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로 갑질하는 양아치 재벌-8화 (8/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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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일에 싸인 여자 (1)

할아버지께서는 기업 인수와 관련된 제반 사항을 나에게 넘겼고, 법적인 절차만 그룹 법무팀에서 해결해주기로 했다.

그러면서 내게 준 자금은 오십 억. 내실 있는 소규모 기업을 살 수 있는 금액이다.

하지만 나는 그 오십 억을 다 쓸 생각이 전혀 없었다. 비용은 줄일 수 있으면 줄이는 게 옳지 않겠는가?

“5억”

나는 예산의 90퍼센트를 후려쳤다. 돈 나갈 구석이 한두 군데여야지. 이런 놈에게 줄 돈은 5억이면 충분했다.

사실 5억도 조금 과한 감이 있다지만 뭐. 남아 있는 직원들을 깔끔하게 데려올 수만 있다면 괜찮았다.

정필승은 계약서에 사인하는 와중에도 뭔가 할 말이 있는 모양이었지만 나는 깔끔하게 무시했다.

“싫으면 5억 대신 추징금 맞고 감옥 가던가.”

그러기는 싫었는지 울며 겨자 먹기로 계약서를 썼다. 대신 회사에 묶인 부채까지 내가 떠안았으니 실제 지출은 10억에 가까웠다.

회사 인수를 마무리하고 정필승은 개인 짐을 챙겨서 떠났고, 직원들은 박수와 함께 나를 맞이했다.

특히나 한서진이 열렬히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저 그러면 대기업 직원 된 거예요?”

“하하. 제가 제일 그룹 사람이기는 하지만 회사는 제 개인 소유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의 연봉은 대기업에 걸맞게 대우해드리지요.”

“우와 사장님 짱!”

한서진.

워낙 방긋방긋 잘 웃는데다 얼굴도 하얘서 말티즈 같이 생겼다.

하지만 아까 정필승 사장을 노려보던 눈빛은 좀처럼 잊히지 않았다. 꼭 사람 하나 죽일 기세였달까.

이 여자가 어떤 사람인지 꼭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자리잡았다.

그다음은 이준호 과장.

전직 대기업 부장님인 이 분은 필승 기획의 안살림을 도맡아 했는데, 얼마나 꼼꼼한지 쥐꼬리만한 수익으로 회사를 먹여살리고 있다.

하지만 눈이 풀린 채로 하품을 쩍쩍하는 게 딱 봐도 심드렁해 보인다.

머릿속에는 이 좆소기업을 탈출해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겠지.

그런데 어쩌나. 나는 그쪽을 놔줄 생각이 없는데.

“과장님은 지금까지 하던 업무를 정리해서 보고해주세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황민혁 차장님”

“네! 사장님!”

늘 파이팅이 넘치는 황 차장. 이 과장이 내무부장관이라면 황 차장은 바깥일을 도맡아 했다.

유명 엔터테인먼트의 실장이었는데 정필승의 아버지와 연이 닿아서 필승 기획으로 온 모양이었다.

캐리온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어머니의 암 수술비가 없어서 상황이 어려웠을 때 정필승의 아버지가 돈을 대주었다고 한다.

이후 은혜 갚는 셈 치며 필승 기획에서 무능력한 사장 대신 일감을 물어왔다. 이 사람이 없었으면 필승 기획은 진즉 없어졌을지도 모를 정도로 핵심 인재이다.

필승 기획에서 기획한 듣보잡 아이돌 그룹을 음방에 내세울 정도면 말 다했지 뭐.

워낙 서글서글한 성격에 인품도 좋아서 방송국 PD와 기자들과 두루두루 잘 지내는 인맥왕이기도 하다.

“차장님은 매니저 일까지 겸하고 있었죠?”

“네!”

“그럼 앞으로는 영업에만 집중하시고 로드는 따로 두세요. 아는 사람 있으면 데리고 와도 좋고요.”

유명 엔터테인먼트 출신이니 쓸만한 매니저를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알겠습니다!”

소속 가수가 한 명, 배우 지망 연습생이 한 명 있는데 이 둘은 지금 회사에 없는 관계로 나중에 약속을 잡고 만나기로 했다.

얼추 상황을 정리한 나는 손뼉을 치며 말했다.

“이번 주까지는 쉬면서 정비하시고 다음 주 월요일에 봅시다.”

이렇게, 업계의 전설이 될 작은 회사가 서울의 사무실에서 만들어졌다.

*

이건우가 회사를 인수하는 동안 윤단아는 마지막 동영상을 올렸다.

동영상의 1부는 양소희가 사실 꽃뱀이었다는 사실, 2부는 이지훈이 사주한 내용, 3부는 이건우가 사퇴하면서 스캔들을 마무리하는 과정이 담고 있었다.

- 이제는 꽃뱀이 재벌까지 물고 다니네

ㄴ ㅋㅋㅋㅋ걍 겁이 없는 듯

ㄴ 이지훈 아니었으면 양소희가 감히 건드렸을까

양소희는 역관광을 당하면서 끝장났다.

그녀는 빠르게 사과 영상을 올리고 자숙한다고 했지만···.

- 응 꺼져

- 그래 봐야 한 달 뒤에 다시 돌아오겠지

- 돌아와도 봐줄 사람이 있긴 하려나

콘크리트 팬들조차 쉴드를 쳐주지 않는 상황.

이백만 명이 넘던 구독자는 빠르게 줄어들고 있었다.

그리고 이건우는 자진 사퇴를 하면서 본의 아니게 동정표까지 받았다.

- 그런데 이건우가 왜 사퇴함?

- 그러니까 이지훈이 나가야 하는 거 아님ㅠㅠㅠㅠ

- 피해자가 도망가야 하네 ㅈㄴ불쌍함

ㄴ 그냥 자기 회사 차린다던데

ㄴ 니 인생이 더 불쌍함

이렇게 3부 시리즈로 구성된 <이건우 스캔들의 실체>는 일주일 만에 조회수 수백만을 찍는 기염을 토했고, 심지어 해외 구독자들이 유입되면서 제일 그룹의 후계 다툼은 해외로까지 퍼져나갔다.

- Doesn’t Koreans have CEO?

- WOWW what a terrible aspect of Chaebeol. If I were an invester, I wouldn’t invest for them. This will worsen financial stability.

- 재벌이 한국 망신 다 시키네

- 모든 한국인이 저렇게 싸우지는 않습니다.

ㄴ 하지만 대부분의 재벌은 저렇게 싸우지.

어쨌든 조회수가 오르며 윤단아의 채널은 폭발적으로 성장했고, 이전에 양소희에게 고소당한 사실도 같이 재조명되면서 얼굴만 이쁜 게 아니라 할 말 다 하는 똑부러진 뉴튜버로 자신의 이미지를 잡아 나갔다.

나는 변호사를 붙여주고 제일 ENM 소속으로 옮겨준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윤단아의 집으로 찾아갔다.

“들어와요. 음료 드릴까요?”

“커피로 부탁할게요.”

윤단아는 약간 피곤해 보였지만 늘 그렇듯 반듯하게 정돈된 차림새였다. 하얀 셔츠에 정장 바지 차림. 집에서까지 셔츠를 입고 있으면 안 불편하나?

윤단아가 커피를 내오는 사이 나는 집안을 둘러보았다. 각 잡힌 서재와 먼지 한 톨 보이지 않는 카펫.

처음 봤을 때는 여유가 없어서 용건만 말하고 나왔는데, 다시 보니 굉장히 깔끔하게 해놓고 산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윤단아는 서류가 가득히 쌓인 책상을 치우며 커피를 내려왔다.

“축하해요. 이지훈 팀장한테 한 방 먹였네요.”

“윤단아 씨가 도와주신 덕분이죠. 그렇지 않아도 양소희 씨 고소 건을 도와드리려고 찾아왔습니다. 제일 ENM과 계약을 맺으면 그쪽 법무팀에서 윤단아 씨를 도와줄 겁니다.”

“그런데 이건우 씨는 제일 ENM을 그만두지 않으셨나요?”

“네. 그렇긴 하지만 제가 윤단아 씨 정도는 꽂아줄 힘은 있습니다.”

“아, 그걸 걱정하는 게 아니라요.”

윤단아는 살짝 말끝을 흐렸다.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이길래 저렇게 뜸을 들이는 걸까?

“편하게 말씀하세요.”

“새로 회사를 차린다고 하셨지요.”

“네”

“저도 이건우 씨의 회사에 합류하고 싶어요.”

“네?”

이게 웬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야?

나는 어안이 벙벙해져서 되물었다.

“제 회사에 들어오고 싶다고요? 왜요?”

지금 내가 차린 회사는 나를 포함한 직원 4명이 전부인 작은 회사이다. 심지어 크리에이터들을 받아본 적도 없는 작디작은 회사.

“이건우 씨는 유능하잖아요. 이번에도 결정적인 증거를 가지고 오셔서 저는 거기에 맞춰서 편집만 했을 뿐이지 사실 이건우 씨가 스캔들을 해결한 거나 다름없죠. 덕분에 제 채널도 많이 성장했고요.”

그렇게 평가해준다면야 나야 땡큐다. 하지만 짚어갈 건 확실하게 짚어야한다.

“우리 회사는 아직 작은 회사입니다. 그리고 윤단아 씨 같은 크리에이터 분들을 매니징 해본 경험도 없고요. 저를 좋게 평가해주시는 건 감사하지만, 제 회사보다는 제일 ENM에 더 많은 노하우가 축적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내 완곡한 거절에도 윤단아는 확고했다.

“대신 활동에 제약이 있겠지요. 뒷조사했으니 제가 왜 한국일보를 나왔는지는 알고 있으시죠?”

나는 바로 납득했다. 과거 윤단아는 예민한 이슈를 다루는 기사를 내는 것을 두고 부장이랑 한 판 뜨고 나왔다.

확실히 저런 고집스럽고 저돌적인 성격이라면 제일 ENM으로 가면 많이 부딪힐지도 모른다.

대기업인 제일 ENM은 우리 회사 같은 작은 회사에 비해 보수적인 부분이 있다.

“이해했습니다. 저야 윤단아 씨가 함께 해주신다면 환영이지요. 그럼 계약서는 제가 나중에 준비해오겠습니다. 일단 양소희 고소 건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부터 생각해봐야겠군요.”

“혹시 아시는 변호사가 있을까요?”

윤단아는 은근슬쩍 기대하는 모양새이다.

뭐, 내가 변호사와 접점이 많기는 했지.

왕년에 이건우가 워낙 사고를 치고 다녀서 연례행사처럼 검찰에 출두하고는 했다.

할아버지께 말씀드리면 제일 그룹 전담 변호인단을 쓸 수 있겠지만, 그러면 할아버지께 빚을 하나 지는 셈이다.

이미 독립하겠다고 큰소리 뻥뻥 치고 나왔는데 할아버지 손을 빌리러 갈 수는 없지.

그리고 나에게는 그 누구보다 유능한 변호사가 하나 있기도 했고.

“네. 캐리 온이라고 일 잘하는 친구가 있습니다.”

“Carrie On? 성이 온 씨인가요?”

나는 태연히 대답했다.

“네 재미교포입니다.”

물론 캐리온이 바로 반박했지만,

[저는 국적이 없습니다.]

나는 캐리온의 반론을 깔끔하게 무시하고 말을 이었다.

“캐리 씨는 지금은 미국에 있어서요. 메일 주소를 알려드릴 테니까 그쪽으로 연락해보세요.”

“감사합니다.”

“그럼 다음에는 계약서를 들고 찾아뵐게요.”

이렇게 윤단아가 내 회사에 합류하기로 했다. 상상치 못한 수확이었다.

*

회사 발족 준비는 순조롭게 흘러갔다. 그동안 업무분장에 대한 얘기가 끝나고 이제는 정말 업무를 시작한 일만 남았다.

먼저 내 꿈을 펼쳐 나갈 회사의 이름은 KW 코퍼레이션으로 지었다.

그리고 여러모로 힘써준 할아버지를 찾아 봬서 감사하다는 말도 전했다. 할아버지는 제대로 못 하면 제일 ENM으로 합병시킬 거니까 똑바로 하라며 으름장을 놓았다.

하지만 그 말을 하시는 할아버지의 표정은 손자가 기특해 견딜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하여간 솔직하지 못하시기는.

그리고 이준호 과장은 소속 아티스트에 대한 정보와 업무 자료를 정리해서 보내주었다.

캐리온에게 따로 조사시킨 결과 특별한 내용은 없었다. 오년 차 무명 가수 한 명과 갓 들어온 배우 지망생일 뿐이었다.

회사 직원과 아티스트를 쭉 훑어보던 나는 ‘한서진’이란 이름에서 멈췄다.

예전에 캐리온에게 물어봤을 때는 원격으로 접속할 수 없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그러니까 내가 그쪽 서버가 있는 건물에 직접 가서 캐리온을 접속시켜야 한다는 말이다.

이건 뭐 첩보 작전도 아니고 굳이 그렇게까지 해서 뒤를 파야할까 싶기도 했지만, 한서진이란 인물에 대해 궁금증이 생겼다.

베일에 싸인 인물이 누구인지 꼭 알아봐야겠다는 오기가 생겼달까.

다행히 캐리온은 좋은 실마리를 물고 왔다.

[코드 락의 알고리즘을 분석한 결과 청부 해커 ‘렛’의 솜씨인 것 같습니다.]

[제일 ENM에서 동일한 흔적을 발견했습니다.]

[과거 제일 ENM에서도 해당 해커에게 의뢰를 맡긴 적이 있습니다.]

“제일 ENM이라면 아버지가?”

[정확한 의뢰인이 누구인지는 나와있지 않습니다.]

알 수 없기는. 보나 마나 사장인 아버지가 지시했겠지.

무슨 일이길래 아버지가 외부의 도움을 받았는지도 궁금해졌다. 이거 한서진을 파보려고 했더니 제일 ENM까지 줄줄이 따라 나오게 생겼네?

이렇게 좋은 기회를 내가 놓칠쏘냐.

나는 캐리온에게 제일 ENM을 해킹하라고 지시했다.

[시스템 해킹과 네트워크 해킹을 동시에 진행합니다.]

시스템 해킹은 직접 운영체제에 접근하여 취약점을 찾아내 루트권한을 얻는 방법이다.

네트워크 해킹은 보통 시스템 해킹과 함께 이뤄지는데, 악성코드나 서버의 취약점을 이용해 루트권한을 얻는다.

최근에 서비스 제공 업체들은 시스템 보안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많은 비용을 투자해 자사의 시스템과 네트워크를 보호하기 위해서 노력했다.

하지만 인터넷을 이용하여 접근 가능한 시스템은 필수불가결하게 취약점을 가지고 있으며, 각종 보안 강화 시스템도 완벽하다고 볼 수 없다.

동시에 간단한 시스템의 취약점을 이용하는 방법부터, 분산화, 암호화, 에이전트화 기법까지.

해킹 기법도 고도화되고 복잡해졌다.

특히 캐리온은 시스템에서 수행하는 여러 작업간의 유기적인 문제를 이해하고 있으며, 다른 해커들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창의적으로 해결책으로 찾아나갈 수 있다.

이에 따라 제일 ENM의 시스템이 무장해제 되기까지 몇 분 걸리지도 않았다.

마치 제집처럼 휘젓고 다니던 캐리온은 해커의 흔적을 발견했다.

[의도적으로 남긴 흔적입니다]

마치 화가가 자신의 작품에 서명을 남기듯이, 렛은 자신의 흔적을 남겼다.

캐리온은 그 흔적을 역추적해서 접선 방법을 알아냈고 나는 바로 연락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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