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스카이라인이 보이는 고층 빌딩.
넓은 대표실에 청년이 상석에 앉아있다.
그 옆에는 대표실의 주인으로 보이는 중년 남성이 서있었다.
청년은 남의 대표실에 무단으로 침입해 앉아있는 건데도, 원래 제 자리인 마냥 자연스럽게 담배를 빨았다.
이건우는 물고있던 담배를 재떨이에 툭툭 치더니 운을 띄었다.
“대표님. 누가 내 물건에 손을 대면 되게 기분 나쁘죠?”
뜬금없이 나온 말에 중년 남자는 움찔하더니 부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 예. 물론입니다. 그럼요. 당연히 기분 나쁘죠. 하하하.”
“재수없게 웃지 마시고요.”
“넵”
까마득하게 어린 놈의 말에 대표의 입은 조개처럼 꾹 다물어졌다. 이건우는 느릿느릿 말을 이었다.
“아주 옛날에 그런 일이 있었어요.”
이제 서른 살인 애송이가 무슨 옛날 타령을 하나 싶었으나 대표는 가만히 경청했다.
이건우는 꽤나 오래 전, 자신이 경험했던 일을 풀어놓았다.
재벌가 장남의 몸에 빙의하기 전에 있었던 일.
“제가 학부생이었을 때 개쩌는 논문을 썼거든요. 진짜 쩔었어요. 세계 학회에 제출해도 될만한 발상이었지요. 더 깊이 연구하고 싶어서 대학원에 갔는데 어떻게 됐을 것 같아요?”
“그, 그게···.”
대표는 할 말을 잃고 눈을 이리저리 굴렸다. 어땠을지 충분히 예상이 갔으니까.
대답을 기대한 건 아닌지 이건우는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지도교수였던 새끼가 내 아이디어를 뺏어가서 자기 이름으로 논문을 냈더라고요. 그럼 내가 빡이 치겠어요, 안 치겠어요.”
“에, 많이 화가 나셨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요. 그래서 내가 얘기했지요. 제 1저자까지는 바라지 않아도 내 이름은 올려달라고. 그런데 교수라는놈은 내 말을 귓등으로도 안 듣더라고.”
이건우는 말을 하며 씨익 웃었다.
“그런데 마침 그 교수가 지도하는 학생하고 불륜을 저지르고 있더라고요.”
대표는 이건우의 입에 걸린 웃음이 불길해보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직접 발로 뛰고 밤도 새며 증거를 잡았어요. 그리고 교수한테 가니까 바로 공동 저자로 내 이름을 올려주더군요. 전에는 내 말에 관심도 없던 양반이요.”
대표는 침을 꼴깍 삼켰다. 그 교수의 이야기가 남일같지 않았다.
전세계에 바이러스가 창궐하는 팬데믹.
이건우는 팬데믹을 종식할 신약을 개발해냈고, 대표는 그 자료를 빼돌리려고 했다.
불쌍할 정도로 안절부절 못하던 그는 결국 털썩 무릎을 꿇었다.
“죄, 죄송합니다! 제가 책임을 지고···.”
빙글빙글 웃던 이건우의 얼굴이 싸늘하게 식었다.
“책임은 당연히 지는 거고 대가도 치러야지. 그러니까 왜 내 물건에 손을 대고 그래.”
그가 손짓하자 옆에 있던 비서가 서류를 건넸다.
“알아보니까 대표직에 있으면서 이것저것 많이 해드셨더라고.”
이건우는 책상 위로 파일을 하나씩 집어던졌다.
“국가예방접종사업(NIP) 백신 입찰 담합 의혹 건.”
탁
“대량 납품 비리 혐의에다가”
탁
“리베이트는 관행처럼 계속 해왔으며”
탁
“별장을 샀는데 실거래가 조작도 일어났고”
탁
“이쯤되니 비서랑 바람이 나는 건 귀여워 보일 정도네.”
탁
이건우가 말을 마쳤을 때 책상 위에 서류가 산처럼 쌓였다.
대표는 반쯤 정신이 나간 것처럼 보였다.
“아, 아니···. 이걸 어떻게···.”
최선을 다해서 숨겼던 비밀들이 먼지 하나 남기지 않고 모두 이건우의 손 안에 들어가 있었다.
이건우가 싱긋 웃으며 어깨를 툭툭 쳤다.
“내 신약을 훔치려고 했던 값은 톡톡히 치러야지.”
협박의 귀재 이건우.
재벌가 장남으로 돌아온 그가 이제는 한 손에는 돈을, 다른 손에는 정보를 쥐고 휘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