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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 당했다(3)
역시 돈의 힘은 위대했다. 윤단아가 현금다발을 들고 기자들을 만난 지 단 하루 만에 그 결과가 나왔다.
포털에 내가 기다리던 기사들이 우후죽순 올라왔다.
- [속보] 김우영 자살 당시 카톡 공개!
- “다음은 너 차례,” 김우영 살해 협박받은 것으로 드러나
- 김우영 무삭제판 카톡 공개··· 치열한 진실공방전
- 김우영 카톡 파문··· 슈퍼노바 팬들은 ‘멘붕’
사람들의 관심도 엄청나다. 아침부터 내가 원하던 키워드들이 실검을 장악하고 있다.
1. 김우영 살해
2. 김우영 슈퍼노바
3. 김우영 카톡 전문
4. 슈퍼노바 자살
이렇게 뜬 기회가 사라지지 않도록, 캐리온에게 저 키워드들이 계속 실검에 들 수 있도록 쉬지 않고 패킷 프로그램을 돌리라고 명령했다.
한번 실검에 오르자 다른 기자들도 화제가 된 사건을 놓치지 않으려고 우후죽순으로 기사를 갈겼으며, 특종 한자락이라도 잡기 위해 우리 사무실로 쳐들어왔다.
오늘도 내가 회사에 들어가려는데 기자들이 달라붙었다.
“이건우 씨, 김우영 카톡에 대해서 알고 있었나요?”
“이번 카톡 공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윤단아 씨가 김우영 카톡과 관련이 있나요?”
나는 기자들에게 말했다.
“김우영 씨의 소속 회사가 어딥니까?”
“제일 ENM 아닙니까?”
“그럼 거기로 가서 물어보세요. 엄한 사람 잡고있지 말고. 계속 이러시면 영업방해죄로 신고합니다.”
기자를 겨우 떼어내고 사무실에 들어온 나는 진저리를 쳤다.
“경비원을 고용하든가 해야지.”
이준호 과장이 나에게 커피를 주며 말했다.
“고생하셨습니다. 그래도 이번 기사로 윤단아 씨에 대한 반감이 조금씩 사그라들고 있습니다. 이거 사장님 작품이죠?”
“어때, 좀 괜찮았나요?”
나는 씩 웃었고 이준호 과장도 마주 웃었다.
김우영의 카톡이 공개되면서 가장 당황한 사람들은 바로 슈퍼노바의 팬이었다.
윤단아 때문에 김우영이 자살했다고 믿고 공격을 했건만, 알고 보니 다른 사람에게 살해 협박을 당한 정황이 드러났다.
심지어 그 주체가 다른 누구도 아닌 소속사.
팬들의 분노는 갈 곳을 잃었고 그들의 단합력은 떨어지기 시작했다.
- 우리가 잘못 짚은 거 아니야?
- KW 코퍼레이션에서 윤단아를 보호하려고, 우리 오빠 카톡 내용을 조작한 거야!
- 그래도 이상하지 않아? 그때 김우영이 자살하면서 사건이 덮였잖아.
- 조작이라니까!
조금씩 팬들 사이에 분열이 일어나고 내부에서 싸움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덕분에 윤단아에 대한 공격은 주춤해졌고.
여론을 유심히 살펴본 이준호 과장이 말했다.
“하지만 이 기조가 오래가지는 못할 겁니다. 오히려 카톡 내용이 조작됐다는 여론이 우세해지면 역풍을 맞을 수도 있어요.”
“과장님도 조작됐다고 보는 건가요?”
내 질문에 이준호 과장이 우물쭈물했다.
“꼭 그렇다기보다는···. 이게 사실이라는걸 입증하는 게 불가능하지 않을까요? 아마 제일 ENM 쪽에서는 절대 인정하지 않을 겁니다.”
카톡 내용이 진실이라는 걸 입증하기 위해서는 김우영의 폰을 열어봐야 한다. 그러나 그 폰은 이미 한강물에 빠져서 사라졌겠지.
하지만 나는 걱정하지 않는다. 나에게는 아직 다른 카드가 남아 있거든. 나는 여유롭게 가방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이준호 과장에게 건넸다.
“저 내용이 진실이라는 건 다른 방법으로 입증하면 되지요.”
내가 건넨 부검 결과지를 본 이준호 과장의 표정에 놀람이 가득 차올랐다.
“이건 뭡니까? 헉! 김우영 씨의 부검 결과지는 어떻게···.”
나는 미소지었다.
“예전에 경찰에서는 부검 결과 신체에 아무런 이상이 없다고 발표한 적이 있지요. 그런데, 그게 사실이 아니라는 게 밝혀지면 어떨까요?”
모르긴 몰라도 꽤나 재미있어질 거다.
내 손에 들어온 이 조커 카드를 어떻게 사용하면 좋을까?
*
이정혁은 음악사업본부 정동하 본부장과 만나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정본. 분명히 김우영 건은 깔끔하게 처리했다고 하지 않았나?”
이정혁의 날카로운 말에 정동하는 쩔쩔매며 대답했다.
“분명히 잘 처리했습니다. 이 사건 덮는다고 언론이랑 검찰에 돈을 얼마나 뿌렸는데요.”
“그런데 김우영 카톡이 왜 공개되냔 말이야! 그거 때문에 난리가 났어! 지금 주가가 얼마나 떨어졌는지 아나?”
정동하도 억울해 죽을 지경이었다.
분명 김우영과 자신의 휴대폰은 한강에 가서 버렸다. 그것도 누구에게 시킨 것이 아니라 자신의 손으로 직접 그랬다.
그런데 무슨 수로 카톡 전문이 공개됐느냔 말이다.
심지어 카톡 내용도 한 치의 오차 없이 똑같았다. 조작이라고 믿고 싶지만, 당시 나눴던 대화 내용 그대로였다. 분명 누가 그 카톡 내용을 입수한 게 틀림없다.
정동하는 머리를 열심히 굴려보았지만, 이건 아무래도 답이 없었다.
나름대로 최선의 방법을 생각한 정동하는 이정혁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저··· 사장님. 제가 아는 기자들을 캐보니 이번 소스를 뿌린 게 KW 코퍼레이션이라는 말이 있더군요. 그··· 이번에 아드님이 세운 회사 말입니다. 그러니 아드님과 한번 이야기를 잘 해보시면 일이 수월하게 풀리지 않겠습니까?”
정동하의 입에서 첫째 아들의 이름이 나오자 이정혁의 얼굴이 굳었다. 그도 이건우가 이번 공격을 주도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리고 아들이 자신을 왜 공격했는지도 잘 알고 있었다. 아마 윤단아를 건드린 것에 대한 보복이겠지.
서로 한 방씩 먹이면서 싸우고 있는데 아들에게 가서 고개를 숙이라고?
안된다. 아니, 못한다.
아버지의, 그리고 기업의 수장으로서의 자존심이 있다.
무엇보다도 그 여자의 아들에게는 절대 고개를 숙일 수 없었다.
게다가 이번 일로 확실히 알았다. 이건우는 더이상 그가 알던 망나니가 아니다.
공격을 받았는데도 흔들림 없이 기다렸다는 듯 반격을 하는 것을 보면, 흡사 다른 사람을 보는 것 같다.
‘무슨 바람이 불어서 180도 바뀌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대로 크면···.’
모르긴 몰라도 이지훈의 장애물이 될 것임은 확실해 보였다.
이건우가 아들의 앞길을 가로막기 전에 치우는 게 부모의 역할이 아니겠는가?
이정혁이 딱 잘라 말했다.
“안 돼.”
“예? 하지만···.”
“이건우 그 녀석은 나와 다른 길을 가기로 한 놈이야. 흥, 회사 하나 차렸더니 자기가 뭐라도 된 줄 아나 보지. 감히 나에게 대들어? 아들이라고 봐주지 않을 테니 이번에 확실히 눌러버려.”
정동하는 의아해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장남과의 사이가 안 좋은 건 알고있지만 이렇게까지 공격적으로 나올 줄을 몰랐다.
“아 예. 알겠습니다.”
“그리고 슈퍼노바 멤버들이 헛소리할 수도 있으니까 잘 관리하고 있어. 언론이랑 경찰 쪽은 내가 어떻게든 막아볼 테니까, 카톡은 KW에서 조작했다는 식으로 물타기 하고.”
“알겠습니다.”
그때 전화기가 울렸다. 비서실에서 온 전화였다.
“무슨 일이지?”
- 저···. 지금 KW 코퍼레이션 사장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약속이 되어있지 않은지라 로비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어떻게 할까요?
이정혁은 눈썹을 꿈틀거렸다.
이건우가 찾아왔다고? 하필 이 타이밍에?
불길한 느낌이 스멀스멀 올라왔지만 거부할 수는 없었다. 이정혁은 한숨을 삼키며 말했다.
“올려보내.”
*
나는 오랜만에 제일 ENM 본사에 왔다. KW 코퍼레이션은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커다란 건물.
안으로 들어가자 몇몇 직원들이 나를 알아보고 어색하게 고개를 숙였다.
이제 소문이 빠른 사람들은 알 것이다. 이게 단순한 폭로전이 아니라는 것을.
윤단아와 김우영의 싸움은 사실상 나와 아버지의 싸움이었다.
연락도 없이 찾아온 거라 나는 잠시 로비에서 기다렸고, 그동안 휴대폰으로 뉴스를 확인했다.
요즘 김우영 사건이 워낙 뜨거운지라 기사는 당당하게 포털 메인에 걸려있었고, 올라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상당한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었다.
댓글창도 조회수만큼 불타오르고 있었다.
- 헐 김우영 불쌍해ㅠㅠㅠㅠ
- 근데 김우영도 마약사범임.
- 어쩐지 갑자기 자살하면서 마약 사건이 다 묻히더니···. 자살 당했네.
- 그럼 제일 ENM에서 김우영 죽인 거임?
- 야 방금 슈퍼노바 멤버가 입장 밝혔음. 링크ㄱㄱ
나는 마지막 댓글에 있는 링크를 타고 들어갔다.
김우영이 속했던 그룹인 슈퍼노바의 리더가 해당 기사와 관련해서 입장을 밝혔다.
글에 따르면 김우영은 본부장이 자신을 내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단톡방에서 몇 번 표출했다고 한다.
그때 밝히고 싶었지만, 소속사에서 휴대폰을 압수하고 협박을 하는 바람에 아무것도 하지 못했고, 그게 죄책감으로 남아 있었다고 하며 심경을 밝히며, 리더로서 책임지고 탈퇴하겠다고 전했다.
“이제는 저들끼리 물고 뜯는구나.”
내가 더이상 손을 댈 필요가 없어 보인다. 폰을 집어넣는 것과 동시에 비서실 직원이 다가왔다.
“이쪽으로 오십시오. 안내해드리겠습니다.”
나는 직원을 따라 꼭대기 층에 있는 사장실로 올라갔다.
노크를 하려고 하는데 바로 안에서 정동하 본부장이 나왔다. 그는 나를 보고 흠칫 놀란 표정을 지었다.
“건우?”
“오랜만이네요. 본부장님.”
내가 악수를 건네자 정동하는 냉랭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곤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방금 올린 기사는 잘 봤다. 그런데 이번 건 조금 선을 넘은 것 같더구나.”
그러고는 사장실을 슬쩍 보며 말했다.
“이제 슬슬 그만해라. 사장님께서 화가 많이 나셨어. 아들이 되어서 아버지께 그러면 쓰나.”
나도 말 잘 듣는 아들이 되고 싶지만 아버지가 도와주지 않는다.
정동하 본부장이 돌아가고 나는 사장실에 발을 디뎠다. 당당히 사표를 던지고 난 후 처음 들어오는 사장실.
내가 들어왔는데도 이정혁은 서류에 코를 박고 쳐다보지도 않았다.
사람을 불러놓고 뭐하는 짓이람.
이렇게 대놓고 면박을 주면 내 안의 망나니가 가만히 있지 않는단 말씀.
나는 이정혁 옆에 가서 책상 위에 놓인 서류를 들춰보았다.
“제일 스튜디오 시공 건? 요새 뭐 건설 사업도 하세요?”
그제야 이정혁은 고개를 들고 내가 보던 서류를 탁 뺏어갔다.
“네가 보면 안 되는 서류다. 남의 책상을 뒤적거리는 건 어디서 배워먹은 예절이냐.”
“사람을 불러놓고 본 체도 안 하는 아버지께 배워먹은 예절이죠.”
이정혁은 말없이 나를 노려보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응접용 소파에 앉았다.
나도 옆자리에 앉자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직원이 차를 내왔다.
나는 차를 호로록 마시며 아버지가 먼저 이야기를 꺼내기를 기다렸다.
아쉬운 사람이 먼저 입을 열어야 하지 않겠는가?
잠시 침묵이 흐르고 이정혁이 드디어 그 무거운 입을 열었다.
“네가 한 짓 때문에 회사가 얼마나 어려워졌는지 아느냐? 잘못했으면 사과를 해야지 이렇게 뻗대고 있다니, 쯧.”
“푸웁”
기가 막힌 소리에 나는 입에 머금던 차를 뿜어버렸다.
이건 또 무슨 참신한 개소리람.
먼저 공격한 게 누구인지는 까맣게 잊은 모양이군.
내 입에서 뿜어진 찻물로 탁상이 더럽혀졌고, 자연히 이정혁의 얼굴도 썩어들어갔다.
“하하하 아버지. 못 본 사이에 농담이 많이 느셨습니다. 사과요? 제가 왜 사과를 해요?”
“네놈이 카톡 내용을 조작해서 우리 회사 소속 아티스트를···”
나는 티슈로 정장에 묻은 찻물을 닦으며 말을 끊었다.
“그게 조작이라는 증거는 있습니까?”
내 말에 아버지는 대답하지 못했다. 지금 공개된 내용은 모두 사실이니까.
이게 사실이라는 것은 아버지가 제일 잘 알고 있을 터였다.
“물론 없지요. 아버지의 충실한 심복인 정본이 증거물을 다 버렸을 거 아닙니까?”
내 날카로운 말에 이정혁은 뜨끔 했지만 금방 안색을 바꾸고 나를 쏘아붙였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어쨌든 너는 입증할 수 없는 내용으로 아티스트의 명예를 훼손했다. 분명히 말해두지만 이 건은 절대로 그냥 넘어갈 생각이 없어. 네가 내 아들이라고 해도 봐주지 않을 게야.”
이정혁의 엄포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 잘됐네요.”
“뭐?”
“저도 그냥 넘어갈 생각이 없거든요.”
나는 빙글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저는 아버지와 달리 마음이 넓은 사람이니 사과를 한다면 봐 드리겠습니다. 아, 물론 저희가 입은 손해에 대한 납득할 만한 배상이 있어야 진정성 있는 사과가 되겠죠?”
이정혁이 탁상을 쾅 내려쳤다. 찻잔이 흔들리며 물이 부르르 진동했다.
“건방진 놈이! 어디서 아버지를 협박해!”
“협박으로 들리셨나요? 저는 마지막으로 기회를 드린 거였는데.”
“그딴 코딱지만한 회사에 고개를 숙일 일은 없을 거다.”
그렇게 말할 줄 알았다. 그 자존심에 아들에게 굽히고 들어가려 하지 않겠지. 문제를 해결할 자신감도 있을 테고.
그때 내 휴대폰이 부르르 진동했다. 할아버지에게서 온 문자였다.
- 당장 본가로 튀어와!
나는 피식 웃었다. 타이밍도 참 좋다니까.
부검결과지라는 패를 어떻게 쓰면 좋을까 생각해봤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할아버지께 고자질하는 게 제일 좋아 보였다.
아버지도 할아버지에게는 죽도 못 쓰는 데다, 할아버지라면 내게 유리한 방향으로 협상을 해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 있어봤자 말다툼만 길어질 뿐이니 나는 그냥 일어났다.
“그렇다면 저로서는 더 할 말이 없네요. 저는 분명히 마지막 기회를 드렸습니다.”
“이건우! 앉아. 아직 말 안 끝났어!”
나는 이정혁의 외침을 무시하고 문을 쾅 닫고 나왔다. 문틈 사이로 고함이 들려왔다.
“이 건 우!!!!!!!!!”
남의 이름을 왜 저렇게 쩌렁쩌렁 부른담. 귀청 떨어지겠네.
나는 콧노래를 부르며 할아버지 댁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