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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이사냥 (4)
그 이후에 일을 볼 필요도 없었다. 그 모든 이야기가 PD를 포함한 방송 관계자들에게 실시간 라이브로 자연스럽게 전달이 되었다.
“와, 이정혁 사장이 뒤에서 이런 짓을 벌일 줄이야.”
“그러게요. 한 기업의 사장이라는 사람이 부끄럽지도 않은가?”
“이정혁 사장이 이건우 사장님 아버지 아닌가요? 아버지라는 사람이 어떻게 이럴 수 있지?”
PD와 스태프들은 이정혁의 더러운 수법에 치를 떨었다.
이쯤 되면 내가 특별히 뭔가 하지 않아도 알아서 방송가에 소문이 돌겠지.
물론 이민기라는 녀석도 앞으로 방송가에 발붙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이민기는 이미 화장실에서 도망치듯 자리를 뜬 상태였다.
이민기가 그렇게 사라지고 난 뒤, 오디션장의 분위기는 어수선함 그 자체였다.
누가 오디션장에 경쟁사에서 보낸 폭탄이 올 거라고 예상이나 했겠어.
무엇보다,
“근데 이민기가 폭탄이기는 했어도 연기는 참 잘하네.”
“그러게요. 지금까지 본 태훈 역할 중에서는 최고였어요.”
연기를 너무 잘했다는 것이다. 덕분에 심사위원들의 눈이 한껏 높아진 상황.
다음 사람은 이민기의 연기를 완전히 뛰어넘지 않으면 캐스팅이 어려워 보였다.
그리고 하필 다음 차례가 우리 회사 소속인 장원준이었다.
하지만 나는 자신이 있었다.
우리 장원준 배우는 무려 그 원로배우 김용호의 시험을 통과한 사람이다.
들리는 바로는 수많은 배우가 은퇴를 선언한 김용호에게 배움을 청했지만, 오직 장원준만이 그 문하에 들 수 있었다.
중간중간 보고받은 바로는 장원준의 연기가 엄청난 속도로 늘고 있다고 했다.
나는 여유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뭐, 더 뛰어난 사람이 나타나지 않겠습니까? 바로 다음 차례에 그런 사람이 나타날 수도 있고요.”
내 말에 다른 심사위원들은 오디션 명단을 보았다. 리스트에는 다음 차례에 장원준이라는 배우가 들어온다고 되어 있었다.
“장원준? 처음 들어보는 이름인데. 프로필도 없네요.”
“KW 미디어 소속이네? 에이, 같은 식구라고 밀어주기예요?”
···그런 건 아닌데.
“뭐 지켜보면 알겠지요.”
생소한 이름에 심사위원들은 크게 기대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그렇게 이민기에 대한 여파가 지워지지 않은 채로 장원준이 들어왔다.
장원준은 나를 보고 놀라는 눈치였다. 하긴 나는 내가 심사위원을 한다고 한마디의 언질도 주지 않았으니 말이다.
나는 봐주지 않겠다는 뜻으로 고개를 내저었고, 장원준이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안녕하세요. 장원준입니다!”
“반가워요. 바로 들어가도 되죠?”
“네. 물론입니다.”
앞에 이민기의 어마어마한 연기 실력을 봤기 때문에 심사위원들은 딱히 크게 관심을 주지 않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여기 이거 떨어졌어요.”
장원준의 대사에 스태프가 ‘어?’하면서 돌아봤다. 스태프가 깜빡 속아 넘어갈 정도로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연기였다.
장원준은 대사를 이어나갔다.
“어, 이거···. 태은이 열쇠고리 아니에요? 이걸 왜 당신이 가지고 있습니까?”
이어지는 말에 연기 중이라는 걸 안 스태프가 머쓱해 하며 빠져나갔다.
주변 사람들을 집중하게 하는 그 아우라에 심사위원들은 ‘호오’하는 눈빛으로 장원준을 바라보았다.
나도 처음 보는 장원준의 연기에 빠져들어 집중하게 되었다.
깐깐한 원로배우의 오디션을 통과하고 제자가 되었다더니, 확실히 재능이 있네.
심사위원들도 장원준이 마음에 들었는지 몇 가지 씬을 더 시켜보고 저희끼리 이야기를 나누었다.
“감정을 굉장히 빨리 동화시키네요. 시나리오 분석을 철저하게 했어요. 서브 텍스트를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네요.”
“맞아요. 대사 톤, 억양, 행동, 버릇까지 굉장히 디테일하게 짜왔어요. 프로필에 별다른 내용이 없는 걸 보면 생짜 신인인데 어떻게 저렇게 할 수가 있죠?”
“방금 저거 카메라 구도를 고려해서 동선까지 정한 거 맞죠?”
“아, 이거 물건이네요. 앞에 이민기도 잘 했는데, 장원준 씨가 그 생각을 완전히 지워버렸어요.”
내 식구의 활약에 나도 폭풍 칭찬을 해주고 싶었지만, 자칫 편파적으로 보일까 말을 아꼈고, 그걸 아는 다른 사람들도 이번에는 나에게 의견을 묻지 않았다.
장원준 이후로도 다른 참가자들이 들어왔지만, 그보다 더 잘한 사람은 없었다.
모든 오디션이 종료된 후, 나를 비롯한 모든 심사위원의 의견은 일치했다.
“장원준 씨 연기가 엄청나던데요? 태민 역할이 장원준 씨를 보고 만든 배역인 줄 알았어요.”
“그러게 말이에요. 이건우 사장님이 괜히 장원준 씨를 밀었던 게 아니구나?”
장원준이 이 정도로 잘할 줄은 나도 몰랐다.
나는 그 말에 멋쩍게 웃었고, PD는 이번 오디션의 마침표를 찍었다.
“태훈 역에는 장원준 씨를 캐스팅하겠습니다.”
*
KW 미디어는 축제 분위기였다. 소속 연예인들이 이번에 모두 데뷔를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박세나는 OST 메인 주제곡에 자신이 부른 노래가 선정되었다는 소식에 눈물을 쏟아냈다.
“흐어엉 사장님 감사해요. 제가 OST를 부르, 후읍, 다니···.”
오 년 동안 무명 생활을 했으니 마음고생이 심하기도 했겠지.
나는 눈물 콧물을 질질 흘리는 박세나에게서 멀찍이 떨어지며 손수건만 넘겨주었다.
“이번 OST로 예열을 하고 바로 미니 앨범을 낼 거니까 준비 잘 하고 있어.”
“네 알겠습니다! 크헝엉”
“······.”
내 손수건에 힘차게 코를 푸는 박세나를 보며 생각했다. 저 손수건은 이제 못 쓰겠구나···.
“그리고 원준이는 이번에 오디션에서 잘 하더라. 괜히 김용호 선생님의 제자가 된 게 아니었네.”
“헤헤”
장원준은 수줍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평소 성격은 소심한 편인데 무대에 올라가기만 하면 성격이 정반대로 바뀌는 타입이다.
“이번에 뽑힌 사람 중에 너보다 경력이 짧은 사람은 없으니까 열심히 인사하면서 다녀. 차장님께서 당분간 원준이 좀 데리고 가르쳐주세요.”
내 말에 황민혁 차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남은 것은 이민기에 대한 사후처리.
이정혁이 나에 대해 복잡한 감정이 있는 건 안다.
증오하는 여자의 아들인데, 애지중지하는 둘째를 망치려 들었으니 더더욱 싫어졌겠지.
하지만 나는 원래 이정혁에 대한 감정이 없었다.
그렇지만 이건우의 영혼에 점점 동화되었기도 하고, 그가 자꾸 내 앞길을 막으려 드니 점점 악감정만 생긴다.
감히 내 첫 드라마를 망치려고 해?
그렇다면 나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제일 ENM이 한 대 치려는 걸 알았으니, 나도 똑같은 방법으로 한 대 돌려주는 게 예의가 아니겠는가?
내 생각을 짐작한 듯 캐리온이 말했다.
[제일 ENM에서 섭외한 배우들 신상을 모조리 털어보겠습니다.]
“오케이”
업그레이드한 이후 캐리온은 훨씬 능동적으로 변했다. 내 생각을 먼저 읽고 움직이는 느낌이랄까.
캐리온이 움직인 이상, 제일 EMN에 캐스팅된 배우들의 모든 것을 조만간 받아낼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억울할 수도 있겠지만 뭐, 사장을 잘못 만난 죄라고 생각해야지.
어쨌든 OTT 플랫폼 ‘와칭’은 순항 중이었다.
제일 ENM과 JTBS의 콘텐츠를 한 번에 볼 수 있다는 것과 인기 있는 외국 드라마와 영화를 수급해온 것이 주효했다.
구독자의 수는 꾸준하게 증가하고 있었으며, 일간 사용자 수도 구독자 수보다 무척이나 높은 편이었다.
물론 이런 사람들도 있었다.
- 한 달 무료 동안 몰아서 보고 끊어야지
- 한 달 무료가 개꿀인 듯
하지만 이런 사람들을 잡아두는 게 플랫폼의 역량 아니겠는가.
나는 시청자들이 만족할 수 있도록 꾸준히 콘텐츠를 업데이트했고, 조만간 이번 JTBS의 드라마의 예고편 및 선공개 일정이 업데이트될 예정이었다.
한 달 무료 구독이 끝날 때쯤 JTBS 신작 드라마도 프리프로덕션을 끝내고 본 촬영에 들어갈 것이고, 그에 맞춰서 선공개를 진행할 예정이다.
그리고 그때쯤이면 이사회와의 문제도 정리가 되어서, JTBS의 콘텐츠를 추가로 들여올 수 있다.
그러면 빠져나가는 구독자도 효과적으로 잡을 수 있다.
아마 이번 JTBS의 드라마를 한번 보기 시작하면 쉽게 구독을 해지하지 못할걸?
구독할 땐 마음대로였지만, 해지하는 것은 아니란다.
*
KW 미디어가 기쁨의 파티를 하고 있을 무렵, 제일 ENM의 분위기는 좋지 못했다.
이번 오디션을 본 장소가 바로 제일 ENM의 자회사인 스튜디오 라이언이었기 때문이다.
오디션 스태프들 사이에서 퍼진 이정혁의 소문은, 스튜디오 전체로 퍼졌고, 다시 제일 ENM 본사에도 퍼졌다.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말이다.
이정혁이 점심을 먹고 들어오는데 직원들이 그를 힐끗힐끗 보면서 지나가는 게 느껴졌다.
물론 사장을 보는 게 쉽지 않은 일이니 평소에도 그를 그런 식으로 보는 시선에는 이골이 나 있지만, 이번에는 뭔가 달랐다.
경멸이 섞인 눈빛이랄까.
자존심 하나는 어마어마한 이정혁은 그 시선을 견딜 수 없었다.
그는 어째서 직원들이 자신에게 그런 시선을 던지는지 알아보기로 했다.
이정혁은 몰래 흡연구역으로 가서 담배를 피우는 척하며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오디션장에서 이건우 사장이···.”
“그럼 우리 사장님이 스파이를 심어놓은 거야?”
“스파이가 아니라 폭탄이지.”
이정혁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오디션 일이라면 이민기···?’
이민기가 오디션에서 떨어졌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그것도 이민기가 갑자기 연락이 두절되서 사람을 시켜 알아봐서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걸로 끝난 줄 알았는데 저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니 뭔가 심상치 않았다.
그는 말을 꺼낸 직원에게 다가갔다.
“흠흠, 방금 그 말은 무슨 이야기지요?”
신나게 떠들던 직원은 뒤를 돌아봤고, 연단에서 가끔 본 얼굴이 서 있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헛 사장님!”
“아, 안녕하십니까. 그런데 여기는 어쩐 일로···.”
“흡연구역에 무슨 일로 옵니까. 담배 피우러 왔지요.”
“아예.”
“그런데 그쪽이 하는 얘기에 흥미가 생겨서요. 자세히 들려주겠습니까?”
말투는 정중했지만 이정혁의 눈빛은 사납기 그지없었다. 직원은 울상을 지은 얼굴로 동료를 돌아봤지만, 다들 먼 허공만을 바라볼 뿐. 그를 도와줄 동료는 없었다.
직원은 더듬더듬 사실을 고했다.
“저도 스튜디오 라이언에 근무하는 친구에게서 들은 건데 말입니다···.”
물론 서두를 늘리며 책임을 전가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직원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이정혁을 붉게 달아오르게 했다.
이정혁이 오디션장에 이민기라는 폭탄을 심어두고, 드라마가 시작하면 터뜨려서 망하게 하려고 했다는 것.
그의 수작은 낱낱이 드러났고, 부하 직원들마저 그를 무시하는 상황에 이르게 된 것이다.
특히나 제일ENM은 드라마를 제작하는 입장이기에 이런 공작에 대해 부정적으로 반응하는 것이 당연했다.
이정혁은 수치심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자존심 하나로 살던 그였는데, 그마저 무너지고 있었다.
“잘 들었습니다. 여러분은 그따위 헛소문에 귀 기울이지 않았으면 좋겠군요.”
애써 담담하게 말하고 돌아선 그는 도망치듯 사장실로 왔다.
쾅!
그의 책상을 정리하고 있던 비서가 놀라서 돌아봤다.
“···사장님?”
“당장 나가.”
심상치 않은 모습을 보자 비서는 입을 꾹 다물고 나갔다. 이정혁은 물을 벌컥벌컥 들이마시더니 화가 났는지 컵을 내던졌다.
쨍그랑!
유리잔이 대리석 바닥에 부딪히며 산산이 조각나버렸다. 마치 그의 자존심처럼.
이정혁은 씨근덕거리며 생각했다.
이건우에게 들킨 것도 부끄러운데, 모든 사람이 그 사실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니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다.
그는 거친 숨을 내쉬며 생각했다.
‘도대체 어떻게 알았지?’
방금 직원에게 들은 바로는 이민기의 정체가 오디션 장소에서 바로 탄로 났다고 했다. 하지만 이정혁이 생각하기에 그 어디에도 눈치챌 만한 단서는 없었다.
이민기는 사장실에서 단둘이 만났고, 연락도 개인 휴대폰으로 진행했었다. 아는 사람은 이민기를 수배한 비서실 사람들 정도···.
‘설마 내부에서?’
내부자가 이건우와 내통하지 않는 한 이민기를 알아낼 방법이 없다. 그게 이정혁이 내린 결론이었다.
물론 전혀 아니었지만.
‘물갈이를 한 번 해야겠군.’
이정혁은 스스로 자신의 수족을 쳐내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이건우의 계획대로였다.
*
그 시간, 나도 주석영 사장의 전화를 받고 있었다.
- 김남일 이사의 압박이 점점 더 심해지고 있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이제 곧 일을 시작할 테니까요.”
- 어떻게 처리하실 겁니까?
주석영의 목소리에는 약간의 걱정이 담겨 있었다. 나는 빙긋 웃었다.
“뭐, 영업 비밀이지만 사장님은 같은 배를 탄 사이니 살짝만 알려드리겠습니다.
내 말에 전화기 너머로까지 주석영의 호기심이 전해졌다.
“잘 타이를 겁니다.”
- 네?
주석영의 허탈한 목소리가 이어졌지만 나는 대답하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 돌아온 한서진이 옆에서 나에게 자료를 건네주었다.
“JS생활건강을 인수할 때도 느꼈던 거지만, 쓰레기 같은 인간이 참 많네요.”
“그 덕분에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는 거겠죠. 오늘도 잘 부탁드려요.”
한서진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생글생글 웃었다.
“어머, 제가 뭘 한다고 그러세요.”
···엄마, 나 이 여자 무서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