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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 당했다 (2)
제일 ENM에서는 유독 마약 사건이 자주 일어났다. 엔터가 마약 유통에 관련된 것 아니냐는 의심이 돌 만큼.
하지만 제일 ENM은 그럴 때마다 항상 석연찮게 빠져나갔다.
단순 아이돌이 은퇴하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회사 전체가 수사를 받고 관련된 정치, 경제 세력들이 줄줄이 잡혀 나갈 사건인데도 말이다.
‘하지만 살해당한 거라면 시신에 흔적이 남을 텐데···.’
당시 사건을 찾아본 바로, 부검 결과에 이상이 없었고 자살로 수사는 종결되었다.
그렇다면 누가 서류에 장난을 쳤다는 말인데···.
“캐리온. 김우영의 부검 결과서의 원본을 확보할 수 있어?”
[가능합니다. 하지만 흔적을 남기지 않고 해킹하려면 시간이 걸립니다.]
“그리고 김우영이나 주변 사람의 카카오톡 및 문자 내용도 구할 수 있을까?”
[저에게 불가능한 일은 없습니다. 다만 하드웨어의 한계로 시간이 오래 걸릴 수는 있습니다.]
“······.”
하드웨어가 구려서 미안하다. 이번에 MC 소프트에서 돈이 들어오면 업그레이드를 하든가 해야지.
“얼마나?”
[사흘 예상합니다.]
“다른 일은 모두 중지하고 윤단아 사건을 해결하는 데 모든 역량을 투자해. 하루 안으로 자료를 뽑아낼 수 있도록 해봐.”
[알겠습니다.]
*
이날 하루는 정말 바빴다. 캐리온을 돌린답시고 사무실에서 밤을 새우고 쪽잠을 자던 나는 밖에서 웅성리거는 소리를 듣고 눈을 떴다.
회사 앞에 몰린 수십 명의 사람들. 모두 기자였다.
아침부터 참 부지런하기도 하지.
어떻게 알았는지 코딱지만한 회사 앞까지 쳐들어와서 마이크를 들이대고 있었다. 그 통에 사무실에 들어가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
나는 어쩔 수 없이 직원들에게 전화를 했다.
“정문 말고 지하주차장으로 들어오세요.”
잠시 후 이준호 과장이 투덜거리면서 사무실로 들어왔다.
“무슨 아침 댓바람부터 기자들이···. 그런데 사장님은 벌써 출근하셨습니까?”
“퇴근을 안 한 거죠.”
나는 피식 웃으며 그에게 서류 한 박스를 안겨주었다.
“자, 이것들 얼른 차에 실으세요. 오늘 할 일이 많아요.”
“이게 다 뭡니까?”
“악플러들 고발 자료요.”
이준호 과장은 입을 떡 벌렸다.
“언제 이런 걸 다 찾으셨습니까?”
“사장이 제일 열심히 일해야죠.”
물론 나는 꿀잠을 잤고 캐리온이 밤을 새웠다. 하지만 캐리온을 만든게 바로 나니까 캐리온이 일한 건 내가 일한 거나 마찬가지지 뭐.
다행히 이준호 과장이 어제 빠르게 강경 대응 기사를 냈고, 나는 캐리온을 이용해서 ‘윤단아’에 대해 검색할 때 그 기사들이 계속 상단에 뜨게끔 했다.
덕분에 중립 기어를 박겠다는 사람들이 늘어나기는 했지만, 그것만으로는 역부족했다. 슈퍼노바 팬의 화력이 좀 쎄야지.
그리고 어디에나 악플러들은 있는 법이다. 그들은 윤단아가 기자 시절에 몸을 대고 기삿거리를 받았다는 등 온갖 악의적인 루머를 퍼뜨리기 시작했다.
멘탈이 단단한 윤단아는 어디서 개가 짖냐는 식으로 굴었지만, 옆에서 구경하는 나는 꽤나 화가 났다.
어쩔 수 없이 이 한 몸 바쳐서 클린한 인터넷 문화를 만들기로 결심했고 그 결과가 바로 이 서류더미였다.
무튼 이준호 과장은 나의 말에 감동을 받은 모양이었다. 정필승과는 180도 다른 모습이 꽤나 감명 깊은 모양.
하지만 조금은 걱정이 되는 부분이 있는지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런데 괜히 여론을 자극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악플러놈들이 이런다고 악플을 멈출까요?”
하지만 나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글쎄요. 그들이 그럴만한 정신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네?”
악플러들은 윤단아에 대해서만 악플은 다는 게 아니었다. 그저 유명하다 싶으면 달려들어서 물어뜯는 게 그들의 습성이다.
그래서 악플러들의 댓글을 추적해서 들어가 보니 다른 악플들을 단 정황이 발견됐고, 유능한 온캐리 변호사는 그 자료들을 모두 모아서 고소장을 만들었다.
그게 서류 다섯 박스이다. 어휴 많기도 해라.
나는 씩 웃으며 말했다.
“이번 기회에 배우겠지요. 인생은 실전이라는 것을요.”
참고로 난 합의 따위는 없다. 합의금 안 받아도 될 만큼 돈이 많거든.
*
강남 경찰서는 서류 박스를 들고 찾아온 이준호 과장을 보고 놀랐고, 따라온 기자들은 신이 나서 그걸 찍어댔다.
강경 대응할 거라고 몸소 보여줬으니 이제 좀 잠잠해졌으면 좋으련만.
요 이틀은 참 다사다난했다. 이게 다 친애하는 아버지 덕분이지. 생각하면 할수록 화가 나네.
이건우의 몸에 들어온 나는 그의 감정과 기억에 동화됐고, 아버지에 대한 반감을 이해하고 받아들였다.
어릴 때부터 이복동생과 계속 비교당하고 멸시 어린 시선을 받고 자랐으니 아버지가 밉고 싫겠지.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나’는 이정혁과 크게 상관이 없는 사람이다.
지금까지는 말이다.
하지만 앞으로도 이렇게 사사건건 걸고 넘어진다면?
이정혁은 나를 이미 장애물로 인식했고 어떻게든 밟아놓으려고 애쓰고 있다.
그렇다면 나도 마땅히 그에 따른 보답을 해줘야 하지 않겠는가?
나를 공격한 대가는 톡톡히 치르도록 해줘야지.
집으로 돌아와서 맥주 한잔하려고 하는데 이준호 과장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사장님. 회사 메일함이 터졌습니다.”
“그건 또 무슨 소리에요?”
“고소당한 악플러들이 제발 선처해달라고 메일을 보냈습니다. 눈물 없이 읽을 수가 없네요.”
“···그냥 전부 스팸 처리하세요.”
다행히 효과는 있는 것 같다.
물론 이를 두고도 너무 과한 대처라며 말들이 많았지만, 그래도 소속 크리에이터가 비난받는 것보다 회사가 비난받는 게 훨씬 나았다.
소파에 앉아 맥주를 마시며 생각을 정리했다.
일단 급한 불은 어느 정도 잡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이 남아있다.
‘김우영이 자살 당했다는 걸 입증해야 하는데.’
무려 일 년 전 사건이다. 증거가 아직 남아있을까 싶다가도 캐리온이라면 못 찾을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캐리온에게 맡겨둔 대화 내역과 부검 결과가 나와야 그에 맞는 전략을 짤 수 있으니까.
그때 캐리온이 말했다.
[조사를 마쳤습니다. 부검 결과지 원본 파일을 전송합니다.]
[추가로 김우영 씨의 사망 당시 카카오톡 내역을 전송합니다.]
나는 깜짝 놀라서 되물었다.
“사흘 걸린다더니 벌써 끝났어?”
[가동할 수 있는 서버를 총동원했더니 빠르게 결과값을 도출할 수 있었습니다.]
역시 캐리온. 얘가 없었으면 난 어쩔 뻔했니.
나는 싱글벙글 웃으며 캐리온이 전송해준 파일을 열어보았다. 먼저 카카오톡 대화 내역부터.
김우영: 본부장님 이 사람들 정상이 아닌 거 같아요. 제 가족이랑 친구들 모두 죽일 거라고 협박한다고요.
정본: 진작에 걸리지 말았어야지. 너 때문에 우리 회사가 입은 피해가 얼마인지 알아? 그리고 제일에서 우리 회사 인수한 게 바로 얼마 전이야. 지금 나도 뭐 어떻게 해줄 수 있는게 없어.
김우영: 그럼 저는 어떡해요? 저보고 죽으라고 하는데 저 죽고 싶지 않아요. 제발 좀 도와주세요.
정본: 너 정말 어이없다. 너 하나만 죽으면 모든 문제가 깔끔하게 해결된다는 거, 못 들었어?
정본: 지금 다른 멤버들도 활동 정지에, 악플로 힘들어하고 있어.
김우영: ··· 본부장님이 이러실 줄은 몰랐어요. 일단 저 경찰에 신고하겠습니다.
정본: 부질없는 짓 하지마. 경찰에서 네 말을 믿어줄 것 같아? 그리고 이제 나는 모르는 일이니까 더 이상 나한테 문자하지 마.
이게 바로 김우영이 자살 당하기 바로 직전, 음악사업본부의 정동하 본부장과 한 카카오톡 내용이다.
아마 경찰에 신고한다는 말에 바로 김우영을 죽어버렸겠지.
소름이 끼쳤다. 마약 한 것을 옹호하는 건 아니지만, 사건을 덮자고 사람 목숨을 이렇게 쉽게 빼앗다니.
나는 그다음으로 부검 결과지를 확인했다.
“······.”
먼저 주삿바늘 자국이 가득한 팔이 찍힌 사진이 있었고, 팔목에는 누가 강하게 움켜쥔 것 같은 멍 자국이 들어 있었다.
다음 장을 넘기자 각종 의학 용어로 점철된 서류가 나타났다.
심장이 어쩌고? 이게 무슨 말이지?
다행히 맨 뒷장에 사인에 대해 총평이 적혀있었다. 펜타닐 과다 투여로 인한 사망.
펜타닐에 대해서 찾아보니 마약성 진통제였다.
헤로인보다 백 배는 강한 놈으로, 치사량이 작아서 잘못 투여했다가는 골로 가기 쉬운 무서운 약물이다.
“흐음···.”
나는 턱을 쓸어내리며 가진 패를 검토했다.
먼저 카카오톡 대화내역은 김우영이 죽기 직전 대화가 생생하게 담겨 있어서 사람들의 반응을 이끌어 낼 수 있다.
하지만 해킹으로 얻은 자료이기 때문에 증거감정서 발급이 불가능하고, 따라서 조작 가능성 여론이 번질 수 있다.
‘하지만 부검 결과지는 다르지.’
김우영이 자살이 아니라 마약 과다 투여로 사망했다는 사실이 알려진다면?
심지어 누군가가 강제로 마약을 투여한 거라면?
윤단아는 바로 혐의를 벗을 수 있고, 김우영은 자살이 아닌 타살 의혹에 휩싸이게 될 것이다.
당장 타살을 증명하지 못해도 뽕쟁이가 뽕을 하다가 죽었다는 정도까지는 갈 수 있겠지.
법의학자의 서명이 있으니 카톡 대화 내용과 달리 조작했다는 비판을 받을 리도 없고.
하지만 윤단아가 단순히 혐의를 벗는 것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는다.
제일 ENM에서 ‘김우영 자살 사건’이라는 패를 써서 나를, 그리고 우리 회사를 흔들어보려 했는데 이대로 있을 수만은 없지.
당하고만 있는 것은 내 성미에 맞지 않거든.
어째서 그런 민감한 이슈를 꺼내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패를 쓴 것을 후회하도록 역으로 공작을 펼칠 것이다.
나는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휴대폰 통화목록을 보았다.
“먼저 카톡 대화내역을 퍼뜨리는 건 누가 좋을까.”
인맥이 짱짱한 황민혁 차장? 아니면 기자질을 좀 해본 윤단아?
나는 고민 끝에 윤단아를 골랐다. 기자 짬밥이 있으니 훨씬 세심하게 정보를 풀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본인이 억울하게 당한 만큼 더욱 확실하게 놈들을 물어뜯을 것이다.
나는 윤단아를 집으로 불렀다. 아무래도 보안이 필요한 일이니 밖에서 만나는 것보다는 이게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윤단아는 언제나처럼 깔끔한 모습이었다.
“기사는 잘 봤어요. 악플러를 다 고소했다면서요?”
“네. 선처해달라는 메일이 쏟아진다는데 합의는 안 해주려고요.”
“잘 생각하셨어요. 그리고 절 믿고 도와주셔서 감사해요.”
그리고 나를 보더니 무뚝뚝한 얼굴에 미소를 슬며시 띠었다. 그리곤 부끄러운지 바로 본론으로 넘어갔다.
“그런데 무슨 일로 부르신 거예요?”
“먼저 이것 좀 보세요.”
나는 윤단아에게 카카오톡 대화 내용과 부검 결과지를 건넸다.
윤단아는 흥미로운 표정으로 서류를 읽었다. 잠시 뒤 그녀는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역시 사장님이랑 한배를 타길 잘 한 거 같네요. 언제 이런 걸 다 찾으셨대.”
당신 사장이 능력 좀 있지.
“기자들 잘 쓰면 좋은 그림 하나 만들어낼 수 있을 것 같아서 말이에요.”
“그건 제 전문이죠. 연락하고 지내는 기자들이 있으니 제가 소스를 뿌려볼게요.”
나는 씨익 웃으며 종이뭉치를 건넸다. 자살한 김우영과 정동하 본부장이 나눈 카톡 내용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이거 가지고 가세요. 기자들은 이런 자극적인 정보에 환장한다면서요?”
“사장님이 뭘 좀 잘 아시네요.”
우리는 악동 같은 미소를 지으며 마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