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로 갑질하는 양아치 재벌-19화 (19/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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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크 공장 인수(1)

JS생활건강의 장점은 네 가지이다.

첫째, 규모가 커서 대규모 생산이 가능하며, 다양한 타입의 마스크를 생산하고 있다.

둘째, 주변에 여유부지가 있어서 증축이 가능하다.

셋째, 손소독제와 소독용 알코올 생산을 같이한다.

넷째, 지금은 아닌 거로 보이지만, 연구 인력을 채용한 적이 있다.

이 정도 장점이면 팔려도 진즉 팔렸어야 하는 공장이건만, JS생활건강은 꽤 오랫동안 주인을 찾지 못하고 있다.

왜냐하면 위의 장점들을 상쇄하는 단점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나는 캐리온이 조사해 온 비리 자료를 보았다. 그리고 그 안에서 JS생활건강의 문제점들을 볼 수 있었다.

JS생활건강의 시스템은 말 그대로 개판이었다.

먼저 파일부터.

JS생활건강이 있는 화성시의 건축관리과 계장이 6개 업체 관계자들로부터 명절 인사비 명목으로 수년간 4천만 원을 거둬들여 개인용도로 사용한 정황이 보였다.

여기까지는 공무원 개인의 잘못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어지는 내용을 보니 아주 가관이었다.

해당 공무원은 돈을 받은 만큼 공장들에 각종 편의를 제공했는데, JS생활건강의 경우 특히나 많은 수혜를 입었다.

JS생활건강에서 돈을 아끼기 위해 안전 등급도 제대로 받지 못한 설비를 들여와서 사용했건만, 공무원이라는 놈은 실사 한번 하지 않고 설비 허가를 내주었다.

심지어 법으로 정한 주기적으로 교체를 해줘야 하는 부품들이나 소모품들을 교체하지 않은 지 몇 년이 지났는데도, JS생활건강은 매년 안전 부문에서 통과를 하고 있었다.

웃기는 것은 JS생활건강에서 제출한 보고서에 의하면, 자기네는 매년 예산을 배정해서 부품들을 교체하고 수리를 하였다고 한 것이다.

그 예산이 어디로 갔는지는 말하지 않아도 뻔한 것이고.

일처리도 주먹구구식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JS생활건강은 말도 안 되는 중소기업의 표본, 가족경영을 표방하고 있었다.

사장 밑으로 있는 모든 관리직들이 모두 사장의 친인척들로, 어느 하나 뛰어난 사람이 없었다.

돈은 어디론가 줄줄 새고 있고, 재고 관리는 전혀 되지 않고 있었으며, 영업도 지지부진했다.

그러는 와중에도 사장 일가는 비자금만은 알차게 조성했다.

정부에서 나온 보조금이나 법적으로 직원들을 위해서 사용해야 하는 돈을 착복하여 자기 주머니로 챙겨 넣은 정황이 보인다.

심지어 단가를 가지고 장난질을 쳐놓기까지 했군.

굵직한 것들만 나열해서 이 정도이지, 자잘한 것까지 하면 JS생활건강에서 저지른 비리로 논문 하나가 나올 정도였다.

이 정도면 뭘 가지고서 협박, 아니 협상해야 할지도 고민인데?

뭐, 쓸만한 카드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으니까.

하지만 웃기게도 내가 경험해 본 결과에 따르면, 이렇게 많이 처먹은 놈들은 자신의 약점에 대해 꽤 관대하고 당당한 경향이 있다.

그래서 나는 공장을 친히 방문하기 전 사장 놈의 똥줄이 좀 타게 만들도록 했다.

“휘유. 건드릴 게 많네. 어떤 것부터 건드릴까.”

나는 고민하다가 공무원과 연결된 건부터 공략하기로 했다. 나는 즉시 감사원에 ‘지방자치단체 토착 비리에 대한 감사’라는 명목으로 제보했다.

이 정도면 사장이라는 놈도 조금씩 후달리기 시작하겠지?

나는 히죽 미소를 지었다.

*

JS생활건강 공장장 조성운은 아침부터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리고 으레 그렇듯 그는 직원들에게 화를 풀고 있었다.

아침부터 나와서 트집을 잡는 공장장 때문에 직원들의 신경도 날카로워졌다.

“여기 청소는 제대로 한거야? 무슨 기름때가 이렇게 묻어있어?”

사실 기름때가 아니라 제때 교체하지 못한 부품에 녹이 슨 것이었다.

“···죄송합니다. 지금 바로 청소하겠습니다.”

“에잉, 맘에 안들어. 그리고 저기 자재들은 왜 다 저렇게 쌓아놓은 거야? 창고는 어디 냅두고 저렇게 해놓는 거야? 내가 오기 전까지 저거 다 정리해 놔요!”

사실 창고는 이미 팔리지 않은 재고로 가득 차 더 이상 적재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조성운은 아무것도 모르는 듯 직원들에게 한껏 짜증을 부리고는 자리를 떴다.

조성운이 떠난 후 직원들이 수군거렸다.

“공장장은 또 왜 저래요? 평소에는 잘 나오지도 않더니.”

“오늘 우리 공장 인수할 사람이 온대잖아요.”

“그럼 기분이 좋아야 하는 거 아닌가?”

“어 그러게요.”

그때 마당발이라 불리는 직원이 말했다.

“내가 잠깐 공장장님이 전화하는 걸 들었는데, 지금 발등에 불이 떨어졌대요. 저번에 우리 공장 감사 나온 공무원 기억나요?”

“아, 그 공장장님이랑 형 동생 하시던 그분? 그런데 그 사람이 왜요?”

“글쎄, 그 사람이 이번에 징계위원회에 회부됐대요. 뇌물수수 혐의로. 그것 때문에 공장장 기분이 저렇게 안 좋아요.”

지금까지는 뇌물을 먹이면서 대부분의 문제를 해결해왔다.

하지만 만약 지금까지 뇌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해왔다는 것이 걸린다면?

아마도 공장은 엄청난 벌금을 물게 될 것이다. 잘못하면 폐쇄 조처가 내려질 수도 있고.

물론 그렇게 되지 않도록 추가적으로 이런저런 조치를 취하고 있기는 하지만, 사람 일이라는게 모르는 거 아닌가.

조성운은 괜히 마음 한구석이 쫄려 심술이 난 모양이었다.

그리고 혹시나, 이번에 온다는 인수자가 그 문제를 알게 된다면?

모르긴 몰라도 인수가 틀어질 건 확실하다. 제정신이 박힌 사람이라면 비리 공장을 사려고 하지는 않겠지.

게다가 소문이라도 나면 앞으로도 공장을 사려고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고.

“그래서 공장장이 저렇게 닦달하는 거구나. 그래도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격인데···.”

“그러니까요. 지난번에 회계팀 대리가 자진해서 나갔잖아요. 더러워서 못 해 먹겠다고.”

“그건 또 무슨 일이래요?”

“장부가 안 맞는대요. 그런데 팀장은 어떻게든 맞추라고 하니깐 스트레스가 장난 아니었다고 하더라고요.”

괜히 마당발이 아닌지 그 직원은 공장의 온갖 소문을 꿰고 있었다.

그때 한 사람이 조성운을 향해 다가갔다.

눈을 마주친 직원들이 목례를 하는 것을 보면, 나름대로 책임자 지위에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바로 설비를 총괄하는 시설관리팀의 직장이었다.

가족경영 회사인 이곳에서 유일하게 외부인으로 관리직에 오른 사람이다.

수십 년간 일한 공장을 위하여 항상 쓴소리를 하기에 공장장과는 사이가 좋지 않은 사람이기도 했는데, 워낙 일처리를 잘해서 공장장이 자르지도 못하고 계속 두고 있다.

서류 한 뭉치를 들고 다가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직원들은 고개를 설레설레 내저었다.

“공장장님이랑 또 한 판 하시겠네.”

아니나 다를까 잔뜩 열받은 공장장의 노호성이 튀어나왔다.

“이봐요 박 직장. 그 부분은 내가 곧 해결할 거라니까! 추가 설비랑 여유 부품들이 곧 들어온다고. 회계팀에서 얘기 못 들었어?”

“이미 회계팀에 갔다 오는 길입니다. 구매 대금은 지난달에 빠져나갔는데, 아직까지도 기계가 없다니 이게 말이 됩니까? 지금 전년 대비 생산율이 떨어지고 있어요. 곧 있으면 황사 철인데 이러면 물량을 맞추지 못해요.”

원리원칙대로 따지는 직장의 말에 공장장은 열화가 목 끝까지 차오르는 걸 느꼈다.

이 답답한 작자 같으니라고!

어차피 이 공장은 다른 사람에게 팔아버리고 튈 건데, 지금 와서 노후한 시설을 교체하라니.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들을 사람이 아니었기에 공장장은 권위로 찍어눌렀다.

“이보세요. 여기에 공장장은 나야. 나한테 이래라저래라 명령할 권한은 없어.”

“하지만···.”

“그리고 지금 창고에 재고가 쌓여있다는데 황사 철에는 그거라도 팔면 되잖아!”

“아니, 재고가 쌓인 건 비수기라서 그렇고 곧 있으면 그 물량도 부족하다니까요!”

직장이 반박하려고 하자 공장장은 듣기도 싫다는 듯 손을 휘저었다.

“됐어요. 이제 곧 손님이 오실 시간이니까 나중에 얘기합시다.”

그는 도망치듯 뒤돌아섰다. 그리고 그 순간 공장 부지로 들어오는 이건우와 마주쳤다.

*

나는 비서(이자 경호원) 역할을 맡고 있는 한서진을 데리고 화성으로 내려갔다.

차를 몰던 한서진은 화성시 외곽에 있는 공장에 내리자 의아해했다.

“공장이네요?”

“네. 마스크 공장이죠.”

한서진은 이해가 안 된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는 애초에 필승 기획에 있던 사람. 당연히 소속은 미디어 분야다.

KW 홀딩스라는 이름으로 투자회사를 만들기는 했지만, 그건 전산화가 돼서 캐리온이 관리하고 있다.

하지만 한서진은 KW ‘코퍼레이션’ 소속의 비서이고, 나는 미디어뿐만 아니라 시스템이 존재하는 모든 곳을 건드리는 기업으로 거듭날 것이다.

그러니 그녀 또한 다양한 분야의 업무를 공부하고 또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

“요즘 북경에서 유행하고 있는 바이러스에 대해서는 들어봤어요?”

“바이러스요? 아, 오늘 아침에 기사에서 봤어요.”

오늘이 북경에서 미확인 바이러스가 나타난지 딱 한 달째 되는 날이며, 한국에서 첫 보도를 했다.

당연히 심도 깊게 다루지는 않았으며 ‘중국에서 위험한 질병이 유행하고 있으니 출장이나 여행을 가는 사람은 조심해라’ 정도로만 간단하게 언급하고 끝났다.

한서진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중요한 건가요?”

“네. 그 질병은 곧 세계를 휩쓸 겁니다. 곧 마스크가 엄청나게 필요할 거예요. 뭐, 지금 준비하는 것도 늦기는 했지만, 초도물량을 공급하는 데는 문제가 없도록 하는 게 제 목표예요.”

나는 한서진과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내부로 들어갔다. 그런데 공장에 유난히 사람이 보이질 않았다.

다들 일하고 있는 모양인지, 간혹 지게차를 끌고 자재를 운반하는 사람 말고는 돌아다니는 사람이 없었다.

“사람이 없네요.”

한서진이 시계를 확인하며 말했다.

“이상하네요. 분명 이때 온다고 말해놨는데···.”

그때 공장 안쪽에서 높은 고함이 들려왔다. 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자, 공장 입구 쪽에서 두 사람이 싸우고 있었다.

그중 한 명의 얼굴은 바로 알아봤다. 캐리온이 조사한 자료에 있던 공장장의 얼굴이었으니까.

“저기에 있네요. 갑시다.”

딱 봐도 공장장의 기분이 안 좋아 보이는 것이, 나의 제보가 상당히 잘 먹혔다는 게 느껴졌다.

좋아, 그럼 이제 협상을 한번 시작해볼까.

*

조성운은 꽤 당황해 보였다. 하긴 첫 만남부터 직원과 언성을 높이는 모습을 보여줬으니 그럴 만도 하지.

그는 허둥거리며 손을 내밀었다.

“아이고 일찍 오셨네요. 반갑습니다. JS생활건강 대표 조성운입니다.”

“KW 코퍼레이션의 이건우입니다.”

우리는 명함을 교환한 다음 공장을 둘러보았다. 조성운은 내 옆에 딱 붙어서 공장에 관해 설명해주었다.

“보시다시피 우리 공장은 한국 최대 규모로 마스크를 생산하고 있습니다. 산업에서 쓰는 KF99뿐만 아니라, KF 94, 80 그리고 덴탈 마스크까지 뽑아내고 있지요. 아동용 마스크도 같이 생산하고 있습니다.”

내가 이곳을 고른 가장 큰 이유이다.

대한민국 최대 규모의 설비.

생산라인도 60-70개 가량 운영되고 있고, 생산 가능한 마스크의 종류도 많다.

“듣던 대로 규모가 엄청나기는 하네요.”

“하하, 그럼요. 기계들도 항상 꼼꼼하게 관리하고 있습니다.”

... 아닐 텐데.

캐리온이 뽑아준 자료를 봤을 때는 기계가 상당히 노후화되었다고 했단 말이다. 소모품 교체도 잘 하지 않았다고 하고.

속일 사람을 속여야지.

나는 속으로 조성운을 비웃은 뒤 공장 탐방을 이어 나갔다.

생산파트, 검사파트, 포장파트, 물류파트까지 다 돌아본 후 본격적인 협상에 들어갔다.

조성운은 회계팀장을 불러왔다. 악수를 건네려던 나는 그의 덩치를 보고 흠칫했다.

‘회계팀장이야, 아니면 프로레슬링 선수야?’

회계팀장이라고 나온 사람은 젊어 보이는 데다 온몸이 근육으로 가득 차 있었다.

딱 봐도 사무직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인상.

어디 힘쓰는 일을 하면 잘 할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니 회계팀장의 얼굴이 조성운과 꽤 닮아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조성운이 자랑스럽게 말했다.

“제 아들입니다. 얼마 전 대학교를 졸업하고 아빠를 도와준다고 나서더군요.”

“아 예. 뭐, 훌륭한 아드님을 두셨군요.”

나는 떨떠름하게 대답했다.

가족경영의 구린 냄새가 스멀스멀 흘러나오고 있었다.

아들이 회계를 맡는다면 감사가 제대로 되지도 않을 테고 중간중간에 구멍도 뻥뻥 뚫려있겠지. 그리고 무엇보다 돈을 빼돌려 비자금을 만들기도 쉬울 거고.

회계팀장은 먼저 재무제표를 펼친 후 부채와 자본금 그리고 자산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역시나 젊은 회계팀장은 업무에 대해 두루뭉술하게만 알고 있었다.

심지어 내가 젊어 보이고 회계사를 따로 대동하지 않아서 그런지, 빵꾸가 난 부분을 어물쩍 넘어가려고 하였다.

그런데 그 재무제표, 이미 다 본 거야.

캐리온이 그쪽 재정 상황은 이미 다 파악을 해뒀거든.

“잠깐만요. 제가 직접 보도록 하죠.”

나는 장부를 가져온 다음 한 곳을 지적했다.

“지난달에 최신 모델의 설비를 들여왔다고 되어있는데, 조금 전에 봤을 때는 그런 모델이 없었던 것 같은데요?”

조성운과 그 아들은 쌍으로 당황했다.

하긴 아까 잠깐 생산라인을 살펴본 건데 그사이에 모델 기종까지 파악했을 줄은 몰랐겠지.

이래서 사전조사가 중요하다.

“아, 그게···. 그건 다른 곳에 있습니다. 사장님이 아직 보지 않은 곳에요.”

“뭐, 그럼 그건 이따가 따로 실사를 나가보기로 하고···. 그것뿐만 아니라 여기도 문제가 있네요. 아까 봤을 때 직원의 수가 백 명 좀 더 되는 것 같은데 지난달 월급은 훨씬 많이 나간 것 같군요.”

유령직원의 월급은 아마 조성운의 뱃속에 들어갔겠지.

“그건 이번 달에 그만둔 직원이 많아서···.”

“곧 있으면 황사 철인데 그만둔 직원이 많군요. 그것참 아쉬운 일입니다.”

“아니, 그게···.”

조성운이 뭐라고 변명을 했지만 나는 변명은 귓등으로 흘러들으며 하나씩 문제를 짚어갔다. 전부 캐리온이 사전에 조사한 것들이다.

내가 협상은 하지 않고 문제만 지적하고 있자 결국 조성운이 장부를 탁 덮어버렸다.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인수 의사는 있는 겁니까?”

“있으니까 이러고 있죠. 제가 인수할 기업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알아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얼마 보지 않았는데도 개판이라는 건 확실히 알겠네요.”

나는 빙긋 웃으며 못 박았다.

“이러면 제시하신 인수가를 맞춰드리기 어렵겠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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