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빙의하자마자 스캔들이라니 (3)
나는 저녁을 먹으러 내려갔다. 오늘은 가족이 모두 모여 일주일에 한 번씩 같이 식사를 하는 날이다.
1층에 내려가니 식탁에는 이미 가족들이 앉아있었다.
아버지 이정혁과 새어머니, 그리고 동생 이지훈까지.
이들과 함께 먹으려니 벌써 체하는 느낌이었다.
아버지가 나를 힐끗 보더니 말했다.
“앉아라. 늦게 왔구나.”
“일이 좀 있어서요.”
“스캔들은 어떻게 할 생각이더냐.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번 주까지 해결하지 않으면 네가 책임을 져야 한다.”
잘린다는 말이다.
아버지라는 작자의 말에 나는 문득 웃음이 나왔다.
이 사람이 스캔들 사건의 전말에 대해서 알고 있을까?
나는 왜인지 그가 모두 알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나에게 캐리온이 없었더라면 여기서 나도 끝장이 났겠지.
나는 아버지의 말에 대답 대신 역으로 질문을 했다.
“이지훈한테 MCN 사업부를 맡긴다면서요?”
“동생에게도 기회가 돌아가야 하지 않겠느냐.”
동생에게 기회를 주는 건 맞지. 하지만 굳이 장남이 물러난 자리를 쥐여줘야 했을까?
차남에게 줄 애정을 반만이라도 줬으면 이건우가 이렇게까지 비뚤어지지는 않았을 텐데.
그 순간 문득 기억이 떠올랐다.
바닥에 쓰러져 울고 있는 어머니. 그리고 그 앞을 가로막고 서 있는 이건우.
어린 이건우의 눈빛은 분노로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눈빛의 끝에는 차가운 표정의 이정혁이 두 모자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우리 엄마 건드리지 마!’
‘되바라진 놈.’
차갑게 내뱉고 등을 돌리는 이정혁. 그가 사라지자 이건우는 엄마에게 달려가 엄마를 안고 같이 울었다.
“이건우?”
이정혁이 이름을 부르자 나는 정신을 차렸다.
“아, 죄송해요. 생각 좀 하느라.”
내가 잘못 생각했다. 이건우를 향한 이정혁의 차가운 눈빛을 보며 확신했다.
이정혁은 이건우에게 애정이 없는 게 아니라 싫어한다. 이건우 이 불쌍한 새끼.
확실히 알았다. 이지훈뿐만 아니라 이정혁도 내 앞길에 놓인 커다란 장애물이었다.
이정혁이 스테이크를 썰며 물었다.
“그래서 어떻게 해결할 방안은 있냐고 물었다.”
“네. 그렇지 않아도 내일 기자회견을 하려고요.”
“기자회견?”
나는 준비해둔 거짓말을 꺼냈다.
“제가 책임지고 사퇴를 할 겁니다.”
내 대답에 무표정하던 이지훈의 입에 옅게나마 미소가 걸렸다.
밝아지는 이지훈의 얼굴을 보며 나도 속으로 미소지었다. 어디 그 웃음이 언제까지 가는지 보자.
*
다음 날 저녘. 이지훈은 호텔 룸안에서 TV 채널을 돌리고 있었다.
그때 한 여자가 다가와서 물었다.
“무슨 일 있어요? 갑자기 안 보던 티비를 다 보고.”
얇은 슬립만 걸친 이쁘지만 여우 같은 인상을 가진 여자. 바로 양소희였다.
이지훈은 양소희를 끌어안으며 말했다.
“오늘 이건우가 사퇴할 거거든.”
양소희는 놀랐다는 듯이 두 눈을 크게 뜨다가 반달 모양으로 눈을 접으며 웃었다.
“잘됐네요. 그럼 이제 MCN 사업부는 당신이 맡는 건가요?”
“그래. 어제 아버지와 얘기를 나눴어.”
양소희는 생각했다. 이 재벌 3세를 잡은 건 행운이라고.
이 남자를 잡고 자신도 이제 상류층으로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근본이 없다고 자신을 무시하던 연예인들보다 더 높은 곳에서 그들을 내려다볼 생각을 하니 흥분으로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녀는 이지훈의 볼에 입을 맞추며 말했다.
“당신은 잘 할 거예요. 솔직히 이건우는 그 자리에 앉아서 하는 게 없었거든요. 다른 직원들도 쌍수를 들고 환영할걸요?”
이건우가 본부장 자리에 앉은 건 전부 그를 아끼는 회장님 때문이었다.
무엇 하나 주도적으로 해내는 것 없이 결재만 하는 싸인 기계. 이것이 이건우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다.
이제 그 바지사장이 거대한 똥을 싸지르고 퇴임하니, 후임으로 누가 오든 이건우보다는 낫다고 하리라.
그때 화면 속에서 이건우가 단상 위로 올라오는 모습이 보였다.
양소희는 이건우를 보며 생각했다.
‘확실히 잘생기기는 했단 말이지.’
이지훈도 반반하게 생기기는 했지만 남자다운 이건우 쪽이 더 취향에 맞았다.
이건우 주위에 여자가 많은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재벌 3세라는 배경은 차치하고서라도, 본인이 잘생겼으니 달라붙는 여자도 많았다.
‘하지만 이제는 지는 별이지.’
망나니 이건우가 할아버지인 회장의 총애를 받아 지금껏 제일 ENM에서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지만, 노쇠한 회장이 언제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을까?
아마 이변이 없는 한 제일 ENM 사장 이정혁이 몇 년 내로 회장직을 승계할 것이다.
그리고 이정혁이 이지훈을 편애한다는 것쯤은 제일 그룹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누구나 안다.
‘이정혁 사장의 후계는 이지훈이 되겠지.’
그리고 그때, 이지훈의 옆을 차지한 사람은 자신이 될 것이다.
당장 이지훈의 모친도 술집 여자였다가 제일 ENM 안주인의 자리를 차지했는데, 자신이라고 못 할 쏘냐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 속에서 기자회견이 시작되었다. 화면 속의 이건우가 말했다.
“제일 ENM MCN 사업부를 맡은 이건우 본부장입니다.”
“최근 양소희 씨와의 일로 물의를 일으킨 점 사과드립니다.”
이건우가 고개를 꾸벅 숙이며 사과를 한다. 이지훈과 양소희는 이어질 말을 기대했다.
사퇴한다는 말을.
“하지만 저를 성폭행범으로 지목한 양소희 씨의 주장은 근거가 없으며, 이에 저희 측에서는 양소희 씨를 명예훼손 및 무고로 고소하기로 했습니다.”
이지훈과 양소희의 얼굴에 당혹스러움이 깃들었다.
“뭐?”
“···어?”
사퇴한다고 하지 않았어?
그러나 기자회견에서는 ‘사퇴’의 사 자도 나오지 않는다. 강경 대응 방침을 전해놓고 기자회견을 뒤집으며 사라지는 이건우.
그때 양소희의 휴대폰이 울렸다. 발신인은 윤단아 고소 건을 맡은 변호사였다.
양소희는 불안한 마음을 누르며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소희 씨. 큰일 났습니다. 윤단아가 채널에 동영상을 올렸습니다.”
“또 시답잖은 저격 동영상인가요?”
“아, 그게···. 이번에는 직접 한 번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양소희는 윤단아 채널로 들어갔다. 동영상이 하나 올라왔다.
[이건우 스캔들의 실체 1편] 그날 밤 그들은 진짜 ㅅㅅ를 했을까?
클릭할 수밖에 없는 자극적인 제목의 동영상.
양소희는 인상을 쓰며 동영상을 눌렀다. 그리고 인트로가 재생되자마자
툭
휴대폰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이, 이게 뭐야···.”
화면에는 술에 취한 이건우를 양소희가 끌고 가는 호텔 CCTV 영상이 나오고 있었다.
*
나는 기자회견이 끝나자마자 캐리온에게 시켜 실검 조작을 시도했다. 모두 윤단아의 동영상을 띄우기 위해서였다.
유튜브 알고리즘 조작은 어렵지만 국내 포털 사이트 실검 조작은 상대적으로 쉽다.
들키지 않기 위해서는 패킷 프로그램을 쓰는 게 좋다. 패킷 프로그램은 서버에 허위 신호를 보내 정상 신호인 것처럼 판단하게 만드는 방식이다.
즉 동영상을 클릭하지는 않았지만 클릭한 것처럼 포털 사이트가 인식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포털 사이트가 허위인지 판단하지 못한 신호들을 역추적하기 쉽지 않기 때문에, 패킷 프로그램을 쓴다면 현실적으로 추적하기가 어려워진다.
하지만 문제는 패킷 프로그램을 쓰려면 고성능 서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노트북이나 가정 데스크톱으로는 할 수 없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차선으로 매크로 프로그램을 사용했다.
캐리온의 압도적인 성능을 이용하여 다수의 좀비 PC를 만들고 포털 사이트에 윤단아 관련 내용을 연속해서 검색하도록 하였다.
물론 캐리온의 방화벽을 이용하여 역추적이 어렵게 만들어 놓고, 수시로 IP를 바꾸는 것은 당연한 얘기다.
그렇게 이건우 스캔들은 또다시 실검을 장악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양상이 달라졌다.
1. 윤단아 주작 감별
2. 윤단아 이건우
3. 윤단아 스캔들의 실체
4. 윤단아 양소희
핵심 키워드에 윤단아가 들어가면서 윤단아가 올린 동영상이 알고리즘을 타기 시작했고, 한 번 실검에 오른 윤단아 동영상은 실검에서 오랫동안 떨어지지 않았다.
동영상은 금방 수백만 조회수를 기록하게 되었고 결국에는 뉴튜브 인기 차트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수많은 사람이 윤단아의 영상을 보았고 영상은 끊임없이 재생산되었다.
렉카 뉴튜버들과 저격 뉴튜버들이 윤단아의 영상을 편집해서 다뤘고, 공중파 방송에서도 윤단아의 동영상을 토대로 뉴스를 내보냈다.
진실을 알게 된 사람들은 이제 나 대신 이지훈을 깎아내리기 시작하였다. 물론 우리 제일 그룹도 사람들의 입방아에 끊임없이 오르내렸고.
그리고 나는 할아버지의 전화를 받았다.
“당장 본가로 튀어와!”
*
나는 할아버지, 그러니까 제일 그룹 총수를 만나러 갔다.
가면 무슨 말을 할지는 뻔했다. 분명 제일 그룹 내분과 관련된 동영상을 내리라고 하겠지.
할아버지가 이건우를 아끼기는 하지만 그룹의 이미지가 실추되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문제이니까.
그룹을 무척이나 아끼시는 할아버지가 한마디 하실 것이다.
하지만 그걸 알면서도 나는 할아버지를 만나는 것을 피할 수 없었다. 이 회장님께 돈 나올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중국 북경에서 미확인 바이러스의 확산세가 심상치 않다.
생물학 무기 프로젝트를 계속하려면 데이터 센터 구축이 필요한데 그러려면 이건우 어머니의 유산이 필요했다.
어머니는 유산을 할아버지에게 신탁으로 맡기셨는데, 내가 흥청망청 써버릴 것을 염려하여 할아버지의 동의가 있을 때 유산을 물려받을 수 있도록 조처해놓으셨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차는 저택 안으로 들어섰다. 궁궐 같은 할아버지의 저택이었다.
제일 그룹의 왕이 사는 이곳에서 그룹의 중요한 일들이 이루어진다.
내가 차에서 내리자 마침 정원에 나와 계시던 할아버지와 만났다.
“우리 건우 왔느냐?”
동네 할아버지 같은 허허로운 인상. 누군가에게는 가장 무서운 사람이지만 나에게만큼은 따뜻하시기만 한 분이었다.
할아버지의 웃음에 나는 나도 모르게 마음이 풀어지며, 이건우가 할아버지와 보냈던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부모의 사랑을 못 받고 자란 이건우에게는 부모님과 같은 존재였다.
그 기억들에 나도 동화되어 회장님이 반갑게 느껴졌다.
“할아버지”
나는 성큼 다가가서 할아버지를 마주 안았다.
“녀석 자주 좀 들르지 그러냐.”
“지난주에도 찾아왔잖아요.”
“술에 취해서 찾아온 걸 자랑이라고 떠드는구나.”
할아버지가 핀잔을 주었지만 그 말속에 따뜻함이 있었다. 종종 술에 취하면 정 붙일 곳을 찾아 당신의 집으로 찾아가는 게 영 안쓰러웠기 때문이리라.
나는 할아버지와 함께 집무실로 들어갔다.
커다란 집무실에는 응접용 소파가 놓여있고 그 뒤에는 할아버지의 책상이 있었다.
할아버지의 책상은 아주 중요한 상징성을 가졌다. 할아버지의 비서는 물론이요, 자식들도 저 책상에 다가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할아버지의 사적이고 내밀한 공간이었다.
하지만 나는 달랐다.
나는 어릴 때부터 할아버지 댁을 내 집처럼 들락날락했고, 할아버지의 책상에 다가갈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으니까.
우리는 자연스럽게 책상을 두고 마주 앉았다. 할아버지가 먼저 말을 꺼냈다.
“깜찍한 일을 저질렀더구나.”
“이지훈이 먼저 시작한 일입니다.”
“그 동영상은 봤다. 그게 진짜더냐?”
나는 빙긋 웃었다.
“이미 알아보시고 저 부르신 거잖아요.”
“껄껄. 그건 그렇지. 이제 좀 컸다고 훤히 꿰고 있구나. 그래도 집안일인데 네가 너무 경솔했다. 이 할애비한테 말했으면 조용히 해결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야.”
나도 그 방법을 생각해보지 않은 건 아니다.
할아버지에게 말했다면 지금보다 훨씬 깔끔하게 양소희와 이지훈을 닥치게 만들 수 있었겠지.
하지만 그러면 내 이미지는?
재벌 3세가 돈 써서 성폭행 건을 무마시켰다는 오점만 남을 것이다.
이 몸의 원래 주인이야 이미지 같은 건 신경쓰지 않고 막살았다. 하지만 이제 내 몸뚱어리가 된 만큼 평판 관리에 좀 신경을 쓰고싶다.
연예인처럼 이미지 관리를 철저하게 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최소한 정상인으로 보이게끔은 해야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내일모레면 서른인데 언제까지 할아버지 뒤에 있을 수는 없잖아요.”
할아버지는 ‘이것 봐라?’라는 표정을 지었다.
“허허. 이 할애비가 필요없다는 말이냐? 그거 참 서운한 말이구나.”
회장님이 엄살은.
나는 슬슬 본론을 꺼냈다.
“그렇지 않아도 그것 때문에 찾아왔습니다. 저도 이제 독립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머니의 유산을 물려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