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로 갑질하는 양아치 재벌-17화 (17/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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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다 계획이 있구나(1)

나는 차에 올라타자마자 할아버지께서 주신 서류를 열어보았다.

크리스마스 날 선물 포장을 뜯는 아이가 된 것처럼 두근두근거렸다.

세금은 할아버지께서 다 처리해주셨기에 아주 깔끔했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내 이름으로 된 계좌 여러 개.

예금뿐만 아니라 증권 등 다양하게 분산되어있었는데, 다 합치니 백 억가량 되었다.

현금으로 백억이나 가지고 있다니 진짜 부자는 다르구나.

하긴 어머니도 재벌가의 막내딸이었으니 이래저래 받은 돈이 많았겠지.

그다음에는 제일 그룹 주식 2퍼센트가량을 양도받았다.

일반적인 재벌가의 며느리가 가지고 있기에는 많은 양이었지만, 할아버지께서 생전에 어머니를 얼마나 믿으셨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 외에도 어머니의 친정인 오성 그룹의 주식과 다른 그룹 주식도 들고 있었다. 우리 어머니 주식 부자셨구나.

이 주식은 처분하지 않기로 했다.

훗날 정치적으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에, 당장의 수익을 쫓는 것보다는 가지고 있는게 장기적으로 봤을 때 더 유리하다.

또 토지와 건물도 약간 있었는데, 마침 서초동에 사옥으로 쓰기에 좋은 건물도 한 채가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이자 하이라이트. 어머니가 관장으로 있었던 갤러리가 있었다.

소장하고 있는 미술품 목록을 보니 입이 쩍 벌어질 만한 가격이었다.

어머니가 현대미술을 전공했고 취미로 갤러리를 운영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호화로울 줄이야···.

이것만 다 처분하더라도 데이터센터 하나는 뚝딱 올리겠다. 물론 그렇다고 진짜 처분했다가는 할아버지께서 노발대발하시겠지만.

그리고 더 재미있는 건 어머니께서 갤러리를 운영하면서 차명으로 제일 그룹의 주식을 야금야금 모았다는 것이다.

그렇게 모은 주식이 대략 0.7퍼센트. 어머니께서 기존에 가지고 있던 주식까지 합하면 대략 3퍼센트로 절대로 무시할 수 없는 비중이다.

이 정도라면 본인이 가지고 있는 모든 역량을 제일 그룹 주식을 사 모으는 데 사용하셨다고 생각이 들 정도였다.

어머니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 필사적으로 제일 그룹 주식을 모았던 걸까?

아버지에 대한 복수심 때문일까? 아니면 아들을 제일 그룹 회장에 앉히겠다는 생각이셨을까?

잘 모르겠지만 지금의 나에게는 무엇보다도 큰 선물이 되었다.

이 정도 주식이면 제일 그룹을 한바탕 흔들어 볼 수 있거든.

아니, 흔드는 수준을 넘어 때에 따라서는 킹메이커가 될 수 있는 정도이다.

차기 회장으로 유력한 이정혁은 나를 눈엣가시로 생각하고 있으며, 언제든지 내 일을 훼방 놓을 수 있는 사람이다.

그를 견제하려면 이 정도는 보험으로 들고 있어야지.

나는 미소를 지으며 서류를 봉투 안에 넣었다. 어머니에게 받은 유산으로 내 선택지가 무척이나 다양해졌다.

이걸로 조금 더 많은 일들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재미있어지겠군.’

*

집으로 돌아온 나는 불어난 재산을 만끽했다. MC 소프트로 번 돈과 어머니께 받은 유산으로 점찍어둔 기업들을 쇼핑할 생각이었다.

예전에 캐리온이 ‘바이러스 이후 재편될 산업 구도 ‘에 대해 정리해둔 자료를 꺼내보았다.

가장 먼저, 마스크 공장을 인수해서 최대한 많은 마스크를 찍어내야 한다.

미확인 바이러스는 북경 치오양구를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었다.

치오양구는 북경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구인데, 당국의 필사적인 통제 속에서도 바이러스는 차근차근 전파 속도를 높이고 있었다.

보통 바이러스의 감염 속도는 기하급수적이다. 초반에는 천천히 증가하지만, 어느 시기를 기점으로 폭발하듯이 성장한다.

그때가 되면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그리고 중국에서의 바이러스 전파 속도는 천천히 증가하는 시기를 지나 조만간 폭발하는 단계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물론 한국에 있는 내가 이 상황을 막을 방법은 없다. 그냥 상황을 모니터링하며 앞으로 닥칠 파국을 대비하는 수밖에 없다.

신형 바이러스가 당장은 북경에서만 활동하고 있지만, 캐리온의 예측에 따르면 앞으로 한 달쯤 뒤에 한국에 첫 상륙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신형 바이러스의 전염성이 굉장히 높은 데 비해, 백신이나 치료제는 전혀 준비가 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예방이 최선이겠지.

아마도 마스크가 무엇보다 중요해질 것이다. 미세먼지가 심할 때만 간간히 쓰던 마스크가 이제 일상용품이 될 정도로.

아직 바이러스에 대한 정보는 중국이 철저하게 통제하고 있어서 어떤 종류인지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했지만, 증상만 놓고 봤을 때는 두창 바이러스일 가능성이 90퍼센트 이상이다.

만약 이것이 사실일 경우 문제는 상당히 심각해진다.

두창 바이러스는 인류에 존재했던 바이러스 중에 가장 많은 사망자를 배출한 바이러스이다.

14세기에 악명을 높였던 흑사병이 대략 1억 명의 인명 손실을 냈고, 20세기에 유행한 스페인 독감도 오천만 명 가량의 사망자를 냈다.

그러나 두창 바이러스는 단위가 다르다. 누적 사망자 약 10억 명. 치사율은 보통 30퍼센트, 심하면 100퍼센트까지 올라갈 수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두창 바이러스가 공기 감염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특정 공간에 두창 바이러스 환자가 한 명이라도 있으면, 그 공간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격리시켜야할 정도로 전염성이 높다.

따라서 이 말도 안 되는 전파력을 차단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가 마스크이며, 마스크를 만들어만 놓는다면 불티나게 팔릴 것이다.

나는 캐리온에게 말했다.

“캐리온. 국내 최대 규모의 마스크 공장을 지을 건데 견적서를 하나 뽑아봐. 공장 부지랑 설비 시세도 알아보고.”

[이건우 님 캐리온의 업그레이드가 필요합니다.]

업그레이드. 그래, 그것도 중요하지.

지금 점찍어둔 기업을 사려면 들어갈 돈이 얼마나 많은데 업그레이드라니!

바이러스가 퍼지면서 인적 이동은 제한된다. 따라서 여행과 레저, 그리고 항공 산업은 내리막길을 걷는다.

또한 엔터테인먼트 산업 역시 불황을 맞이할 것이다. 수익을 낼 수 있는 콘서트와 행사 축제가 모두 제한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 회사 역시 단순한 엔터테인먼트에서 벗어나 수익을 다각화할 방도를 찾아야 했다.

나는 미디어, 그것도 OTT 플랫폼에 투자할 생각이었다.

지상파 3사와 파트너쉽을 맺어 드라마를 공급받고, 자체 제작한 오리지널 컨텐츠도 만들어 공급한다.

그러면 집콕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에게 충분한 즐길 거리를 제공해줄 수 있다.

그리고 또 바이오 제약이 각광받는 만큼 그쪽 산업에도 투자해야 하고, 통신 및 보안 기술에 대한 수요도 폭발할 테니 미리미리 투자해야 한다.

이렇게 쓸 돈이 많은데 업그레이드라고?

나는 달래듯이 말했다.

“알았어. 해줄 테니까 일단 마스크 공장부터 알아봐.”

[알겠습니다. 그러면 서버실 설계도와 구매한 장비 목록을 보내드립니다.]

[장비는 보안 시설, 공조 시설, 소방 및 냉방 시설, 전기 시설 항목으로 분류해서 첨부했습니다.]

[마스크 공장에 대해서는 조사에 들어가겠습니다.]

“음?”

나는 캐리온의 말을 듣다가 의문이 생겼다.

“···구매한 장비 목록이라고?”

그렇게 말하니까 꼭 장비를 이미 구매한 것 같잖아?

그때 핸드폰에서 알람이 울렸다.

[- 54,000,000,000]

“???”

나는 벌떡 일어났다. 오, 오백사십 억이 빠져나갔다고?

지금까지 번 돈이 순식간에 절반으로 쪼그라들었다.

“캐, 캐리온. 이, 이게 무슨···.”

내가 말을 더듬을 정도로 당황하자 캐리온이 태연하게 말했다.

[서버실을 구축하기 위해 구매한 장비입니다.]

“누구 마음대로!”

[방금 분명 서버를 확충해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자기 발전을 위하여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자기 발전도 정도껏 해야지. 뭘 하느라 오백억이나 필요한 건데!”

[구매 장비 목록을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나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태블릿을 들어 캐리온이 전송한 자료를 확인했다. 그리고 입을 떡 벌렸다.

“······.”

무슨 연구소를 차리는 것도 아니고, 수십억을 호가하는 고가의 장비가 주르륵 나열되어있다.

내가 수많은 장비의 향연에 정신 못 차리고 있을 때 캐리온이 말했다. 캐리온의 말투가 묘하게 자랑스러웠다.

[아직 데이터센터를 구축할 만큼 자금 여력이 되지 않기에, 소박하게 총 200대 규모의 슈퍼컴퓨터 서버실을 구축하려고 합니다.]

애가 참 소박해서 다행이다. 두 번 소박했다가는 재산이 거덜 나게 생겼네.

*

매트릭스나 터미네이터에서는 인공지능에 대해 음울한 설정을 하고 있다.

고도로 발달한 강인공지능이 그 창조자인 인류를 위협한다는 설정이다.

나는 지금까지 인공지능이 인류의 발전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으로 시스템을 개발해왔지만, 바로 방금 그 생각을 바꿨다.

캐리온은 지금 내 재산을 위협하고 있다. 캐리온이 단호하게 주장했다.

[데이터가 계속 쌓이고 있습니다. 저장공간도 현저히 부족할 뿐만 아니라 지금 연산 능력으로는 복잡한 데이터를 처리할 수 없습니다.]

[저는 한 달 뒤에 국가 비상 상황이 닥칠 거라고 예고했으며, 그때가 되면 지금 가진 모든 역량을 바이러스 시뮬레이션에 투입해도 부족합니다.]

[따라서 지금보다 더 뛰어난 성능의 컴퓨터와 보조장비가 필요합니다.]

캐리온의 말에 조금도 틀린 게 없었다. 캐리온은 꾸준히 설비의 업그레이드에 대하여 말해왔었다.

그리고 실제로도 캐리온이 지금 하는 일은 그 종류가 무척이나 다양하며, 필수적이다.

단지 한정된 자금으로 여기저기 투자를 하려니 돈이 모자라서 그렇지.

나는 한숨을 푹 쉬었다.

“MC 소프트에서 돈을 많이 벌었다고 생각했는데 이것밖에 안 남았네.”

남은 돈은 고작 오백억.

초기 자금이 오십 억이였던 걸 생각하면 열 배나 불어난 셈이지만, 천억을 손에 쥐고 있다가 절반이 날아가 버리니 이렇게 적어 보일 수가 없다.

이 돈으로 마스크 공장을 사고 나면 자그마한 연구소 하나 살 돈도 남지 않을 거다.

또 공장을 사고 연구소를 사면 뭐하겠는가. 굴리려면 인건비니 뭐니 해서 계속 돈은 들어가는데 당장 투자금을 회수하는 건 어려울 거다.

추가로 팬데믹 특수를 입을 다른 기업에도 투자해야 하고.

돈 나갈 구석은 많은데 들어올 구석은 없다. 나는 한탄하며 말했다.

“MC 소프트처럼 한 방에 떙길 수 있으면 좋을 텐데.”

그때 캐리온이 말했다.

[좋은 투자 정보를 입수했습니다. 예상 수익률은 2000%입니다.]

[서버 확충에 투자한 금액은 복구하고도 남습니다.]

그 말에 내 눈이 휙 돌아갔다.

“예상 수익률이 2000%라고?”

캐리온이 멋대로 돈을 써서 섭섭하던 마음이 눈 녹듯이 사라졌다.

“너는 다 계획이 있었구나.”

인공지능이야말로 인류 발전에 혁혁한 공을 세울 수 있는 위대한 혁신이 아니겠는가!

그럼 어디 그 계획 한번 들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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