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로 갑질하는 양아치 재벌-4화 (4/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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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의하자마자 스캔들이라니 (2)

한국일보 연예부 출신 기자 윤단아는 회사를 그만두고 뉴튜브에서 1인 기자 채널을 만들어 활동하고 있었다.

그녀가 진행한 콘텐츠는 바로 주작 감별 및 시사 고발.

콘텐츠 자체는 무척 흔했지만 이쁜 얼굴과 기자 생활 다진 말솜씨로 인해 채널은 빠른 속도로 성장했다.

몇몇 뉴튜버들과 연예인들이 그녀의 저격으로 그 실체가 드러났다.

특히 그 유명한 뒷광고 사건도 윤단아가 처음 터뜨리면서 베일이 벗겨지게 되었다.

그렇게 주가를 높이던 윤단아는 대형 크리에이터인 양소희의 실체를 저격하는 영상을 올리게 된다.

윤단아의 영상은 논리적이었고 제시한 증거들도 명명백백했다. 하지만 그녀가 간과한 것이 있었다.

바로 양소희의 팬덤.

수많은 양소희의 구독자들은 윤단아의 채널과 영상에 테러하기 시작했고, 그것이 곧 여론이 되었다. 다른 저격 뉴튜버들도 양소희의 편이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윤단아의 채널은 신고 누적으로 폭파되었고, 역으로 양소희에게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당하게 되었다.

재판을 준비하며 시간을 보내던 윤단아는 투덜거렸다.

“양소희 그 년 꽃뱀 맞는데.”

양소희는 분명 오 년 전에도 유명 연예인을 건드려서 합의금을 받아내고 잠적한 적이 있다.

그때는 실명이 거론되지 않고 연습생 A양이라고 언급된 채 사건이 종결됐지만, 밑바닥 소문에 빠삭한 사람이라면 그 A양이 양소희라는 건 누구나 알고 있다.

그걸 입증할 증거가 없어서 그렇지.

그녀는 오징어를 질겅질겅 씹으며 뉴튜브를 확인했다. 요즘 뉴튜브에서 가장 핫한 영상은 누가 뭐래도 이거였다.

양소희와 이건우의 스캔들. 수많은 뉴튜버들과 기자들이 그 사건을 연일 다루고 있었다.

윤단아는 그 스캔들 사건을 보면서 중얼거렸다.

“이 사람도 잘못 걸렸네. 그런데 양소희 스타일이랑은 좀 다른데···.”

양소희라면 이렇게 마구잡이로 판을 키우기보다 돈을 받기 위해서 물밑에서 접촉을 할 텐데···.

재벌 3세인 이건우는, 재벌에 대한 안 좋은 인식에 성폭행범이라는 오해까지 더해져 이미지가 구제 불능 수준으로 떡락하고 있었다.

윤단아는 혀를 차다가 자신 또한 남 걱정할 처지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기나긴 재판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으니까.

태블릿을 치우고 재판 준비를 하려는데 초인종이 울렸다.

딩동

윤단아는 인터폰에 비친 얼굴을 보고 깜짝 놀랐다.

“어?”

굵직한 선을 가진 남자다운 얼굴.

조금 전까지만 해도 태블릿으로 보고 있던 이건우가 찾아왔다.

*

캐리온이 찾아낸 사람은 윤단아였다.

그녀는 과거 한국일보에서 연예부 기자로 활동하다가, 기사를 내는 것으로 부장과 한 판 대차게 싸운 다음 자진해서 사직서를 제출했다.

사실 말이 자진 사퇴이지 잘린 것이나 다름없다.

한국일보 커뮤니티에 익명으로 올라온 글들을 좀 더 찾아보니 윤단아의 캐릭터를 좀 더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한국일보 재직 시절 윤단아의 별명은 윤황소였다고 한다. 고집 있고 흥분하면 이곳저곳 다 들이받는 모습이 꼭 황소 같다나 뭐라나.

그래서 드센 여장부의 모습을 상상하고 찾아갔는데 첫인상은 오히려 차갑고 이지적인 면이 강했다.

편한 츄리닝을 입고 있지만, 반듯하게 올린 포니테일 머리와 네모난 안경은 고집스러운 느낌을 주기도 했다.

우리는 인사를 나누고 자리에 앉았다.

윤단아가 먼저 말을 꺼냈다.

“여기는 어떻게 알고 찾아오셨나요?”

캐리온이 인터넷을 열심히 뒤진 결과였지만 그걸 사실대로 말할 수는 없기에 대충 둘러댔다.

“그쪽이 인터넷에 개인정보를 줄줄 흘리고 다녔나 보지요.”

내 말을 들은 윤단아가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뒷조사라도 한 건가요?”

“뭐, 기분 나쁘시다면 제 집 주소라도 알려드릴까요?”

“······.”

윤단아가 그딴 거 알아서 뭐하게 라는 듯한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으음. 너무 대놓고 그러면 나 상처받는다고.

나는 거두절미하고 본론을 꺼냈다.

“윤단아 씨에게 제안하러 찾아왔습니다.”

“제안이요?”

“먼저 제 상황이 어떤지 알고 있으시죠?”

“요즘에 그 스캔들을 모르면 간첩이죠. 열심히 나락으로 가고 계신 건 잘 알고 있죠.”

내가 이렇게 유명하다.

“잘 아신다니 다행이군요. 저는 윤단아 씨의 채널에서 제 입장을 대변해줬으면 좋겠습니다.”

“죄송합니다만 자진해서 불꽃길을 걷는 취미는 없어서요.”

윤단아는 단박에 거절했다. 지금 여론을 생각하면 누구라도 거절하겠지.

하지만 이걸 보면 생각이 달라질걸? 나는 빙긋 웃으며 태블릿을 꺼냈다.

“그게 불꽃길이 아니라 꽃길이면요?”

나에게는 불꽃길을 꽃길로 바꿀 히든카드가 있었다.

먼저 양소희가 술에 절어있는 나를 데리고 호텔로 들어가는 CCTV 영상.

윤단아는 입을 헤 벌리고는 영상을 보았다.

“이, 이거 진짜인가요?”

“네. 삭제된 영상을 겨우 복구한 겁니다.”

영상을 보는 그녀의 눈동자에 조금씩 열기가 맴돌기 시작했다.

“이런 게 있으면 왜 진즉 터뜨리지 않았죠?”

“양치기 소년이 떠드는 걸 누가 믿어줄까요?”

이건우가 그간 쌓아올린 화려한 업적 덕분에 내 이미지는 시궁창에 처박혔다.

내가 말해봐야 ‘재벌이 돈 써서 사건을 무마시킨다’라는 소리밖에 못 듣는다.

“하지만 나름 이 업계에서 유명한 윤단아 씨가 이 사건을 맡는다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요. 그리고 이 일에는 제 이복동생이 개입했습니다.”

“이복동생이라면··· 이지훈 팀장?”

“잘 알고 있군요. 내 동생이 양소희와 접촉하는 사진을 확보했습니다.”

나는 태블릿을 조정해 다음 영상을 재생시켰다. 영상 안에서는 이지훈과 양소희가 카페에서 대화하는 모습이 보였다.

“이지훈과 양소희가 만나서 작당을 하는 영상입니다. 참고로 둘이 무슨 대화를 했는지 스크립트도 준비되어 있습니다.”

윤단아는 이제 표정 관리하는 것도 잊어버렸는지 입을 뻐끔거리다 겨우 말을 꺼냈다.

“이거 터뜨려도 되는 거 맞아요?”

나는 씩 웃었다. 그녀가 무엇을 걱정하는지 알고있다.

제일 그룹의 후계자 다툼을 생생하게 방송해도 되냐는 것이지.

“물론입니다. 최대한 조미료를 팍팍 쳐서 자극적으로 보도해주세요. 당연히 공짜로 해달라는 말은 아닙니다.”

나는 마지막으로 준비한 서류를 윤단아에게 내밀었다.

“만약 이번 일을 해주신다면 제일 ENM 소속 크리에이터로 계약해드리고, 이번 양소희 고소건이 조속히 마무리될 수 있도록 전담 변호사를 붙여드리겠습니다.”

내 제안에 윤단아는 혹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그리고, 양소희와 이지훈을 무너뜨리는 거. 재미있을 거 같지 않아요?”

나의 악동 같은 미소에 윤단아는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그녀의 눈에 있는 열기는 어느새 불꽃으로 변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이런 기회를 걷어차면 바보겠지요. 좋아요. 제가 맡을게요.”

우리는 미소를 지으며 손을 굳게 잡았다.

*

시나리오 짜는 건 전문가인 윤단아에게 맡겼다. 그렇게 꼬박 하루가 지나고 그녀에게서 연락이 왔다.

“기획 마쳤어요. 주작 감별 3부 시리즈로 갈 거예요.”

“···이게 시리즈로 갈 일입니까?”

“에이 겸손하시기는. 이건우 씨 화제가 장난이 아니에요. 마음 같아서는 5부로 가고 싶은데 그러면 너무 늘어지니까 짧고 굵게 3부로 잡았어요.”

내가 요즘 이렇게 핫하다.

“알았습니다. 내일 기자회견을 할 건데 그때 맞춰서 업로드해주세요.”

“내일이면 일정이 빡빡하네요. 최대한 빠르게 편집하고 보내드릴게요.”

“알겠습니다.”

나는 전화를 끊고 노트북을 확인했다. 노트북에는 캐리온이 정리해놓은 자료가 있었다.

북경에서 미확인 바이러스의 확산이 심상치 않아서 추가 조사를 시켰다.

장비의 한계가 있다보니 기관을 해킹해서 정확한 자료를 파악하지는 못했지만, 동향을 알아보는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다.

물론 이 간단한 일을 하는 데에도 노트북이 과열되어서 뜨끈해지기는 했지만 말이다.

나는 천천히 자료를 살펴보았다.

먼저 캐리온이 검열 전에 재빠르게 영상을 복사해 놓은 것을 틀어보았다.

영상 안에서는 사람들이 침대에 누워 있었다.

열이 나는 건지 얼굴에는 홍조가 피어 있고, 온몸에 발진이 붉게 올라와 있다.

영상에서는 이러한 환자가 지금 북경에 간간이 나타나는데, 그 수를 합치면 수십 명쯤 된다고 하였다.

캐리온이 작성한 리포트를 보니 그 말이 거짓은 아닌 듯했다.

영상에 올라온 환자와 검열된 영상들을 복원해 분석해 본 결과 현재 북경에서는 수십 명의 사람이 미확인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있었다.

톡 톡 톡

나는 책상을 두드리며 생각에 잠겼다.

‘생물학 연합 연구소에서는 이 사실을 알고 있을까?’

캐리온 프로그램은 하나이다.

나에게 캐리온이 넘어온 이상, 생물학 무기 프로젝트의 핵심을 담당하는 인공지능이 사라져 버려 연구가 중단됐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생물학 무기 프로젝트의 키는 내가 쥐고 있는 셈.

‘북경에서 미확인 바이러스가 퍼지고 있다라···. 이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

나는 시스템 개발자였기에 바이러스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반짝 유행하고 마는 독감으로 끝날 수 있고, 천연두나 페스트 같은 범지구적인 전염병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리고 그걸 판단하려면 나에게 제대로 된 장비가 필요하다.

‘내일 스캔들 문제를 해결하면 이 집구석부터 나가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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