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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이사냥 (5)
김남일의 비리를 찾아내기는 너무나도 쉬웠다.
오히려 해 먹은 것들이 너무 많아 뭘 골라야 할지 정하는 게 더 어려웠을 정도.
그렇게 추려낸 김남일의 비리는 크게 정리하면 총 세 가지였다.
<드라마 구매과정에서의 뇌물 상납>
<대형프로그램 연출>
<광고방송 커미션>
그가 이사직에 있으면서 저질렀던 비리도 있고, 실무로 활동하면서 저질렀던 비리도 있다.
이 정도면 시간을 끌 필요도 없었다.
나는 캐리온에게서 정보를 받는 즉시, 한서진을 데리고 김남일 이사에게 쳐들어갔다.
노크 따위는 간단하게 생략하고 김남일의 사무실 방문을 열어 재꼈다.
나의 과격한 방문에 김남일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너, 너 뭐야.”
“이건우입니다만.”
“이건우? 이정혁 사장의 아들 말이냐?”
“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김남일은 기세등등한 얼굴이 되었다. 이정혁의 아들이라니까 만만해 보이나 보지?
김남일은 자리에서 일어나 나에게 삿대질을 하며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이 사장 이거 안 되겠네. 이 버르장머리 없는 놈 같으니라고. 너 아버지한테 그따위로 배웠어?”
흐음. 저 손가락, 너무 거슬리는데? 마침 한서진도 나랑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나 보다.
한서진은 김남일에게 다가가 손가락을 잡고 그대로 뒤로 꺾었다.
“으아아악!”
김남일의 비명이 방 안을 가득 채웠다. 한서진의 그의 무릎 뒤를 툭 치자, 저절로 무릎이 꿇렸다.
한서진은 그를 내려다보며 눈을 예쁘게 접었다.
“아저씨. 우리가 언제 봤다고 사장님한테 반말을 지껄이세요? 손가락이 너무 예의 없다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으아아악 그만, 그, 그만···.”
“잘못했으면 사과를 해야겠죠?”
“내가 잘못했네. 아니, 잘못했습니다. 그러니까 이 손 좀···.”
한서진은 그제야 잡은 손을 풀었다. 그녀는 킬러라는 걸 밝힌 이후 거침없이 행동하고 있었다. 데리고 다니니까 일이 굉장히 편해졌다.
이제 대화할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김남일은 한서진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무슨 말을 하려고 온 건지는 알겠는데, 제일 ENM과 계약하는 건 이미 정해진 일이에요.”
오, 나름대로 반항을 하는데?
뭐, 겨우 여기에서 굴복하면 내가 이 자료들을 수집한 의미가 없지.
나는 빙긋 웃으며 캐리온이 만든 서류들을 책상에 올려놓았다.
“아 그래요? 그렇다면 이사님께는 안 된 일이네요. 그 계약을 하면 감방에 가실 텐데.”
“뭐?”
한서진이 찌릿 노려보자 김남일은 뒤늦게 ‘요’를 붙였다.
나는 파일을 흔들며 말했다.
“그 계약을 하면 내가 이 자료를 언론에 다 공개해버릴 계획이라서요.”
“자료?”
김남일의 눈에 의문이 들었다. 내가 가지고 온 자료의 정체에 대해서 짐작조차 하지 못한 모양이다.
“아, 이게 뭔지 궁금하신 모양이군요. 제가 설명해드리지요.”
천성이 친절한 나는 차근차근 풀어서 설명했다.
“먼저 드라마 구매과정에서 뇌물을 상납받으셨네요.”
아무리 잘 만든 콘텐츠라도 방송사가 구매하지 않으면 소개될 수 있다. 따라서 방송사가 갑이, 제작사는 을이 될 수밖에 없다.
제작사는 제작비용을 과대계상하거나 배우의 개런티를 허위로 높이는 식으로 비자금을 만들고, 차액을 방송사 간부에게 뇌물로 상납한다.
“그리고 대형프로그램 연출 예산을 빼돌리셨고요.”
방송사는 가끔 대형 기획 프로그램을 제작한다. 보통 이런 기획 프로그램에는 막대한 예산이 배정되는데, 비용이 워낙 크다 보니 예산이 새는 경우가 많이 있다.
“CP로 있을 때는 광고방송 커미션도 착실히 받아 챙기셨군요.”
간단히 말하자면, 광고 방영료를 실제보다 높게 책정한 후 광고중개상을 내세워 차액만큼의 커미션을 수취하는 방식이다.
그 외에 실무로 뛸 때도 설비 구매, 협찬사 선정 등에서도 비리가 있었지만 그건 자잘해 보일 정도라서 그냥 뛰어넘었다.
나는 캐리온이 조사한 내역을 보고 깜짝 놀랐다. 어떻게 하면 이렇게 창의적으로 돈을 빼돌릴 수가 있는지!
진즉에 이 머리를 일하는 데 사용했으면 JTBS는 김남일의 손에 들어가 있을 텐데.
이상하게 돈만 보면 머리가 비상하게 돌아가는 사람이 있나 보다.
물론 지금 이상한 데 머리를 쓴 대가를 치르고 있지만.
창백하게 질린 김남일 이사가 소리쳤다.
“이건 누명입니다. 증거, 증거 있어요?”
나는 피식 웃었다. 어떻게 다들 레퍼토리가 똑같은지.
“증거요? 차고 넘치죠.”
내가 손을 내밀자 한서진이 서류를 한 아름 넘겨주었다. 두 손으로 안아야 할 분량이었다.
나는 서류를 책상 위에 쾅 올려놓았다.
“사본이니까 찢어도 소용없어요. 원본은 지금 검찰에 제출할까 말까 고민 중인데 어떻게 할까요?”
김남일은 이제 반쯤 정신이 나간 얼굴이었다.
“원하는 게 뭐요.”
항복 선언이었다.
“지금 당장 내 눈앞에서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서 계약을 파기하겠다고 전하세요. 그리고 모든 책임을 지고 사퇴하시고. 어차피 모아둔 돈도 많이 있겠다, 노후는 편하게 보낼 수 있잖아요?”
“그러면 신고하지 않을 겁니까?”
“당연하죠. 내 이름을 걸고 약속하죠.”
호언장담에 김남일은 내 약속을 믿는 모양새였다.
물론 이건우는 망나니로 살았기 때문에 명예 따위는 개나 주라는 가치관을 갖고 있지만, 눈앞의 김남일은 그걸 몰랐다.
김남일은 이정혁에게 전화를 걸었다.
- 네. 이사님.
“사장님 죄송하지만 파트너십 계약은 못 할 것 같습니다.”
잠깐의 침묵 후 이정혁이 되물었다.
- ···그게 무슨 말씀이지요?
“죄송합니다.”
- 이보···
뚝
김남일을 그대로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마친 김남일은 나를 노려보며 말했다.
“이거면 됐습니까?”
나는 일어나면서 말했다.
“사후처리까지 깔끔하게 마무리 짓고 떠나세요. 그러면 이 서류가 밖으로 새어나갈 일은 없을 겁니다.”
나는 한서진과 함께 이사실을 떠났다. 그 순간 캐리온이 말했다.
[일이 끝나는 대로 차명계좌를 해킹해서 돈을 빼돌리겠습니다.]
나는 짙은 미소를 지었다. 역시 캐리온은 내 마음을 잘 읽는다니까.
눈먼 돈이 앞에 있는데 못 먹으면 병신이지.
그 돈으로 드라마 제작에 투입된 돈이나 보충해야겠다.
*
나와의 개인 면담이 끝난 후, 김남일 이사는 제일 ENM과의 계약이 파기됐다는 것을 공표했다.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를 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
JTBS 내부에서는 갑작스러운 발표에 혼란이 있었지만, 그것을 잠재우는 건 김남일이 알아서 하겠지.
주석영에게 들은 바로는 사퇴하는 김남일의 표정이 그렇게까지 나쁘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그는 지금까지 모아둔 돈으로 호의호식할 거로 생각했겠지만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이다.
그가 퇴임하자마자 나는 캐리온을 시켜 차명계좌에 있던 돈을 내 계좌로 쓸어왔다. 이번에 초기 제작비용을 댄 것에 대한 투자금 회수의 일환이었다.
당연히 김남일 이사가 KW 미디어에 와서 난동을 부렸지만, 한서진에 의해 간단히 제압됐다.
김남일은 세상을 잃은 표정으로 떠날 수밖에 없었다.
차명이니 어디 가서 증명도 못 하고, 증명한다고 쳐도 그 과정에서 저지른 비리가 모두 드러날 것이니 밝히지 못했다.
억울하지만 어쩌겠는가?
그러니 사람이 바르게 잘 살았으면 나한테 털릴 일도 없었잖아?
김남일 이사가 그렇게 물러나자 주석영 사장은 놀라워했다. 반대파 수장이 갑자기 항복 선언을 하는데 어안이 벙벙했을 것이다.
나는 이를 빌미로 수익 배분을 내 쪽으로 유리하게 가져왔다. 원래는 6:4였던 배분을, 8:2로 바꾼 것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치열한 협상이 있었지만, 주석영은 내 공로를 무시할 만큼 양심이 없는 사람이 아니었다.
대신 2년 후에 계약을 갱신하면서 조건을 바꾸기로 했다.
그리고 나서 정식으로 드라마 공동제작 계약을 체결했다.
원래는 JTBS에서 제작하고, 와칭은 유통만 하는 거였는데 공동제작으로 바뀌면서 나한테 더 유리해졌다.
어차피 오리온 작가의 드라마는 성공이 예정된 것이나 다름없는데, 그에 대한 수익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JTBS에 있는 모든 인기 콘텐츠를 와칭에 공급하기로 했다. 구독자들의 반응은 열렬했다.
- 헐. 아는누님이 들어왔다고?
- 와칭 일 잘하네. 이거 보고 싶었던 거였는데ㅠㅠㅠㅠㅠ
- 대박 대박 강남 클라쓰랑 부부의 세상이 들어왔네.
와칭은 돈을 들이부은 광고와 입소문을 타면서 구독자를 점점 늘리고 있었다. 국내에 OTT 플랫폼이 우리밖에 없으니 시장을 빠르게 장악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이정혁은 닭 쫓던 개가 되어서 내가 JTBS와 파트너십을 체결하는 걸 지켜보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나는 이정혁을 치워버리기로 했다.
앞으로도 사사건건 방해를 할 게 뻔하니 미리 제거해두는 게 낫다.
그래서 캐리온에게 명령했다.
“청부해커 렛과 제일 ENM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파봐.”
예전에 한서진의 자료를 빼올 때, 캐리온은 코드를 심어놓았다. 해킹당한 걸 알고 프로그램을 싹 리뉴얼했겠지만, 더미 데이터 속에 있는 암호키는 발견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네. 사흘 후에 보고 올리겠습니다.]
*
그리고 며칠 후 캐리온은 한 가지 희소식을 알려줬다.
[이정혁과 청부해커 렛 사이의 커넥션을 발견했습니다. 자료를 전송합니다.]
제일 ENM과 청부해커 렛의 접점을 발견했다니.
캐리온에게서부터 전해진 희소식에 나는 반색을 했다. 캐리온이 태블릿으로 전송해준 자료를 보며 브리핑을 들었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것은 일 년 전입니다.]
제일 ENM이 미디어의 왕좌를 차지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그 전에는 천하 미디어라는 막강한 라이벌과 함께 미디어 업계를 양분하고 있었다.
[제일 ENM은 청부해커 렛을 고용해 천하 미디어의 실적 정보를 유출했습니다.]
제일 ENM은 천하 미디어가 3분기 실적공시 직전에 미공개 실적 정보를 유출했다. 3분기 영업이익이 100억 원 이하로 떨어질 것 같다는 내용이 주였다.
그리고 기자들은 동원하여 그 내용을 온 미디어에 도배하였다.
제일 ENM의 여론전에 당한 천하 미디어의 주가는 기관들의 매도 물량이 쏟아지면서 11%가량 떨어졌다.
물론 주가가 하락할 걸 미리 알고 있던 제일 ENM은 파생상품 시장에서 하락에 베팅하여 큰 이익을 거뒀고, 덕분에 변동성이 더 심해진 천하 미디어의 주가는 더욱 바닥을 쳤다.
천하 미디어에 닥친 악재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또한 해킹을 통해 드라마 시청률을 직접 조작했습니다.]
한 가구가 실제로 A라는 드라마를 봤으면, 조사기관에 전송된 데이터는 B라는 채널의 드라마를 보고 있다는 식으로 직접 해킹해서 데이터를 조작하는 것이다.
동 시간대 시청률은 제로섬 게임이니, B 드라마는 이익을 보고 A 드라마는 손해를 본다.
참고로 이때 B 드라마는 제일 ENM의 드라마였고, A 드라마는 천하 미디어의 드라마였다.
[그리고 제일 ENM에서 천하 미디어 오디션 프로그램 순위 조작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이건 이정혁이 꾸민 일이 아니지만, 직접 기자들을 지휘해가며 판을 키운 사건이었다.
세 가지 악재가 겹치면서 천하 미디어는 버티지 못하고 혼란에 휩싸였고, 그때를 틈타 제일 ENM의 미디어의 제왕이 되었다.
물론 천하 미디어에서 잘못한 부분도 있지만, 제일 ENM의 수작만 아니었다면 그렇게 쉽게 무너질 회사도 아니었다.
‘그리고 이 사실이 알려지면 제일 ENM은 회생 불가의 타격을 입겠지.’
해킹을 통한 경쟁사 기밀 유포. 기밀을 이용한 주가 조작 및 부당 이득 갈취. 그리고 시청률 조작까지.
이 정도 사건이면 이정혁이 책임지고 사퇴하는 건 기정사실이고, 아마 제일 ENM을 넘어 제일 그룹 전체에까지 영향을 미칠지도 모른다.
그리고 할아버지는 ‘제일’의 이름에 타격이 가는 걸 극도로 싫어하신다.
심지어 어려서부터 애지중지하던 손자 녀석이 제일의 이름을 깎아내린다면 더욱 속상해하실 게 분명했다.
하지만 이정혁이 사사건건 나를 방해하는 이상 가만히 두고 볼 수도 없는 일.
그렇다면 답은 나왔다.
“제일의 이름을 지키면서도 이정혁을 쳐내야지.”
나는 손실을 최소화하면서 이정혁을 찍어낼 계획을 생각했다. 이정혁을 찍어내려면 앞으로 이정혁이 뭘 할지 정도는 알아야 하겠지.
“그러면 이정혁의 다음 행보는 뭘까?”
내 혼잣말에 캐리온이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해줬다.
[이정혁이 SBC 사장과 접촉하려는 움직임을 보입니다.]
나는 미소를 지었다.
아마 OTT 사업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나 보군.
나도 얼마 전에 누군가가 내 OTT 사업에 훼방을 놔서 마음이 아팠었는데 말이지.
“내 일을 망치려고 했으니 나도 똑같이 갚아줘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