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86화 〉3-3. 행동 개시 (10) (86/88)


  • 〈 86화 〉3-3. 행동 개시 (10)

    덜커덩! 프치치치치.... 커다란 미트볼 기계가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그리고는 담배라도 피우는 것처럼 시커먼 매연을 뱉었다.

    "아오!!! 이 고철덩어리 새끼! 그새를 못참고 또 퍼졌어?!"

    깡!! 패티 맥은 자신의 기계를 발로 걷어차며 성질 부렸다. 기계는 때리면 말을 듣는다는 민간요법적인 통념이 있지만, 패티 맥의 기계는 무게가 워낙 많이 나가서 사람 힘으로 때려봤자 소용이 없었다. 꿈쩍도  하고 앉아서 매연을 뿜어댔다.

    "씨! 내가 돈만 있었어봐. 진작에 싹 다 갈아치웠지."

    [맥... 들리나?]

    패티 맥이 귀에 꽂아놓은 이어폰 무전기에서 V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왜? 무슨 일인데?"

    [건물 안에 침입자가 있어.]

    "뭐...? 몇 놈인데?"

    [몰라. 혼자는 아니야. 론하고 반이 교전중이야. 쉘은 이미 제압 당했어.]

    "쉘이 당했다고?"

    [우리가 여기서 정비를 한다는  알고 매복해 있었어. 최대한 빨리 놈들을 찾아서 처리해야 뒷일이 골치....아프....]

    치직! 치지직! 무전기의 신호가 불안정해져서 잡음이 심하게 꼈다. 상대의 목소리를 도저히 식별할 수 없는 지경이 되자 패티 맥은 귀에서 무전기를 빼버렸다.

    파츠츳...! 이번에는 갑자기 천장의 전등들이 깜빡거리기 시작했다. 딱봐도 전기 시설 불량이 아니라 침입자의 소행이라고 판단한 패티 맥이 주변을 경계했다. 또각 또각. 발소리가 들려왔다. 굽이 높은 구두가 바닥을 찍는 소리가 들리는 걸 보니 여성이었다. 이윽고 모습을 나타낸 여성이 패티 맥 쪽으로 다가올 때마다 복도의 전등들이 치지직 소리를 내며 깜빡깜빡 꺼졌다 켜지기를 반복했다.

    "너냐? 내 도마에 기어올라온 고기는."

    상대는 육체 노동이나 격한 운동을 접해본 적이 없어서 근육이 단단하지 않다. 분명 연하고 부드러워 씹는 맛이 일품일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군살 없이 마른 체형이라 고기 생산량이 적어 보였다. 사실 맛이니 식감이니 생산량이니 그런 건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정말로 중요한 건 희소성이다. 희귀한 재료는 맛이 없어도 박수를 받는다. 그리고 지금 패티 맥 앞에 선 침입자보다  희귀한 재료는 앞으로 볼 기회가 없을 것이다.

    "흐흐흐... 설마 백화 상회의 회장 딸로 만든 햄버거를 먹을 기회가  줄이야."

    유리아 릴리스는 패티 맥의 모욕적인 협박에 반응하지 않았다. 그저 공허한 눈으로 주변을 휙 둘러볼 뿐이었다. 유리아는 천장 구석에 총 4개의 보안 카메라가 있는 것을 확인했다.

    파직! 빠직! 쾅!! 치지지직.... 보안 카메라들이 일제히 스파크를 튀기며 망가졌다. 보안 카메라를 고장낸 유리아는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보라색 약물이 은은한 빛을 발하는 주사기였다. 유리아는 자신의 희고 가느다란 팔뚝에 주삿바늘을 꽂았다.

    "이런. 다소 실망스러운 광경이군."

    패티 맥이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는 유리아가 무얼 주사했는지에 대해서는 조금도 관심 없었다. 그저 귀한 고기에 화학적인 첨가물이 더해진 것이 아쉬울 뿐이었다.

    "..... 후우..."

    유리아는 뎀피돈을 남김없이 주사하고서는 숨을 최대한 차분하게 고르며 자신의 혈관이 불순해지는 감각을 애써 잊으려 했다. 패티 맥이 유리아에게 말했다.

    "이봐. 요즘 시대에는 하다못해 돼지도 항생제 많이 먹이면 고깃값이 떨어진다고. 이제 곧 입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그런 걸 맞는다니. 먹는 사람 배려를 좀 해줘야지."

    유리아가 대답 대신 말없이 손짓하자 엄청난 악성 이명이 주변을 휩쓸었다. 패티 맥이 지끈거리는 두통 때문에 인상을 찌푸렸다.

    "으윽! 시덥잖은 장난질이나 하고!"

    패티 맥은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로 웅웅거리는 귀울림 때문에 순간 휘청거렸지만 어떻게든 균형을 잡았다. 일반인이였다면 머리를 감싸쥐고 까무러쳤을 것이다. 그는 아직도 주저앉아 있는 자신의 미트볼 기계를 걷어차며 버럭 소리 질렀다.

    "일어나 이 깡통아!!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거야?!!"

    쾅!! 덜커덩! 위이이이잉!!! 이번에는 물리적 충격요법이 효과가 있었다. 미트볼 기계가 덜커덩 거리며 부품 맞물리는 소리를 내면서 몸체를 일으켰다. 그와 동시에 기체 내부에 있는 톱날들이 맹렬하게 회전하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두 팔에 달린 전기톱에서도 쩌렁쩌렁한 전동음이 울렸다. 여기에 이명까지 섞이자 귀가 멀어버릴 것만 같은 소음이 공간을 지배했다.

    "먹어치워라!"

    패티 맥의 미트볼 기계가 유리아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유리아가 손짓하자 그녀의 손에 노이즈로 이루어진 창이 생겨났다. 유리아는 용맹하게 달려나가면서 창을 던졌다.

    파직!! 유감스럽게도 유리아의 투창은 기계에게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했다. 이명을 무기로 삼는 유리아의 마법은 뇌, 정신, 회랑을 파고들어 공격한다. 유리아는 미트볼 기계가 모종의 아티팩트로 개조를  물건이기 때문에 회랑을 고장내면 작동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미트볼 기계는 동전만한 크기로 압축하고  압축을 해제하는 과정에서만 아티팩트의 도움을 빌릴  기계 자체에는 회랑이 없었다. 즉 뇌도, 정신도, 회랑도 없기 때문에 유리아의 마법에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는다.

    휘리릭!! 패티 맥의 미트볼 기계에서 사슬이 뻗어나와 유리아의 두 손목을 묶었다. 목표가 잡히자 미트볼 기계는 엄청난 힘으로 사슬을 당겨서 유리아를 끌고 왔다. 손목을 끌어당기는 힘이 워낙에 강해서 유리아 몸이 공중에 떠버렸다. 미처 대응하기도 전에 쩍 벌어진 기계의 입 안쪽으로 빨려들어가 버렸다.

    기계 안쪽은 맹렬하게 회전하는 톱날들로 가득했다. 기계가 입을 닫자 회전톱날로 가득한 바닥과 천장이 포개지며 사이에 낀 유리아의 몸을 짓뭉개버렸다.

    카가가가각!! 카가가가각! 비명을 지를 틈도 없이 순식간에 갈려나갔다. 회전톱날이 무언가를 부수는 소리와, 뼈가 갈리는 소리가 마구잡이로 뒤섞이며 끔찍한 효과음을 냈다. 패티 맥은 자신의 기계가 연주하는 그로테스크한 음악에 환호를 보냈다.

    "크하하! 그래! 이거지 이거야!!"

    기계의 입에서 질질 뿜어져 나오는 핏물을 보자 참을 수가 없었다. 역시 잘난척 하는 귀족이나, 거드름 피우는 부자나, 가진 거 없는 거렁뱅이나 갈아버리면 다 똑같은 고기들이다. 선한 사람이나, 정의로운 사람이나, 악한 사람이나 어차피 맛으로는 구별할 수 없다. 사람이란 다 그런 것이다. 다 똑같은 고기로 태어난 주제에 위아래를 재고 거들먹거리는 건 정말로 멍청한 짓이다. 권력도 명예도 다 쓸모 없다. 세상은 먹는 자와 먹히는 고기로 나뉠 뿐이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대체 언제 그 사실을 깨닫는 걸까? 이번에도 먹는 자의 위치에 앉은 패티 맥은 이미 갈려버린 유리아에게 들으라는 듯이 소리쳤다.

    "멍청한 년!! 하하하! 암만 잘난 얼굴로 거들먹거려봤자 너도 그냥 고기일 뿐이야!"

    그러나 즐거움은 오래 가지 않았다. 너무 간단하게 승부가 끝나서 그런 걸까? 무려 백화 상회의 후계자를 도축했는데도 생각했던 만큼의 짜릿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씨... 뭔가 있는 것처럼 굴더만 이렇게 싱겁게 뒤져버리다니."

    마법사라고 해도 역시 애송이에 불과하다. 겁도 없이 이리들의 영역에 제 발로 기어들어온 대가라면 그나마 빠르게 죽은 걸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할 것이다.

    "일단 담배부터 한대 피우고 나서 이 년의 고기를 가공해야지. 흐흐. 존나게 비싸게 팔리겠지?"

    패티 맥이 주머니를 뒤적거리며 담배를 찾으려 했다. 파직!! 갑자기 무언가가 망가지는 소리가 났다. 싸움이 끝나서 긴장을 풀었던 패티 맥은 흠칫 놀라 소리가  쪽을 보았다. 천장 구석의 보안 카메라가 고장나서 스파크를 튀기고 있었다.

    "뭐... 뭐지? 저건 진작에 고장나지 않았었나?"

    빠직! 쾅! 치지지직... 나머지 세 개의 보안 카메라들도 연달아 고장났다. 패티 맥이 앞을 보고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유리아 릴리스가 팔에 주사기를 꽂고 서있었기 때문이다.

    패티 맥은 어안이 벙벙해져서 순간 자신이 헛것을 본 줄 알았다. 퍼뜩 정신이 돌아온 패티 맥이 미트볼 기계를 살펴봤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핏물과 고기 찌꺼기로 가득했던 기계가 말끔한 상태였다. 마치 아무것도 먹지 못한 것처럼.

    "너, 너!! 대체 이게 무슨 장난질이지!!"

    패티 맥이 유리아에게 버럭 소리쳤다. 유리아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주삿바늘을 뽑았다.

    "장난은 제가 아니라 당신이 치는 거겠죠. 사람의 목숨을 가지고 장난을 치고 있지 않습니까?"

    "넌 분명히 죽었잖아!!"

    "맞습니다. 환희할 줄도 모르고, 향유할 은총도 없으니  아주 오래 전부터 이미 살아있음과는 거리를 두고 있었죠. 처음 바늘을 팔에 꽂았던  순간부터."

    "제기랄!! 건방진 마법사년이!!"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건지 도저히 모르겠지만 한 가지 오산은 번복해야 했다. 마법사는 아무리 어려도 마법사다. 결코 쉽게 죽일 수 없을 것이다.

    팟! 불규칙하게 점멸하던 유리아의 신형이 순식간에 패티 맥의 눈앞으로 와있었다. 유리아는 한손으로 패티 맥의 멱살을 붙잡고 다른 한손으로 노이즈의 창을 만들었다. 어차피 쓰러뜨려야  건 기계가 아니라 조종사니까 미트볼 기계를 무시하고 빠르게 패티 맥만 치고 빠지려는 작전이었다.

    미트볼 기계가 유리아에게 전기톱을 휘둘렀다. 서걱! 정육점에서나 들릴 법한 소리가 나더니 노이즈의 창이 사라져버렸다. 유리아가 자신의 손을 살펴보니 창을 들고 있던 손이 잘려나가 없었고, 손목에 남은 예리한 절단면에서 피가 철철 흐르고 있었다.

    "흐음...."

    신체의 일부가 절단되어 떨어져 나갔는데도 유리아가 보인 반응은 그게 전부였다. 절상 부위에서 대량의 출혈이 일어나고 있는데도 '쳇 안 통하네' 하는 심심한 반응이었다.

    푸식!!! 기기기기기긱!!  거대한 전기톱이 유리아의 흉부를 관통했다. 유리아의 가슴팍을 뚫고나온 전기톱이 전동음을 일으킬 때마다 피와 살점이 솟구쳐 올랐다. 가까이에 있던 패티 맥이 피를 흠뻑 뒤집어 썼다. 철분 비린내가 코를 찌르는 데다가 끔찍하게 찢어진 시체까지 눈에 보이게 남아있으니 이번에는 확실했다.

    확실하다고 생각했다.

    파지직! 빠직! 쾅! 치지지지.... 천장 구석의 보안 카메라들이 또 고장 났다. 보안 카메라가 망가지는 소리를 듣는 순간 패티 맥의 신경이 날카롭게 곤두섰다. 그는 자신의 몸을 살펴봤다. 분명 조금 전까지만 해도 피를 잔뜩 뒤집어 써서 비린내가 진동을 했는데, 대체 어떻게  건지 혈흔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다. 발 밑에 처참한 꼴로 쓰러져 있던 시체도 사라지고 없었다.

    패티 맥이 긴장으로 뻣뻣해진 목을 움직여 앞을 보았다. 상처 하나 없이 멀쩡한 유리아가 팔에서 주사를 뽑고 있었다.

    "이 시발!! 대체  수작질을 부리는 거야?!!!"

    "어째서 제게 언성을 높이시죠? 수작질은 제가 부리는  아닙니다. 제 삶을 샘플로 삼고, 제 영혼을 몇 번이고 만지작거린, 그러나 정작 저는 얼굴도 모르는 어느 학자들이, 마법사들이 이런 수작질을 부리는 거죠."

    패티 맥은 어질어질해진 나머지 머리가 핑 돌았다.

    팟!! 유리아의 몸이  한번 점멸해서 패티  바로 앞까지 순간이동했다. 유리아가 패티 맥의 어깨를 손으로 꽉 잡자 팟하는 소리와 함께 두 사람이 미트볼 기계에게서 멀찍이 떨어진 곳으로 순간이동 했다. 미트볼 기계의 공격이 닿지 않는 곳으로 끌고 와서 여유롭게 끝장내 버리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패티 맥에게 기계 외의 공격 수단이 없을 것이라는 건 오산이었다.

    푹찍!! 날카로운 쇠붙이가 유리아의 복벽을 뚫고 들어왔다. 깊은 곳까지 파고든 칼날이 중요한 혈관과 신경들을 끊고 겉잡을 수 없는 출혈을 일으켰다. 상처가 워낙 깊어서 쇼크 상태에 빠지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흐음... 이걸 고려 못하다니. 저도 참."

    "이... 시발...."

    분명히 손으로는 살인의 감촉을 느꼈는데 머리로는 목표를 달성했다는 걸 느낄 수 없었다. 잠깐이라도 한눈 팔았다가는 또 시체가 사라져 버리더니 태연한 얼굴로 팔에 주사를 꽂으며 나타날 것만 같았다.

    패티 맥은 쓰러진 유리아가 쏟아내는 피웅덩이에 자신의 손가락을 찍어보았다. 따뜻한 액체가 손끝에 엉겨붙어왔다. 이 온기는 분명 실존하는 감각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잠시라도 눈을 떼면  모든 게 사라질까 겁나서 손에 묻은 피를 노려봤다.

    치칫! 잠시 시야에 노이즈가 꼈다. 1초도  되는 찰나였을 것이다. 하지만 시야가 돌아왔을 때 패티 맥의 손은 피  방울 묻지 않은 말끔한 상태였다.

    "허억... 허억..."

    패티 맥의 호흡이 거칠어지고 손은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처음에는 당황했고, 두 번째에는 의문이 들었지만 지금은 두려움이 느껴지고 있었다. 파직! 빠직! 쾅! 치지지직.... 보안 카메라가 고장을 일으키는 소리가 났을 때 패티 맥은 거의 숨이 멎기 일보직전이었다.

    "뭐냐고 이게.... 시발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거냐고?!!"

    패티 맥이 절규했지만 유리아는 눈 하나 깜박  하고 자신의 팔에서 주삿바늘을 뽑았다.

    "너....  마법사가 아니야. 넌 '마녀'야!! 마녀라고!! 내 말이 틀렸어? 대답해, 이 마녀야!!"

    "마녀? 마녀라... 글쎄요. 혹시 모르죠. 그들이 완성하고 싶어하는 게 당신 말대로 마녀일지도. 하지만 이상합니다. 제국의 멸망을 지목하는 예언 속 존재를 어째서 제국이 자기 손으로 만들까요?"

    유리아가 패티 맥에게 다가가자 그는 자기도 모르게 한 발짝 뒷걸음질 쳤다. 살육과 식인에 미친 이리가 어린 고등학생 소녀에게 공포심을 느낀 실로 부조화스러운 광경이었다.

    "한 가지는 확실합니다. 이리보다  한 것들도 아주 많아요. 놀라기도 지쳤습니다. 사람을 갈아서 먹는 것 쯤이야 놀랍지도 않을 정도로요. 아, 그래도 다진 고기가 되는 건 기분이  별로더군요."

    "으아아아아아!!"

    패티 맥이 머리를 쥐어뜯으며 고함을 질렀다.

    "당최 무슨 수작을 부리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디 계속 해보라고!! 몇 번이고 너를 죽여버릴 테니까!!"

     뒤로 패티 맥은 유리아를  번이고 죽였다. 거대한 전기톱으로 참수하기도 하고, 배를 갈라 창자들을 끄집어내기도 하고, 상반신과 하반신을 나눠 놓기도 하는 등 온갖 방법으로 살해했다. 하지만 사인이 어떻게 되건 무참하게 죽었던 유리아는 보안 카메라가 망가지는 소리와 함께 팔에 주사를 꽂으며 다시 나타났다. 그것도 주사를 맞은 자국을 제외하면 흠집 하나 없이 멀쩡한 모습으로.

    패티 맥은 인간성과 생명에 대해 비틀린 가치관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살인에 무감각했다. 오히려 살인을 즐기는 편이었다. 하지만  사람을 셀 수도 없이 여러번 죽이는 것은 당연히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아니, 애초에 죽였다고 할 수 있는지도 의문이었다. 이토록 잔인한 수법을 총동원해서 갈기갈기 찢어 버리고도 죽였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끝없이 반복되는 기시감 속을 허우적 거리면서 보안 카메라가 망가지는 소리를 수십 번이고 들은 그는 점차 미쳐가기 시작했다. 애초에 식인을 즐긴다는 시점에서 이미 미친 사람이긴 했지만, 그나마 남아있던 정신줄 마저 끊어져 버리고 있었다.

    "그만해!! 그만하라고!!  이미 널 수백 번도 넘게 죽였어!! 넌 죽는  그렇게 즐겁냐?!!"

    "벌써 그렇게 정신 나갈 거 같다는 얼굴을 하고 계시다니. 저는  짓을  수도 없이 많이 해왔습니다. 당신은 당신의 혼란만 겪겠지만, 제 입장은 어떻겠습니까? 제가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혼란속을, 몇 번이나 거듭 파헤쳐야 했을 거라 생각하십니까?"

    푸슉! 패티 맥이 힘껏 찌른 흉기가 유리아의 복부를 관통했다. 등뒤로 흉기의 날끝이 튀어나왔다. 유리아는 입에서 피가 주르륵 새는데도 무표정한 얼굴로 턱을 매만지며 고개를 갸웃거리고 말했다.

    "그런데 전 왜 아까부터 이런 얘기를 당신한테 늘어놓고 있죠? 뭐 됐습니다. 적어도 조금은 속이 후련해졌을지도."

    풀썩! 옷이 피로 흥건하게 물든 유리아가 풀썩 쓰러졌다. 그리고 저만치 앞에 서있는 유리아가 팔에서 주사바늘을 뽑고 패티 맥에게 다가왔다. 그녀가 방금 쓰러졌던 자리에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실례했습니다. 저희가 어디까지 얘기 했었죠?"

    "으아아아악!!"

    패티 맥이 유리아의 머리를 잡고 테이블에 처박았다. 그리고는 한손으로 단단히 고정시킨 뒤 다른 손으로 쇠망치를 들어올렸다. 빡!! 빡!! 빡!! 패티 맥은 유리아의 머리에 대고 망치를 마구 휘둘렀다. 뼈가 깨지는 소리와 함께 양손이 피로 흥건히 젖었지만 공포를 느끼는 건 패티 맥이었다. 망치를 휘두르는 그의 모습은 더 이상 살인을 하는 모습이 아니었다. 그저 이 악몽에서 깨어나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하는 모습에 더 가까웠다.

    쾅!! 패티 맥의 망치가 텅 빈 테이블을 찍었다. 유리아의 머리가 사라져 있었다. 망치를  패티 맥의 손이 안쓰러울 정도로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파직! 빠직! 쾅! 치지지직.... 보안 카메라가 망가지는 소리를 들은 순간 그는 손에  망치를 힘없이 떨어뜨렸다.

    유리아가 팔에 꽂은 주삿바늘을 뽑았다. 유리아는 사색이 된 패티 맥을 보며 냉소적인 어조로 말했다.

    "안색이 안 좋으시군요."

    "시발!! 시발!! 제기랄!! 빌어먹을!!!!"

    패티 맥의 정신이 완전히 무너졌다. 이제 그의 목표는 유리아를 죽이는 것이 아니었다. 여기서 빠져나가는 것이었다. 저 마녀와 이 이상 엮였다가는 무간지옥에 영원히 갇힐 게 분명했다.

    대체 무슨 마법을 쓰는 걸까? 부활? 부활이라고? 터무니 없는 소리. 죽은 자를 살리는 마법 따위 존재할 리가 없다. 듣자하니 예언에 나오는 리치가 부활의 힘을 가지고 있어서 자신을 섬기는 마녀에게 죽어도 다시 살아나는 권능을 부여했다고 하던데.... 개소리! 예언 따위 음모론 좋아하는 겁쟁이들이 써낸 민담에 불과하다!

    그럼 시간 조작? 그럴 리도 없다. 시간 마법은 현재의 인류가 감당할 수 있는 마법이 아니다. 이름의 첫글자만 대도 누구나 바로 아는 대마법사들도 시간의 영역에 손도 대지 못했는데, 고작 꼬맹이가 그런 마법을 익혔을 리가 없다.

    그러면 대체 뭐란 말이지? 과도한 의문은 혼란으로 자라났고, 혼란이 오래 이어지자 공황이 찾아왔다. 공황에 빠진 그는 아까전부터 귀 주변에서 이명이 줄기차게 울리고 있다는  완전히 잊었다.

    이명. 마법사들이 이명을 온전히 극복하지 못하는 건 이명의 주요 작용 부위인 뇌의 비밀을 밝히지 못했기 때문이다. 뇌는 현대의 기술과 마법을 총동원해도 그 구조와 원리를 다 이해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하고 기교하고 또 신비로 가득하다. 뇌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황에서 대책 없이 강화를 거듭해온 뎀피돈은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부작용을 일으켰다.

    하지만 유리아는 이 부작용에 대한 걸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철저히 숨겼다. 학원이 유리아에게 숨기는  많은 것처럼, 유리아 역시 학원에게 숨기는 것이 많았다. 그렇게 비밀스럽게 장기간 축적한 부작용은 독작용이 되었고, 급기야  독작용마저 자신의 능력으로 활용하는 지경에 이른 결과 유리아는 이런 것도 가능해졌다.

    "뭐... 뭐야?!!"

    유리아의 몸이 공중으로 떠올랐다. 천장 바로 밑까지 높이 부유한 유리아가 눈을 지그시 감고 손짓했다. 그러자 바닥에서 굵고 길다란 살덩이가 여러 줄기 솟아났다. 엄청난 크기의  같기도 했고, 가죽이 벗겨진 용 같기도 했지만 머리가 달려있어야 할 곳에는 큼지막한 손이 달려있었다. 그 거대하고 긴 팔들은 소름끼치는 몸놀림으로 꿈틀거리며 패티 맥을 에워쌌다.

    자세히 보니 그 팔들은 흐물거리는 살점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군데군데 양상추 쪼가리와 짓무른 토마토와 변색된 소스도 보였다. 패티 맥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긴 팔들의 정체는 다름 아닌 수제 패티였다.

    "돌려줘.... 돌려줘..."

    "돌려달라고...."

    "내 몸을 돌려줘..."

    긴 팔들은 셀 수도 없이 많은 희생양들의 원망이 섞인 목소리로 합창을 내지르기 시작했다.

    "저, 저리 꺼져!! 제기랄 이게 다 뭐야?!!"

    긴 팔들이 패티 맥을 향해 손아귀를 뻗었다. 미트볼 기계가 커다란 전기톱으로 팔들을 잘랐다. 하지만 미트볼 기계의 전기톱은 양팔에 달린  개 뿐이였기에 미처 자르지 못한 긴 팔이 패티 맥을 움켜쥐었다.

    "으윽?!!"

    "돌려줘.... 돌려주지 않는다면 다시 가져가겠어!!!"

    "놔!! 이거 놓으라고!!"

    패티 맥이 정육용 칼을 꺼내서 자신을 움켜쥔 손목을 찔렀다. 푹하고 칼날이 파고들자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소스가 상처 부위에서 새어나왔다.

    "아파... 아파...  아프다고..."

    패티 맥이 난도질하자 긴 팔이 그를 놓아주며 흐느꼈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팔들이 그를 에워싸고 있었다. 칼에 찔린 팔 하나가 아프다며 흐느끼자 다른 팔들도 일제히 울음을 터뜨렸다. 수백 명의 사람들이 동시에 내는 곡성에 머리가 어지러워졌다.

    덜커덩! 프치치치치.... 미트볼 기계가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이런 절체절명의 순간에 기계가 고장나자 패티 맥은 황급히 기계를 걷어차며 신경질을 부렸다.

    "일어나!!!  하필 이럴 때 퍼지고 지랄이야?!! 빨리 안 일어나?!!"

    패티 맥이 필사적으로 도살기계를 걷어찼다. 그러자

    "부웨에에엑!!!"

    미트볼 기계가 입을 쩍 벌리더니 무언가를 토했다. 토사물은 갈려나간 살점들이었다. 살점들은 아직도 살아서 꿈틀거리고 있었다.

    "붸에에엑!! 구웨에에엑!!"

    미트볼 기계는 기분 나쁘게 리얼한 소리를 내면서 계속 피와 살을 토했다.

    "이게 대체 왜 이러는 거야?!!"

    패티 맥은 미트볼 기계의  안을 들여다봤다. 하지만 기계의 몸체 안에 있는 그것을  순간 그는 곧바로 기계안을 들여다 본 것을 후회할 수 밖에 없었다.

    "으아아악!!"

    기계의 몸체 안에 눈알이 달린 심장이 뛰고 있었다. 꿈틀!! 심장의 눈과 패티 맥의 눈이 딱 마주쳤다. 패티 맥을 발견한 심장은 박동이 마구 빨라지더니 부풀어오르기 시작했다.

    꾸룩꾸룩!! 꽈지직!! 카직!!! 으드드드득!!! 삽시간에 덩치가 불어난  살덩이는 결국 미트볼 기계를 뚫고 나왔다. 그리고는 온몸 여기저기에 난 이빨로 미트볼 기계의 파편을 씹어먹었다. 기계를 양분 삼은 살덩이는 더 거대해져서 천장까지 닿았다. 하지만 여전히 배가 고픈 모양이였다.

    "흐으.... 으으..."

    수천 개는 넘을 것 같은 눈알들의 초점이 패티 맥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괴물은 먹을 것을 발견했다.

    휘릭 착!! 긴 팔 하나가 패티 맥을 휘감았다. 칼을 쓰지도 못하게 몸통을  조여서 묶었다. 패티 맥이 비명을 질렀다.

    "놔!!!!!!"

    먹는 자의 위치에 있던 패티 맥이 지금까지 자신이 먹어왔던 고기들에게 잡아먹힐 위기에 처했다. 철저한 역지사지의 순간이었다.

    "으아아아아악!!!"

    패티 맥을 휘감았던  팔이 거대한 괴물의 입 안으로 그를 집어던져 버렸다. 쩍 벌어진 입안에는 또 입이 있었고,  그 안에 입이 있었다. 프랙탈처럼 반복되며 벌어지는 입 속으로 끝없이 빨려들어갔다.

    쿵!! 패티 맥이 어딘가로 떨어졌다. 살점이라고 하기에는 질감이 단단했다. 질끈 감았던 눈을 떠보니 그냥 바닥이었다.

    "헉... 허억... 헉..."

    터질 것 같은 심장은 진정할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주변을 살펴보니 수제 패티로 만들어진 긴 팔들은 온데간데 없었고, 괴물로 변했던 자신의 미트볼 기계도 멀쩡했다. 모든  멀쩡한 상태 그대로였다. 패티 맥의 정신을 제외한다면.

    파직! 빠직! 쾅!! 치지지직....

    "으아아악!!"

    보안 카메라가 망가지는 소리만 들어도 비명이 저절로 나왔다. 쓰러진채로 부들부들 떨면서 고개를 위로 올려보니 유리아가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넌 괴물이야....!! 넌 끔찍한 괴물이라고...!!!"

    패티 맥은 유리아에게 욕설을 내뱉을  더 이상 공격할 힘이 남아있지 않았다. 두통과 현기증과 이명으로 뇌가 잔뜩 쩔어버린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그대로 기절했다.

    '넌 괴물이야....!! 넌 끔찍한 괴물이라고...!!!'

    유리아의 귓가에 방금 전 패티 맥이 소리쳤던 말이 맴돌았다. 잔인한 수법으로 많은 사람들을 죽여온 이리조차 괴물이라고 부를 정도라니. 그러나 반박하기에는 자기가 생각해도 자신이 정말 괴물 같았다. 빈 주사기를 내려다 본 유리아의 머릿속이 또 부정적인 단어와 자기혐오로 가득차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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