는 듯이 태연하기만 했다. 이건우는 일어나며 말했다.

“그럼 다음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그래. 들어가거라.”

이정혁을 그대로 지나치려는 이건우를, 이정혁이 붙잡았다.

“무슨 말로 회장님을 구슬린거냐. 그런다고 제일 ENM이 네 것이라도 될 줄 알았나?”

“회장님을 구슬린 게 아닙니다. 지훈이와 나란히 감방에 갈 당신을 회장님께서 살려주신 거죠. 그리고 말은 똑바로 합시다. 제일 ENM은 이미 제 겁니다.”

이건우가 비뚜름하게 웃으며 주식 양도 서류를 팔랑거렸다.

“그럼 이만”

“이건우!!!!”

이정혁이 뒤에서 소리를 쳤지만, 이건우는 콧노래를 부르며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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