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로 갑질하는 양아치 재벌-27화 (27/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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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러난 정체 (1)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나는 생각에 잠겼다.

‘이정혁이 과연 어떻게 나오려나.’

나는 이정혁이 순순히 계약서에 서명하리라고 생각할 만큼 순진하진 않았다.

바로 얼마 전, 김우영 자살 사건 때 그의 높은 자존심을 꺾은 적이 있다.

아마 평생 누군가한테 숙여본 적 없는 이정혁에게는 큰 충격이었겠지.

아마 이정혁이라면 그 자존심 때문에라도 쉽게 숙이려 들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후에 이정혁과 이지훈 부자가 취할 행보는 캐리온의 정보수집 능력이 없어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먼저 윤단아를 흠집 내려고 하겠지.’

윤단아는 내가 휘두를 수 있는 최고의 무기이다. 그녀를 통해서 언론을 내 편으로 만들 수 있으며, 권력 뒤에 숨어있는 사람들을 무대 위로 끌어들일 수 있다.

그러니 당연히 저들로서는 그 칼을 부러뜨리고 싶을 것이다.

윤단아만 꺾으면 내가 정보전을 치를 수 있는 수단이 사라지는 셈이니, 온갖 수단을 동원하려고 하겠지.

캐리온이 해킹한 카톡 내용을 보니 내 예상에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윤단아의 폭로 영상이 올라간 직후, 이지훈이 있는 약쟁이들의 단톡방에서 윤단아를 어떻게든 해보려는 내용이 있었다.

구체적인 이야기는 청담동 바로 옮겨서 했기에 정확한 계획은 알 수 없지만, 대충 각자 힘을 합쳐서 으?X으?X 헤쳐나가자고 했겠지.

궁지에 몰린 사람은 깊게 생각을 하지 못한다. 더군다나 주어진 시간이 짧다면 생각해낼 방법에는 한계가 있다.

신문사 아들이 있으니 기자들을 풀어서 맞불을 놓을 테고, 건설 쪽은 용역을 부르려나?

나름대로 재벌집의 자제들이 모여있는 집단이다 보니 동원할 수 있는 자원이 일반적인 수준은 뛰어넘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전부 확실하게 때려잡을 자신이 있다. 캐리온이 있으니까.

일단은 여론을 조작하는 놈들부터 손봐 줘야겠다.

놈들이 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미국에 서버를 두고 있는 뉴튜브의 조회수가 올라가는 것은 막을 수 없다. 아마 국내 포털의 실검부터 조작하려 들겠지.

“캐리온. 포털 실검에 키워드가 계속 뜰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돌려.”

캐리온에게 간단한 명령을 내리는 정도로도 이런 공격은 충분히 방어할 수 있다.

“그리고 뉴스 알고리즘을 분석해서 윤단아를 비방하는 기사가 뜨는 걸 막을 수 있도록 해봐.”

추가로 캐리온에게 생긴 능력이다.

키워드를 지정해놓고 해당 키워드에 관한 기사가 올라오면 분석을 해서 해당 기사에 대한 긍정 및 부정 강화를 한다.

이번의 경우 윤단아에 관한 악의적인 기사가 올라오면 그 즉시 신고 및 비추천 테러를 먹여 기사가 알고리즘에서 배제되게 만드는 것이다.

500억 원 짜리 서버실이 추가된 캐리온에게 포털뉴스 알고리즘을 분석하고 파훼하는 일 따위야 껌 씹는 축에도 안 든다.

[이 정도는 저한테 식은 죽 먹기입니다.]

얘가 업그레이드 한 번 하더니 자랑할 줄도 아네.

마지막으로 대비해야 하는 건 물리적인 공격.

윤단아를 직접 공격할 수 있는 경우도 생각해야 한다.

마약을 하며 성폭행도 저지르는 놈들인데, 사람 하나 묻어버리는 건 신경도 안 쓸 거다.

그래서 나는 내가 가진 비장의 카드를 이용하기로 했다.

한서진.

물론 여기에 그녀의 동의는 받지 않았지만, 나는 그녀의 재능이 욕심났다.

최고의 전직 킬러가 있는데 놀리기만 한다면 그거대로 낭비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한서진을 끌어들일 마지막 퍼즐 조각을 찾아냈다는 점이다.

캐리온이 마침내 한서진이 필승 기획에 취업한 이유를 찾아냈다.

[필승 기획 건물을 지은 건설업체와 한서진이 접촉한 흔적을 발견했습니다.]

청부해커 렛에게서 얻어낸 한서진의 자료와 필승기획 관련 인물을 전부 대조하여 접점을 찾아내는 지루한 작업이었다.

그 결과 필승 기획 건물에는 한서진이 원하는 무언가가 숨겨져 있고, 한서진은 그것을 찾으려고 한다는 것을 알아냈다.

이 점을 이용한다면, 재능을 숨기고 있는 한서진을 내 편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

*

윤단아의 곁에는 이건우가 생각하는 비장의 카드, 한서진이 있었다.

물론 경호업체에 연락해서 경호원을 고용하기도 했지만, 한서진이 이번 전력의 핵심이었다.

한서진은 아직 이건우가 그녀의 정체를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기에, 매니징이라는 명목으로 윤단아의 옆에 붙여두었다.

‘윤단아 씨 곁에 남자 경호원만 득실거리니 얼마나 불편하겠어요. 한서진 씨가 옆에 있어 주세요.’

이건우의 말이 틀린 말은 아니었기에 한서진은 일단은 납득했다.

하지만 이상하게 신경이 쓰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누가 보더라도 윤단아의 옆은 위험했다. 경호원들을 득실득실 붙여놓은 것만 보더라도 뭔가 일이 벌어진다는 것이 예상되었다.

그리고 그녀가 아는 이건우는 자기 사람을 상당히 아낀다. 자기 직원을, 그것도 여자를 그 위험한 곳으로 보내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뭔가 알고 있나?’

그렇다고 대놓고 이건우에게 물어볼 수도 없는 상황.

한서진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이건우에 대한 생각을 이어가려는 찰나, 옆에서 있던 윤단아가 말을 꺼냈다.

“죄송해요. 괜히 제가 폐를 끼치네요. 지금 가족들이랑 함께 있으셔야 하는데···.”

한서진은 언제 날카로운 눈빛을 지었냐는 듯 방긋 웃었다.

“괜찮아요. 매일 이러는 것도 아닌데요. 그리고 사장님 말에 틀린 건 없잖아요. 시커먼 아저씨들 사이에 있으면 얼마나 재미없겠어요. 저라도 있어야죠.”

그녀의 말에 앞 좌석에서 운전하고 있던 경호원이 퉁명스레 대꾸했다.

“···저 재밌는 사람입니다.”

그 말에 한서진이 까르르 웃었다.

“봐요. 저렇게 재미없다니까.”

윤단아도 긴장된 얼굴에 슬며시 미소를 띠었다. 한서진 덕분에 분위기가 조금 풀어졌다.

윤단아가 말했다.

“처음에는 과잉보호하는 게 아닌가 싶었는데, 생각해보니 재벌들이라면 그러고도 남을 것 같더라고요.”

이번에 윤단아가 폭로한 영상들은 확실히 위험했다.

아무리 내놓은 자식들이라고 해도 명색이 재벌이다.

자식들이 타격을 입으면 그룹에 어떻게든 영향이 갈 수밖에 없고, 이는 주가 하락과 불매운동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기업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 바로 손해이다.

재벌 3세들뿐만 아니라 그 윗선도 다음에 올라올 영상을 막기 위해 노력하겠지.

부드럽게 나온다면 돈으로 그녀를 사려고 할 것이고, 최악의 상황은 그녀를 납치하고 물리적인 위해를 가할 수도 있다.

윤단아와 대화하던 한서진은 문득 궁금해졌다.

‘여자는 위험할 걸 알면서도 왜 이런 영상들을 만드는 걸까?’

“근데 위험할 걸 알면서도 왜 폭로한 거예요?”

“재밌잖아요.”

“······.”

지금 신변이 위험해져 경호원에 둘러싸여 있는 상황에도 재미 타령이라니.

한서진은 윤단아가 보통 사람은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윤단아가 말을 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사장님이 이번 일을 진행하기 전에 저한테 할 수 있겠냐고 물어봤어요. 위에서는 저를 공격할지도 모른다고 하더군요.”

“그런데도 영상을 만든 거예요? 뭐 사장님이 좋은 거라도 준다고 하셨나 보죠?”

“대신 각오를 하면 저들을 깡그리 박살을 내버릴 힘을 쥐여준다고 했고요.”

윤단아의 말에는 이건우를 향한 신뢰가 담겨 있었다.

그것을 느낀 한서진이 물었다.

“사장님을 믿어요?”

“적어도 지금까지는 자신이 한 말은 지킨 사람이거든요. 그럴 능력도 있고요.”

윤단아나 한서진이나 이건우와 비슷한 시기에 만났지만, 경험한 사건의 농도는 달랐다.

윤단아는 양소희와의 스캔들이나 김우영 자살 사건 같은 굵직한 일을 같이 처리했다. 그러면서 쌓은 유대감은 한서진의 것과는 비교할 수 없다.

“흠···.”

한서진은 이건우에 대해 생각했다.

‘확실히 능력이 좋은 사람이기는 하지. 특히 정보전에 능해.’

이전에도 이건우는 김우영 사건의 조작된 부검확인서를 찾아 상황을 역전시킨 바 있다. 심지어 버려진 핸드폰에 있는 카톡 내용도 어디선가 가지고 왔다.

범인들이 작정하고 숨진 증거들은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닌데, 이건우는 그것을 너무나도 쉽게 해냈다.

이번 재벌 3세 마약 사건도 그렇다. 정보원을 누구로 두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재벌 3세들의 마약 파티에서 찍은 사진들을 몰래 가지고 오다니.

아마 뛰어난 해커나 마담을 데리고 있겠지.

···해커?

그러다가 문득 한 생각에 미쳤다.

그녀는 과거 한 해커에게 의뢰해서 자신에 대한 정보를 모두 은폐시켰다.

하지만 누가 그걸 파훼했다면? 그리고 자신의 정보가 다른 사람에게 들어갔다면?

‘그럼 설마 나도?’

한서진은 아까부터 느껴지던 위화감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이건우의 정보력이라면 언제 공격해올지 다 꿰고 있을 거야. 위험하다는 걸 미리 알았겠지. 그런 상황에서 나를 붙여줬다고?’

아무리 생각해도 결론은 하나였다.

‘이건우가 나의 정체에 대해서 눈치챘나?’

그렇게 생각하니 지금까지 갖고 있던 의문들이 모두 풀리는 것 같았다.

한서진이 한참 이건우에 대한 생각에 잠겨 있는 사이, 잠자고 있던 킬러의 본능이 위험 신호를 보내기 시작했다.

너무나도 깜깜한 주차장. 그리고 헤드라이트에 비치는 검은 승합차들과 그 안에 언 듯 보이는 실루엣들.

마지막으로 아까부터 이상하게 뒤를 쫓아오는 승합차 한 대.

그녀는 다급히 주차장으로 차를 몰고 들어가는 경호원에게 물었다.

“혹시 사장님이 언질을 준 게 있나요? 언제 누가 공격해올 거라던가 말이에요.”

“예? 아, 네. 윤단아 씨가 집으로 들어갈 때 해연 건설 쪽 용역이 공격할 거라고 했습니다.”

그 말고 동시에 주차장에 있던 승합차들의 헤드라이트가 동시에 켜졌다. 순간 시야가 가려지며 경호원은 핸들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커다란 밴 두 대에서 대략 열대엿 명의 사람들이 내린다. 그리고 윤단아의 차에 바짝 따라붙던 승합차에서도 험상궂은 사람들이 내리기 시작했다.

그들은 앞뒤로 윤단아 일행을 포위했다.

윤단아는 침음을 흘렸다.

“생각보다 숫자가 많네요.”

이쪽에 있는 사람은 겨우 여섯 명. 한 명당 세 명이 넘게 맡아야 한다. 그리고 한서진은 알아챘다.

‘내가 없었으면 큰일 날 뻔했군.’

한서진은 이건우가 자신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어째서 자기를 이곳에 보냈는지 깨달았다.

그는 한서진이 실력을 드러내기를 원하는 것이다.

그리고 조금 전까지 가지고 있던 의문은 확신이 되었다.

‘이건우가 내 정체에 대해 알고 있어.’

*

상황은 썩 좋지 않았다.

윤단아의 경호원들은 수적으로 부족했고 저들은 윤단아를 목표로 했다. 윤단아를 둘러싼 조폭들은 퇴로를 막을 최소한의 인원만을 남기고 모두 달려들었다.

경호원들은 필사적으로 막아보려고 했지만 중과부적이었다. 계속해서 밀려드는 조폭들에 윤단아와 놈들의 거리는 점점 가까워져만 갔다.

윤단아는 재빠르게 상황을 판단하고 차량 앞 좌석으로 가서 핸들을 잡았다. 차로 밀어붙여 저들을 싹 쓸어버릴 심산이었다.

하지만 막상 액셀을 밟으려니 차마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성적이라고 자부하는 그녀도 사람을 차로 치려니 두렵고 긴장되어 가슴이 쿵쿵 뛰었다.

그 순간 윤단아가 타고있는 운전석의 문을 조폭이 거칠게 잡아 열었다.

"네년이 윤단아라는 년이구나?"

조폭은 우악스러운 손길로 윤단아의 어깨를 잡아챘다.

“이거 놔!”

윤단아가 온 힘을 다해 밀쳐내려는 순간,

퍼억

북 터지는 소리와 함께 조폭이 차 지붕에 머리를 박더니 주르륵 미끄러졌다. 그 뒤에서 한서진이 팔을 붕붕 돌렸다.

"휴, 오랜만에 힘을 쓰니까 어깨가 아프네."

“서, 서진 씨? 어떻게 그런···.”

한서진은 특유의 생글거리는 눈웃음을 지었다.

“그쪽 사장님은 참 영악하단 말이야.”

“네?”

“아니에요. 어차피 도망치라고 해도 안 칠 거죠?”

윤단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 좋은 기회를 어떻게 날리겠는가.

이 장면만 제대로 촬영한다면 윤단아의 다음 영상도 대박은 확정이었다.

그녀는 싸움을 찍기 위해서 카메라를 들었다.

한서진은 그런 윤단아를 보며 피식 웃으며 조폭들 속으로 뛰어들었다.

“사장님한테 전해줘요. 말도 없이 나를 부려먹은 값은 치러야 할 거라고.”

서울의 한 주차장, 전설의 킬러 한서진이 귀환했다.

*

다음날. 제대로 빡친 윤단아는 밤새 블랙박스에 찍힌 영상과 카메라로 찍은 영상을 교차 편집해서 동영상을 하나 올렸다.

<조폭을 보내서 입막음을 하다?!>

해당 영상은 업데이트되자마자 조회수 수십만을 찍고 인기차트에 올라가는 기염을 토했다.

그리고 한서진은 출근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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