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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쓸어담는 인공지능(3)
게임과 제약바이오 관련주의 동향을 파악하라고 시켰더니, 캐리온은 한 게임 업체에 대한 정보를 물어왔다. 읽어보니 재미있는 내용이 많았다.
MC소프트 게임 중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라인에이지’는 는 연구소에 처박혀 살았던 나도 아는 유명한 게임이다.
게임 업체가 뭐 대단하냐고 할 수 있겠지만 MC소프트는 게임만으로 시총 20조, 한국 기준 10위에 진입했다.
이는 국내 최고 자동차 업체인 미래 자동차를 넘어선 금액이다. 심지어 안전자산으로 분류되어 국민연금이 투자하기도 했다.
자고로 덩치가 커지면 가격 변동성은 낮아진다.
공식적인 안전자산으로 분류된 만큼 장기 투자라면 모를까, 거액을 들고 뛰어들어 한탕 하고 빠져나올 만한 견적은 아니다.
그러면 캐리온은 왜 이런 회사를 골라왔을까?
이유는 신작 출시에 있다.
보통 신작을 출시하면 주가는 오르기 마련이지만, 캐리온은 주가 폭락을 예상했다.
‘라인에이지’는 알아주는 사행성 게임이다.
MC소프트는 일 년 전에 새로운 유저를 유입하기 위해서 ‘조커’라는 게임을 내놓았지만, 뚜껑을 열고 보니 ‘라인에이지’의 아류 판이었다.
그래픽만 귀엽게 바꾼 쁘띠 라인에이지랄까?
그때 유저들 사이에서 게임 회사가 자신들을 호구로 본다며 비판이 돌았다.
그런데 문제는, 캐리온이 알아낸 내부 정보에 따르면 이번에도 MC소프트는 그 문제점을 고치지 않고 그대로 답습한 신작을 출시할 예정이란다.
한 번 호구 잡히는 것도 기분 나쁜데 두 번이나 호구를 잡힌다고?
당연히 유저들이 불만을 가질 것은 뻔하다.
또한 캐리온이 알아본 바에 의하면 라인에이지에서 준비하고 있는 새로운 대규모 업데이트가 현재 유저들의 민심과는 크게 어긋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최근 여러 게임에서 유저들과의 소통 실패로 인해서 불매운동이 일어나고 트럭 시위가 일어났던 사례가 많다.
화가 난 란저씨들이 불매운동을 벌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캐리온의 예측이었다.
신작도 망하고 본진에서도 매출이 꺾인다면 뭐, 더 할 말 있나.
“주가는 반 토막이 나고 시총은 8조가 증발하고. 대단하다 대단해.”
원래라면 상상조차 못 할 얘기였지만, 자료의 논리적인 흐름은 충분히 납득할 만했고 또 캐리온의 예측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투자처를 정했고 주식 폭락도 기정사실이니 투자 방법만 정하면 된다.
MC소프트 주식의 폭락을 예측했으니 내가 쓸 수 있는 투자 방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바로 공매도와 풋옵션.
원래라면 풋옵션이 더 끌릴 것이다. 왜냐하면 공매도는 잠재적인 보상이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공매도는 말 그대로 공(空)으로 주식을 매도하는 투자 기법이다.
나는 MC소프트 주식이 1도 없지만, 주식을 빌려서 매도해서 현금을 확보할 수 있다.
이후 가격이 떨어졌을 때 가진 현금으로 주식을 매입해 빌린 주식을 갚는 게 공매도의 핵심이다.
이때 가격 차이만큼 이익을 얻을 수 있는데, 주식이 아무리 하락해봐야 0원이기 때문에 얻을 수 있는 보상은 한정적이다.
‘게다가 공매도는 증거금이 필요하고.’
풋옵션은 매수 금액만 있으면 되는 반면, 공매도는 증거금이 필요하기 때문에 더 많은 자금이 필요하다. 하지만···.
‘CFD를 활용하면 다른 얘기지.’
CFD주식은 차익 거래를 뜻하는데, 국내에 전문 투자자로 등록된 사람들만 거래할 수 있는 방법이다.
이건우 또한 전문 투자자 자격이 있어서 CFD 거래에는 문제가 없다.
CFD를 활용하면 증거금을 10%만 내고도 주문을 낼 수 있어, 10배의 레버리지를 일으킬 수 있다.
즉, 나는 자금을 60억밖에 가지고 있지 않지만, 600억까지 불려서 투자할 수 있다는 말이다.
나는 먼저 언제 신작이 출시되는지 찾아봤다. 인터넷에 검색하니 바로 기사가 떴다.
MC소프트가 올해 말 신작을 앞세워 재도약에 나선다. 이날 행사에서는 김철진 대표를 비롯해 주요 임원진이 참여하였으며··· (중략) ···, 신작 ‘소드 앤 블레이드’는 오는 12월 10일에 출시될 예정이다.
“12월 10일이라···.”
확인해보니 옵션 만기일은 신작 출시일로부터 이틀 후이다. 풋옵션을 행사하기에도 딱 좋다.
풋옵션은 하락장에서 빛을 발하는데, 주식을 싸게 사서 비싸게 팔 수 있기 때문이다.
투자 방법을 결정한 나는 당장 필요한 금액만 남겨두고 모두 MC 소프트 투자에 쏟아부었다.
발행가가 낮은 외가격에 형성된 풋옵션을 사들이고, 남은 돈은 CFD로 공매도 포지션을 잡았다.
정확한 투자 금액은 52억 8천만 원.
지금껏 내가 써본 금액 중 가장 큰 금액이었지만 내 마음은 담담하기만 했다.
내가 만들어낸 역작, 캐리온이 투자하는 것이라면 누구보다 믿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투자한 금액에 대해서는 더이상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남은 돈 5억은 캐리온에게 맡겨서 트레이딩 프로그램으로 조금씩 불려가기로 했다.
그렇게 한주가 끝나고 새로운 주가 밝았다.
*
오수미 여사는 요즘 기분이 좋지 않았다. 사랑하는 아들 이지훈이 얼마 전 도피성 유학을 가버렸기 때문.
그것도 눈엣가시 같은 이건우에 의해서 말이다.
‘이건우 그놈이 어떻게 양소희와의 관계를 알아챈 거지?’
얼마 전 양소희를 이용해서 이건우를 나락으로 보내려고 했던 사건.
사실 그 사건의 배후에는 오수미 여사가 있었다.
미리 사람을 매수해 이건우를 진탕 취하게 하고, 양소희를 배우로 써서 이건우와의 스캔들을 만들어낸다.
이 모든 작전은 오수미 여사가 계획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건우가 술에 취해 호텔로 들어갈 때까지만 하더라도 이 계획은 성공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갑자기 사람이 확 바뀌었단 말이야.’
멍청하기만 하던 이건우는 어느 순간 모든 계획을 알아채고 역으로 공격을 가했다.
그 타이밍이 어찌나 적절하던지 손쓸 틈도 없이 여론이 반전되었다.
그 덕분에 오히려 이지훈의 이미지만 안좋아지고 제일 ENM에서의 자리를 잃고 쫓겨나게 된 것이다.
한술 더 떠서 망나니 같던 이건우가 자기 회사를 직접 차렸다고 한다. 심지어 회장님께 투자금도 받은 모양이었다.
회장님이 이건우를 좋아하는 줄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되면 이건우와 이지훈이 너무 비교되어 보이지 않겠는가.
자수성가하겠다고 스스로 사업체를 꾸려나가는 손자와 사고를 쳐서 도피성 유학을 간 손자.
어느 쪽으로 마음이 갈지는 뻔했다.
‘어떻게든 우리 지훈이는 이 제일 그룹의 후계가 되어야 해.’
오수미 여사는 무슨 수를 쓰더라도 아들을 제일 그룹의 후계자에 앉히고 싶었다. 그녀가 머릿속에서 이건우를 공격할 계획을 세우는 사이,
“다녀왔소.”
제일 ENM의 사장인 이정혁이 거실로 들어왔다.
“아, 여보 오셨어요?”
오수미 영사는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이정혁을 반갑게 맞이했다.
이정혁도 이건우에게는 한 번도 보여준 적 없는 밝은 미소를 지으며 그런 오수미를 안았다.
냉혈한 같은 그도 오수미를 사랑한 건 진심이었다.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을 할 만큼.
이정혁은 단번에 오수미의 기분이 평소 같지 않다는 걸 알아챘다. 그는 피식 웃으며 부인의 얼굴을 쓸었다.
“무슨 일이길래 우리 와이프가 이렇게 화를 낼까.”
오수미는 살짝 뾰로통한 표정을 지었다. 이정혁은 그 모습을 귀엽게 봤다.
“그냥요. 하나뿐인 아들이 밖을 나돌아다니는데 걱정이 안 되겠어요?”
“지훈이는 잘 할거요. 일 년 정도 공부하고 오면 다시 실무를 맡길 생각이야.”
남편의 속 편한 소리에 오수미는 결심한 듯 말했다.
“여보, 그렇게 가볍게 생각할 일이 아니예요. 일 년 사이에 이건우가 승승장구하면 어떡해요? 회장님께서 그 아이의 회사에 투자까지 하셨다면서요.”
“으음”
이건우의 이야기가 나오자 이정혁이 침음을 흘렸다.
그가 망설이는 모습을 본 오수미는 슬쩍 말을 흘렸다.
“마냥 손 놓고 있기에는 너무 걱정돼서 그래요. 당신이 나서서 조금 흔들어주면 안 될까요?”
고민 끝에 이정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 말도 일리가 있어. 한 번 생각해보겠소.”
오수미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
제일 ENM 사장실. 이정혁 사장은 측근들을 불러놓고 회의를 하고 있었다.
“건우 그 녀석이 필승 기획이라는 곳을 인수했다지?”
“예. 회장님께서 도움을 주신 것으로 압니다.”
“아버지께서 도와주셨다라···.”
이정혁 사장은 담배를 물었다. 차남은 매몰차게 해외로 쫓아내고, 장남은 그렇게 싸고도는 게 못마땅했다.
‘내 뒤는 지훈이가 이어야 해.’
하지만 회장인 아버지의 총애와 장남이라는 명분은 이건우가 가지고 있다.
물론 이건우가 계속해서 망나니 같은 행동을 한다면 이지훈에게 기회가 오겠지만 최근 이건우의 행보는 전과는 달랐다.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는 창업을 한다고 뛰쳐나가 버리다니.
다른 무엇보다도 이 점이 가장 마음에 들지 않았다.
‘감히 내 시야를 벗어나려고 들어?’
그는 이건우가 자신의 통제를 벗어나려 하는 상황이 지독히도 싫었다. 이지훈의 후계 자리를 위해 옆에 두고서 계속 감시하고 견제해야 하건만 놈이 사라져버리다니.
그렇게 되면 전처럼 이건우를 망나니로 만드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다.
심지어 이번에 세운 회사 이름은 KW 코퍼레이션.
사명에 당당히 자기 이니셜을 박아놓다니. 이건우가 존재감을 드러내려는 것 같아 더욱 경계심이 들었다.
그는 아내의 말을 떠올렸다.
‘일 년 사이에 이건우가 승승장구하면 어떡해요? 회장님께서 그 아이의 회사에 투자까지 하셨다면서요.’
틀린 말이 없다. 일 년은 충분히 긴 시간이었고, 장남이란 이점을 가진 이건우가 유의미한 성과까지 만든다면 후계위를 공고히 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자라나는 싹은 밟아줘야겠지. 그가 비서에게 물었다.
“KW 코퍼레이션에 대해서는 털어봤나?”
“네. 그런데 워낙 작은 회사이다 보니 그다지 나오는 게 없습니다.”
건드리려고 해도 상대방이 너무 하잘것없어서 건들 구석이 없다.
직원들은 물론이요, 소속 가수도 딸랑 하나 있는 데다 오 년 차 무명 가수라니. 밟아줄 기운조차 나지 않을 정도다.
“그나마 이건우 도련님이 데리고 합류한 윤단아를 파보면 뭔가 나올 것 같습니다.”
“그래. 둘이 이미 한 번 엮였으니 그것도 좋겠지. 시나리오 한 번 짜봐.”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