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로 갑질하는 양아치 재벌-16화 (16/183)

────────────────────────────────────

────────────────────────────────────

뒷거래

무려 회장님께서 부르셨으니 본가로 찾아가야겠지만, 그전에 MC 소프트에 넣어둔 투자금부터 회수하기로 했다.

오늘은 마침 12월 12일. 풋옵션 만기일이었으니까.

돈을 얼마나 벌었는지 정산이나 해볼까?

나는 투자 현황을 살폈다.

먼저 MC 소프트에 투자할 때는 KW 코퍼레이션이 아니라, 자회사 KW 홀딩스를 설립해서 투자했다.

캐리온은 투자에 관련한 빅데이터를 엄청난 속도로 쌓고 있다.

덕분에 트레이딩 프로그램이 훨씬 정교해졌고, 주식 단타와 암호화폐뿐만 아니라 각종 파생상품 시장에 손을 대면서 점점 수익을 올리고 있다.

수익이 점점 커지자 아예 투자 회사를 만들었다.

주목적은 개인 자금을 불리는 용도이고, 곧 영업을 시작해서 다른 사람들의 투자도 받을 생각이다.

사람이 아니라 인공지능이 돌리는 투자 회사. 확실한 수익을 보장해주는 투자 회사로 자리매김을 할 것이다.

어쨌든 KW홀딩스에서 MC 소프트에 투자한 총금액은 대략 52억.

먼저 발행가가 낮은 외가격으로 형성된 풋옵션만 20억 원어치 사들였고, 나머지는 전액 CFD로 10배 레버리지를 일으킨 후 공매도 포지션을 취했다.

그리고 오늘 주가를 확인해본 결과 MC 소프트 주가는 반 토막이 나 있었다.

우리 란저씨들이 화가 많이 나셨나 보네.

연금이 투자하는 안전 자산으로 여겨졌던 만큼 충격의 여파는 컸다.

외국인은 진즉 매도 포지션을 잡았고, 떨어지는 주가에 경악한 개미들은 너도나도 들고있던 주식을 던져대기 시작했다.

덕분에 차트는 시퍼렇게 물이 드는 반면, 나는 이 폭락 장에서 엄청난 수익을 얻었다.

공매도 수익률은 22퍼센트에 달했고, 풋옵션으로는 그 수십 배를 벌었다.

52억은 순식간에 1029억 6천만 원으로 불어났다.

무려 1980퍼센트나 되는 수익률을 올린 것이다!

물론 옵션 만기일이 더 늦어졌으면 더 많은 수익을 올릴 수 있었겠지만, 나는 할아버지께 수익을 입증해야만 하는 상황이기에 이쯤에서 손을 떼기로 했다.

나는 공매도 포지션을 청산하고 수익을 확정 지었다.

그리고 두둑해진 계좌와 함께 할아버지를 뵈러 갔다.

*

이 주 전에 이곳을 찾아왔을 때만 해도 땡전 한 푼 없었는데, 이제는 보유 자금만 천억이 넘는 회사 사장이 되었다.

내 회사는 제일 ENM의 공격을 받았지만, 결국은 이겨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위기를 기회로 바꾸었다.

윤단아를 모르던 사람들도 이번 기회에 그녀의 이름 한 번쯤은 들어보게 됐으니, 이른바 노이즈 마케팅이 된 셈이다.

윤단아도 그렇게 유입되는 사람들을 쭉쭉 빨아들여 대형 스트리머로 자리를 잡았다.

아직 갈 길은 멀지만, 이 주도 안 되는 시간에 괄목할만한 성과를 이루었으니 내 자신이 뿌듯해졌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셨나 보다.

보자마자 내 등짝을 후리시는 걸 보면 말이다.

짝!

“악! 왜 때려요!”

내가 항변하자 할아버지는 쌍심지를 키셨다.

“뭐? 왜 때려요? 이놈의 자식이 그게 일을 벌여놓고 하는 소리야!”

“저는 아무 잘못 없다고요. 아버지가 먼저 제 회사를 공격했잖아요!”

“이, 이! 이놈이 뚫린 입이라고! 그래도 조용히 일을 처리해야지!”

할아버지는 효자손을 들고 나를 후드려 패려고 했고 나는 도망갔다.

그렇게 한참 술래잡기를 한 후 할아버지는 기진맥진한 채 정원에 있는 벤치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만할 테니까 너 이리 좀 와봐라.”

“안 때리시는 거죠?”

“그렇다니까!”

나는 구시렁대며 할아버지 옆에 가서 앉았다.

“하여간 나이도 드실 만큼 드신 분이 체통 좀 지키세요. 회장님이 집에서 이렇게 뛰어다니면 어떻게 합니까? 사람들 보기 제가 다 부끄럽습니다.”

딱! 악!

나는 딱밤을 맞고 입을 다물었다. 할아버지가 나를 째려보며 말했다.

“그놈의 주둥이를 확 꼬매 버리든가 해야지. 그나저나 이번 싸움은 여기서 그만둬라.”

“그러려고 제가 할아버지께 부검 결과지를 넘겨드렸지요.”

부검 결과지를 세상에 공개한다면 재수사를 피할 수 없다. 그리고 재수사가 이루어진다면 분명 김우영이 자살한 것이 아닌 살해당한 것이라는 게 밝혀지겠지.

그것도 소속사에 의해서 말이다.

소속 연예인을 살해하는 엔터테인먼트.

제일 ENM뿐만 아니라 제일 그룹 자체의 주가가 바닥을 치고, 심하면 불매운동까지 벌어질 수 있다.

그건 내가 바라는 바가 아니다. 제일 그룹은 어찌되었든 내 친정이고, 그곳을 공격하는 건 제 살 깎아먹기밖에 더 되지 않는다.

물론 죽은 김우영은 불쌍하게 됐지만, 나는 굳이 피해를 감수하면서까지 죽은 이의 명예를 회복시킬 생각은 없었다.

어찌되었든 내게 중요한 것은 당장의 이해득실이니까.

또, 부검결과지를 공표한다고 해서 이정혁을 잡을 수 있을까?

겨우 이 정도 사건으로 이정혁을 끌어내리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아마 정동하 본부장을 내주는 대신, 본인은 꼬리를 자르고 잘도 빠져나가겠지.

하지만 내 목표는 정동하 본부장 따위가 아니거든.

그럴 바에야 할아버지의 중재 아래 물밑에서 거래하는 게 낫다.

할아버지라면 내게 유리하도록 협상을 이끌어주실 것이고, 이정혁도 할아버지의 말에 꼼짝도 못 하니 쉽게 원하는 것을 얻어낼 수 있다.

부검결과지라는 카드는 나중에라도 또 써먹을 수 있고 말이다.

할아버지는 내게 물었다.

“그래. 뭘 원하느냐?”

“제일 ENM 밑에 제작 스튜디오가 하나 있습니다.”

할아버지는 잠깐 고민하더니 한 회사를 떠올렸다.

“스튜디오 라이언 말하는 게냐?”

“네”

할아버지가 제일 ENM의 스튜디오까지 아는 이유는, 이 스튜디오가 제일 ENM의 드라마 사업 부문에서 핵심 역할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스튜디오 라이언은 일반 스튜디오가 아니라 제일 ENM이 물적분할한 핵심 사업체이다.

자회사 4개를 거느렸으며 시총 2조에 달하는 거대 스튜디오다.

“설마 스튜디오 라이언을 통째로 달라는 건 아닐 테고 뭘 원하는 게냐?”

“스튜디오 라이언은 외주를 거의 받지 않고 제일 ENM의 드라마만 만들고 있지요. 5년짜리 외주 계약을 맺고 싶습니다. 물론 아버지가 지금처럼 훼방을 놓지 않는다는 조건도 붙어야겠지요.”

미확인 바이러스가 퍼진다면 미디어 사업이 각광을 받을 것이다.

나는 그중 하나로 OTT 산업을 계획하고 있고, 다른 케이블 채널과 계약을 맺는 동시에 자체 콘텐츠도 제작할 예정이다.

그러면 숙련된 제작 스튜디오는 필수적이다.

할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 그 건은 내가 알아서 하마.”

“감사합니다.”

우리는 가만히 바람을 맞으며 땀을 식혔다. 이건우의 기억이 있어서 그런가, 나는 이만호가 친할아버지처럼 다정하게 느껴졌다.

그때 할아버지가 말했다.

“회사는 잘 경영하고 있느냐?”

“이미 보고를 받고 있으시잖아요.”

“녀석. 그래도 손자 입에서 듣는 게 이 할애비의 기쁨이다.”

“그렇지 않아도 할아버지의 기쁨을 위해 이걸 챙겨왔습니다.”

나는 할아버지께 서류를 건네드렸다. 할아버지가 서류를 보더니 고개를 기우뚱했다.

“오십 억? 이건 뭐냐?”

“할아버지께 빌린 돈이요. 갚아야죠.”

“벌써 이만한 수익이 생겼단 말이냐?”

“할아버지께서 주신 돈으로 투자를 좀 했지요. 이번에 수익률이 좀 좋아서요.”

할아버지는 더 모르겠다는 얼굴을 하셨다.

“투자를 해? 네가 세운 회사는 엔터테인먼트 회사이지 않느냐.”

“누가 그러던가요? 사명에는 엔터의 ‘엔’자도 들어가지 않는데요.”

“음?”

나는 미소를 지으며 서류를 한 장 더 주었다. 윗장에는 ‘KW 홀딩스’라는 사명이 적혀져있었다.

“KW 코퍼레이션 아래 KW 홀딩스가 있습니다. 이번 투자 수익 역시 KW 홀딩스에 귀속되어있지요.”

할아버지는 서류에 적힌 수익률을 보고 경악했다.

“이, 이천 퍼센트? 천억이나 벌었다고?”

“이번에 인수한 필승 기획은 자리를 잡는 대로 KW 미디어로 분리시킬 예정입니다. 어쨌든 저는 회사를 세웠고 이 정도면 능력을 입증한 것 같은데요. 어머니의 유산을 받을 자격이 되지 않겠습니까?”

“끄응”

할아버지는 고민하는 기색이 역력해 보였다.

당초 목적과 달리 투자 회사를 설립해서 수익을 냈지만, 어쨌든 수익을 낸 건 사실이다.

그리고 엔터테인먼트 쪽도 제일 ENM의 공격을 받고도 버텼으며, 그 과정에서 실리를 취해서 스튜디오도 하나 뜯어냈다.

어디에도 흠잡을 곳은 없다.

“좋다. 유산을 물려주마. 따라오너라.”

할아버지는 나를 데리고 서재로 들어갔다. 한쪽에 있는 금고에서 잠금장치를 풀고 서류봉투를 꺼냈다.

“지난번에 네가 다녀간 후로 명의 변경은 미리 네 앞으로 해두었다. 최소한 반년은 걸릴 줄 알았는데 이렇게 빨리 넘겨주게 될 줄은 몰랐구나.”

“감사합니다. 손자가 유능하다는 증거죠.”

“네 어머니의 유산이다. 허투루 쓰지 말거라.”

“알겠습니다. 꼭 필요한 데 투자해서 몇 배로 불리겠습니다.”

“암 그래야지.”

“사랑합니다.”

“에잉 썩 꺼져!”

부끄러워하시기는.

*

이건우가 떠나간 후, 이만호 회장의 집에는 또 다른 손님이 방문했다.

이정혁은 차가운 눈으로 궁궐 같은 대저택을 주시했다.

철통같은 정문이 열리고 담장을 따라 늘어진 가로수를 따라 차를 몰고 들어가면 제일 그룹의 왕좌가 나온다.

저택에 심어둔 사람을 통해 이건우가 여기를 왔다 갔다는 사실은 이미 들었다.

‘이건우가 왜 여기에 온 거지?’

얼마 전 제일 ENM을 찾아왔던 이건우.

그 자신만만해하며 큰소리치던 모습이 떠올라서 심기가 불편해졌다.

이정혁은 짜증 가득한 마음을 안고 서재로 들어갔다.

책상 앞에 앉아있던 이만호는 들어오는 아들을 보고 응접용 소파로 옮겨 앉았다. 이만호의 표정은 방금 전 이건우를 볼 때와는 달리 차갑게 식어있었다.

“이리 앉거라.”

이만호는 한 번도 자식들을 책상 앞에서 마주한 적이 없었다.

단 한 사람, 이건우를 제외하고.

자리에 앉은 이정혁이 물었다.

“왜 부르셨습니까?”

“제일 ENM에 문제가 생겼더구나. 사장이라면 응당 책임을 져야 하지 않겠느냐.”

“그게 왜 제 잘못입니까. 아버지도 보고를 받으셨을 것 아닙니까. 이건우 그놈이 사건을 터뜨리는 바람에 피해를 입은 거라고요.”

그 말에 이만호가 한심하다는 듯 이정혁을 쳐다보았다.

“아들을 먼저 공격해놓고, 역으로 당하니 할 말이 그거 밖에 없는 게냐? 이런 걸 요즘 말로 내로남불이라고 하던가?”

“아버지!”

“그러게 제 발로 나간 애를 왜 건드려서 이 사달을 만들어!”

잠시 침묵이 흘렀다. 이정혁은 화를 가라앉히려는 듯 씩씩거렸고, 이만호는 슬픈 눈으로 그런 아들을 바라보았다.

“도대체 아들한테 왜 그렇게 매정하게 구는 게야. 아무리 망나니처럼 군다지만 그래도 네 핏줄 아니냐.”

“아니요.”

이정혁은 단호하게 말했다.

“제 핏줄은 지훈이 하나뿐입니다. 그놈은 제 아들이 아니에요. 그 녀석은 그냥··· 실수일 뿐이에요.”

“······.”

이만호가 황당하다는 얼굴로 쳐다봤지만, 이정혁은 확고했다.

그래. 이건우는 실수였다.

마음이 없는 여자와 한 정략결혼. 의무감에 딱 한 번 관계를 가졌는데 그때 하필 이건우를 임신했다.

실수로 태어난 자식이 진짜 아들인 이지훈의 앞길을 막는데 가만히 있을 아버지가 어디에 있겠는가.

“제 뒤를 이을 사람은 이지훈입니다. 아버지가 그렇게 싸고도는 이건우가 아니라.”

아들의 반기에 이만호도 싸늘하게 응수했다.

“착각하지 마라. 나는 너에게 자리를 물려준다고 한 적이 없다. 네 밑으로 동생이 세 명이 더 있다는 것 잊지는 않았겠지?”

“······.”

이정혁이 이를 꽉 깨물었고, 이만호가 서류를 하나 툭 던졌다.

이건우가 주고 간 부검 결과지였다.

“열어보아라.”

서류봉투를 열어보던 이정혁은 눈을 부릅떴다.

“이, 이건!”

“이게 뭔지는 네 녀석이 가장 잘 알겠지. 건우 그 녀석이 가져온 거다. 사건을 조작해서 덮으려면 깔끔하게 뒤처리를 했어야지, 쯧.”

“······.”

이건우가 이걸 가져왔다고?

그렇다면 이건우가 제일 ENM에 찾아왔을 때도 부검 결과지의 존재를 이미 알고 있었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때 협상 카드로 내밀지 않고 굳이 회장님께 갖다 드렸다는 것은···.’

이 협상 카드가 제값을 잘 받을 수 있는 곳으로 찾아왔다는 뜻이다.

자신이라면 어떻게든 부검 결과지의 가치를 폄훼해서 협상 자체를 어그러뜨렸을 테니까.

하지만 이만호라면, 그것도 회사 내부의 분란을 용납하지 않는 회장이라면, 이 카드를 이용해 자신을 충분히 압박할 수 있다.

그리고 자신은 아직 이만호를 거역할 위치에 있지 않다. 아직은 말이다.

이정혁은 자신이 한 방 먹었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망나니 같은 놈에게 한 방 먹은 것을 생각하니 속에서 천불이 일었지만 아버지의 앞이었다.

이정혁은 화를 꾹 눌러 참고 말했다.

“무엇을 원하십니까.”

“제일 ENM 산하의 스튜디오 라이언과 외주 계약을 맺고 싶다더구나. 부검 결과지를 묻어두는 대가이다.”

“···알겠습니다. 이 사태는 여기서 덮도록 하지요.”

그 말을 내뱉는 순간 이정혁은 깨달았다. 그는 처음부터 이건우의 판에 놀아나고 있었다는 것을.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