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2화 〉3-3. 행동 개시 (6)
누르워 뒷골목 하숙촌에 있는 곤룡회의 본거지. 허설이 세 잔의 차를 타왔다. 그녀는 곤룡회의 수장이자 자신의 주군인 아라한에게 첫번째 찻잔을 내었다. 아라한은 뜨거운 차에 아직 입을 가져다대지 않고, 찻잔을 살짝 들어올린채 향기를 맛봤다.
"외부인 시궁쥐 무리가 뒷골목에 들어오고 있다는 말씀이죠?"
"네. 인원수가 상당합니다. 머릿수가 기이하게 많다는 점도, 그 많은 수가 떼지어 다니면서 파벌이 갈려있지 않다는 점도 일반적인 시궁쥐 무리와는 판이하게 다릅니다."
천의가 대답했다. 허설은 천의에게 두번째 찻잔을 내었다. 천의는 갓 내어와 뜨거운 차를 불지도 않고 살짝 입에 담았다. 식기 전에 삼키자 뜨거운 게 목을 타고 넘어갔다. 목을 덥힌 천의는 보고를 이어나갔다.
"하지만 이들이 일반적인 시궁쥐와 같건 다르건 결국 외부인이라는 점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외부에서 온 시궁쥐들이 규칙을 어기고, 주민들과 무력 충돌까지 일으킨 게 불과 얼마 전 일인지라, 지금도 뒷골목 주민들 사이에서 불안의 목소리가 오가고 있습니다. 수장님께서는 조속히 이 외부인들의 처분을 고량(考量)하시고, 주민들의 불안을 진정시켜야 합니다."
"그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주민들의 발이 닿지 않는 방치된 주택가에 모여있습니다. 아직까지는 주민들과의 접촉이 보고된 바는 없습니다. 공격적인 태도나, 호전적인 성향은 관찰되지 않으며 오히려 반대입니다. 이들은 대다수가 영양 상태가 불량하고 탈진의 기색이 확연하여 전의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상태입니다. 마치 난민처럼."
"난민이라. 그쪽이 더 적절한 표현이겠네요."
"관찰한 점을 토대로 추론하자면, 이들은 이리 조직에 속해있었으나 배신하고 혹은 배신 당하고 이곳으로 피난해 왔다고 판단됩니다."
"수장님, 만일 천의님의 판단이 사실이라면 저들을 뒷골목에 뒀다가는 또 이리들을 불러들이게 됩니다. 그렇지 않더라도 이곳 뒷골목은 피난민을 받을 만큼 넉넉한 곳도, 따뜻한 곳도 아닙니다."
허설이 완강한 태도로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는 한편 그녀는 곤룡회의 일원도 아니면서 아까부터 이곳에 앉아있는 어느 검은 옷의 사내를 흘겨보며 불만을 표했다.
"외부인도 외부인이지만... 저 자는 왜 아까부터 여기에 있죠?"
허설은 그렇게 따지며 에반 플루토에게 마지막 세번째 찻잔을 내었다. 에반은 이번에도 역시 허설이 대접하는 차를 마시지 않고 잔을 스윽 치웠다. 벌써 자신의 찻잔을 비운 천의가 에반이 밀어놓은 잔을 집어들었다.
"정성껏 우려낸 차 한 잔에는 한 사람의 진심이 담겨있는 법입니다. 지도원 씨는 방금 허설 양의 진심을 이렇게 매몰차게 대하신 셈이죠."
"그 얘기 진작에 너희 수장님한테 들었다."
"하다못해 이 향이라도 맡으시면 어떻겠습니까? 여기까지 왔는데 허설 양의 마음을 모르고 돌아가는 지도원 님이 안타깝습니다."
"안타깝고 자시고 난 숨이 막힌다, 숨이 막혀. 하여간 동방인들 사이에 끼어있으면 숨이 턱 막혀."
에반이 중얼거리며 장기말을 옮겼다. 에반이 행마하자 천의가 선뜻 다음 수를 두지 못하고 고민에 빠졌고 아라한은 말없이 대국을 관전하면서 차를 홀짝였다. 허설은 에반을 향한 경계심 가득한 눈을 떼지 않았다. 에반이 자신을 노려보는 허설에게 말했다.
"나한테 할 말 있어?"
"할 말이라면 많고도 쌓였지만 다 풀어놓기에는 이 자리에 외람되니 침묵할 따름입니다."
"내가 그래도 너희들 도와주러 온 건데 말이야. 부를 땐 남이사 바쁘건 말건 맘대로 불러대던 녀석이, 막상 이쪽에서 찾아오니까 그런 섭섭한 눈으로 흘겨보기나 하고."
"그때와는 상황이 다릅니다. 여기는 학원의 국제 교류 학관이 아니라 곤룡회의 진짜 본거지니까요. 그리고 그때 당신을 불렀던 건 수장님의 뜻이였고요."
"지금도 니 수장님이 날 필요로 해서 왔거든?"
"그래서 당신은 우리의 편입니까? 당신은 그때 수장님의 제안에 확실하게 답하지 않으셨잖습니까? 이도 저도 아닌 입장이면서 이런 곳까지 제 집 안방 마냥 멋대로 들어오시는데 제가 좋게 볼 수 있겠습니까?"
"좋게 안 봐주는 거야 네 자유긴 한데... 적어도 지금은 방해되니까 옆에서 그런 눈으로 노려보지 좀 마."
"대답하세요. 밖의 저 시궁쥐떼도 당신과 관련 있죠?"
"장이다."
"멍군입니다."
"그럼 이거는 가져가야지."
에반은 허설을 무시하고 천의와 계속해서 상희(象戱)를 뒀다. 허설이 답답한 심경에 아라한 쪽으로 시선을 옮겼지만 그녀의 수장은 여전히 말이 없었다. 에반이 허설에게 말했다.
"그렇게 딱딱하게 굴지 말고. 지금 너까지 딱 네 명이니까 마작이나 하자."
"할 줄 모릅니다."
"그럼 투전은?"
"족보 모릅니다."
"동방인이면서 심리전 놀이를 싫어하다니."
에반이 허설을 놀리듯 빈정거리며 장기말을 옮겼다.
"그러는 지도원 씨는 정말 제국인이 맞나요? 동방의 유희에 이렇게 정통하시다니. 솔직히 허를 찔렸습니다."
천의가 그렇게 말하며 다음 수를 뒀다. 지금껏 말을 아끼고 있던 아라한이 에반에게 질문했다.
"그 시궁쥐 무리는 갈퀴날들과 관련된 이들이죠?"
"당연하지. 말했잖아? 조금만 기다리면 급한 녀석들은 알아서 기어올 거라고."
"제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이들이 급하게 기어들어 왔습니다만. 이제 어떡하실지 계획이 있으시죠?"
"당연하지. 말했잖아? 난 내 인생 빼고는 다 계획이 있다고."
탁! 에반이 행마하자 천의의 중요한 기물이 잡혔다. 응수하면 다음 수에 또 기물이 먹히고, 그렇다고 내버려둔채 다른 길을 찾자니 너무 깊게 파고들어왔다. 마치 에반과 체스부를 응징하지도, 무시하지도 못하는 지경에 이른 갈퀴날들처럼.
"갈퀴날들. 투자자인 V의 프로젝트는 계속해야 하는데 연구비 조달할 돈줄은 다 끊어졌으니 무리하게 백설탕을 증산했지. 그 결과 앉아서 설탕 찌다 죽느니 발버둥 좀 쳐보다가 안 되면 죽기로 한 녀석들이 무더기로 생겨났고. 선형적일 정도로 단순한 시나리오대로 흘러가고 있어. 이리들이 죄다 죽거나 잡혀들어갔으니 변수를 짜낼 여건도 안 되겠지."
탁! 결국 사선을 좁혀온 에반의 장기말 하나가 천의의 부궁(副宮) 중 하나를 잡아냈다. 장(將)이 잡히자 그 휘하에 있던 모든 장기말들이 전부 에반에게 넘어갔다.
"저쪽이 잃은 것이 우리한테 넘어왔다면 잘 활용할 줄도 알아야지. 한, 시궁쥐떼를 이끌고 온 우두머리는 어때?"
"안 그래도 접견을 원하고 있습니다. 구면이더군요."
"그놈이 만나고 싶어하는 사람은 네가 아니라 나일 거다. 이곳은 잠시 몸을 숨기기 위한 임시 거점일 뿐 굳이 여기를 선택한 이유는 나한테 있겠지."
"그럼 앞으로 저 쥐떼들 때문에 발생하는 모든 문제의 책임은 당신에게 있다는 말이군요."
"허설 양, 끼어들지 마세요."
"....죄송합니다, 수장님."
"뭐, 틀린 말은 아니겠네. 그러니 문제 생기기 전에 서로 원만히 해결 볼 수 있게 그 우두머리 놈 좀 불러와줄래?"
"수장님께 지시하지 마세요. 학원 안에서야 당신이 지도원이고 저희가 학생이지만, 이곳에서는 입장이 다르다는 걸 아셨으면 합니다."
"허설 양."
"수, 수장님..."
아라한이 눈짓하자 허설이 말없이 밖으로 나갔다. 잠시 뒤 그녀는 누군가를 데리고 돌아왔다. 훤칠한 허설과도 키 차이가 확연할 정도로 거구인 사내가 허설의 뒤를 따라 들어왔다. 흉터쥐 우두머리였다. 그는 에반을 보자 세상 공손한 목소리로 인사했다.
"오, 오랜만입니다, 형님."
"아 누구더러 자꾸 형님이래? 남들 보면 나도 시궁쥐인줄 알겠어."
"죄, 죄송합니다, 형님."
"....."
"아, 또 형님이라 했네요. 그, 말이 불편해서 그런데 그냥 형님하시면 안 되겠습니까?"
"됐고, 여긴 뭐하러 왔어? 스퀘어 손질하던 공장은 나가리 됐는데 설탕 찌는 건 적성에 안 맞았나?"
"저희 애들이 다 죽게 생겼습니다."
"그렇게 될 줄 모르고 이리굴에 기어들어갔어?"
"그래서 이제라도 빠져나왔습니다. 하지만 이대로라면 쫓아오는 놈들에게 물려죽게 생겼단 말입니다."
"당연한 수순이지. 그래서? 살려달라고 빌러 여기까지 왔나?"
"결과를 놓고 말하자면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그런 거지 결과를 놓고 말하는 건 또 뭐야?"
"제가 부탁드리고 싶은 건 저희를 살려달라는 게 아닙니다. 갈퀴날들을 죽여달라는 거죠. 어차피 갈퀴날들은 형님 눈에도 잘못 걸린 애들이고, 걔들이 죽으면 저희가 살 수 있으니까 누구 밑으로 붙어야 하는지는 볼 것도 없죠."
"말 되네."
"제가 차마 협상이라 말하기에는 하도 드릴 수 있는 게 빈약해서 부탁이라고 말씀은 드렸지만, 저라고 해서 마냥 바짓가랑이 붙잡고 매달리기는 염치 없다는 정도는 압니다."
"아 그러셔? 그래서 나한테 뭘 줄 수 있는데?"
"갈퀴날들에 대해서 몇 가지 알려드릴 게 있습니다. 아마 도움이 될 겁니다."
"한."
"네."
에반이 부르자 아라한이 천의와 허설에게 말했다.
"두 분은 이제 자리를 비켜주세요."
"알겠습니다, 수장님."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수장님."
허설은 여전히 불만이 많아보였지만 수장의 뜻에 따랐고, 천의는 에반과 두던 장기판을 정리했다.
"그러면 지도원 씨, 오늘은 한 수 배웠습니다. 이렇게까지 궁지에 몰린 건 정말 오랜만이군요. 혹시 괜찮으시다면 다음에도 또 한 수 가르쳐주세요."
"겸손 떨기는. 너 일부러 그렇게 뒀잖아?"
"제가 봐주느라 일부러 졌다는 말씀이신지요? 마음 아프군요. 저는 상대가 누구더라도 성의를 다합니다."
"그게 아니라 내가 아까부터 장기로 비유해서 설명해 주니까 내 설명이랑 대국 장면이 딱 맞게끔 맞춰주는 식으로 수를 짰잖아. 또 자기는 그런 적 없다고 고개 갸우뚱거리면서 잔망 떨겠지? 하여간 이래서 동방애들은."
천의는 조용히 표정 관리하면서 찻잔에 남은 차를 말끔히 비운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허설과 천의가 나가자 방 안에는 에반과 아라한, 그리고 흉터쥐 우두머리가 남았다. 에반은 흉터쥐 우두머리에게 말했다.
"그래서? 네가 가진 정보는 뭔데?"
"V는 지금 이 악물고 전쟁 준비하고 있어요. 놈들 본거지로 가면 안 돼요. 가서 형님이 협상에 응하건, 파토내건 상관없이 형님을 죽이려 들 거니까요."
"알어."
"네? 안다고요?"
"당연히 덫이라고 눈치 까지, 그럼 내가 모를 줄 알았어?"
"그, 그리고 갈퀴날들의 이리는 지금 많이 분산되어 있어요. 형님이랑 한판 붙으려고 나름 짬 좀 먹은 이리들은 다 V한테 붙어있고, 나머지 중에서도 우므나티아에 발품 팔러 간 애들 많으니까요."
"그것도 알어."
"네? 이것도 알고 계셨어요?"
"뻔한 흐름이잖아. 걔들이 그거 말고 별다른 선택지가 더 있는 형편이야?"
"그, 그래서 지금 남아있는 설탕 공장도 이리들이 지키기 어려운 상황인지라 공장마다 전달자들이 쫙 깔려있어요. 공장들 다 찾아서 한번에 치지 않으면 금방 전달자들이 동선 퍼뜨려서 나머지 공장들은 꽁무니 뺄 겁니다."
"그것도 안다."
"이, 이것도요?"
"애초에 그 정도는 한줄따리 거미 정도만 되도 상정할 수 있거든?"
"그, 그럼 대체 모르시는 게 뭐죠?"
"아니 나한테 그걸 묻고 있으면 어쩌자는 거야, 이 허당아."
"이, 이게 아닌데..."
"됐고, 이번에는 내 쪽에서 물어보자."
"네!"
에반이 책상 위에 어떤 사진 몇 장을 올려서 흉터쥐 우두머리에게 내밀었다. 에반이 유티스와 쟈네트에게 부탁해서 얻은 수사 당국의 프로필 자료였다. V와 몇몇 이리들의 모습이 사진으로 포착되어 있었다.
"아, 이놈들이라면 잘 알고 있습니다! 여기 이 수염나고 줫같이 생긴 놈이 V고, 얘들은 V 바로 밑에 딸린 이리들이에요. 웬만하면 얘들 다 세트로 붙어다니는데 얘들이 맥스패티도 운영하고, 하청 시궁쥐떼들 기강 잡고 다니고 그러죠."
"자금원이 되는 주요 사업들의 총괄 관리자이자 하청 업체들의 중추. 즉, 갈퀴날들을 마차에 비유하자면 이 수염나고 너같이 생긴 놈이 마차를 모는 마부라는 셈이지?"
"그... '너같이 생긴 놈' 빼고는 다 맞습니다."
빡! 에반이 흉터쥐 우두머리의 뒤통수를 한대 툭 쳤다.
"아무튼 햄버거 가게라던가 공장이라던가 주요 자금원을 박살내놓은 건 달리는 말들 다리를 부러뜨려 놓은 정도다. 마차 안에 타고 있는 놈을 끌어내려면 마부부터 잡아다 처리해야지."
"네...? 이리 조직은 뿌리의 뿌리까지 파고들다보면 얼마나 높으신 분이 나올지 상상도 할 수 없어요. 대체 어디까지 파고드실 생각이셔요?"
흉터쥐 우두머리의 질문에 에반은 매우 짧고도 명쾌하게 답했다.
"끝까지."
"그, 그런...! 아, 아아 멋있으십니다! 역시 형님이십니다!"
"닥쳐, 영혼 없어, 그리고 형님 아니라 했지."
딱! 흉터쥐 우두머리가 뒤통수 한대 더 얻어맞았다.
"당연한 결론을 새삼 짚고 넘어가자면 여기 나와있는 이리들은 일단 다 조질 거야. 요 V라는 이름 달고 꺼들먹거리는 재수없는 수염이랑, 그 밑에 딸린 이리들. 얘들이 이리들 중에서도 일선 지휘관 정도 포지션 되거든. 말단 간부라 해도 일단 간부는 간부야. 얘들 없애면 본진에 모여있는 나머지 애들도 그냥 지휘 체계 잃은 폭력단일 뿐이라 삐걱일 수밖에 없어. 팔다리 멀쩡해도 허리 작살나면 걷질 못한다는 뜻이지."
"오오..."
"그런 의미에서 일단 얘 알고 있어?"
에반이 흉터쥐 우두머리에게 이리 사진 하나를 가리켜 보여줬다.
"알고 있습니다. 패티 맥이라는 놈입니다. 아주 질 나쁜 싸이코 새끼예요. 이 놈 눈에 사람은 그냥 전부 다 식재료거든요."
"맥스패티라는 체인 상표 이름 자체가 패티 맥이랑 관련 있지 않던가?"
"네, 맞아요. 맥스패티라는 이름 자체가 이놈한테서 따왔어요. 근데 패티 맥 역시 우므나티아에서 계승되는 방식이더라고요. 이 놈이 지금 몇대째 패티 맥인지는 모르지만, 패티 맥의 후계자 선정 방식은 식인이래요. 패티 맥을 갈아서 햄버거로 만들어 먹은 놈이 다음 패티 맥으로 추대되서 모든 맥스패티 지점들의 주인이 되는 방식이죠."
"지극히 우므나티아 답군. 이런 놈이 라쿠이르까지 기어나오다니."
"이놈은 미트볼 기계라는 인간 분쇄기를 가지고 다녀요. 동전만한 크기인데 꺼내면 엄청 커집니다. 사람 갈아서 패티 만드는 기계인 만큼 엄청 흉악한데 거기다 온갖 개조를 덕지덕지 발라놨어요. 선대 패티 맥들 아니면 차기 패티 맥 자리를 노리던 도전자들을 처리하고 챙긴 전리품이겠죠."
"그럼 이놈은?"
"그 뚱땡이 놈은 오거 반이라는 놈입니다. 사진만 봐도 멍청해 보이죠? 실제로도 대가리가 엄청 나빠요. 근데 힘 만큼은 괴물입니다. 듣기로는 예전에 제국에서 중단된 연구의 실험체라는 말이 돌던데... 전 모르겠습니다."
"이 둘은? 전에 학원에서 본 적이 있는데."
"일단 얘가 울프 론입니다. 이 년 진짜 눈 돌아가면 앞뒤 안 가리는 살인귀에요. 진짜로 뒷일 생각 안 하고 다 찢어발겨요."
"실제로도 틈만 나면 날 죽이려 들었지."
"얘가 생긴 건 여리여리해 보이는데 힘도 어찌나 센지. 뭔가 사람이 아닌 거 같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요."
"마지막 남은 얘는? 그나마 말을 차분하게 할 줄 알더만."
"허밋 쉘인데요, 실제로도 눈치 빠르고 머리도 잘 굴러가서 V 옆에서 고생 좀 하는 측근입니다. 동방에서 왔다는데, 제국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동방 특유의 기술로 사람을 죽이니 대처법이 없다는 점이 무섭죠."
"흐음. 좋아, 일단은 알았다."
"아, 그리고요..."
흉터쥐 우두머리가 아직 할말이 있는듯 했다.
"왜?"
"패티 맥의 미트볼 기계는 우므나티아의 무면허 불법 공방에서 마개조를 거친 물건이라 정비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V랑 이 이리들이 기계 정비 겸 사전 준비를 위해 꼭 들리는 장소가 있는데 제가 예전에 몇 번 심부름 다녀봐서 그 위치를 압니다."
"오, 정말이냐? 그건 엄청 쓸모있는 정보다."
"하하! 드디어 도움이 됐네요."
"그래. 드디어 너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쓸모가 있는 뭔가를 해냈구나."
"아... 하하.. 하..."
"똑바로 웃어."
"넵! 하하하!"
"중요한 전투를 준비하고 있으니 분명 정비를 하러 그곳에 들리겠지. 주무기랑 트릭들은 전부 본진인 병원에 셋팅해 뒀을 테니 본진 밖에서 싸움을 걸면 훨씬 유리하고. 매복해 있다가 이놈들이 정비소에 오면 싸그리 전멸시킨다. 그럼 허리를 잃은 본진도 흔들리게 된다."
"이론대로 흘러간다면 더 할 나위 없이 이상적인 작전이로군요."
아라한이 부채를 살랑거리며 말했다.
"한. 일단 이 녀석이 끌고 온 시궁쥐들은 그냥 알아서 살아남게 내버려 둬. 돌봐주라고 부탁할 생각도 없고, 쫓아내라고 할 생각도 없어. 그냥 규칙만 잘 지키면 넘어가줘."
"알겠습니다. 곤룡회 대원들과 뒷골목 주민들에게는 제가 잘 정리해서 말해두겠습니다."
"그리고 너. 너는 니 밑의 그 쥐떼들 잘 관리해라. 닥치고 눈치 잘 살피고. 혹시라도 규칙을 어기거나, 문제를 일으켜서 한을 곤란하게 했다는 얘기가 내 귀에 들려오면... 뭐, 알지?"
"아 물론이죠, 충성, 충성!"
에반은 흉터쥐 우두머리를 물러나게 하고는 자신도 돌아갈 채비를 했다.
"가시는 겁니까?"
"용건도 마쳤는데 여기 계속 있어봐야 뭐해? 너랑 나랑 둘이서 계속 있어봐야 곤룡회 애들 눈에 보기 이상하기만 하지."
"그런 걸 의식하는 분일 줄은 상상 못했군요."
"아무튼 쥐떼들은 말썽 안 일으킬 거야. 뒷골목 전전한 게 하루 이틀인 애들도 아니니까 신경쓰지 말고. 그리고 최대한 빨리 체스부 애들 모아서 작전 개시하자."
"네, 준비해두겠습니다."
아라한은 뒷골목 하숙촌을 떠나는 에반을 홀로 배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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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반과 천의가 두던 장기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있는 장기가 아니라 광상희라는 장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