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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0화 〉3-2. 압박 (4) (70/88)



〈 70화 〉3-2. 압박 (4)

예나 지금이나 국가의 기반 시설은 대부분 지배 계층이 기거하는 중심도시에 몰려있기 마련이다. 이 점은 왕도 루니아를 제외한 다른 모든 아그루스 제국의 영토들도 다 마찬가지지만, 그 중에서도 라쿠이르는 특히나 영주들의 생활 반경과 마법 학원의 주변을 벗어나면 산맥만 첩첩이 펼쳐진 대자연의 품속이 된다.

라쿠이르는 산과 바다를 모두 갖춘 아름다운 샘물같은 곳인지라 많은 마법사와 학자들이 도시의 매연에서 벗어나 여생을 보낼 장소로 택해왔다. 이런 산속의 현자들에게 가르침을 청하고자 제국 곳곳에서 모여든 사람들이 작은 도시를 세웠고, 이 도시는 오늘날 왕도 루니아와도 견줄만한 교육 특구로 자리매김하였다.

처음 세웠을 때는 도시라고 부르기도 민망할 만큼 작은 도시였지만, 여러 상회들의 투자 자본이 유입되면서 영주들의 관심과 지원이 쏠려 기반 시설을 확충하고 빠르게 성장했다. 그중에서도 특히나 백화 상회의 막대한 초기 개척 자금이 라쿠이르 도시 개발의 효시(嚆矢)를 쏘아올렸다 할 수 있다.

그래서 지금도 라쿠이르의 가장 번화한 시내 중심가에는 상업연합회가 있고, 그 중앙에는 백화 상회의 지부 건물이 우뚝 솟아있다. 마치 백화 상회가 이곳 시장 경제의 중심을 꽉 잡고 있다는 걸 과시하듯이.

"빨리 준비해라! 복장 상태 한번  점검하고 줄 똑바로 맞춰!"

"서둘러! 혹여나 아가씨 앞에서 볼썽사나운 모습 보였다가는 그냥 안 넘어간다!"

검정색 제복을 단정하게 차려입은 직원들이 분주한 걸음으로 움직였다. 그들의 제복 칼라에서 백화 상회의 문양을 본따 새겨진 뱃지가 반짝이고 있었다.

"아가씨께서 도착하셨습니다!"

라벤더 보랏빛이 감도는 벽안이 매력적인 흑발의 여인이 붉은 카펫을 밟고 안으로 들어왔다. 좌우에 일렬로 주욱 늘어서서 대기중이던 백화 상회의 직원들이 고개 숙여 한 목소리로 인사했다.


"오셨습니까, 아가씨!"


백화 상회 총회장의 외동딸이자 라쿠이르 지부의 특임(特任) 이사, 유리아 릴리스. 그녀는 칼같이 각 맞춰서 고개를 숙이고 있는 상회 직원들에게 눈길을 주지 않았다. 혹여나 어느 불특정 직원에게 시선을 보냈다가는 그로 하여금 '어째서 이쪽을 보시지? 내가 뭐 잘못했나? 복장이 불량했나?' 등의 불편한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오셨습니까, 아가씨."


집사풍으로 차려입은 나이 든 직원 하나가 유리아에게 인사했다. 유리아도 그의 인사에 답했다.

"그웨인 씨, 제가 실례를 끼쳤습니다. 이렇게 일정도  잡고 갑작스럽게 찾아와서."


"실례라니요, 천만에 말씀을요. 아가씨의 상회에 아가씨께서 찾아오시는 것일 뿐인데 일정이 무슨 필요고, 실례가 웬 말씀이십니까? 자, 안으로 모시겠습니다."


유리아는 노신사 직원 그웨인의 안내를 따라 자신의 사무실로 자리를 옮겼다. 유리아가 사무실에 들어오자 책상을 닦고 있던 어린 청소부 소녀가 화들짝 놀라서는 걸레 양동이를 들고 나가려고 했다.


"잠깐. 기다리세요."

"!!"

유리아가 부르자 청소부 소녀의 자그마한 어깨가 철렁하고 들썩이다가 움츠러들었다. 그녀는 잔뜩 위축된 모습으로 조심스럽게 유리아가 있는 쪽을 돌아봤다.

"...."

"본 적 없는 얼굴입니다만, 여기서 일한지 얼마나 됐습니까?"


"...."


청소부 소녀는 그저 눈을 깜빡이기만 할 뿐 대답이 없었다. 그웨인이 말없는 청소부 소녀 대신 대답했다.

"이번에 새로 들여왔습니다. 남부 지역의 분쟁 격전지에서 보내진 아이라 공용어를  줄 모릅니다. 말이  통하긴 하지만 나이에 비해 눈치가 빠르고 일도 똑부러지게 잘해서 크게 불편한 점은 없습니다."

유리아는 자신의 책상에 세팅되어 있는 다과용 쿠키와 초콜릿을 청소부 소녀에게 쥐어줬다. 긴장한 얼굴로 안절부절 못하는 그 꼬마에게 유리아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고 아무 말 하지 않았다. 과자를 받아든 청소부 소녀는 고개를 꾸벅하고는 사무실 밖으로 나갔다. 청소부 소녀가 나가고 문이 닫히자 유리아는 그웨인에게 말했다.


"앞으로 매일  사무실에 빵 바구니를 두고 저 아이가 자유롭게 집어갈 수 있도록 지도해 주십시오."


"외람되오나 혹여나 해서 말씀 드리지만, 이미 매일 1천룬짜리 지폐 두 장을 팁으로 주고 있습니다. 아가씨께서 원하신다면 팁을 더 챙겨 주겠습니다."


"아뇨. 돈은 안 됩니다. 돈을 줬다가는 그대로 위탁소 어른들의 주머니로 들어가는  정해진 수순이니까요. 반드시 먹을 거나 양말 같은 물건으로 지급하세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제가 상회에 들어왔을 때 줄지어 인사하던 직원들 말입니다만."


"예, 어디 마음에 안 드시는 부분이라도 있습니까?"

"제가 꽤나 갑작스럽게 왔음에도 불구하고 준비가 잘 되어있더군요."


"물론입니다. 철저하게 교육을 시켜뒀죠."

"앞으로는 할 필요 없습니다."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그웨인 아까 당신이 했던 말대로 제가 제 상회에 찾아오는 것일 뿐인데 허례허식으로 그 많은 직원들이 업무를 잠시 중단하는 건 비효율적이지 않습니까? 무엇보다도 제가 부담스럽습니다. 그러니 앞으로는 생략하세요."


"이해는 합니다만, 아가씨, 다른 중견급 상회들도 이 정도는 하는데 백화 상회의 특임 이사씩이나 되는 아가씨께서 의전도 없이 홀로 상회에 발을 들인다면 남들 보기 어떻겠습니까?"


"남들 보기 어떤지는 저희의 이 백화 문양 뱃지가 충분히 말해줍니다. 문양만으로 자기들의 위상을 말하지 못하는 상회들이나 알맹이 없는 스노비즘에 의미부여하는 법입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지시하신대로 직원들에게 공지해 두겠습니다."


유리아는 고개를 끄덕이고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에논은 이번에도 같이 오지 않았습니까?"

"소유즈는 오르토스 학생회의 업무가 바쁠 시기니까요. 미리 정해진 상회 일정이나 급한 용무가 아닌 이상 되도록이면 학원 일과에 집중하도록 두고 싶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래도 경호 인력을  대동하시고 다니십시오."

그웨인은 찬장을 열어 찻잎과 원두들을 살폈다.

"커피와  중에서 어떤 거로 드시겠습니까?"

"아, 괜찮습니다. 저는 이거로 하겠습니다."

유리아는 연분홍빛 종이팩에 담긴 딸기우유를 꺼내 책상 위에 올려놨다. 그웨인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찬장 문을 도로 닫았다.


딸기우유를  모금 쪼로록 빨아마시자 경쾌한 단맛이 부드러운 우유맛과 함께  위를 노닐었다. 삼키고나면 미묘한 체리향이 뒷맛에 살짝 남아 아른거렸다. 스트레스를 줄이는 데에는 달달한 게 딱이라는 어느 지도원의 조언대로 딸기우유  모금에 기분이 조금 풀리고 집중력이 오르는 기분이 들었다.

유리아는 한 모금 마신 딸기우유 팩을 책상 위에 살며시 올려놓고, 학원에서 챙겨온 서류를 펼쳤다. 서류는 몇몇 상회들의 이름이 적힌 명단이었다. 명단에 나와있는 상회들은 기사단 주둔군과 거래한 상회들이었다. 백화 상회에게 보복성 후원 중단을 맞고 재정에 치명타를 입은 기사단 주둔군은 이렇게 다른 상회들을 통해 후원금 루트를 뚫었다. 각 상회들이 기사단에게 후원금을 지속적으로 송금하는 대가로 무엇을 약속 받았는지 역시 명단에 나와있었다.

기사단의 뒷사정인 만큼 외부로 유출되지 않도록 꼭꼭 숨겨둔 기밀 문서지만, 프릴 루에리아의 압박 앞에서 순순히 토해내지 않고 버틸 수가 없었다. 프릴이 문서를 손에 넣어서 유리아에게 넘겨줬으니 이번에는 유리아가 손아귀에 힘을 줄 차례였다.


"그웨인."

"예, 아가씨."


"여기  명단을 받으세요."

"예."


"거기 나와있는 상회들의 이사회에 전하세요. 기사단에 대한 모든 금전적, 물자적 후원을 중단하라고."

유리아가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혹여나 백화 상회의 요청을 무시하고 기사단을 계속 후원할 경우 불이익이 따를 거라고 덧붙이시고요."

"구체적으로 어떤 불이익을 줄지는 이사들과 논하도록 할까요?"

"아니요. 제가 다 생각해뒀습니다."


유리아는 체스부 부실에서 적어온 공책을 펼쳐서 읽었다.

"가령 이번에 라쿠이르 상업연합회에 새로 가입한 고르곤 상회. 낙농업을 주력으로 삼고, 발효 치즈로 중부 지역에서는 나름 인지도 있는 상회입니다. 라쿠이르 시장을 개척해서 본진인 중부 지역과 주요 거래처인 북부 지역을 연결하는 치즈 유통 체인을 만드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확실히 곰팡이 치즈를 만드는 기술은 뛰어난 상회입니다. 그런데 가장 큰 거래처인 북부 지역에 화물차가 도착할 무렵이면 유통 과정에서 발효가  진행되다 보니 최적의 치즈를 공급하기 어렵다는 문제점에 골머리를 앓아왔죠."


"이번에 라쿠이르에 무사히 정착만 한다면  고질적인 문제점을 깔끔하게 해결할  있을 겁니다. 하지만..."

유리아의 눈빛이 바뀌었다. 성실한 모범생이나 엄격한 학생회장의 눈빛이 아니었다. 시장을 쥐락펴락하는 괴수급 상회의 후계자답게 계산적이고도 냉철한 눈빛이었다.


"하지만 백화 상회가 라쿠이르의 유제품 사업에서 손을 떼면 어떨  같습니까?"

"예...?"


"고르곤 상회의 라쿠이르 진출 전략은 전적으로 백화 상회와 레인빌 상회 양자 대결의 어부지리 반사이득에 걸려있습니다. 그런데 백화 상회가 유제품에서 손을 떼면 유일한 라이벌이 사라진 레인빌 상회는 손쉽게 라쿠이르의 유제품 시장을 독식할 것입니다. 고르곤 상회가 파고들던 틈새시장이 한 순간에 사라진다는 뜻이죠. 틈새가 사라져 버리면 레인빌 같은 거대 상회를 고르곤 상회가 뚫는 건 체급 차이상 불가능합니다. 어렵사리 기사들과 영주들에게 로비해서 매입해낸 라쿠이르 목초지가 애물단지로 전락하는 것 역시 고르곤 입장에서는 큰 타격이죠."

"우리쪽의 손실을 감수하더라도 공격적인 전략을 취하시려는 겁니까?"


"이 정도 손실이야 고르곤 상회가 라쿠이르에서 밀려나고 난 뒤에 메꿔도 그만입니다."


"단호하다 못해 고르곤 상회에게 악감정이라도 있나 싶을 정도입니다. 다른 상회들도 이렇게 기사단과 손을 털도록 강요하면서 압력을 넣으실 계획이십니까?"


"네. 카무곤에서 소금 골렘을 취급하는 라카즈 상회는 안전성 검사, 품질 검사 가이드라인을 손봐서 화물 열차를 이용하지 못하게 막아두면 백기를 안 들 수가 없습니다. 억울하면 자기들도 철도를 깔던가, 그럴 기술이 없으면 열차 말고 차량을 이용해야죠.  무거운 소금 골렘을 싣고 북부 지역까지 올라올 자신이 있다면."

"라카즈 입장에서는 장사를 접던가 주둔군 후원을 접던가 택해야겠군요. 뭐, 여기선 누구라도 주둔군 후원 쪽을 접겠지만요. 가르믐 상회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협동조합까지 자체적으로 조직해놓고서 조업권 거래로 재미보는 그곳 말입니까? 간단합니다. 이스티아의 상회 몇 곳을 라쿠이르 상업연합회에 자리   있게 꽂아주면 됩니다."

"이스티아의 상회를요? 조업권을 꽉 쥔 협동조합을 손보는 것과 이스티아의 상회들이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이스티아 내해에서 잡히는 독특한 해산물들이 별 다른 견제도 없이 라쿠이르로 저렴한 가격에 유입되면 경쟁 시장의 논리에 따라 생선 물가가 대폭 하락할 수밖에 없고, 그렇게 되면 지금까지 가르믐 상회와  끄나풀 협동조합이 지켜오던 독점 구조는 붕괴를 피할 수 없습니다."


"흐음. 그거는 주둔군 압박 목적을 떠나서 구미가 당기는군요. 해산물 가격도 떨어뜨리고, 철면피 협동조합에게 제대로 한방 먹여주기까지."

"크렌부르크 상회는 설국 무역에 의존하니까 대륙 횡단 열차 이용 계약서만 꺼내도 알아서 항복할 겁니다.  억울하다고 하면 열차는 계속 이용할 수 있게 허가하되, 연료통과 엔진은 자사에서 만들어서 쓰라고 하세요. 백화의 기술 없이도 설국에서 얼어붙지 않으면 인정해  테니까요."

"라카즈도 그렇고, 크렌부르크도 그렇고. 그 밖에도 철도 유통망이 꼭 필요한 상회들은 전부 백화를 거역할 수 없습니다. 제국의 철도를 꽉 쥐고 있는 건 우리 백화 상회니까요. 명단에서 그런 부류의 상회들은 전부 철도 이용과 관련해서 불이익을 주는 방향으로 압박하면 되겠습니까?"

"네, 자세한 건 여기 적어뒀습니다. 그밖에 상업연합회에도 고지해주세요. 어느 상회건 기사단 주둔군에게 협력한다면 백화 상회에 대한 배신으로 받아들이고 단호히 대응하겠다고요."


"그럴 명분이 충분합니까? 비록 기사단의 태업(怠業)으로 인해 아가씨께서 위험에 처했던 점은 사실입니다만, 그럼에도 기사단은 영주들이 공인한 영지의 수호자이자 제국의 군대입니다. 이슈의 냄새를 맡은 전달자들이 백화 상회와 기사단을 적대 관계로 프레임 씌워서 언론질 한다면 백화 상회의 이미지에 타격이 클 겁니다."

딸깍! 유리아는 말로 대답하는 대신 녹음기를 하나 꺼내서 재생했다.

[예산이 모자라다는 변명을 하실 꺼면 저를 이런 방에 앉혀놓질 마셨어야죠. 명품으로 도배를 해놓은 방에서 비싼 차를 대접하면서 '저희는 돈이 없습니다' 라는 말씀을 하시면 설득을 하고자 하는 성의 조차 느껴지지 않습니다.]


[트, 특별히 신경 쓴 겁니다. 이번만 무리해서 특별히!!]

[당신들이 특별히 신경 쓸 건 시민의 안전 뿐입니다. 기사들이 무리해서라도 모든 시민의 안전을 지키고자 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황제의 영광은 저절로 따라 붙는 것이고요. 이런 쓸데없는 데에 기울일 신경을 제대로 된 데에 썼다면 저희 학원의 유학생이 그렇게 크게 다치지는 않았겠죠.]


[그 학생은 뒷골목의 동방인이지 않습니까? 동방인은 아그루스 제국의 시민이 아닙니다. 황제 폐하께 충성하지 않는 불충자들이라고요.]

[저 역시 동방에서  유학생들이 달갑지 않습니다. 그래도 말입니다. 사람이 위험에 처한 것 아닙니까? 아무리 동방에서 온 사람들이 불충자고 눈에 거슬려도 목숨은 구하고 보는 게 기사도라는 거잖습니까?]


[기다려 보십쇼. 이대로 후원금을 삭감한다면 우리 주둔군은 앞으로도 정말 중요한 순간에 전투에 임하기 어려울 겁니다. 그렇게 된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시민들에게 돌아가겠죠. 후원금을 갑작스럽게 삭감한 백화 상회의 이미지 역시 타격을 입을 테고요.]

[뭔가 오해를 하고 계신 거 같은데. 주둔군에게 물자를 후원하는  그것이 마땅히 짊어져야 하는 의무라서가 아닙니다. 백화 상회의 호의가 계속되다 보니 권리로 굳은 양 착각하시는 거 같군요. 백화 상회 역시 당신들의 기사도에게 거는 기대가 있으니 후원을 해온 겁니다. 하지만 당신들은 그런 기대를 철저히 저버렸죠. 실망을 시켰으면 대가가 따르는 건 당연한 거 아니겠습니까?]

[그놈들은 짐승들이야!! 동방 것들은 다 유인원 보다는 낫고 인간에는  미치는 그런 미개한 짐승들이라고! 네 말대로 기사라면 사람이 위험에 처했을  목숨을 구하고 봐야겠지. 하지만 그 년도, 신고를 하러온 년들도 다 사람 취급 받을 자격이 없는 것들이였단 말이다! 그런 것들을 위해 무기를 들고 뒷골목을 들쑤시는 수고를 해야 한다니, 그런 건 시민들 역시 합당하지 않다고 생각할 걸?!!]


[그렇군요. 그게 당신의 본심입니까? 저의 어머니가 동방인이라는 건 아십니까?]

[아아앗....??!!]


[몰랐던 모양이군요. 네, 방금 말했던 대로입니다. 제 어머니는 유인원 보다는 낫고 인간에는 못미치는 미개한 짐승입니다. 그리고 저 역시 절반은 어제 이곳을 찾아온 그 사람 취급 받을 자격 없는 자들과 같은 피가 흐르고 있죠.]

[자, 잠시만, 잠시만 내 얘기를 들어주십시오. 그건... 그런 뜻이 아니라...]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후원 금액을 절반 삭감하겠다는 건 경솔한 판단이였습니다. 4분의 1로 삭감하겠습니다.]

[뭐?!! 잠깐!!]


[제 어머니와 제 학우들을 모욕하고도 가볍게 넘어갈 거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유리아는 재생이 끝난 녹음기를 다시 주머니에 집어넣으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최근에 얻은 교훈입니다. 녹취를 해두는 습관을 들이면 언젠가 도움이 되죠."

"흐음. 직접 들어보니 확실히 쓸개 빠진 게으름뱅이 놈들이로군요."


"언론 업계의 사설 전달자들이야 어차피 광고와 스폰서로 빌붙어 먹는 작자들입니다. 주둥이를 묶어버릴 방법도, 다른 쪽을 보고 짖게 만들 방법도 얼마든지 널렸습니다."

"제가 생각했던  이상으로 단단히 준비하셨네요."

"일방적으로 압력만 행사하면서 기사단과의 단절을 강요하면 분명 반감이 생길 테니, 기사단 대신 백화 상회를 선택했을 때의 이익 또한 제시해야겠죠. 이 점은 저 혼자 결정하는 대신 이사들과 논의하고 싶습니다. 최대한 빠른 시일내로 이사회를 소집해주세요."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아가씨."


유리아는 딸기우유를 들어올려 빨대를 살짝 물었다. 달짝지근한 우유맛을 음미하고는 혀끝으로 입술을 훑었다.

"누구를 선택해야 하는지는 고민할 필요도 없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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