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6화 〉3-2. 압박 (10)
V와 이리들을 태운 차량이 도로 위를 달리고 있었다. V는 굵직한 시가를 입에 물고는 고급스러운 라이터를 꺼내서 불을 붙였다. 연기 섞인 날숨을 깊이 내뱉자 차 안이 금방 뿌연 담배 연기로 가득해졌다. 지금까지 조용히 있었던 울프 론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역시 죽일 걸 그랬다."
"왜 또?"
"처음에는 무슨 장치가 있어서 그러는 줄 알았다. 그런데 아무리 살펴봐도 덫은 없었다. 품 안에 숨기고 있는 무기도 없었다. 허세였다. 그냥 죽일 걸 그랬다."
"둬. 카일을 이긴 놈이잖아? 진짜로 니들 둘이 한 번에 덤빈다 해도 안 무서워서 그런 거일 가능성이 높다고."
"나 강하다. 내 갈퀴날이 베지 못할 건 없다."
"그래. 나중에 보여달라고. 학원에서 죽여봤자 일이 괜히 커질 테니 우리 영역으로 데려와서 죽인 뒤 슬쩍 뒤처리하면 훨씬 깔끔하잖아? 게다가 아직 그놈에게선 더 알아내고 싶은 게 많다고. 대체 어디서 무슨 개조를 받은 건지 캐내야겠어."
허밋 쉘이 염려스러운 기색을 하며 말했다.
"그래도 그렇게 공방... 아니, 병원의 위치를 알려도 괜찮을까요?"
"당연히 괜찮을 리가 없지! 하지만 이 정도는 걸어줘야 저쪽도 딜을 할 생각을 할 거 아냐."
"그렇다 하더라도 그 자가 병원 내에서 통제를 벗어난다면 일이 골치 아파질 것입니다."
"일은 이미 골치 아프다고, 젠장!"
쾅! V가 차체에다 대고 신경질적으로 주먹을 내리찍었다. 물론 그런 짓을 해봐야 자기 주먹만 아플 뿐이었다. 그가 시가를 문채로 한숨을 쉬자 뿌연 담배 연기가 새나왔다.
"그래도 일단 우리 본진에 기어들어오게만 한다면 수틀리더라도 고냥 슥싹 없애버릴 수 있어. 게다가 그 카일을 뚜드려 패버린 놈이야. 공방에서 뜯어보면 개쩌는 파츠가 나오지 않겠어?"
"뜯긴 누가 누굴 뜯어요? 슥싹 없어지는 건 우리일까봐 그러죠."
"쫄았냐?"
"상황이 여러모로 꼬였으니 이런 곳에서라도 방법을 찾는 건 이해합니다만, 너무 조급해지신 것 같습니다. 평소였으면 이런 판단은 안 하셨을 텐데요."
"지금이 평소가 아니잖아! 이제 더 이상 토 달지 마! 알겠어?"
"후우... 알겠습니다."
"카일이 뒤졌는데 그릭도 잡혀들어갔어. 거미들이 작정한 이상 남은 병력으로 방어는 무리다. 남은 설탕 공장들이라도 건져야 하니까 전달자들 깔아놔. 공장 하나가 물리면 나머지는 바로 짐싸서 토껴야한다. 여기서 더 털리면 아예 조직에서 우리를 손절치겠지. 난 조직에서 팽당하면 뒤끝이 특히나 비참할 거란 말이야, 니네가 알아 시발?"
"알아요, 왜 모르겠어요? 그래도 조직 얘기는 저희끼리라도 입에 담지 마셔요. 당신 임무를 잊었어요?"
"아, 맞아. 그랬지. 나는 V였지. 아무튼 전달자들 최대한 깔아놔. 기사단 후원금도 씨가 말랐으니 이제 우리한테 남은 건 설탕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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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 NPC. 기다려 보거라. 할 말이 있다."
콜테르 공작가의 자존심 센 공녀, 슈나 콜테르가 에반 플루토를 불러 세웠다. 등 뒤에서 자신을 부르는 슈나의 목소리를 들은 에반이 그 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예의를 갖추거라. 이 슈나 콜테르가 네게 할 말이 있으니까. 지금은 내가 몹시 기분이 좋으니 특별히 너를 칭찬하려 해."
"....."
자세를 고쳐선 에반은 심호흡을 한 번 크게 했다. 그리고는 뒤도 안 돌아보고 달리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자신과 멀어져 버린 에반을 보며 슈나는 어안이 벙벙해서 멍하니 있다가 이내 곧 에반을 향해 소리치기 시작했다.
"뭣?! 뭐야?! 거기 서!!!"
에반은 필사적으로 달려가고 있었지만 슈나는 고위 귀족의 몸이기 때문에 달음박질 같은 건 할 수 없었다. 쫓아가지도 못하고 그저 그 자리에 서서 발만 동동 구르며 에반을 불렀다.
"아, 알았어! 호칭 때문이지?! 제대로 부를께! 플루토 지도원!"
그러나 에반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슈나에게서 멀어져갔다. 조바심이 난 슈나가 에반의 뒤에 대고 소리쳤다.
"네가 좋아할 만한 소식이란 말이야!!"
"...."
네가 좋아할 만한 소식. 그 말을 들은 에반이 도망치는 속도가 두 배는 더 빨라졌다. 기마병 정도는 가뿐히 추월할 법한 속도였다.
"어째서어어어?!!!"
에반은 슈나의 시선에서 벗어나기 위해 교정을 갈라 질주했다. 신 교사 쪽 골목으로 꺾어 들어간 그는 건물 벽에 기대서 섰다. 그리고는 한숨을 깊게 푸욱 쉬며 중얼거렸다.
"교내에서 멋대로 유물을 쓰는 건 교칙 위반일 텐데?"
에반이 그렇게 중얼거리자 건물 벽에 그림자로 된 구멍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동전만한 크기였던 그 구멍은 금방 사람이 드나들 수 있을 정도의 크기로 벌어졌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그림자의 구멍 너머에서 슈나가 도도하게 걸어 나왔다. 슈나가 나오자 그림자 구멍이 다시 작아지기 시작했다.
"어쩔 수 없잖아! 멋대로 도망간 무례한 네 탓인걸!"
"하아... 그래서 이번엔 뭔데?"
"뭐야 그 표정하며 말투는?! 변함없이 불손한 태도구나!!"
"나 간다?"
에반이 벽에 생긴 그림자 구멍을 손으로 잡았다. 에반이 힘을 주자 거의 사라지기 직전이었던 그림자 구멍이 억지로 크게 벌어졌다. 에반이 그 구멍에 들어가려 하자 슈나가 필사적으로 그를 붙잡아 말렸다.
"기다려!! 대체 어떻게 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건 나중에 물어보고 일단 내 얘기를 듣도록 해!!"
"나중에 물어본다고? 그 말은 나중에 또 올거란 말이냐?!"
"대체 왜 그렇게까지 날 상대하길 싫어하는 건데?!"
"지금 그걸 몰라서 물어봐?!"
"후우...."
"스읍...."
한바탕 혈압과 언성을 팍팍 올리던 두 사람이 잠시 숨을 고르고 진정시켰다. 에반이 먼저 슈나에게 말했다.
"하고 싶은 말이 뭔지만 딱 말해. 내 태도가 어떻느니 또 따지면 나 진짜로 간다?"
"으으...!!"
슈나는 불만이 가득한 얼굴이었지만 곧 체념했는지 용건을 말하기 시작했다.
"기껏 이 내가 감사를 표하려고 했거늘 이렇게 기분을 망쳐놓다니!"
"감사? 네가? 나한테? 왜?"
"그 멍청한 뚜뚜 스퀘어 말이다. 안 그래도 그거 때문에 밤마다 잠을 못 자서 불만이 많은 참이었다 했잖아. 근데 네가 그 멍청한 스퀘어를 모조리 금지했다고 들었다."
"아 그거? 여러모로 문제가 많아서 말이야. 엘리아에게 건의하니까 금방 내 의견을 수용해줬지. 이제 다시는 기숙사에 들여놓지 못할 거다."
"정말?"
슈나가 활짝 웃었다. 잔뜩 뿔난 표정만 보다가 웃는 얼굴을 보니 꽤나 귀여운 인상이었지만 에반은 오히려 불안해질 따름이었다.
"덕분에 이제야 좀 쾌적하게 잘 수 있어서 기분이 좋아. 난 그걸 칭찬할 생각으로 불렀단 말이야. 그런데 내가 부르자마자 도망부터 치고 보다니!"
"미안하게 됐수. 내가 원체 바빠서 말이지."
"흥! 내 칭찬은 비싸서 아무나 받을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잊지 말고 기념해두는 게 좋을 거야, 노타이틀."
"예 예 그러십니까."
"그런 의미에서 저번에 줬던 선물을 또 준비했지. 원래라면 너 같은 노타이틀은 꿈도 못 꿀 물건이니 감격에 겨워 눈물 흘리도록 해!"
"선물? 내가 너한테 선물 같은 거 받은 적이 있었나?"
"흥! 좋다고 다 먹어 놓고서 오리발 내밀기는! 뭐 됐어. 자, 이거 받아."
"이게 뭔데?"
에반은 슈나가 내민 작은 종이상자를 받았다. 고급지게 포장된 선물상자를 살짝 열어보니 프라우드라고 적힌 상표명이 적혀있었다.
"프라우드의 치즈 케이크야. 프라우드 케이크 중에서도 제일 수량이 한정되어 있는 게 바로 치즈 케이크란 말이지."
"....어엉??"
케이크를 받아든 에반은 머리가 띵해오고 정신이 아득해졌다.
"흐흥, 볼만한 표정이구나. 기뻐서 말이 안 나오나 봐?"
"너. 저번에 쇼콜라 케이크를 선물했던 사람도 너였냐?"
"무슨 소리야? 내가 아니면 너한테 그런 선물을 줄 사람이 어딨겠어?"
"아니 그럼 왜 익명으로 우편함에 넣어놓았어?"
"익명? 딱히 익명으로 한 적은 없는데? 그냥 내 이름을 안 적었을 뿐이지."
"그걸 두 글자로 익명이라고 한다 이 아가씨야. 그래서 이 비싼 케이크를 왜 나한테 주는데?"
"그거야 콜테르 공작가의 으뜸되는 공녀인 이 내가 하찮은 선물을 줄 리가 없잖아? 이걸로 저번의 팬케이크와 바보 스퀘어의 답례는 했다고."
"그럼 이제 난 가봐도 되는 거지? 면담 일정이 잡혀있단 말이야. 엄연히 업무중인 사람을 이렇게 붙잡고 지체시키고 있으면 쓰나."
"알았어. 다음에 얘기할 때는 좀 더 유순한 태도를 기대하도록 하지."
"기대할 걸 기대하셔. 그래도 케이크는 고맙게 받으마."
슈나와의 대화를 마친 에반은 곧장 체스부의 부실로 향했다. 아무도 없는 체스부의 부실. 에반 플루토가 부실 안으로 저벅저벅 걸어들어왔다. 그가 아무 의자나 스윽 꺼내서 털썩 자리 잡고 앉자 뒤이어 프릴 루에리아가 뒤따라 들어왔다.
은빛으로 빛나는 하얀 머릿결을 한들거리며 조신한 걸음걸이로 걸어들어온 프릴은 우아한 몸동작으로 의자를 꺼내 조심스레 앉고는 머리의 리본 위치를 잘 가다듬었다. 부실에 들어와 자리잡고 앉는다는 간단한 행동만으로 두 사람의 배경과 성격의 차이가 확연하게 보였다.
"왔냐?"
"네, 선생님. 실례하겠습니다."
"자, 딱딱하게 격식 차릴 필요 없고 이거 좀 먹어봐라."
에반은 반으로 자른 프라우드 치즈 케이크를 접시에 올려서 프릴에게 차려줬다.
"케이크? 어디서 가져오셨나요?"
"오다 주웠다. 혹시 치즈는 안 좋아하나?"
"아뇨, 오히려 케이크는 주로 치즈로 먹어요. 귀족의 규율 때문에 못 먹는 과일이 많다보니 생크림 케이크는 피하거든요."
"잘 됐네. 많이 먹어라."
에반과 프릴은 치즈 케이크를 살짝 떠서 맛봤다. 프릴의 눈이 번뜩하고 떠졌다.
"맛있어요! 이게 정말 치즈맛이 맞나 싶을 정도에요. 치즈 케이크를 좋아해서 먹는다기 보다는 먹을 게 없어서 치즈 케이크만 먹어왔는데, 이거라면 좋아서 즐겨먹을 수 있을 거 같아요."
"그러냐?"
쇼콜라 케이크 때와는 확연히 다른 리액션이 보는 재미가 있었다. 케이크 삼매경인 프릴이 스푼을 입에 물고 있다가 정신이 번뜩 들었다.
"하앗?! 이, 이게 아니지. 선생님, 그... 저한테 부탁할 게 있다고 하셨죠?"
"어. 유티스하고 할 얘기가 있으니 통신 장치를 좀 빌리고 싶은데."
"전 괜찮지만 치안관에게 실례가 되진 않을까요?"
"아니. 그 녀석이라면 오히려 좋아할 거다."
"그런가요?"
프릴은 조심스럽게 교신 장치를 건넸다. 에반이 장치를 몇 번 만지작거리자 수화기 너머로 신호음이 들렸다. 상대방이 응답하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아아 루에리아 공녀님, 평안하심까? 죄송하지만 제가 지금은 연락을 주고받기 어렵습니다. 제가 워낙에 공사가 다망해서 바쁜 몸이라 말이죠.]
"아 그러냐? 그럼 끊어야지."
[이바노 씨이이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죠?!]
"끊는다. 바쁜 와중에 방해해서 미안하다고. 그럼 수고해."
[아뇨, 아뇨, 아뇨! 끊지 마셔요!!]
"왜? 공사가 다 망해서 바쁜 몸이라며."
[띄어쓰기 똑바로 해주셔요!! 그리고 아무리 바빠도 그렇지, 무려 이바노 씨 쪽에서 먼저 저한테 연락을 했는데 그냥 넘어갈 수 있겠습니까?]
"네가 저번에 말했던 대로 갈퀴날들이 날 찾아왔다."
[오우, 빠르군요. 녀석들 어지간히도 조급한 모양입니다. 하기야 라쿠이르에 돗자리 깔기 실패하면 이리 조직이 아니라 한낱 들개 무리로 흩어지게 될 테니까요.]
돈줄이 끊어져 버리고 계속해서 압박당한 갈퀴날들은 에반의 말대로 혈액순환이 안 돼서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V가 에반을 직접 찾아와서 협박, 회유를 시도하는 지경에 이른 게 그 표시다.
[근데 어떡하죠?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이제 거미들 풀어서 남은 설탕 공장들도 까버릴려고요.]
"전달자들 어그로 먼저 끌어놓고 한 번에 들이닥쳐라. 하나씩 치면 나머지 공장들 다 꽁무니 빼니까."
[기본 중의 기본이죠. 그래서 이바노씨 찾아갔다는 그 갈퀴날들은 어떻게 하셨나요? 걔들 살아있나요?]
"자기들 본진을 까발리더라고. 와서 진득하게 얘기하자는데."
[본진 한복판에서라면 이바노 씨를 어떻게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모양이네요. 쯧쯧.]
"그리고 나를 해체해서 파츠를 손에 넣으려는 목적도 있겠지."
[파츠?]
"다진 고기 공장이랑 맥스패티 털어서 증거 확보한 인육. 과학 수사국에 분석 넣어봤잖아? 결과 어땠어?"
[어땠냐고 물어보신다면... 지랄났다고 밖에 대답이 안 떠오르네요. 그 수많은 내장과 살덩이들의 유전자가 전부 일치했어요. 한 사람에게서 그렇게 많은 고기를 뽑아냈을 리는 없고 이리들의 개짓거리라고 봐야하는데... 음? 잠깐만요? 방금 파츠라고 하셨죠? 아아...!]
"감이 오지?"
[알만 하죠. '인형사'군요.]
인형사. 인체의 일부 혹은 전부를 인위적으로 복제하고, 더 나아가서는 생명 활동 능력을 부여하는 마도학자의 한 분파이다. 의학, 생명공학, 이명 극복 부문에서 혁신을 일으킬 기대치가 높지만, 악용될 경우의 여파에 대한 우려 또한 상당하기에 인형사는 헥센테크 마도학 중에서도 사도(邪道)로 꼽힌다.
학계와 사회에서의 인식이 안 좋아 투자자를 확보하기 어려운 데에 비해 연구에 드는 비용이 막대하다 보니 실제로 이리들의 길로 빠지는 경우가 많다. 결국 이러한 악순환 속에서 인형사에 대한 인식은 더더욱 암울해지고 말았다.
[역시 이바노 씨네요. 어떻게 눈치 채셨나요?]
"그 어마어마한 양의 인육을 인간 사냥이나 양식으로 꾸준히 수급하기는 무리지. 라쿠이르의 인구를 생각하면 그게 전부 근처에서 도살한 사람이라는 건 말이 안 되잖아. 그만한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동안 기사단과 수사 당국이 멍때리고 있었다면 라쿠이르는 진작에 혼돈의 도가니가 됐지. 인형사라면 마법사들 뇌파의 용도도 충분히 짐작이 가고, 또 내가 무슨 인체 개조를 받았는지 집요하게 파내려고 들던 것도 강력한 파츠를 뜯어내기 위함이겠지."
[음음음. 이 정도면 정말로 인형사가 아니라면 어색할 정도입니다.]
에반은 V에게서 받은 약도를 만지작거리며 유티스에게 말했다.
"놈들 본진의 주소는 내가 가지고 있어. 폐병원을 매입해서 개조하여 공방으로 쓰는 중인 모양이야."
[거미들 풀까요? 아니면 빠져나가지 못하게 거미줄만이라도 쳐놓을까요?]
"아니. 너희는 빠져있어. 내가 수술 집도한다"
[수술이요? 단어 선택이 적합하지 않은데요? 수술이라는 건 배를 가르고 나서 다시 봉합을 한다구요. 근데 이바노 씨는 배를 갈라놓고 다시 꿰매놓을 건가요?]
"아니. 다 벌려놓을 건데?"
[수술 같은 유식한 단어 말고, 이바노 씨가 평소에 즐겨 쓰는 단어를 쓰셔요. 때린다, 조진다, 똥 퍼낸다 기타 등등 이런 게 이바노 씨가 좋아하는 단어잖아요.]
"거 참 프릴이 듣고 있는데 체면 다 구겨놓기는."
[근데 한 가지 신경 쓰이는 점이 있습니다.]
"뭔데?"
[이렇게 어택 포인트가 훤히 드러났으면 그냥 저에게 좌표만 찍어주셔도 뒷일은 거미들이 알아서 싹 해결할 텐데요. 왜 굳이 알고도 덫을 밟으러 들어가시려 하시죠?]
"그렇게 물어본다면 난 늘 하던 대답밖에 들려줄 게 없지."
[아아, 또 '더 큰 사냥감을 노린다' 라고 하시려고요? 정말 한결 같으시네요. 거미줄을 떠났어도 여전하셔요. 처음부터 이바노 씨의 목적은 갈퀴날들을 체포하는 게 아니였군요.]
"마음에 안 드냐?"
[마음에 들고 안 들고가 어딨습니까? 이바노 씨가 그렇다는데 제가 뭘 어떻게 하겠어요? 일단 저는 저대로 상황을 주시할 겁니다.]
"그래. 여튼 너에게 부탁하고 싶은 게 하나 있다."
[부탁이요? 이바노 씨가요? 저한테요? 세상에. 그게 뭘까요?]
에반은 깐족거리는 유티스를 한대 쥐어박고 싶었지만 부실에서 수사 당국까지는 거리가 멀기 때문에 나중으로 미뤄두고 용건을 말했다.
"내일 하루 훈련장을 빌릴 수 있을까?"
[훈련장이요? 이바노 씨도 훈련을 하셨나요?]
"나 말고. 내가 지도해야 할 애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