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85화 〉3-3. 행동 개시 (9) (85/88)



〈 85화 〉3-3. 행동 개시 (9)

갈퀴날들 굴지의 추적자인 울프 론은 한번 정한 사냥감을 놓치는 일이 없다. 울프 론은 목표의 냄새가 남긴 자취를 따라 빠르게 달렸다.

향수 냄새,마도구를 덧댄 장신구의 냄새, 값비싼 향료와 청결제로 관리하는 머릿결의 냄새, 고가의 보습제 크림을 바른 피부 냄새. 모든 게 울프 론이 싫어하는 냄새다.

목표의 냄새가 점점 짙어졌다. 거의 다 따라잡았다.

쾅! 앞길을 가로막고 있는 엄폐물들을 걷어차 무너뜨리자 테이블 홀이 나타났다. 울프 론의 목표인 프릴 루에리아가 테이블에 다리를 꼬고 앉아있었다. 은빛으로 빛나는 순백의 머릿결에, 노동을 접해본 적 없는 하얗고 매끄러운 피부, 비싼 원단으로 만든 고급스러운 옷, 은은한 향수 냄새, 말로는 표현 못할 힘이 느껴지는 눈동자. 프릴의 인상 하나하나가 울프 론의 성질을 돋구게 만들었다.

"귀족....!!"

"무엄하군요. 당신들이 이리라고 불리는 이유는 목줄로 묶을 수 없는 개라서 그런 걸까요?"

스륵!! 울프 론의 장갑에서 날카로운 갈퀴날이 솟아났다. 울프 론은 금방이라도 달려들어 물어뜯을 기세로 프릴을 노려봤다.

"귀족! 죽인다! 찢어서 죽인다!"

살벌한 협박 앞에서도 프릴은 표정의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훈련  받은 개가  짖어대는 걸 보는 듯한 여유로운 자세로 앉아있을 뿐이었다.

"하층민이라면 누구나 귀족에 대한 악감정 하나씩 가지고 있기 마련이지만, 당신은 정도를 지나친  같네요."

"하층민 아니다! 난 자유롭다! 너의 밑에 깔려있지 않다!"

"당연히 그렇겠죠. 세금도 안 내고, 법규도 준수하지 않고, 정당한 노동으로 돈을 벌지도 않으니까요. 하지만 그거 아세요? 당신은 자유로운  아니예요. 그저 무책임한 것일 뿐이에요."

"귀족도 세금 안 낸다, 귀족도  무시한다, 귀족도  안하고서 가장 많은 돈을 쓸어간다. 귀족이 가장 무책임한 해충들이다! 귀족! 죽인다!"

"교육 수준이 낮아보이는 말투를 쓰는 것 치고는 제법 논리적으로 말할 줄 아시네요."

무관심한 눈빛으로 허공을 보던 프릴의 시선이 그제야 울프 론을 응시했다. 프릴과 눈을 마주친 울프 론은 한층 더 위협적인 표정을 지었다. 그 모습은 흡사 그르릉 소리를 내는 늑대를 연상시켰다.

"당신의 지적은 일리가 있어요. 제 눈으로 봐도 이 세상은 부조리로 가득해요. 그리고 당신의 눈에는 저와 같은 귀족들이 그 모든 부조리의 핵심이자 사회악의 중심축으로 보일 테죠. 하지만 설령 그게 사실이라 하더라도 당신의 행동을 정당화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살인, 인육 밀거래, 탈세, 반윤리적 연구 활동 지원. 이런 게 계급 사회의 부조리에 대한 저항이라고 인정받을 수 있을까요? 진정 변화를 원한다면 마땅히 응원 받을 수 있는 방식을 택했어야죠."

"넌 착각하고 있다."

"착각?"

"부조리니 사회악이니 변화니 난 그런 거 관심 없다."

울프 론이 양손의 갈퀴날을 맞물리게 하더니 힘껏 긁었다. 금속이 강한 마찰 때문에 스파크를 튀겼다. 울프 론은 갈퀴날을 치켜들며 말했다.

"난 귀족들의 잘난체하는 낯짝을 찢어버리고 싶을 뿐이다."

"하. 그런 것이였나요? 괜히 길게 말해서 제 입만 아팠네요."

"널 죽여버린다!"

"제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시나요?"

"알 필요 없다! 어차피 갈기갈기 찢어놓으면 그게 하층민 시체인지 귀족 시체인지 구별할 수 없다!"

"흐음..."

"널 죽이면 제국이 들썩일 것이다. 치안관이 나설 것이다. 수사관들이 여기저기 널릴 것이다. 조직도 그냥 넘어갈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다 니가 죽고  뒤의 일이다. 지금의 너를 내 갈퀴날로부터 구해줄 수는 없다."

"당신이야말로 착각하고 있어요."

"착각?"

"전 그런 의미로 물어본 게 아니에요."

프릴은 꼬고 있던 다리를 풀고 의자에서 일어났다. 프릴의 두 눈은 칼 앞에 선 어린 소녀의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흔들리지 않는 결의로 차있었다.

"전 하찮은 이유로 휘둘러지는 폭력을 제일 싫어하는 사람이에요."

프릴이 재생성 양피지 공책을 들어올렸다. 촤라락!! 프릴이 공책을 펼치자 미리 끼워뒀던 낱장들이 공중으로 흩어졌다.

진정한 프로는 누구나 진심으로 상대한다. 최대한 천천히 고통스럽게 죽인다느니, 힘의 차이를 철저히 통감시키게 한다느니 그런 명목으로 싸움을 길게 끌지 않는다. 울프 론은 프로였다. 그렇기에 프릴이 영창을 외울 틈을 주지 않고 빠르게 달려들어서는 그녀의 몸에 갈퀴날을 휘둘렀다.

푸욱! 프릴의 여린 살결에 깊고도 선명한 칼집이 생겼다. 울프 론이 엄청난 속도로 양손의 갈퀴날을 휘둘렀다. 마구 휘둘러 대는 것처럼 보여도 하나 하나 깊은 살의가 새겨진 공격이었다. 프릴의 연약한 피부에게는 너무 가혹한 공격이었다. 떨어져나간 살점 조각들이 무분별하게 튀어올랐다.

푹찍!! 울프 론이 갈퀴날을 세워서 프릴의 복부를 찔렀다. 부드러운 복부를 뚫고 들어간 울프 론의 손이 프릴의 등뒤로 빠져나왔다. 손에 감겨오는 감촉을 음미한 울프 론은 자신의 쾌감을 배가시키기 위해 프릴의 얼굴을 보았다. 자신의 가학에 만족감을 보태는 데에 가장 좋은 것은 상대방의 고통을 확인하는 것이다.

그러나 프릴은 울프 론이 기대하고 있던 표정을 하고 있지 않았다. 고통으로 얼룩져 있지도 않았고, 눈물 콧물 침을 질질 쏟고 있지도 않았고, 죽음의 공포에 압도당해 있지도 않았다.  그대로 무표정을 유지한  울프 론을 쏘아보고 있었다.

파츠츳! 프릴의 몸에서 빛이 나기 시작했다. 옅은 빛에 휩싸인 프릴의 몸이 빠르게 사그라져 버렸다. 프릴이 사라지자 그곳에 남은 건 칼집이 선명하게 나있는 양피지 공책 낱장이었다.

마법으로 만든 허깨비를 신나게 햘퀴고 있었다니. 농락당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열받은 울프 론이 주변을 둘러봤다. 조금 전에 프릴이 공중으로 흩어놨던 양피지 낱장들이 모두 프릴의 분신으로 변했다. 열댓 명은 넘는 프릴들이 울프 론을 에워싸고 있었다. 울프 론은 감각을 최대한 끌어올려 본체를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프릴 역시 프로기 때문에 상대에게 틈을 허락해주지 않았다. 치지직! 수많은 프릴들이 일제히 번개사슬을 들어올려서 울프 론을 향해 내리쳤다. 수십 줄에 달하는 번개사슬이 울프 론의 온몸을 속박했다. 전류에 집어삼켜진 울프 론이 비명을 질렀다.

"끄으아아악!!"

온몸에 전기가 흐르는 동안에도 울프 론은 정신을 잃지 않았다. 사슬을 끊어내려 했지만 사지와 몸통을 단단하게 결박당한 상태라 아무리 발버둥쳐도 소용 없었다. 울프 론이 생각보다 잘 버티자 프릴은 번개사슬의 출력을 올렸다. 전기가 점점 더 강해지자 위기를 느낀 울프 론은 자신의 심장 안쪽에 잠궈놓았던 무언가를 풀었다.

야수 해방 1단계. 울프 론의 머리에서 큼직한 짐승귀가 삐져나왔고, 털이 풍성하게 난 꼬리가 생겨났다.  기이한 변화에 프릴이 눈을 가늘게 떴다.

"아우우우우우우!!!"

울프 론이 고개를 뒤로 젖히고 늑대의 울음소리를 냈다. 우렁차게 울리는 하울링에는 신비한 힘이 담겨져 있었다. 하울링 소리를 들은 프릴의 분신들이 불규칙적으로 점멸하더니 곧 사라져버렸다. 분신들이 사라지고 본체 프릴 한 명만 남았다. 한쪽 손이 자유로워진 울프 론은 갈퀴날을 세워 하나 남은 번개사슬을 끊어버렸다.

"그르르르..."

울프 론의 목에서 짐승의 나음 소리가 났다. 송곳니가 날카롭게 삐져나와 있었고, 큼직한 귀는 프릴의 기척을 놓치지 않기 위해 쫑긋하고 곤두서 있었다. 울프 론이 장갑을 벗어던졌다. 프릴에게 과시하듯이 손을 들어올리자 손톱이 빠르게 자라나기 시작했다. 엄청난 길이로 뻗은 늑대 손톱은 장갑에 달려있던 갈퀴날보다 훨씬 더 날카로워 보였다. 프릴을 노려보는 눈동자 역시 역안으로 변해있었다. 시력도 동체시력도 인간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증가했을 것이다.

"수인화.... 위험한 수술을 받았군요.  힘을 얻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인체실험을 자행했나요? 아, 대답하지 마세요. 듣고 싶지 않으니까요."

"크르르르르...."

1단계 야수 해방을 마친 울프 론은 근력도, 민첩성도, 동물적 감각도 모두 강화되었다. 강화된 것은 그뿐만이 아니였다. 공격성과 잔인함도 훨씬 강화되었다.

"크아악!!"

분신들을 제거하고 본체의 위치를 확인한 울프 론이 아까보다 맹렬한 속도로 프릴에게 달려들었다. 프릴이 손짓하자 원소 마법으로 만든 불화살이 울프 론을 향해 발사되었다. 울프 론은 손톱을 휘둘러 불꽃의 화살을 갈라버렸다. 토막난 불꽃이 힘을 잃고 사그라들었다. 울프 론은 맹렬한 질주를 멈추지 않았다. 멀찍이 떨어져있던 거리를 순식간에 좁히고는  손톱이 닿는 리치까지 들어왔다. 정통파 마법사들은 멀리서 깔짝거리는 게 전부라서 일단 가까이에 달라붙기만 하면 대응하지 못한다. 근접 전투능력이 없는 마법사들을 가장 잘 사냥하는 이리가 바로 울프 론이다. 하지만 울프 론은 두 가지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하나는 프릴을 화나게 했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앞만 보고 달리는 사람은 발밑을 잘 살피지 못한다는 것이다.

"!!!"

발밑에 널브러져 있던 양피지들은 프릴이 흘린  아니었다. 깔아둔 것이었다. 지뢰인 줄도 모르고 신나게 달려든 울프 론이 양피지에서 발생한 폭발에 휘말렸다. 본능적으로 위기를 감지해서 뒤로 뺐기 때문에 큰 피해는 면했다. 방금 공격을 야수 해방 전에 당했더라면 속수무책으로 바베큐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 프릴의 공격은 끝난 게 아니었다. 좀전의 폭발 때문에 솟구친 불꽃들이 프릴의 지휘에 맞춰서 허공을 유영하고 있었다. 프릴이 울프 론을 향해 손짓하자 허공에 떠있던 불꽃들이 화살의 모양으로 변했다.

울프 론이 불꽃 화살을 손톱으로 부수려고 했지만 불꽃 화살들은 처음부터 울프 론을 목표로 삼은 것이 아니었다. 빗나가는 정도가 아니고 아예 멀찍이 떨어진 곳으로 날아간 불꽃 화살들은 동서남북 여기저기 흩어져서 벽과 천장을 직격했다. 쾅! 하는 폭발음과 함께 화살에 맞은 곳에서도 불길이 치솟기 시작했다.

불길은 주변 일대를 닥치는대로 집어삼켰다. 테이블도, 의자도, 집기들도 모조리 집어삼켜 땔감으로 삼아서 덩치를 불려나갔다. 머지않아 불길은 울프 론과 프릴  사람을 둘러쌌다. 그러나 모든 걸 삼킬 것만 같았던 불길은 프릴이 미리 바닥에 깔아둔 양피지 공책 낱장들을 침범하지 못했다. 그 광경을 본 울프 론이 주변을 둘러봤다. 아민어로 주문을 적어놓은 양피지 공책 낱장들이 자신과 프릴을 넓직하게 감싸는 원형으로 깔려 있었다. 울프 론이 들이닥치기 전부터 프릴은 바닥에 이 모든  세팅해둔 것이었다.

맹렬한 불길은 프릴이 깔아둔 결계를 넘지 못하고 주변에 원형의 화염장벽을 만들었다. 흡사 불바다 한가운데에 만든 원형 경기장에서 승자만이 살아남는 경기가 펼쳐지는 것만 같았다.

스스슥. 프릴이 재생성 양피지 공책에 만년필로 주문을 끄적였다. 아민 문자로 주문을 완성한 프릴은 그 페이지를 부욱 뜯어냈다. 프릴은 만년필의 뚜껑을 덮었다. 그리고는 방금 뜯어낸 낱장을 접어 종이학을 만들었다. 프릴이 손바닥 위의 종이학을 놓아주자 종이학이 날갯짓을 하며 높이 날아올랐다. 자유를 얻은 종이학은 기뻐 노래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노랫소리는 지지배배하는 샛소리와는 전혀 다른 소리였다.

끼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 귓청을 찢어버릴 것만 같은 날카로운 고음이 울프 론의 귀를 파고 들었다. 소음 때문에 머리까지 지끈지끈 울렸다. 울프 론이 고통스럽게 몸부림쳤지만 프릴은 소음 아래서도 전혀 괴로운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마치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것처럼.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것처럼? 울프 론이 무언가를 깨닫고 표정을 굳혔다.

세상은 온갖 종류의 소리로 넘쳐나고 있지만 그 모든 소리를 다 들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일반적으로 20,000Hz를 넘어가는 고음은 듣지 못한다. 마법으로 인체를 개조하면  높은 음까지 들을 수 있겠지만 굳이 그렇게 해봤자 유익할 것도, 유쾌한 것도 없으니 그다지 권장하지는 않는다.

반면에 여러 짐승들의 가청범위는 인간을 훨씬 상회하는데, 몇 가지 동물로 예를 들자면 개는 43,000~45,000Hz, 고양이는 64,000Hz까지의 고음을 들을  있다. 야수 해방을 통한 수인화로 동물적인 감각을 끌어올린 울프 론의 청력이라면 그에 필적하는 가청범위를 갖고 있다.

프릴은 그 점을 이용했다. 지금 종이학이 부르는 노랫소리는 프릴이 아무리 귀를 쫑긋 세워도 들리지 않는 소리지만, 울프 론에게는 귀를 막아도 소용 없을 정도로 괴로운 소음이었다.

괴로운 것은 청각 뿐만이 아니었다. 매캐한 연기 냄새가 코를 찌르고 있었다. 프릴은 울프 론을 비웃는 듯 시니컬한 표정을 했다. 그녀는 자신의 손수건을 적셔 코와 입을 가렸지만, 울프 론의 초월적인 후각으로는 그런 응급처치도 소용 없을 것이다. 프릴이 주변에 불을 지른 이유는 이것 때문이었다. 소음으로 청각적 고통을 주고, 연기를 피워 후각적 고통을 준다. 울프 론의 초월적인 감각을 역으로 이용해 약점으로 만든 것이다.

"크아아악!!"

울프 론이 손톱 하나를 바싹 세웠다. 그리고는 자신의 귀를 찔렀다. 푹!!! 손톱으로 살을 찍는 소리가 프릴의 귀까지 들려왔다. 프릴이 처음으로 움찔하는 모습을 보였다.

"크으으으.... 아아아악!!"

울프 론은 반대쪽 귀에도 손톱을 박았다. 순간 귓구멍에서 피가 솟았지만 울프 론은 이를 악물고 귓속에 있는 중요한 것들을 후비고 찢어서 파내버렸다. 울프 론의 양쪽 귀에서 핏줄기가 줄줄 흘렀다. 소음에서 벗어난 울프 론이 한층 더 표독해진 얼굴로 프릴을 노려봤다.

"널.... 반드시... 씹어먹는다!!"

울프 론이 소리치자 역안의 눈동자에서 안광이 발하기 시작했다. 거칠고 두터운 털이 울프 론의 온몸을 뒤덮기 시작했다. 야수 해방 2단계. 짐승귀와 꼬리만 달렸을 뿐인 1단계 때와는 달리 2단계에서는 인간의 모습이 거의 남지 않았다. 덩치가 불어난 몸통을 숙여 4족 보행을 했고, 송곳니와 발톱은  날카롭게 솟아났다.

"크르르르...."

구강 구조도 바뀌어서 인간의 언어를 구사할 수 없었다. 하지만 상관 없었다. 토론을 할 것도 아니니 입은 상대방을 물어뜯을 수 있기만 하면 된다.

"크와아앙!!"

우렁찬 울음소리를  울프 론이 높이 뛰어올랐다. 터무니없는 점프력이었다. 천장 가까이에서 날고 있던 종이학까지 닿은 울프 론은 발톱을 휘둘러 종이학을 찢어버렸다. 소음이 멎자 의식이 한결 또렷해진 울프 론은 곧장 착지하지 않고 프릴을 덮쳤다.

척! 프릴이 손을 뻗자 울프 론의 몸이 공중에서 멈췄다. 당황한 울프 론이 몸부림치려 했지만 꼼짝도 할 수 없었다. 허공에 정체한 자신의 몸을 본 울프론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염동력...?!!'

늑대의 주둥이라서 머릿속의 단어를 뱉을  없었다. 하지만 눈으로 놀라움을 표할 수는 있었다. 염동력은 이명의 침투력이 다른 마법에 비해 훨씬 높다보니 성인 마법사들도 어려움을 겪는 마법이다. 보통  나이대의 마법사들은 연필을 들어올리는 정도나 연습하는 게 정상이다. 그런데 지금 자기보다 훨씬 큰 수인을 염동력으로 붙잡았다고?

괜찮다. 돌격을 순간적으로 저지하는 정도만 가능할  움직이게 하는 것까지는 무리일 것이다. 라고 생각했던 울프 론이 불타는 테이블 위에 처박혔다. 어라? 하는 사이에 또 다시 보이지 않는 손에 꽉 붙잡히더니 이번에는 높은 천장에 훅하고 솟구쳐 세게 처박혔다. 그대로 바닥에 처박혔다가, 다시 천장에 처박혔다가... 이러기를 몇번 반복했다. 쾅! 쾅!! 프릴이 손을 올렸다 내렸다 할때마다 천장과 바닥에서 큰소리가 났다.

척! 프릴이 천장에 처박힌 울프 론을 바닥에 내려찍기 위해 손을 힘껏 내렸다. 그 순간 지끈하고 머리를 망치로 후려치는 것같은 두통이 밀려왔다.

"읏...?!"

프릴이 격심한 두통에 머리를 감싸쥐자 염동력이 풀렸다. 바닥에 풀썩 쓰러진 울프 론이 전신의 통증을 이겨내고 몸을 일으켰다. 프릴은 여전히 두통과 현훈(眩暈) 때문에 비틀거리고 있었다.

역시 인체 회랑의 마력을 다른 물체에 직접 투과시켜서 운동력을 행사하는  함부로 할짓이 못 된다. 염동력이 그 무궁무진한 활용성에 비해 연구가 부진한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프릴은 이명의 증상을 완화시키기 위해 호흡을 고르고 있었다. 울프 론이 그 동안 매너있게 지켜봐 줄 리가 없었다.

"그르르르.... 크아아악!!"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한 울프 론이 망설일 것 없이 프릴에게 달려들었다. 도구를 쥐는 걸 포기하고 4족 보행 형태를 선택한 것만큼 속도 하나 만큼은 발군이었다. 순식간에 화염의 벽을 뚫고 결계안으로 들어와서는 프릴 바로 앞까지 들이닥쳤다.

우지끈!! 프릴을 물어뜯기 위해 점프한 울프 론의 몸이 갑작스러운 압력에 짓눌려 한순간에 수직으로 내려찍혔다. 울프 론은 뛰어올랐을 때의 자세 그대로 바닥에 구덩이가 파일 정도로 세게 처박혔다. 흡사 보이지 않는 거인이 발로 짓뭉개버린 것 같았다.

"크으윽?!!"

울프 론은 뼈가 욱신거리고  장기가 울리는  같았지만 누워서 안정이나 취하고 있을 틈이 없었다. 프릴이 번개사슬을 들어올렸기 때문에 재빠르게 거리를 벌려서 피해야 했다.

"크르르르..."

프릴을 최대한 위협하기 위해 나음을 냈지만 프릴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오히려 위협을 당한  울프 론 쪽이었다. 저 나이에 염동력으로 모자라서 중력 마법까지 구사한다니. 다른 귀족들이 사교 모임에 나가서 허세를 부리거나 백화점에서 사치를 부리는 동안 도서관에 틀어박혀서 마법만 공부한 건가?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숙련도를 쌓는 것은 재능만으로 설명이 되지 않았다.

"아우우우우우우!!"

울프 론이 또 다시 큰소리로 하울링을 했다. 그것은 울프 론이 야수 해방 3단계에 들어가는 신호였다. 4족 보행을 하던 울프 론이 다시 상체를 일으켜서 두 손을 활용할 수 있게 됐다. 덩치는 훨씬 더 불어나서 신장이 2m를 훌쩍 넘겼고, 튼튼한 근육이 전신에 붙었다. 거칠게 솟은 털도 온몸을 빈틈 없이 덮었다. 야수를 완전히 해방시켜서 늑대인간으로 돌아간 것이다. 울프 론의 가슴에 박힌 보름달 반응로를 본 프릴이 탄식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수인이 되는 수술을 받은 인간이 아니라, 인간이 되는 수술을 받은 수인이였군요. 제 생각 이상으로 위험한 수술을 받았네요. 어느 병원의 짓인지 밝혀낼 필요가 있겠어요."

"밝혀낼  없다. 넌 내게서 살아나갈 수 없다. 넌 죽는다."

"그 상태에서는 말을 할 수 있군요. 그보다도  말이 들리시네요? 벌써 귀가 다 아물었을 줄이야."

"난 재생한다. 빠르게 재생한다. 하지만  날 다치게 할 수도 없다. 난 튼튼하다.  진다.  죽는다."

"재생? 튼튼하다? 대체 무슨 말씀이시죠? 제가 뭐하러 당신을 공격하나요? 어디를 공격하면 될지를 이제 알았는 걸요."

프릴이 울프 론의 가슴에 박힌 보름달 반응로를 가리키며 말했다. 휘리릭 착!! 울프 론의 오른손 손목에 사슬이 채워졌다. 눈부시게 빛나는 마력의 사슬이었다. 하나가 아니었다. 어디선가 또 하나 솟아난 사슬이 울프 론의 반대쪽 손목도 묶었다.

울프 론이 당황한 얼굴로 주변을 둘러봤다. 사슬이 솟아난 곳은 두 사람을 둘러싸고 있는 양피지 낱장이었다. 프릴이 바닥에 둥글게 깔아둔 낱장들의 용도는 불길을 막는 결계나, 원형 경기장 만들기가 전부인 게 아니었다.

촤라락! 차라락! 철컥! 척! 많은 양피지 낱장들에서 솟아난 사슬들이 울프론의 손목, 팔, 발목, 다리를 단단하게 결박했다. 울프 론이 하울링을 내지르며 발버둥쳐도 사슬은 끊어지지 않았다.

"Rasedah ifmim ma itrepes agonilia ye'obisirha, e nalupah d'irid ubelia uluxhad ortosta solia libma pakisah pshono askaria koh."
하룻밤 촛불과 같은 꿈을 꺼버리고, 해가 떠오르기 전에 모든 소망을 끌어안은채 진개(塵芥)로 돌아간다.

프릴이 긴 영창을 아민어로 외웠다. 보통 위력이 강한 마법일수록 영창을 생략하기 어렵고, 효과가 보장되는 마법일수록 영창을 간소화시키기 어렵다. 그렇다면 중력 마법조차 묵언으로 발동시키던 프릴이 이렇게 길게 영창을 외울 정도라면, 그것도 마법의 원발지인 아민의 언어로 영창을 외운다면 얼마나 강력한 마법이 나올까?

람소로크(Lamsorok). 아민어로 장례식을 의미하는 그 살벌한 이름에 걸맞게 흉악한 위력을 자랑하는 살상용 마법이다. 효과는 단순하지만 명쾌하다. 일직선상으로 쭉 뻗어나가는 광선을 발사해서 경로에 있는 것들을 모조리 다비(茶毘)해 버린다. 군용 마법 중에서도 정점으로 꼽히고, 발동을 성공시키는 것만으로 마법사로서의 실력을 입증할 수 있지만, 한 사람만으로는 위력이 비교적 떨어진다.

프릴의 손끝에서부터 시작된 고온 고압 고밀도의 에너지파가 울프 론을 향해 뻗어나갔다. 람소로크 에너지파가 발사되자 그 빛줄기가 뿜어내는 광채에 눈을 똑바로 뜰 수 없었다. 빛줄기는 울프 론의 가슴을 향해 뻗어나가 보름달 반응로를 직격했다.

지이이잉!! 콰쾅!! 람소로크가 일으킨 폭발이 주변 일대에 간헐적 마력 쇄도를 유발했다. 그로 인해 울프 론을 결박한 마력 사슬도 끊어졌고, 마법으로 만든 불길도 사그라 들었다. 주변에 널려있던 양피지 낱장들의 주문도 람소로크의 어마어마한 마력이 덧씌워져서 본래의 효력을 잃었다.

풀썩!! 울프 론이 쓰러졌다. 보름달 반응로가 망가진 울프 론은 야수 해방 상태를 유지할 수 없어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살짝 익힌 고기처럼 몸에서 연기가 나고 있었지만 죽은 건 아니었다. 몸을 웅크린채 신음을 흘리며 가쁘게 숨을 쉬었다. 프릴은 울프 론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당신에게 내리는 제 개인적인 형벌은 여기까지에요. 이제 당신의 처분을 어떻게 할지는 제국의 법에 맡기도록 하겠어요."

프릴은 손수건을 적실  썼던 물병을 꺼내서 자신의 손을 씻었다. 찝찝해서 씻는 게 아니라 귀족들끼리 통용되는 무언의 신호였다. '나는 이제 손 뗄 거니까 네가 어떻게 되건 더 이상 나와는 아무 상관 없다' 라는 의미를 내포한다. 울프 론이 그 의미를 알고 있는지 모르는지는 어차피 중요하지 않았다. 프릴은 손수건으로 물기를 닦고서 자리를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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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sedah ifmim ma itrepes agonilia ye'obisirha, e nalupah d'irid ubelia uluxhad ortosta solia libma pakisah pshono askaria koh.
하룻밤 촛불과 같은 꿈을 꺼버리고, 해가 떠오르기 전에 모든 소망을 끌어안은채 진개(塵芥)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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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아민어

ifmim (이프밈) : [현존 명사] 꿈
ma itrepes (마 이트레페스) : [계사] ~와 같은
solia (솔리아) : [관념 명사] 햇빛
libma (리브마) : [계사] ~한채로, ~하면서
pshono (프숀) : [형용사] 모든, 전부
askaria (아스카리아) : [관념 명사] 희망, 소망

ifmim(꿈)은 실체가 없지만 관념 명사 취급하지 않으니 주의합시다. 잘 때 꾸는 꿈은 이와 같이 현존 명사로 취급합니다. 만약 ifmima로 표기해서 현존 명사가 아닌 관념 명사로 취급할 경우에는 '오랜 꿈이 이루어졌다' 와 같이 실현시키고 싶은 목적이나 이상을 나타내는 꿈으로 의미가 바뀝니다.

pshono는 프숀이라고 발음합니다. 형용사, 부사의 끝에 오는 o는 발음하지 않는  표준 규칙입니다.


이전 플랫폼에서도 프릴이  영창을 외는 장면이 나오지만, 비교해보면 주문이 조금 바뀌어 있습니다.  이유는 리워크를 거치면서 아민어 문법이 몇 가지 크게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리워크 이전에만 해도 아민어를 동사의 형태 변화 없이 동사 원형만을 사용하는 언어로 설계하고자 했지만, 아민어는 근본적으로 굴절어의 형태가 뚜렷하기에 결국 계사 의존도를 낮추고 혼란을 줄이기 위해 동사의 수인칭 일치가 필요했습니다.

위의 영창에 나오는 동사 nalupu(돌아가다)를 예로 들자면 일단 동사 원형은 nalupu이고

1인칭 단수 nalupah (나는 돌아간다)
1인칭 복수 nalupaham (우리는 돌아간다)
2인칭 단수 nalupad (너는 돌아간다)
2인칭 복수 nalupadam (너희는 돌아간다)
3인칭 단수 nalupast (그는, 그녀는, 그것은 돌아간다)
3인칭 복수 nalupastam (그들은 돌아간다)


이런 식으로 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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