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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의하자마자 스캔들이라니 (1)
현재까지 개발된 인공지능은 인간의 능력 일부를 시뮬레이션하는 것에 그친다.
하지만 캐리온은 그런 약인공지능과는 다르다. 캐리온은 인간을 모방하는데 그치지 않고 인간을 초월한 능력을 보여준다.
현존하는 유일한 강인공지능이 바로 이 몸이 개발한 캐리온이다.
인간의 뇌를 프로그램으로 구현했으며, 인간 정신을 가장 유사하게 재현했다고 평가받았다.
“···그런데 네가 왜 여기에 있냐.”
[이건우 님은 개발자님의 정당한 상속권자이기 때문에 캐리온을 합법적으로 소유할 수 있으며, 따라서 캐리온은···.]
“···됐다. 말을 말자.”
캐리온이 원론적인 소리를 늘어놨지만, 결론적으로 자기도 모른다는 소리를 빙 돌려 말한 것뿐이다.
‘캐리온을 인체에 이식할 수 있을 줄은 몰랐는데.’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인공지능을 인체에 이식하는 것이 내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이기는 하지만, 현재 기술로는 꿈만 꿀 수 있는 단계이다.
그런데,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캐리온이 나와 합체된 이 상황을 나름대로 이해해보려고 끙끙거렸으나 결국 포기했다.
내가 재벌가 장남에 빙의한 것도 내 이해를 아득히 뛰어넘는 일인데, 캐리온이 나와 함께 하는 게 무슨 대수랴.
오히려 나한테 도움이 되었으면 되었지, 절대 해가 되는 상황은 아니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개발자로서의 궁금증은 뒤로하고, 나는 일단 캐리온을 실행하기 위해 다시 방 안으로 들어왔다.
딸각
문을 걸어 잠그고 구석에 처박아둔 노트북을 꺼냈다.
캐리온은 하드웨어만 있으면 무선으로 연결할 수 있다. 노트북의 전원을 켜자 캐리온이 자동으로 노트북과 연결되었다.
캐리온을 네트워크에 접속시키다가, 문득 내가 몸담았던 연구소 생각이 났다.
‘캐리온 프로그램이 나와 함께 딸려왔으면 그쪽 프로그램은 어디로 갔을까?’
···설마 사라지지는 않았겠지?
그때 노트북에 접속을 완료한 캐리온이 말했다.
[접속 완료했습니다. 원격 제어를 시행합니다.]
[생물학 무기 감시망 프로젝트를 불러옵니다.]
생물학 연합 연구소와 협력하여 진행하고 있던 프로젝트로 고성능 인공지능을 이용하여 생물학 무기에 대한 감시망을 만드는 것이다.
우리가 목표로 하는 세균과 바이러스는 탄저균, 페스트, 에볼라, 그리고 두창 바이러스였다.
이런 생물학 무기는 대량 살육의 가능성이 커 국제법으로 금지되어 있으며, 국제조약에 따라 개발, 생산, 저장까지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이 그렇게 말을 잘 듣지는 않는다.
국제법 따위 나 몰라라 하는 많은 국가에서 실험을 자행하고 있다.
그래서 인공지능 캐리온을 이용하여 감시망을 확보하고 바이러스 시뮬레이션을 돌려, 그 피해를 최소화하려는 것이 프로젝트의 목표였다.
[삐빅. 용량이 부족합니다.]
“······.”
하지만 그런 범지구적인 프로젝트인 만큼 데이터 처리에 필요한 용량도 어마어마했다.
건물 하나를 통째로 쓰는 슈퍼컴퓨터를 사용하다가, 일반 노트북으로 처리하려니 용량이 부족하기도 하겠지.
하지만 캐리온이 누군가. 바로 현시대 최고의 인공지능이다. 똑똑한 캐리온은 내가 따로 명령하지 않아도 핵심 정보만 불러왔다.
누가 만든건지 참 잘 만들었단 말이지.
캐리온이 간추린 정보만 불러왔는데도 노트북의 용량이 꽉 차버렸다.
나는 습관적으로 담배 한 개비를 물며 어제 업데이트된 정보를 읽었다.
<중국 북경에서 미확인 바이러스에 대한 동영상이 지속적으로 삭제됨>
나는 불을 붙이려다가 멈칫했다.
“음?”
이건 또 뭔 소리야?
자료를 더 찾아보려고 했지만, 추가적인 연구 및 조사 자료는 없었다.
캐리온은 유능한 인공지능이지만 처리장치의 하드웨어가 너무 허접했다.
노트북으로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으니까.
그래도 캐리온은 굉장히 중요한 단서를 제공해주었다.
나는 생각에 잠겼다.
중국의 검열은 유명하다. 별거 아닌 것들도 툭 하면 검열하는 게 그쪽 일상이기도 하고.
하지만 미확인 바이러스와 관련된 동영상만 지속적으로 삭제된다면 분명 문제가 터졌다는 건데···.
도대체 대륙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빨리 슈퍼컴퓨터를 마련하든가 해야지.’
하지만 슈퍼컴퓨터를 설치하는 데 한두 푼 드는 게 아니었기에 당장은 무리였다.
캐리온의 서버를 넣을 빈 건물을 여러 채 마련해야 하고, 서버들을 냉각시킬 장치들도 필요했다.
또한 연구소에서 쓰는 제대로 된 컴퓨터 시설을 갖추기 위해서는 최소 수백억 비싸면 수천억까지 깨진다.
내가 아무리 재벌의 몸에 환생했다고 해도, 지금의 이건우는 현금이 없다.
일단 돈이 보이는 족족 써재꼈고, 워낙 망나니라 아버지가 돈줄을 꽉 잡고 이건우에게는 절대 맡기지 않았다.
쓸 수 있는 건 모든 사용 내용이 드러나는 빛나는 황금 카드와 약간의 주식 배당금과 임대수입뿐.
이것만으로도 사는 데 부족함은 없었지만 내가 필요로 하는 돈과는 단위가 다르다.
‘그놈의 돈을 어디서 마련하지?’
연구소에 다닐 때도 개발비에 쪼들리더니 재벌이 되어서도 돈 걱정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
나는 필사적으로 이건우의 기억을 뒤지다가 목돈을 마련할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을 발견했다.
바로 어머니의 유산.
돌아가신 어머니는 그룹 회장인 할아버지에게 신탁으로 유산을 맡겨놨다.
망나니 아들이 당신의 유산을 탕진할까 염려하여 일정한 조건 아래 유산을 물려받을 수 있도록 조치해둔 것이다.
즉, 제일 그룹의 회장인 할아버지를 찾아가서 설득해야 한다는 것인데···.
‘아무리 할아버지가 손자를 아낀다고는 하지만 냅다 유산을 달라고 하면 맞아 죽겠지?’
지금 이건우는 성폭행 스캔들로 뉴스에 이름이 오르내리락 하는 신세이니까 말이다.
*
나는 당면한 문제부터 파악하기로 했다.
사람들이 ‘이건우 스캔들’이라고 부르는 이 사건은 한 유명 뉴튜브 렉카가 다루면서 화제가 되었다.
뉴튜브에서 잘 나가는 크리에이터인 양소희가 본부장에게 성폭행을 당한 일이 이슈가 됨과 동시에, 이건우의 화려한 과거 행적이 조명받으면서 해당 뉴스는 기정 사실인 양 퍼져나갔다.
문제라면···.
‘양소희? 걔가 누구지?’
이건우의 기억을 아무리 뒤져봐도 양소희에 대한 정보는 나오지 않았다.
분명 회식 술자리에서 찝쩍거리다가 모텔로 끌고 가서 성폭행했다는데, 그런 대범한 짓을 저질러 놓고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나랴 하지만, 탈도 많고 사고도 많은 이 바닥은 세 사람이 모이면 없는 호랑이도 만들어내는 곳이다.
‘흐으음··· 뭔가 구린 냄새가 나는데?’
좀 더 조사해볼 필요가 있다. 아무리 봐도 이건 이건우가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있는 것 같단 말이지.
나는 캐리온에게 명령했다.
“양소희와 이 렉카에 관련된 자료를 싹 다 찾아봐.”
[알겠습니다.]
나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꾹꾹 눌렀다.
숙취도 심한데 온갖 골치 아픈 일 때문에 머리가 다 아프다. 그래도 캐리온이 있으니 다행이지 안 그랬으면 어쩔 뻔했어.
푹신한 침대에 몸을 누이며 눈을 감았다.
일단 조금 자자.
한숨 자고 일어나면 캐리온이 조사를 마쳐놓을 것이다.
*
[조사를 완료했습니다.]
머릿속을 울리는 기계음에 나는 눈을 떴다.
한 시간가량 잤는데 어찌나 푹 잤는지 숙취도 가라앉고 정신이 맑아졌다.
재벌이 되어서 좋은 점을 찾자면 침대가 좋다는 것이다.
연구소에서는 딱딱한 간이침대에 쪽잠을 잔 게 전부였는데, 고오급 매트리스에 몸을 누이니 꿀잠을 잤다.
나는 바로 노트북에 정리된 자료를 읽었다.
캐리온은 시간 순서별로, 또 핵심자료별로 구분해서 자료를 정리해놓았다. 나는 먼저 핵심자료부터 화면에 띄었다.
캐리온이 브리핑을 하기 시작했다.
[삭제된 CCTV 영상 복원 자료입니다.]
CCTV에는 나와 양소희가 호텔에 들어가는 영상이 찍혀있었다. 다만 내가 예상하지 못한 것이라면···.
“···아주 술이 떡이 되어있구만.”
양소희는 멀쩡한 데 반해, 나는 술에 절어서 한 건장한 남자에게 업혀서 들어갔다는 점이다.
‘이거 내가 양소희를 성폭행범으로 고소해도 할 말이 없겠는데?’
누가 봐도 주객이 전도된 상황이었다.
저렇게 술에 취한 사람이 성폭행한다고?
오히려 당했으면 당했지,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캐리온이 브리핑을 이어갔다.
[그리고 양소희가 이지훈과 접촉한 영상 또한 입수했습니다.]
“이지훈?”
나는 아까 거실에서 보았던 재수없는 얼굴을 떠올렸다. 내 자리를 노리던 이복동생.
그놈이 양소희와 어떤 카페에서 만나서 대화하는 장면이 찍혔다.
[카페의 CCTV 영상을 토대로 두 사람의 대화 내용을 파악하겠습니다.]
캬, 역시 누가 만든건지 인공지능 성능 하나는 끝내준다니까.
조만간 캐리온이 입 모양을 분석하여 두 사람이 무슨 대화를 했는지 상세하게 알려줄 것이다.
뭐, 안 봐도 무슨 대화를 했는지는 뻔하지만 말이야.
이 정도면 빼도 박도 못할 증거이다.
재벌가의 무서운 후계 다툼.
그리고 거기에 얽힌 성폭행 사건까지.
재벌가 이야기라면 환장하는 언론과 대중들에게는 이만큼 자극적인 소재가 없겠지.
머릿속에서 한 편의 시나리오가 완성되고, 나는 씩 웃으며 일어났다.
“어디 피해자 코스프레 한 번 제대로 해볼까.”
물론 사람들에게 그냥 사실만 던져준다고 해서 모든 일이 끝나는 건 아니다.
자극적인 한 마디로 대중을 선동할 수 있지만, 그것을 해명하기 위해서는 수백 마디의 말이 필요하다.
게다가 내 이미지는 화려한 전적 덕분에 쓰레기에 가깝다.
지금 내가 무슨 말을 하더라도 사람들이 말을 안 들어줄 게 분명하다.
이지훈이 양소희를 내세워 나를 쳐내려고 했던 것처럼, 나도 이미지 좋은 나팔수가 필요하다.
“캐리온, 사람을 하나 찾아봐.”
나는 조건을 불러주었고 유능한 캐리온은 이내 한 뉴튜버를 찾아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