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로 갑질하는 양아치 재벌-34화 (34/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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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이사냥 (3)

오디션장은 큰 회의실을 빌려서 진행되었다. 여기저기서 목소리가 들렸다.

“태훈 역 오디션 참가하신 분들은 이쪽으로 와 주시기 바랍니다!”

KW 미디어 소속 배우 지망생인 장원준은 눈을 감고 심호흡을 했다. 들고 있는 대본은 너덜너덜해졌고 글씨가 빼곡하게 적혀있다.

그가 김용호 선생님께 연기를 배우기 시작한 것도 어엿 한 달이 넘었다.

마치 꿈을 꾸는 것만 같았다. 이전 회사에서는 뉴튜브를 보면서 연기를 배우는 게 전부였는데, 갑자기 회사 사장이 바뀌더니 모든 것이 바뀌었다.

처음으로 생활비라는 것도 받아보고, 제대로 된 선생님도 생겼다. 심지어 그 선생님이 원로배우로 유명한 김용호 선생님이었다.

김용호 선생님은 그에게 재능이 있다며 열심히 가르쳤고, 그는 그간 제대로 배우지 못한 것에 대한 갈증을 채우기라도 할 것처럼 쑥쑥 빨아들였다.

‘너는 재능이 있어. 특히 캐릭터를 만들어내는 데에 일가견이 있구나. 네가 만들어낸 캐릭터를 보면 살아 움직이는 것 같아.’

그는 선생님의 칭찬을 떠올리며 자신감을 가지려고 노력했다.

그때 한 참가자가 대기석에 왔고, 사람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쟤, 이민기 아니야?”

“맞네. 저번에 페스티벌에서 우승한 애잖아.”

“뮤지컬 배우로도 활동하고 있다는데? 하긴 이 배역이 준주연급이니까 도전하고 싶었겠지.”

“이민기가 나왔으니 우리는 병풍 되겠다.”

이민기. 장원준 역시 들어본 이름이었다. 배우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우승하면서 천재 배우로 이름을 알렸다.

그 이후로 바로 데뷔하지 않고 극단을 전전하며 연기 내공을 쌓는 데 주력했다고 들었다.

그런 실력파 배우가 나오니 장원준은 기가 살짝 죽었다.

곧 오디션이 시작되었다. 사람들은 하나둘씩 들어갔다가 세상 잃은 표정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민기의 이름이 호명되었다.

“이민기 씨! 들어오십시오.”

이민기는 다른 사람과 다르게 자신만만한 태도로 들어갔다.

‘안녕하십니까! 이민기라고 합니다.’

‘예. 반갑습니다. 35페이지 23번 씬, 바로 가능할까요?’

‘네. 물론입니다.’

문 너머로 이민기의 목소리가 약하게 새어 나왔다. 장원준은 귀를 쫑긋 기울이며 그가 어떻게 태훈의 역을 해석했는지 들었다.

감정이나 표정은 전달되지 않았지만, 목소리에 실린 강세와 말투를 보면 이민기가 연기하는 태훈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첫 감상은,

‘잘한다’

감탄이었다. 하지만 기죽지는 않았다. 자신이 생각하는 태훈은 다른 사람이었으니까.

외모, 머리, 싸움까지 모든 면에서 완벽하다.

다이아몬드 같은 단단한 완벽함을 연기하지만, 극단적인 경우에 몰렸을 경우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폭력적 성향 또한 드러난다.

하지만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상냥함 또한 가진 이중적인 인물이다.

그런 섬세한 캐릭터를 연기했고, 장원준은 표현할 자신이 있었다.

이윽고 오디션이 끝났는지 더이상 말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그리고 처음으로 긴 시간이 지났는데도 이민기는 오디션장에서 나오지 않았다.

“어, 뭐지?”

“설마 이민기가 바로 캐스팅된 건가?”

사람들을 의외의 사태에 당황하기 시작했고, 장원준도 그중 한사람이었다.

‘아직 내 연기는 보여주지도 못했는데. 어떻게 된거지?’

장원준이 불안감 속에서 한창 헤매고 있을 때, 오디션장의 문이 다시 열렸다.

그리고 그 안에서 사색이 된 표정의 이민기가 도망치듯 빠져나갔다. 그리고 잠시 뒤, 오디션장에서 나온 스태프가 이름을 불렀다.

“장원준 씨! 들어오십시오.”

정신을 차린 장원준이 오디션장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이건우는 오리온 작가의 대타로 오디션을 봤다.

물론 연기에 대해서 1도 모르는 그는 그저 캐리온이 말해주는 대로 심사평을 날렸다.

“해당 역할은 충동적이며 극도의 애정결핍까지 뒤섞여 시한폭탄과 같습니다. 하지만 그런 부분이 너무 밋밋하게 표현됐어요.”

“음···. 대사에 너무 힘이 들어가 있어요. 대사만 달달 외우고 바로 움직인 느낌이랄까, 인물을 받쳐주는 힘이 부족하네요.”

“좋습니다. 겉으로는 치밀하지만 허당미가 넘치는 모습을 잘 표현해 주셨습니다.”

캐리온은 자신의 작품이라 그런지 열성적으로 평가를 했고, 그 덕분에 이건우의 목은 혹사당하고 있었다.

옆에서 피디가 감탄했다.

“···사장님이 작가님 대신해서 오신 이유를 알겠군요. 이 정도까지 작품을 세세하게 꿰고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안목이 저보다 낫네요. 연기를 몇십 년은 한 사람 같아요.”

이건우가 어색하게 웃었다. 작가 본인이 평가한 거니 정확할 수밖에.

재주는 곰이 부리고 칭찬은 자신이 받는 느낌이었다. 캐리온이 투덜거렸다.

[저 사람들의 칭찬이 아주 잘못된 사람에게 가고 있군요.]

그리고 태훈 역의 오디션이 시작되었다.

캐리온은 마음에 드는 사람이 없는지 여지없이 혹평을 날렸고, 이건우는 참가자들에게 호랑이 심사위원으로 찍히는 중이었다.

피디가 살살 하자고 말할 때쯤, 이민기가 들어왔다.

“안녕하십니까! 이민기라고 합니다.”

“예. 반갑습니다. 35페이지 23번 씬, 바로 가능할까요?”

“네. 물론입니다.”

이민기는 바로 연기에 들어갔다. 어떤 전조도 없었다.

“아 진짜 권변. 혹시 무슨 일 있어? 얼굴이 왜 이렇게 죽상이야.”

“봄 타서 그런가? 외로워서 그러는구나.”

“야, 무슨은 무슨. 아니다. 이럴 게 아니라 우리 권변 소개팅 좀 해주자, 응?”

인물이 선명하게 보였다. 다른 참가자들이 인물을 ‘연기’했다면, 이민기는 인물 그 자체가 되었다. 호흡과 손짓까지 태훈에게 맞춰서 조형했다.

캐리온이 평가했다.

[좋습니다. 캐릭터에 대한 분석도 탄탄하게 되어있고, 배역에 자연스럽게 녹아내렸습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인물의 이중성을 섬세하게 표현하지 못한 점입니다만, 그것만 제외한다면 완벽합니다.]

줄곧 깎아내리기만 하던 캐리온답지 않은 호평이었다. 심사위원들끼리 의견을 교환하는데도 이민기로 낙점하자는 의견이 많았다.

KW 미디어 소속 배우인 장원준도 참여한 걸 아는 이건우로서는 조금 아쉬운 상황.

그런데, 예상하지 못한 타이밍에 캐리온이 중요한 정보를 전했다.

[이민기와 이정혁의 접점이 확인되었습니다.]

역시 여기서 훼방을 넣지 않으면 우리 아버지가 아니다.

좋아, 그럼 이번에는 무슨 방법을 썼는지 들어볼까?

[이정혁이 아는 부동산 재벌의 막내아들이 이민기입니다.]

[이정혁이 이민기에게 오디션을 보라고 권유하였습니다. 대가로는 제일 ENM 소속의 배우가 되게 해주겠다고 했군요.]

[그리고 이민기의 사생활은 더러운 수준을 넘어 동물의 왕국 급이네요. 아마 캐스팅이 되면 그걸 문제 삼아 드라마를 공격하려는 방법으로 보입니다.]

‘호오, 그렇단 말이지.’

이런 선물을 보내주다니 고마워서 눈물이 날 것 같군. 이런 좋은 선물을 받았으면 답례를 해주는 게 인지상정 아니겠는가?

이건우가 캐리온의 말을 듣느라 입을 꾹 다물고 있자, 주위 심사위원들이 그에게 물었다.

“이건우 심사위원님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그러게요. 위원님의 의견도 한번 들어보고 싶네요.”

이건우는 눈을 감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윽고 결단을 내린 듯 그가 말했다.

“자유 연기를 한번 보고 싶군요. 이민기 씨, 할 수 있겠어요?”

물론 이민기에게 선택권은 없다. 하지만 오히려 이민기는 기회라고 여겼다.

‘심사위원들도 다 호평을 했고 이건우도 나에게 관심이 있으니 연기를 더 시켜보는 거겠지. 이렇게 되면 쉽게 통과하겠는데?’

이민기가 생각하기에 오디션은 이미 합격한 것 같았다. 이제 곧 제일 ENM 소속의 배우가 될 것을 생각하니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뭐든 시켜만 주십시오.”

“자세가 아주 좋군요. 그러면 상황만 지정해드리겠습니다. 박지은, 조예나, 송소윤.”

세 여자의 이름이 나오자 이민기는 흠칫했지만 표정이 변하지는 않았다.

이건우는 빙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이 세 명의 여자를 끼고 노는 호스트를 연기해보겠습니까?”

“물론입니다.”

이민기는 당황한 기색이 전혀 없이 바로 연기에 들어갔다. 하지만 속내는 타들어갔다.

‘이건우 사장이 저 여자를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세 사람은 최근에 그가 가지고 놀다가 차버린 여자들이었기 때문이다.

등은 땀으로 젖을 만큼 긴장했지만, 그와 별개로 연기 실력만큼은 출중했다.

갑작스러운 자유 연기를 준비 없이 소화해낼 정도니까. 덕분에 심사위원들은 더욱 그를 높게 평가하는 계기가 되었다.

짧은 연기가 끝나고 심사위원들 사이에서 박수가 터져나왔다. 이건우도 미소를 지으며 칭찬했다.

“잘 봤습니다. 그럼 잠시 쉬는 시간을 가지겠습니다. 이민기 씨는 대기석에서 기다려주시면 됩니다.”

“네. 감사합니다.”

이민기는 도망치듯 오디션장을 나왔다. 그의 안색은 완전히 굳어있었다.

*

쉬는 시간.

이민기는 화장실에 가서 전 매니저와 통화를 했다.

“야, 이 새끼야. 네가 데리고 놀던 년들에 대한 정보를 흘렸지?”

-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전 매니저는 황당해했지만 이민기는 확신했다. 그의 여자관계를 알고 있는 사람은 매니저밖에 없었다. 매니저가 그에게 여자를 구해다 줬으니까.

“네가 안 했으면 이건우가 그년들을 어떻게 알고있냐고! 정보를 불면 돈 준다고 했냐? 얼마 받았어!”

이민기는 머리를 거칠게 쓸어넘기며 히스테리컬하게 외쳤다.

그리고 그 순간, 거울에서 뒤에 있는 남자와 시선을 마주치고 말았다.

이건우가 상냥하게 웃으며 어깨를 두드렸다.

“오디션도 잘 본 친구가 왜 이렇게 화가 났나요?”

이민기는 당황했다.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하고 전화를 걸었는데 뒤에 사람이 있었다니! 그것도 심사위원인 이건우가.

“아, 심사위원님. 이건···.”

“변명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쪽 여자관계가 더러운 건 저도 잘 알고 있으니까요.”

이민기가 애써 웃으며 표정 관리를 했다.

“오해입니다. 매니저가 제 여자친구한테 몹쓸 짓을 해서 화를 내고 있었던 겁니다.”

역시 배우라 그런지 연기 하나는 일품이다. 이건우는 그렇게 생각하며 말했다.

“그러면 이정혁 사장님은 왜 만난 겁니까?”

평온함을 연기하던 이민기의 얼굴에 균열이 생겼다.

“부친께서 이정혁 사장님과 아는 사이더군요. 우리 드라마 오디션에 합격하면 제일 ENM의 배우로 계약이라도 해주겠답니까?”

“그, 그걸 어떻게···.”

콕 집어서 말하는 바람에 당황한 나머지 인정하고 말았다. 이민기는 입을 다물었지만 이미 실토한 뒤였다.

“이정혁 사장님이 할 짓이야 뻔하지요.”

“그런데 그거 아시나요? 이정혁 사장이 왜 그쪽을 골랐는지? 일부러 여자관계가 더러운 폭탄을 밀어넣고 드라마가 시작되면 터뜨리려는 속셈일 테니까요.”

“······.”

거기까지는 생각 못 했는지 이민기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그저 제일 ENM 소속의 배우가 되겠다고 좋아하고 있었는데, 이정혁 사장의 속셈은 그게 아니었나 보다. 그저 이건우를 공격하기 위한 도구. 자신은 그것에 불과했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답이 나왔죠?”

오디션에서 알아서 물러나라는 소리였다. 이민기는 고개를 푹 숙였다.

이건우가 화장실에서 나가려다가 깜박했다는 듯이 말했다.

“아차. 마이크를 끄는 걸 깜박했네.”

그들의 대화가 실시간으로 오디션장에 송출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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