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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 게이트 (1)
나는 얼마 전 시바코인을 잔뜩 매수해 두었었다.
총 517억 원어치의 시바코인을 매입하였는데, 이는 도지코인 전체 시가총액의 23퍼센트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덕분에 나는 ‘가장 부유한 시바코인 TOP 100(The Richest Shiba Address)’에서 1위를 차지하기도 했으며, 정체불명의 사람이 수백억 원어치의 시바코인을 매수했다고 기사가 올라오는 해프닝도 있었었다.
그리고 12월 31일에서 1월 1일로 넘어가는 날 밤.
사랑하는 일론 형님께서 대망의 발표를 해주셨다.
“Tesla will make some buyable with Shiba (테슬라는 상품을 시바로 살 수 있게 할 것이다)”
“See how it goes (어떻게 될지 지켜보자)”
이 발표가 나는 순간 시바코인은 25퍼센트 급등했으며 오늘 아침까지도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덕분에 내 자산은 실시간으로 불어나고 있는 중이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시바코인을 보유한 만큼 불어나는 속도도 무서웠다.
반나절 만에 자산이 150억이 늘어나다니!
이래서 사람들이 연신 코인 노래를 불러댔던 건가.
코인뽕에 취하려는 정신을 가까스로 붙잡고 캐리온에게 물었다.
“캐리온. 언제까지 상승세가 이어질 것 같아?”
[며칠은 상승하다가 잠시 조정기에 들어갈 겁니다. 하지만 테슬라가 진짜로 결제 시스템을 내놓으면 다시 폭등할 겁니다. 한 달 동안 약 2000%가 오를 것으로 예상합니다.]
약 2000%. 500억 원의 20배라. 그러면 내 자산도 1조가 넘는다.
미친. 1조라고? 생각도 못 한 스케일에 정신이 아득해진다. 1조라면 0이 몇 개가 붙는 거야?
하지만 나는 더 욕심을 냈다. 앞으로 시바코인이 더 상승할 게 확실한데 지금이라도 더 들어가야 한다.
“여유자금만 남겨두고 모두 시바코인에 투자해.”
[알겠습니다.]
어차피 사야 할 기업은 다 샀고 당장 돈이 들어갈 곳도 없다.
지금은 내실을 다지며 닥쳐올 팬데믹을 대비해 자금줄을 든든하게 만들 때였다.
팬데믹이 닥치면 세계 경제가 위축되고 유통되는 자금의 씨가 마를 테니, 그때가 되면 지금 벌어둔 자금이 엄청난 역할을 해 주겠지.
이렇게 투자를 마무리 지었을 때 가족과 친척이 하나둘씩 할아버지 댁에 모이기 시작했다.
*
제일 그룹에는 새해가 되면 온 가족이 모여서 오찬을 먹는 전통이 있다.
당연히 나도 오찬을 위해 할아버지 댁에 왔다.
하나둘씩 모이는 친척들을 보자 문득 이건우의 기억이 떠올랐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불화가 심했던 시절, 그러니까 두 사람이 별거에 들어갔을 때였다.
새해 첫날에 으레 그랬듯이 가족 모임이 있었는데 어머니는 나를 데리고 미리 와 있었다.
그리고 이정혁은 이지훈의 모친인 오수미와 이지훈을 데리고 왔다. 단 한마디 언질도 없이 말이다.
물론 대노한 할아버지가 당장 그 둘을 쫓아냈지만, 친척들의 경악한 표정과 어머니의 당황한 얼굴이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있었다.
그때처럼 이정혁은 오수미와 이지훈을 데리고 왔다. 이번에는 할아버지도 둘을 쫓아내지 않으셨고 그들도 당당하게 들어왔다.
이정혁은 나를 본체만체하며 거실로 들어갔고, 오수미는 나를 보더니 웃으며 사근사근 말했다.
“아들. 요즘 왜 이렇게 집에 안 돌아오니. 그러다 얼굴도 까먹겠다.”
나는 감탄했다. 누가 보면 진짜 어머니인 줄.
집에서는 어떻게든 나를 깎아내리려고 안달 내던 사람이, 할아버지가 옆에 있다고 얼굴에 철판을 까는 모습이라니.
예전의 이건우라면 당장 면박을 줬겠지.
하지만 그건 하책 중에 하책. 나는 이제 그 정도로 어리숙하지 않았다.
“오랜만이에요 어머니. 저도 보고싶었어요.”
나는 오히려 한술 더 뜨며 그녀를 안았다. 난데없는 포옹에 오수미가 당황했다.
“···어?”
그리고 나는 그녀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지난번에는 재미있었어요. 그런데 아들 관리 좀 똑바로 하시죠. 또 쫓겨나고 싶지 않으면 말입니다.”
오수미의 얼굴이 굳었다. 나는 몸을 떼며 싱긋 웃었다. 그러고는 이지훈의 어깨를 툭 쳤다.
“유학은 잘 하고 있고?”
“뭐, 킁, 열심히 배우고 있지.”
이지훈은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하긴, 나 때문에 쫓겨나듯 유학을 다녀왔는데 반가울 리가 없겠지.
그런데 이 녀석 코를 계속 훌쩍거린다. 묘하게 산만한 것 같기도 하고.
그때 캐리온이 말했다.
[동공이 과도하게 확장되어있고 상당히 과민 되고 불안한 상태입니다. 동시에 고양감이 느껴집니다.]
[또한 무언가를 긁기 위해 손을 움찔거리고 있습니다. 손등에 있는 피부 상처로 미루어보아 메스버그 현상 또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번에 서버실을 업그레이드하면서 캐리온의 능력 또한 발전했다. 정확히 말하면 처리장치가 허접해서 지금까지 쓰지 못한 기능이 해금되었다고 해야 할까.
그러면서 캐리온의 성능은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좋아졌다.
그중에 하나가 안면근육과 동작을 분석해서 상대의 감정과 상태를 알아내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지금, 아주 좋은 타이밍에 캐리온의 새로운 능력이 빛을 발했다.
이지훈의 상태를 면밀하게 분석하던 캐리온이 결론을 내렸다.
[마약중독자의 증상과 99퍼센트 일치합니다.]
이것 봐라?
*
새해 첫날 가족 식사는 화기애애했다. 속에 뼈를 담은 말이 오가기는 했지만 적어도 겉으로는 평범한 가족 간의 대화처럼 보이긴 했다.
그리고 나는 캐리온의 설명을 들으면서 이지훈을 유심히 관찰했다.
‘마약이라···.’
제일 ENM에서 유독 마약 사건이 많이 일어났다. 김우영 사건 이전에도 마약과 관련해서 논란이 일은 사람이 다섯 명이나 있다.
심지어 김우영과 같은 그룹의 멤버도 담배인 줄 알고 피웠다는 말도 안 되는 논란에 휩싸였었던 적도 있다.
그뿐만 아니라 제일 ENM의 코디네이터, 연습생, 프로듀서까지 마약을 하거나 아니면 마약 밀매현장에서 검거가 됐던 전력이 있다.
이쯤 되면 제일 ENM이 마약을 공급하는 것이 아닌가 의심이 되는 정도.
한때 제일 ENM에 있었던 이지훈이 마약에 손을 대는 것도 충분히 있을법한 일이었다.
더군다나 마약 규제가 덜한 미국에 있었으니 더 쉬웠겠지.
나는 눈을 번뜩였다. 약점을 잡을 만한 기회가 제발로 찾아왔는데 놓칠쏘냐.
“캐리온. 이지훈이 마약한 증거를 샅샅이 찾아와.”
[알겠습니다.]
나는 코를 훌쩍이며 식사를 하는 이지훈을 보며 진한 미소를 지었다.
하나밖에 없는 동생은 또다시 나에게 기회를 주었다.
이번 가족 식사, 엄청난 성과를 얻었다.
*
새해가 밝고 일주일이 흘렀다.
그동안 화성 공장은 직원들의 고용 승계를 마무리 짓고 마스크를 미친 듯이 뽑아내고 있었다.
또한 새로 이전한 서초동 사옥의 서버실도 완공됐으며 인테리어도 끝내놓았다.
나는 조금 일찍 와서 건물을 둘러보았다. 인테리어를 다시 해서 그런가 새 건물 느낌이 폴폴 났다.
사무실 또한 수십 명을 너끈히 받을 수 있을 정도로 커졌다. 아직 빈 자리가 많았다.
‘규모도 커졌으니 이제 직원들을 더 받아야지.’
KW 코퍼레이션 아래에 둔 계열사만 세 곳이다.
홀딩스, 미디어, 그리고 제약.
지금까지 고작 직원 세 명으로 운영했다는 게 말이 되지 않을 지경이다. 이게 다 캐리온이 일당백 역할을 해준 덕분이다.
먼저 홀딩스부터.
투자회사 겸 모든 자금을 관리하는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홀딩스는, 모든 과정이 전산화되었기 때문에 캐리온이 혼자 다 해 먹는다.
필요한 것이 있다면 나를 통해서 해결하면 되기 때문에 홀딩스의 직원 충원은 일단 패스.
두 번째는 제약.
제약은 일단 마스크를 비롯한 의약외품을 만드는데 주력할 것이다.
그리고 나중에 시바코인이 정산되고 난 후, 바이러스 신약을 개발할 연구소를 하나 사려고 한다.
화성 공장의 생산라인도 열심히 정비하고 있고, 신규 생산 라인도 추가할 예정이다.
신소재개발연구소와 협력하여 재사용 마스크를 생산할 계획이다.
그리고 또 하나 더.
“공장 전산화 시스템을 고안해봐.”
공장 시스템을 전산화하면 생산량이나 재고를 투명하게 관리할 수 있고 인건비도 줄어드니 일석이조다.
캐리온 하나에만 너무 많은 업무를 부여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나는 캐리온이 문제없이 모든 일을 처리할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지난번 500억 원어치 서버를 샀으면 그 값을 해야지. 물론 그 돈이 아까워서 이것저것 시키는 것이 절대 아니다.
마지막으로 미디어.
팬데믹 특수를 노리기 위해서 OTT 플랫폼을 서비스하려고 한다.
이번에 서버실을 증설하면서 영상 스트리밍 서버를 구축해 놓았고, 스튜디오 라이언과 외주 계약을 맺은 것도 이를 위해서였다.
그런데 OTT 플랫폼을 만들기 위해서는 콘텐츠가 중요하다. 제작 스튜디오가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 우리 회사는 자체 콘텐츠를 만들 역량이 부족하다.
그렇다면 어디선가 콘텐츠를 구해와야 한다는 것인데, 제일 좋은 건 방송사와 계약을 하는 것이다.
‘지상파 3사를 공략하면 콘텐츠를 확보할 수는 있지만, 아직 우리 회사는 인지도가 없으니까 협상 메리트가 없어.’
그래서 차선책으로 생각해 둔 곳이 바로 제일 ENM이다.
제일 ENM은 명실상부한 미디어 공룡 기업.
여기서 서비스하는 방송 채널만 13개에 달한다.
또한 산하 영화산업본부는 영화계의 3강이라고 불릴 정도로 영향력이 높으며 국내 배급사 중 가장 많은 흥행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제일 ENM이 가진 영화, 드라마, 예능을 수급받을 수 있다면 충분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물론 제일 ENM의 사장인 이정혁은 나에게 콘텐츠를 내주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겠지만 말이야.
아마 내가 협상을 하자고 해도 귓등으로도 듣지 않을 테지.
‘지금 당장은 말이지.’
하지만 나에게는 무척이나 좋은 협상 카드가 있었다.
나는 자연스럽게 얼마 전 만났던 이지훈의 얼굴을 떠올렸다.
코를 킁킁거리며 돌아다니는 모습이 어찌나 반갑던지.
‘근데 과연 이지훈이 마약을 했다는 사실 앞에서도 협상을 할 마음이 없을까?’
아마 제발 거래를 해달라고 빌게될 걸?
조만간 이정혁과 협상(?)할 생각을 하자 나의 얼굴에 음흉한 미소가 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