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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크 공장 인수(2)
조성운이 제시한 인수가는 320억. 물론 그 돈을 다 내고 인수하면 호구나 다름없다.
공장을 신축하는 데 드는 비용은 대략 200억쯤 된다. 거기에 마스크 기술을 이전받고 주식을 모두 양도받는다고 가정했을 때 예상가는 260억 선이다.
나는 조성운이 어떻게 나올지 보려는 심산으로 팔짱을 꼈다.
조성운이 느물거리는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물론 그렇게 생각하실 수 있지요. 하지만 사장님이 젊으셔서 잘 모르시나 본데 저희만한 공장을 이 가격에 인수하기는 힘들 겁니다.”
이것 봐라?
내가 단가를 낮추려고 괜한 트집을 잡는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회계사도 대동하지 않은 젊은 놈이 장부를 봐야 뭘 알겠냐는 생각을 하나 보군.
그렇다면 그 생각을 깨부숴주는 게 또 재미가 있지.
내 머릿속에는 세계 제일의 회계사가 들어있다고.
조성운은 자신이 제시한 인수가가 얼마나 합리적인지 주절주절 떠들어댔지만, 이어지는 내 말에 입을 꾹 다물었다.
“참, 그 소식 들으셨으려나? 이번에 이형철 계장이 징계를 받는다면서요?”
“···예?”
“당연히 대표님도 아시겠지요. 평소에 형님으로 모시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매년 형님한테 오백만 원씩 바치려면 꽤나 아까우셨겠어요. 요즘 공장 사정도 안 좋은 거 같던데. 아, 그래서 몰래 뒷돈을 차는 건가?”
조성운은 책상을 쾅 치며 일어났다.
“당신 뭐 하는 사람이야! 어디서 생사람을 잡고 있어! 증거 있어?”
“증거가 당연히 있죠. 이형철 계장의 비리를 제보한 사람이 바로 나입니다. 아직 감사팀이 대표님까지는 추적 못 한 것 같은데 슬쩍 찔러볼까요? 내가 또 정의구현을 위해서라면 이 한 몸을 사리지 않는 편이라.”
“이익!”
조성운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들인 회계팀장은 죽상이 되어있었고, 공장 직원들을 비롯해 관계자들이 그를 쎄한 시선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구경났어? 뭐하는 거야. 당장 쫓아내!”
그 말에 회계팀장이 정신을 차리고 험악한 인상을 하고 성큼성큼 걸어왔다.
“좋은 말로 할 때 가십시오.”
역시 저놈 몸 쓰는 놈이라니까.
그가 솥뚜껑 같은 손으로 사람들을 밀치려는 순간, 한서진이 손을 턱 잡았다.
“그만”
나는 순간 목소리만으로도 사람이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곰 같은 회계팀장에 비하면 작은 체구였지만 그녀의 몸에서 뿜어나오는 기세만큼은 압도적이었다.
살기 가득한 눈빛에 회계팀장이 겁을 먹고 물러나는 모습이 우스울 정도로.
회계팀장은 손을 빼내려고 했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한서진이 눈을 예쁘게 접으며 말했다.
“사람을 밀치려고 하시면 안 되죠. 사과하세요.”
“···죄송합니다.”
“잘했어요. 우리 사장님 몸에 손을 댔다가는 그쪽 손이 아작났을 거예요.”
내가 괜히 한서진을 경호원으로 데리고 다니는 게 아니다. 무서운 여자이지만 같은 편이니 이렇게 든든할 수가 없다.
아들이 얌전히 물러나자 조성운이 한심하다는 듯이 혀를 찼다.
“한심한 놈. 덩치만 컸지 할 줄 아는 게 뭐야? 에잉, 쯧.”
전면에 나선 조성운이 말했다.
“그쪽한테는 공장을 팔 생각이 없으니까 썩 돌아가쇼.”
“글쎄. 그건 대표님이 정할 문제가 아닌데.”
“뭐요?”
나는 조성운이 역정을 내기 전 준비해 온 서류를 책상에 던졌다.
탁
“화성시 공무원 간의 유착관계”
탁
“기계설비 부풀려서 비자금을 조성한 건”
탁
“리모델링을 허위 계약한 건”
탁
“정부 보조금을 착복한 건”
내가 한마디씩 할 때마다 책상 위에는 서류가 쌓여갔고, 조성운의 표정은 점점 굳어졌다.
“어이쿠. 많이도 해 드셨네. 그런데 나 진짜로 나가도 돼요? 이거 그대로 폭로하면 정말로 공장이 안 팔릴 텐데. 아, 공장이 안 팔리는 게 문제가 아닌가? 이거 감옥 가는 거 아냐?”
“원하는 게 뭐야?”
조성운은 한참을 씩씩거리더니 화를 참으며 말했다.
이제야 제대로 된 협상을 할 수 있겠군.
조금 늦었지만, 칼자루를 쥐고 있는 게 누군지 확실하게 파악한 모양이다.
나는 서류를 하나 집어 들고는 북 찢었다.
한서진의 눈동자가 커지고, 조성운 부자 또한 눈을 휘둥그레 떴다.
“무, 무슨···.”
나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서류를 하나씩 없애는 대신 십억씩 깝시다. 대표님께도 괜찮은 제안 아닙니까?”
아, 참고로 내가 가지고 있는 서류는 꺼내놓은 게 전부가 아니다.
내가 가방에서 서류 뭉치를 더 꺼내자 조성운의 얼굴이 점점 죽상이 되어갔다.
그렇다고 계약서에 싸인 안 할거야?
조성운에게 선택지는 없었다.
*
결국 최종 인수가는 230억으로 정해졌다. 원래 가격의 무려 30퍼센트를 후려친 가격이다.
조성운과 그의 친척이 가지고 있던 주식은 모두 양도받았으며, 마스크 기술도 넘겨받는 대신 공장에 묶여있는 부채는 내가 떠안기로 했다.
계약을 끝내고 나오는데 한서진이 물었다.
“사장님. 정말로 비리를 덮어주실 거예요?”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내가 왜요?”
“에? 하지만 조금 전에는 서류를 찢어서···.”
“아, 그거는 당연히 사본이죠. 원본은 제가 갖고 있어요. 이번 일이 마무리되는 대로 신고해야죠.”
나는 신의를 중요하게 여기지만, 사기꾼과의 약속까지 지킬 만큼 멍청하지는 않다.
불법을 그냥 보고 덮어두는 것도 찜찜하고.
그래서 조성운에게서 공장을 넘겨받는 즉시 국세청을 비롯한 여러 기관에 동시에 신고할 예정이다.
내 계획을 들은 한서진이 웃었다.
“사장님이랑 일하니까 재미있네요.”
뒤통수를 치는게 재미있나? 역시 이 여자도 보통 사람은 아니야.
나는 이때다 싶어 슬쩍 물었다.
“혹시 예전에 무슨 운동하셨어요? 아까 팀장이 꼼짝도 못 하던데.”
“음? 운동이라고 하기는 그렇고 그냥 이것저것 잡다하게 배웠어요. 그 정도는 뭐 몸풀기 수준이죠.”
“···하하하. 든든하네요.”
누가 들으면 가볍게 체조나 한 정도라고 생각하겠군. 역시 실전으로 다져진 사람은 다른가 보다.
한서진을 볼 때마다 생각이 드는데 잘 키워서 나중에 보안업체를 맡기면 어떨까 한다.
팬데믹이 일어나면 재택근무를 많이 하게 되고 그에 따라 통신보안의 중요성이 높아지기 때문에, 그쪽으로 진출하려고 사업을 구상 중이다.
기술적인 부분은 캐리온에게 맡기면 되지만, 몸으로 뛰는 건 인력이 필요한데 한서진에게 맡기면 잘 할 거라는 생각이 든다.
‘일단 이 건은 차차 생각하기로 하고.’
아직 한서진에 대한 정보를 모두 모으지 못했다.
예전에 해커에게서 얻은 자료에 웬만한 건 다 나와 있지만, 딱 하나 왜 한서진이 필승기획에 들어왔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퍼즐을 맞추지 못했다.
이 부분은 지금 캐리온이 조사중인데, 이걸 해결해야 그녀를 믿고 일을 맡길 수 있다.
그때 한서진이 스케줄을 확인하며 말했다.
“곧 있으면 신소재개발연구소를 방문해야해요. 일이 다 끝났으면 지금 출발할까요?”
신소재개발연구소는 내가 필요로 하는 필터 소재를 개발한 곳이다.
“연구소는 제가 혼자 갈게요. 서진 씨는 여기서 일 하나만 해줘요.”
내 말에 한서진이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조성운이 나가면 공장장이 비잖아요. 차기 공장장을 뽑아야죠.”
“아 그러네요. 누구 생각해두신 사람이 있나요?”
“한 명 있어요.”
오늘 아침에 공장장과 싸우던 사람이 떠올랐다.
*
이건우가 먼저 떠나고 한서진은 화성 공장에 남았다. 이건우가 내린 지시는 간단했다.
‘시설관리를 총괄하는 박준식 직장에 대해 알아봐 주세요. 어떤 사람인지, 주변 평판은 어떤지 조사해주시면 됩니다.’
어떻게 접근할지 대략적인 계획을 세운 후 한서진이 일어났다. 마침 그녀의 레이더에 한 무리의 사람이 걸렸기 때문이다.
“읏챠, 그럼 사장님이 시킨 일이나 해볼까.”
이건우가 짐작한 대로 한서진이 필승기획에 들어온 건 다른 꿍꿍이가 있어서였다.
원하던 것만 얻고 나서 필승 기획을 뜨려고 했는데, 엉뚱한 사람이 그녀의 인생에 등장했다.
필승 기획이 KW 코퍼레이션에 합병된 건 그녀의 계획에 없었던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그 등장이 마냥 달갑지 않은 것만은 아녔다.
사장이 바뀐 정도의 변수는 충분히 그녀가 컨트롤 할 수 있었으며, 무엇보다 한서진은 새로운 사장이 마음에 들었다.
‘정필승 같은 개새끼보다는 지금 사장이 훨씬 낫지.’
젊은 사장은 확실히 정필승보다 직원을 부릴 줄 알았다.
월급은 원래 신경을 안 썼으니 그렇다 치더라도, 사내 복지가 향상된 게 좋았다.
특히 한서진은 제일의료원과 연계해주는 혜택이 마음에 들었다.
그녀의 아픈 아들인 지우가 그 덕을 톡톡히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거 하나 때문에라도 목적을 이룬 후에도 KW 코퍼레이션을 계속 다니고 싶을 만큼.
‘뭐, 뒷세계 일에서도 이제 손을 씻었으니 나도 번듯한 직장 하나는 있어야겠지.’
그래야 아들 앞에서도 면이 서고 말이다.
아빠 없이 홀로 아들을 키우는데, 아들이 친구들 앞에서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직업 하나쯤은 가지고 있는 편이 좋지 않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KW 코퍼레이션은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에 딱 좋았다.
애사심이 무럭무럭 샘솟은 한서진은 마침 점심을 먹고 들어오는 사람들에게 다가갔다. 공장 노동자들이 막 식후땡을 하기 위해 모여있었다.
“안녕하세요. 아까 뵀는데 또 뵙네요. 불 필요하세요?”
“아, 고마워요.”
한서진은 품에서 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였다. 지우를 낳고 나서 금연하긴 했지만 라이터는 습관처럼 들고 다녔다.
공장 직원들이 담배를 피우며 한서진에게 관심을 표했다.
“그런데 처자는 아까 웬 사장님이랑 같이 오지 않았던가요?”
“맞아. 이번에 우리 공장 인수하기로 했다믄서? 진짜로 사장이 바뀌는 거요?”
평소에도 붙임성이 좋은 한서진은 생글생글 웃으며 말했다.
“네. 이번 주 안으로 계약 마무리 지을 거예요. 그렇지 않아도 저희 사장님이 직원분들께서 불편한 점은 없는지 따로 알아봐달라고 하셔서요.”
한서진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한 사람이 불만을 털어놨다.
“아이고. 불편한 거야 많지. 나는 흡연실 하나 있으면 좋겠네.”
한 사람이 말을 꺼내기 시작하자 봇물 터지듯 불만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2교대라 여간 힘든 게 아니에요. 3교대로 바뀌면 좋겠는데.”
“나는 직원 휴게실이 있으면 합니다. 쉴 데가 없어서 밖에 나와서 쪼그리고 앉아 있어요. 쉬어도 쉬는 게 아니야.”
한서진은 적당히 맞장구치며 직원들의 푸념 섞인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들었다.
그녀가 사장이 아니였기에 당장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확언하지는 못했지만, ‘말씀드려보겠다’ ‘고려해보겠다’라는 식으로 에둘러 대답하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조성운이라는 악덕 업주 아래서 고생하던 공장 직원들은 한서진의 간단한 대답에도 좋아했다.
그렇게 한참 얘기를 하다가 마침 목표로 하던 박준식이 그 근처를 지나갔다. 이때다 싶은 한서진은 슬쩍 운을 띄었다.
“어, 저분?”
“음? 박 직장님 말인가? 아가씨가 아는 분이요?”
“그건 아닌데 오늘 아침에 공장장님이랑 싸우는 걸 봤어요.”
“두 사람이 그러는 게 하루 이틀이 아니에요.”
“박 직장님께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그녀가 묻자 어느새 친해진 직원들이 하나둘씩 이야기를 풀었다.
“허이구야 직장이 아니라 공장장 쪽이 문제입니다. 맨날 입으로만 수당을 올려주겠다, 설비를 교체하겠다 하지. 무엇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어. 그나마 박 직장이 있어서 공장이 돌아가는 거예요.”
“맞아. 이번에 휴식 시간이 늘어난 것도 박 직장이 건의해서 그런 거잖아.”
“일도 얼마나 꼼꼼하게 하는지, 공장장이랑 맨날 싸워도 못 자르는 이유가 있다니까요.”
“그리고 여기 회사 초기 멤버라서 일을 다 꿰고 있어요.”
한서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대단한 사람이네요.”
직원들 사이에 신망도 좋고 일도 잘한다. 그리고 회사의 창립 멤버인 만큼 회사 내부의 사정에도 밝다.
차기 공장장이 되기에 딱 좋은 사람이다.
성공적으로 임무를 수행했다는 생각에 한서진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