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로 갑질하는 양아치 재벌-21화 (21/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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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크 공장 인수(3)

나는 한서진을 공장에 남겨둔 채 다음 목적지로 차를 몰았다.

‘잘 하고 있겠지?’

하지만 괜한 걱정이란 생각이 들었다.

맡긴 일이 크게 어렵지도 않을뿐더러, 한서진은 워낙 붙임성도 좋고 사근사근해서 사람들을 휘어잡는 능력이 있었다.

그리고 명색이 전직 킬러이다. 전에 해왔던 일에 비하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겠지.

나는 한서진에 대한 걱정은 접어두었다.

이번에 내가 향하는 곳은 연구소였다. ‘신소재개발연구소’이라는 이름을 가진 연구소는 수원에 있는데 마침 화성 공장과 가까운 편이었다.

마스크 공장을 인수해서 최대한 많은 물량을 뽑아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필터 연구를 계속해서 마스크의 품질을 높이는 것도 중요하다.

또한 일회용 마스크를 계속 사용하면 환경이 오염된다. 일회용 마스크는 보통 플라스틱을 기반으로 만드는데, 이 쓰레기들이 쌓이면 처리도 곤란해진다.

그래서 생물학 연합 연구소와 협업을 했을 때, 팬데믹이 장기간 지속되는 경우를 대비한 재사용 마스크 필터를 연구하기도 했다.

지금 가고 있는 곳이 생물학 연합 연구소에서 파트너쉽으로 연구를 진행했던 연구소이다.

사십 분쯤 가자 간판이 보이기 시작했다.

[신소재개발연구소]

이름에도 알 수 있듯이 신소재를 광범위하게 연구하는 곳으로, 필터뿐만 아니라 다양한 소재를 연구하고 있다.

연구소는 총 다섯 개의 연구동과 부대시설로 이루어져 있었다.

나는 방문증을 발급받기 위해서 안으로 들어갔다. 최첨단 연구소답게 안으로 들어가는 절차도 무척이나 까다로웠다.

먼저 개인정보를 입력하고 신분증을 제출해 임시 출입증을 받았다. 그다음 몸을 한번 소독하고 방진복으로 갈아입은 후에야 연구소 직원을 만날 수 있었다.

나를 마중 나온 직원이 말했다.

“한승윤 연구원님은 지금 A-5 연구동 실험실에 있습니다.”

A-5 연구동까지 가려면 조금 걸어야 했다.

복도 바깥쪽에는 작은 공원과 산책로들이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었다.

하지만 그곳을 누비고 있는 것은 좀비와도 같았다. 동공에 힘이 없는 사람들이 흐느적거리면서 걷는 모습이 참··· 안타깝다.

저들을 보니 옛날, 그러니까 내가 개발자로 있었을 때 생각이 난다.

우리 연구소에도 저런 좀비들이 꽤나 많이 있었거든.

아마 나도 그 좀비 중 하나였겠지?

연구소에 들어오면 사람이 다 좀비가 되는 건가?

연구동 안으로 들어가니 본격적으로 사람들이 하얀 가운을 입고 돌아다니고 있었다. 나는 직원이 알려준 실험실로 향했다.

문 앞에서 노크를 하려고 하는데 문이 벌컥 열렸다.

“···?”

당황한 내가 엉거주춤하게 있자, 다크써클이 진하게 내려온 중년 남자가 고개를 내밀었다.

실험을 하고 있는 중이었는지 고글을 끼고 있었다.

“이건우 사장님 되십니까?”

“네. 한승윤 연구원님이십니까?”

“예. 밑에서 사장님께서 올라오신다고 연락을 주더라고요. 마침 잘 오셨습니다. 사장님께서 문의하신 기술과 관련된 실험을 하고 있었거든요.”

한승윤은 신소재재료연구소의 책임 연구원으로 있으며, 구리 나노입자를 개발해서 특허를 냈다고 한다.

이런 걸 보면 신소재개발연구소는 꽤나 제대로 된 연구소인 것 같다.

보통 성과를 내면 실험 지원을 명목으로 나눠 먹으려고 드는데, 특허를 오롯이 개인의 몫으로 인정해준다니.

내가 여태껏 인수해온 필승기획이나 JS생활건강과는 질적으로 다른 회사인 것 같다.

“이쪽으로 오십시오.”

한승윤은 나를 한 실험실로 안내했다.

실험실은 꽤 넓었고 가운을 입은 사람들이 기계를 돌리거나 현미경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나는 물건에 부딪히지 않도록 조심하며, 실험대 코너를 지나 안쪽으로 들어갔다.

실험실 가장 깊숙한 곳, 한승윤이 나에게 검은색 원판을 건내주었다.

“이게 이번에 개발한 시편입니다. 소재의 조직을 분석하기 위해서 폴리싱 작업과 약품 처리까지 마쳤어요. 한번 보시겠습니까?”

“아, 예.”

원판에는 무언가가 붙어있었다. 이게 신소재인 것 같기는 한데 은박지처럼 생겼네?

현미경으로 보라고 해서 보긴 했는데 사실 뭐가 뭔지 모르겠다.

내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한승윤은 신이 나서 자신의 연구 성과를 늘어놓았다.

“금속 대부분은 공기 중에 노출되면 산화되면서 녹이 생깁니다. 금속 산화 방지 연구도 이뤄졌지만, 지금까지 산화 현상을 완벽하게 막는 기술은 없었지요.”

여기까지는 나도 알고 있는 내용이다.

금속에 녹이 스는 건 일상에서도 많이 겪는 일이니.

“하지만 저는 발상을 전환했지요. 고농도의 전자를 포함한 전자화물 위에 구리 나노입자를 형성시키면?”

“······.”

“다량의 전자가 구리 나노입자로 전달돼 표면에 과잉의 전자가 쌓이게 돼요. 그러면 공기 중에 노출해도 산화되지 않고 구리의 금속성을 계속 유지할 수 있지요. 코팅과 같은 표면처리를 하지 않고도 금속성을 유지하는 건 기존의 상식을 깨는 겁니다!”

···내 한계는 여기까지인가. 나는 더이상 한승윤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한번 시동이 걸린 한승윤은 열변을 토했고, 나는 굉장히 감명받았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정말 대단하십니다!”

아니, 나도 나름 이과 출신인데 하나도 모르겠군.

뭐, 어찌 됐든 나에게 과정은 필요 없고 결과만 있으면 된다.

“그래서 이걸 상품화할 수는 있는 겁니까?”

기초과학의 연구의 대부분은 특허 출원이나 논문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하지만 나에게는 단순히 새로운 발견 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 그걸 넘어 실제 생산이 가능한지가 관건이다.

아무리 좋은 기술이라도 상품화할 수 없다면 말짱 도루묵이니까.

다행히 한승윤은 긍정적인 답변을 내놓았다.

“물론입니다. 구리 나노입자를 대량생산할 수 있는 용액 공정도 개발했습니다.”

듣던 중 반가운 소식이다. 나는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것참 잘 됐군요. 그럼 기술 이야기는 충분히 한 것 같으니, 사업 얘기로 넘어가 볼까요?”

“예. 그런데 이 기술을 어디에 적용시킬 겁니까? 알아보니 미디어 쪽으로 사업을 하고 있으시던데···.”

나에 대해서 미리 조사했는지 한승윤은 아리송한 얼굴을 했다. 하긴 나 같아도 미디어 회사 대표가 구리 나노입자 공정 기술을 산다고 하면 의심부터 하겠다.

하지만 KW 코퍼레이션의 사업에는 미디어만 있는게 아니거든.

“마스크 사업을 하려고 합니다.”

“마스크요?”

전혀 예상치 못했다는 얼굴이다.

“안 되나요?”

“아니요. 사장님께서 마스크 산업에 뛰어드는 건 전혀 예상하지 못해서···.”

사실 마스크 산업을 시작한 지는 얼마 안 됐거든. 한 두어 시간 정도 지난 것 같군.

“저는 사업가이고 돈이 되는 분야라면 투자를 아끼지 않습니다. 그리고 연구원님의 기술을 마스크에 적용하면 충분히 상품성이 있을 것 같군요.”

나는 생각해온 조건을 말했다.

“마음 같아서는 고액 연봉을 드리며 연구소로 모셔가고 싶지만 제가 아직 연구시설을 마련하지 못해서요. 마스크 필터 판매로 생기는 이익의 15퍼센트를 드리겠습니다. 물론 개발 과정에 필요한 돈은 전액 지원해드리고요.”

파격적인 제안이다.

한승윤은 허허 웃으며 말했다.

“마스크 필터 산업에 뛰어들게 될 줄은 몰랐는데···. 저는 당연히 전자제품 소재 분야에 적용할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앞서 말했듯 구리 나노입자는 녹이 슬지 않기 때문에, 디스플레이나 반도체 소재로 사용하기가 좋다.

“물론 마스크 필터로도 활용하기 좋습니다. 구리는 항균, 항바이러스 기능이 있지요. 구리 나노입자를 항균 필름이나 마스크에 적용하면 우수한 살균능력으로 방역에 기여할 수 있을 거예요.”

“제가 원하는 바입니다. 받아들이겠습니까?”

“그럼요.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나는 웃으며 한승윤의 손을 굳게 맞잡았다.

이걸로 마스크 사업의 마지막 퍼즐이 맞춰졌다.

*

다음날 나는 JS생활건강에 방문했다.

그동안 JS생활건강을 좀먹고 있던 공장장과 일가친척들은 빠르게 사임서를 내고 튀었다. 안 튀었으면 내가 손수 튀게 만들어 주려고 했는데 말이야.

공장장이 비뀌는 것과는 상관없이 공장은 계속 돌아갔다.

하지만 직원들은 불안해 보이는 눈치였다. 하긴, 하루 만에 고용주가 바뀌었는데 마음이 편할 수가 없지.

하루라도 빨리 새로운 공장장을 세우고 인수인계를 해주어야지 공장이 정상화 될 것이다.

그리고 나는 차기 공장장으로 박준식 직장을 점찍어뒀다.

한서진에게 들은 바로는, 공장의 설립 멤버라서 업무 매커니즘을 꿰고 있고 일도 꼼꼼하게 잘 하는 데다 직원들 사이에 신망도 있다고 한다.

나는 즉시 박준식을 불렀다. 박준식은 어색해하며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반갑습니다. 이쪽에 앉으세요. 오늘 공장 분위기는 어떤가요?”

“업무에 지장이 있을 정도는 아니지만, 솔직히 좀 뒤숭숭하기는 합니다.”

“그러면 직장님이 공장 분위기를 잘 잡아줄 수 있겠어요?”

“예?”

박준식은 잘못 들었다는 듯이 되물었고, 나는 빙긋 웃었다.

“말 그대로입니다. 저는 직장님이 공장장이 되셨으면 합니다.”

“···제가요?”

박준식은 ‘내가? 공장장을?’이란 표정으로 어쩔 줄 몰라했다. 하긴, 전에 조성운 일가가 있을 때에는 지들끼리 다 해쳐먹어서 직장도 겨우 달았다지?

나는 차분히 설명했다.

“지금 남아있는 사람들 중 직장님이 공장을 제일 오래 다니셨더군요. 그간 일처리도 잘 하셨고 창립 멤버이신만큼 이 공장에 대한 애착도 있으실테죠?”

“음, 뭐 그건 맞습니다.”

“그런 직장님이라면 곳간을 털어먹지 않을 것 같아서요.”

전 공장장과 같은 짓은 하지 말라는 경고를 은근슬쩍 돌려서 했고 박준식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저는 그런 짓은 안 합니다.”

나는 씨익 웃었다.

“그거면 됩니다. 평소처럼 생산시설을 관리하고 직원들 독려하세요. 나머지 일은 차근차근 배워가면 되죠.”

박준식은 긴가민가하면서도 결의에 찬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보기 좋은 모습이다. 나는 그다음 안건으로 넘어갔다.

제일 중요한 마스크 생산량.

“마스크는 한 달에 얼마나 생산할 수 있나요?”

“곧 있으면 황사 철이라 200만 장 정도는 생산하고 있습니다. 설비만 수리된다면 월 300만 장까지도 거뜬합니다.”

300만 장. 분명 많은 양이다. 하지만 곧 닥칠 팬데믹 상황에서는 어림도 없는 양이다. 나는 딱 잘라 말했다.

“24시간 풀가동 하고 추가 인력을 받아서 500만 장까지 생산량을 늘리세요.”

내가 생각하는 최소량이 500만 장이다.

내 빅픽쳐를 이해하지 못하는 박준식은 입을 툭 떨어뜨렸다.

“오, 오백만 장이요?”

“곧 있으면 그마저도 부족하다고 생각할 때가 올 겁니다. 연간 생산량을 두 배로 늘려야 하니까 그에 맞춰서 사업 계획을 짜보세요.”

내가 국내 최대 규모의 마스크 공장을 인수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나는 수많은 마스크가 필요하다.

캐리온이 파악한 바로는 마스크 시장의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커질 예정이다.

중국에서 들어온 바이러스가 기승을 부리기 시작하면 전국민이 필수적으로 마스크를 사용할 것이다.

만약 사람들이 평균 이틀에 마스크를 한 번씩 교체한다고 생각하면 국내에서 소비되는 마스크는 하루에 2500만 장.

마스크의 가격이 1000원, 단가가 400원이라고 한다면, 국내에서 하루에 벌어들일 수 있는 순이익은 대략 150억.

일 년으로 계산하면 산술적으로 5조가 넘는 돈이다.

세계시장까지 진출한다면 그 금액은 어마어마하게 늘어나겠지.

물론 그러려면 국내 마스크 시장을 꽉 잡아야 하는데, 나에게 생각해둔 방법이 있다.

바로 ‘공기감염’을 막을 수 있는 마스크 필터를 개발해내는 것.

그러면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독점적인 지위를 구축할 수 있다.

또한, 많은 양의 마스크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먼저 직원들을 안정화할 필요가 있다.

겨우 공장장이 바뀐 것 가지고 우왕좌왕할 시간이 없다.

그러니까 박준식 당신이 그 분위기를 빠르게 잡아야 한다, 이 말이야.

그러니 당장 내려가서 공장을 정상화하도록. 당신이라면 할 수 있을 거야.

나는 빡세게 부려 먹을 일꾼이 생겼다는 눈빛으로 박준식을 바라보았고,

‘으으···’

내 심상치 않은 눈빛에 박준식은 몸을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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