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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 당했다 (1)
KW 코퍼레이션에 출근하자 이준호 과장이 서류를 가져왔다.
“보컬 트레이너와 연기 선생님 명단입니다.”
나는 서류를 확인했다. 보컬 트레이너는 봐도 모르겠고, 연기 선생 쪽은 익숙한 이름이었다.
“김용호? 작년에 은퇴한 원로 배우 아닌가요?”
“네. 후학을 가르치고 있다는데 황민혁 차장님이 발품을 팔아서 모셔왔습니다. 직접 오디션을 봤는데 원준이를 보더니 싹수가 보인다고 관심을 가지더라고요. 다만 그만큼 금액이 좀 들어서···.”
이준호 과장이 말끝을 흐리자 난 딱 잘라 말했다.
“돈 걱정은 하지 마세요. 제가 좀 더 확인하고 결재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나는 사장실로 들어와서 주식 현황을 살폈다.
내 계좌에 든 돈은 5억 몇천만 원뿐. 이 돈은 캐리온이 단타를 하며 착실하게 불리고 있다. 나는 그중 연습생들 학원비로 쓸 돈 천만 원 정도 떼왔다.
그리고나서 전재산을 투자한 MC 소프트의 현황을 살폈다.
보통 신작 발표를 한다면 기대감에 주가가 오르기 마련이니, 그 반대에 베팅한 나는 신나게 손실을 보고 있었다.
푸르죽죽한 색으로 물든 수익률 차트를 보니 심장에 무리가 올 것 같아서 그냥 꺼버렸다.
“캐리온. MC 소프트 주식이 떨어질 거라는 건 확실한 거지?”
[자체 시뮬레이션 결과 MC 소프트의 주식이 떨어질 확률은 97.80퍼센트입니다.]
[그리고 사전등록을 한 사용자들 사이에서 불만이 퍼져 나오고 있습니다.]
[회사에서는 신작 발표를 앞두고 불만을 무마하는 등 조치를 취하고 있지만, 사람들의 동요를 막기에는 역부족입니다.]
[추가로 라인에이지 업데이트로 인해 유저들이 불매운동을 벌이겠다는 여론이 수면 위로 올라오고 있습니다.]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렇다면 이 상황도 곧 주가에 반영이 될 것이다.
그러면 영차영차 올라가던 주가가 고꾸라지겠지.
그러면 나는 요동치는 폭락 장에서 돈이나 벌고 유유히 떠나면 된다.
“그럼 MC 소프트는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됐고.”
나는 MC 소프트에는 신경을 끄고 그다음 해야 할 일을 검토했다.
먼저 소속 가수인 박세나의 곡을 받아야 한다.
당연히 유명 프로듀서에게서 프로듀싱을 받으려면 돈이 한두 푼 깨지는 게 아니다.
하지만 나에게는 만능 캐리온이 있단 말씀이지.
이제 변호사 온캐리에 이어, 프로듀서 캐리 양이 나올 차례인가?
“캐리온. 작곡도 할 수 있지?”
[저에게 불가능한 영역은 없습니다.]
창작은 인간의 영역이라고들 한다. 하지만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고 하지 않은가?
캐리온이 빅데이터를 활용해 수백만 개의 히트곡을 분석하고 그중에 괜찮은 멜로디를 학습한다면, 충분히 좋은 곡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시간은 얼마나 걸려?”
[대략 일주일이 있으면 곡을 생산해 낼 수 있습니다.]
[다만 작곡 프로그램까지 돌릴 경우 서버 사용률이 90%를 넘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서 서버의 여유 공간이 필요합니다.]
지금 구축해둔 서버의 절반은 미확인 바이러스를 모니터링하는 데 쓰고 있다.
나머지 20퍼센트는 알고리즘 트레이딩 봇을 돌리고 투자와 관련된 빅데이터를 학습하며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업데이트하는 데 쓰고 있다.
그렇게 해서 남은 서버는 30%. 이중 20%를 작곡에 쓰면 남은 서버가 10%밖에 남지 않는다.
“그냥 해. 이번에 돈 들어오면 서버 확충해줄게.”
[알겠습니다. 일주일 내로 보고드리겠습니다.]
휴, 돈 들어갈 데가 많다.
할아버지에게 투자를 받은 지가 엊그제 같은데 내 통장에 남은 돈은 5억이 간당간당하다.
MC 소프트가 빨리 돈을 토해내야 할 텐데 말이야.
박세나의 작곡 문제는 캐리온에게 맡겼으니 별일 없으면 조만간 녹음 작업에 들어갈 수 있겠지.
그때 갑자기 캐리온이 경고음을 보냈다.
[삐빅. 윤단아에 대한 비방 동영상을 감지했습니다.]
“뭐?”
혹시 몰라서 소속 연예인에 대해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하도록 해뒀다. 그런데 어디선가 윤단아에 대한 저격 동영상이 올라왔나 보다.
[링크를 보내드리겠습니다.]
나는 재빨리 사이트에 접속했다. 상대는 뉴튜브 렉카였는데 이름이 어딘가 익숙했다.
“이 렉카, 예전에 내 스캔들 사건 터뜨린 그 렉카 아니야?”
[동일 인물이 맞습니다.]
<기자 Y의 과한 취재, 유명 아이돌을 자살로 이끌다>
자극적인 제목과 함께 올라온 동영상. 윤단아의 기자 시절에 있었던 일을 악의적으로 편집했다. 누가 한 짓인지 짐작이 갔다.
“제일 ENM에서 먼저 선수를 쳤나 보군.”
회사를 설립한 지 일주일도 지나지 않았는데 시비를 걸어오다니.
아버지도 참 몸이 달으셨나보군.
하긴 코딱지만한 회사에 건드릴만한 사람이 윤단아밖에 없었을 것이다.
윤단아가 기자 시절에 무슨 짓을 하고 다녔는지는 나도 모르는 일이었고.
나는 윤단아를 관리하는 황민혁 차장에게 연락했다. 외근을 나가 있던 황민혁 차장은 바로 연락을 받았다.
“네 사장님. 무슨 일입니까?”
“방금 폰으로 링크 하나 보내드렸습니다.”
“아, 확인해보겠습니다.”
황민혁 차장이 확인하는 사이 나는 기사가 뜬 게 있는지 ‘윤단아’를 검색해보았다.
‘다행히 기사는 아직 안 올라왔군.’
정말 캐리온이 동영상이 업로드되자마자 알려줬나 보다. 발 빠른 녀석 덕분에 우리도 빠르게 대처할 수 있었다.
그때 영상을 확인한 황민혁 차장이 말했다.
“확실히 예전에 윤단아 씨가 이런 기사를 쓰긴 했었죠. 하지만 겨우 기사 하나 터뜨린 걸로 아이돌이 자살했다고 몰고 가다니···. 누가 악의적으로 부풀리고 있군요.”
“다행히 아직 조회수도 낮고 연관 기사도 뜨지 않았습니다. 차장님이 윤단아 씨를 만나서 사실관계를 정확히 확인해주세요. 그래야 저도 대응을 할 수 있으니까요.”
“알겠습니다. 이따가 보고드리겠습니다.”
*
황민혁은 종로구에 있는 한 국밥집에서 윤단아를 만났다. 두 사람은 국밥에 소주 한 병을 시키고 앉았다.
윤단아는 문제의 동영상을 확인하고는 한숨을 쉬며 태블릿을 황민혁에게 다시 되돌려주었다.
그녀는 소주를 따라 한번에 들이킨 이번 사건에 대하여 설명했다.
이번에 렉카가 터뜨린 사건은 그녀가 한국일보를 다닐 때 있었던 사건으로,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녀가 한국일보를 나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건이었다.
사건 당시 윤단아는 연예부 기자였고, 한 유명 아이돌이 마약을 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그리고 그 유명 아이돌은 제일 ENM의 음악사업본부 소속이었다.
대기업에 소속된 아이돌 그룹. 한국일보의 연예부 부장은 그 기사를 덮기를 원했다.
하지만 윤단아가 누구던가. 윤황소라고 불리던 고집 있는 사람이다.
윤단아는 부장의 말을 무시하고는 해당 아이돌의 사건을 기사화했다.
그 결과는?
대기업, 유명 보이그룹, 마약사건.
삼 콤보 폭탄이 터지면서 이슈가 될 것으로 예상됐지만, 윤단아의 기사는 금방 묻히고 말았다.
윤단아의 기사와 비슷하게 터진 다른 사건 때문이었다.
마약을 한 아이돌이 자살한 것이다.
그 순간 여론이 반전됐다.
분노한 팬클럽이 나서서 자신의 그룹을 변호하기 시작했고, 사람이 죽었다는 사실에 대중들도 해당 아이돌에게 동정의 여론을 보내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윤단아의 기사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고 결국 그녀는 한국일보에서 퇴사하게 되었다.
그 사건이 지금 다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악의적인 편집을 거쳐서 말이다.
동영상을 요약하자면, 윤단아가 과잉 취재를 해서 사람을 죽였다는 내용이었다.
렉카 유튜버가 영상을 공개한 후로 윤단아의 채널을 실시간으로 폭격을 당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유명 보이그룹 팬클럽뿐만이 아니라 다른 아이돌들의 팬덤까지 나선 덕분에, 양소희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파급력이 컸다.
황민혁은 잔에 소주를 가득 따라주었다. 윤단아는 한 번 더 소주를 털어 넣었다.
“괜찮습니까?”
“잔뜩 부풀려서 악의적으로 엮기는 했지만 틀린 말은 없네요.”
···그걸 물은 게 아닌데.
자신 때문에 사람 하나 죽었다는 소리를 듣고도 눈 하나 깜박하지 않는다. 참 멘탈 하나는 튼튼하다.
“일단 당시 일에 대해서 아시는 건 전부 말해주시겠어요?”
“대략적인 사건은 차장님이 아시는 것과 같아요. 그런데 제가 터뜨리고 퇴사하기는 했지만, 이 사건 적어도 두세 달은 우려먹을 사건이거든요. 하지만 당사자가 자살하면서 이 주 만에 덮어졌죠. 마약 수사하던 것도 피의자가 죽었으니 공소권 없음으로 수사 종결되었고요.”
황민혁은 그때 당시 일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그때 밑바닥에서 어떤 소문이 돌기는 했었다.
“설마···.”
“차장님 짐작이 맞아요. 그 아이돌, 자살 당한 거예요.”
*
나는 윤단아를 만나고 온 황민혁 차장에게서 보고를 들었다.
- ···이러저러해서 제일 ENM에서 그 아이돌을 죽인 다음, 이를 윤단아 씨가 한 짓이라고 몰아가는 것 같습니다.
“그렇군요. 윤단아 씨는 좀 괜찮던가요?”
- 아주 멀쩡하던데요.
하긴 윤단아는 외강내강 타입이었지. 그녀가 이런 일로 상처받는다는 건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다.
“알겠습니다. 일단 상황을 계속 모니터링해주시고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말씀해주세요.”
- 예.
황민혁 차장과의 전화를 끊자마자 이준호 과장이 사장실에 들어왔다. 어휴 바쁘다 바빠.
“네. 과장님.”
“사장님. 방금 윤단아 씨에 대한 기사가 올라와서요.”
“과장님도 보셨군요. 그렇지 않아도 방금 윤단아 씨를 만나서 대응 방침을 논의하고 왔습니다.”
“지금 상황이 많이 안 좋네요. 고인이 된 김우영 씨가 속한 ‘슈퍼노바’가 워낙 팬층이 두꺼운 곳이라···.”
슈퍼노바. 2세대 아이돌로 아이돌의 대중화를 이루었다고 평가받는 그룹이다.
데뷔한 지 15년이 지난 만큼 팬의 연령층이 넓으며, 한국뿐만 아니라 아시아 전역에서 상당한 인기를 구가하는 그룹이었다.
덕분에 렉카의 동영상이 올라온 지 몇 시간이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뉴튜브 인기차트에 들었다. 수많은 슈퍼노바의 팬들이 영상을 보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와 비례하여 윤단아의 채널에는 실시간으로 악플테러와 신고세례가 일어나고 있었다.
심지어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 팬까지 들고일어나서 윤단아의 채널을 폭파시키고 있는 중이다.
큰 회사였다면 홍보실에서 기사를 내고 법무팀에서는 법적인 문제를 검토해주겠지만, 아쉽게도 우리 회사는 아직 그 정도의 규모를 가지고 있지는 못하다.
하지만 나에게는 캐리온이 있지. 법적 문제는 온캐리 변호사가 맡는 것으로 하고, 이준호 과장이 당분간 홍보실 역할을 맡아줘야 한다.
“사태가 더 커지기 전에 저희도 대응 기사를 내야 할 것 같아서 말입니다. 저도 사실관계를 파악해야 하는데 상황을 설명해주실 수 있습니까?”
다행히 눈치 빠른 이 과장은 자신이 뭘 해야 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는 듯했다.
나는 조금 전 들은 이야기를 빠짐없이 설명해주었다.
한국일보 연예부 기자였던 시절 해당 기사로 부장과 한 판 뜨고 나왔던 사정.
그리고 윤단아가 김우영의 마약 건을 터뜨린 건 맞지만, 자살과의 인과관계를 찾아볼 수는 없다는 점 등등.
“···그러니까 아는 기자들에게 연락해서 반박기사를 내주세요. 자세한 지침은 메일로 보내두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보도자료 준비해서 빠르게 돌리겠습니다.”
이준호 과장이 사장실을 나가고 나는 한숨을 쉬었다.
회사를 설립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이런 일을 터뜨리다니.
이런 큰 사건을 겪어보지 않았을 터라 우왕좌왕할 수도 있는데, 그래도 두 사람은 빠릿빠릿하게 움직였다.
빠른 대응이 중요한 사건인 만큼 조속히 추가 자료를 확보해서 윤단아에게 씌어진 누명을 벗겨야 한다.
나는 황민혁 차장의 마지막 말에 대해 생각에 잠겼다.
‘그 아이돌 자살 당했어요. 생각해보면 무마하기에 가장 좋은 방법이지요.’
아이돌이 자살 당했다 라···.
여기를 잘 파보면 빠져나갈 구멍이 보이겠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