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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4화 〉3-1. 다소 거친 방식 (10) (64/88)



〈 64화 〉3-1. 다소 거친 방식 (10)

산업화와 도시발달의 마수가 닿지 않은 외곽의 인프라가 낙후되어 있다는 사실은 밤이 되면 더욱 여실하게 체감할 수 있다. 유지 보수 공사가 제때 시행되지 않아 심심하다 싶으면 바로 포트홀을 밟고 덜컹거리게 되는 포장도로와, 가로등 하나 설치되지 않아 전조등 불빛에만 의지해야 하는 어두운 밤길 때문이다.


맥스패티의 로고가 그려진 화물차 하나가 밤길을 헤치며 달려가고 있었다. V 하우스의 관리자가 조수석에 앉아있었고 시궁쥐 하나가 운전대를 잡고 있었다.  저문 첩첩산중의 텅 빈 밤길을 달리는 건 꽤나 으스스하지만 두 사람에게는 이미 익숙한 일과였다.

"시끄러운데 노래  끄지?"


피곤에 쩌든 표정을 한 관리자가 조수석 차창에 머리를 기대고 푸념했다. 카세트에서는 음질 나쁜 싸구려 팝송 테이프가 재생되고 있었다.

"넌 고개 박고 자도 상관 없지만, 난 운전해야 해서 졸면 안 되잖아. 이렇게 썰렁하고 지루한 길에서는 노래라도 안 틀어놓으면 바로 졸거든?"


"씨... 맨날 틀던 거 계속 틀어대니 옆에 앉은 나까지 가사를 외울 지경이야."

"보아하니 민찌 공장 노루마 채우기는 진작에 글러먹었는데, 설탕 쪽 애들이랑 얘기는 얼마나 됐어?"

"얘기 하나마나지. 지금 이 상황 자체가 폭탄 돌려먹기 밖에 더 돼? 하여튼 기사단 밥버러지들 때문에 이게 뭐냐?"


관리자는 짜증이 잔뜩 섞인 목소리로 말하고는 차창 밖을 봤다. 화물차의 전조등 불빛이 닿지 않는 곳은 컴컴한 어둠뿐이었고, 먼곳에 있는 산의 능선만이 어둠 속에서 간신히 보였다. 그런데 빛나는 새 한 마리가 갑자기 날아와서는 날개짓을 하며 화물차 옆을 따라붙었다.


"...뭐야?"

관리자가 졸음이  달아나 눈을 동그랗게 떴다. 눈 크게 뜨고 다시 봐도 그것은 분명 불빛으로 이루어진 새였다. 까불듯이 파닥거리며 관리자의 눈앞을 아른거리던 그 새는 이윽고 반딧불이 같은 작은 불빛으로 흩어져 모습을 감췄다.

"너도 봤어?"


"뭐를?"


"빛나는 새 말이야. 방금까지 반짝반짝 거리면서 날아다니다가 가루처럼 흩어졌잖아!"

"갑자기 뭔 잠꼬대야? 너 그 짧은 사이에 졸면서 꿈까지 꿨냐?"

"나  졸았어!"


"피곤하다더니 헛것이 보이나..."


뚝. 카세트의 음악이 꺼지자 순식간에 차 안이 조용해졌다. 연식 오래  화물차 특유의 모터 소리가 귀에 거슬리긴 했지만 충분히 적막했다.

"이제야  거 같네. 거 봐, 노래 끄니까 이렇게 차분하고 좀 좋아?"


"내가 안 껐는데?"

"뭐?"


"나 안 껐어. 카세트에 손도  댔다고."

"뭐? 으음... 몰라. 조용해졌으면 됐지."


딸깍. 그때 갑자기 화물차의 전조등이 꺼졌다. 밤길을 밝힐 유일한 불빛이 꺼지자 한치앞도  보이지 않았다.

"뭐 하는 거야?"

"내가 안 껐어. 건드리지도 않았는데 지 혼자 꺼졌다고. 젠장! 얘는 또 왜 말썽인지."


"아 그러니까 제때 정비 하라고 했잖아. 안 그래도 낡아빠졌는데 아직 거뜬하다고 그렇게 큰소리치더만... 이제 어쩔 셈이야? 나중에는 아예 눈 감고 운전하려고?"


"하! 좀 기다려 보라고!"

운전석에 앉은 시궁쥐가 껐다 켰다를 반복하자 이윽고 전조등에 다시 불이 들어왔다.


"봤지? 좀만 어르고 타이르면 되는..."


전조등이 다시 켜져서 시야가 확보되자 방금 전까지만 해도 없었던 사람이 갑자기 도로 한 가운데에 나타나 서있었다.


"이런 씨발...!! 뭐야?!"


끼이이익!! 반사적으로 급브레이크를 밟고 멈춰 섰다. 갑자기  한복판에 나타나 화물차를 가로막은 그 사람은 화물차가 자신의 바로 눈앞까지 달려와서 아슬아슬하게 멈췄는데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그 자리에 굳은 듯 서있었다.

"시발 이런 곳에 왠 사람이... 그보다  갑자기 길을 쳐막고 지랄이지?"


운전석의 시궁쥐와 관리자가 살펴보니 화물차를 막아선 사람은 젊은 여인이었다. 늘씬한 체형과 큰 키가 동방의 전통 복장과 어우러져 강조되고 있었다. 하지만 감정을 찾아볼 수 없는 얼굴과 생기없는 눈이 어두운 산길과 일체를 이루어 섬뜩한 분위기를 풍기기도 했다.


곤룡회의 2인자 허설이었다. 수장의 소환서를 받은 그녀는 지체없이 먼곳을 달려왔고 추적 인주가 새겨진 화물차를 따라잡았다.

"어이!! 뒤지고 싶으면 혼자 뛰어내릴 곳이 널렸는데 왜 재수없게 남의 차 앞에 뛰어들고 지랄이야?! 요즘 보험은 동방 새끼들 로드킬 당해도 보험금 나오나? 엉?!"

운전석에 있던 시궁쥐가 차창을 내려 고개를 내밀고는 욕설을 퍼부었다. 그러나 허설은 여전히 미동도 하지 않고 서있었다. 빠앙! 빵빵!! 화물차가 신경질적으로 경적을 울려댔다.


"꺼져!! 길 쳐막지 말고 느그 고향에 가서 마늘이나 까쳐먹어라 병신같은 년아!"


"....."

"아 쥐포되기 싫으면 빨리 꺼지라니..."


콰쾅!! 와지끈!! 허설이 화물차를 걷어차자 우지끈 하는 소리와 함께 범퍼가 찌그러지고 화물차가 뒤로 밀려났다. 그 충격에 앞자리에 타고 있던 시궁쥐와 관리자도 교통사고라도 당한 것처럼 격하게 덜컹거리며 몸이 흔들렸다.


"뭐, 뭐야 시발?!"


화물차가 찌그러지는  소리를 신호로 어둠 속에 모습을 감추고 있던 곤룡회 대원들이 도로 위로 올라와 화물차를 포위했다. 무언가 잘못 됐다는  뒤늦게 깨달은 시궁쥐가 차 안에 넣어둔 총을 꺼내 탄창을 장전했다.


덥썩! 시궁쥐가 총을 쏘려고 차창 밖으로 몸을 내밀자 허설의 손아귀가 그를 붙잡았다. 이윽고 덩치 큰 시궁쥐가 허설의 무지막지한 힘에 끌려 화물차 밖으로 끌려나왔다. 허설은 그를 바닥에 딱지 치듯이 패대기 치더니, 다시 멱살을 붙잡아 들어올려 반 바퀴 휙 돌리고는 화물차 옆부분에 집어던졌다. 쾅! 시궁쥐가 쳐박힌 화물차 몸체가 움푹 찌그러졌다.


풀썩! 차를 들이받고 튕겨져나간 시궁쥐가 바닥에 나뒹굴었다.


"치워라."

허설의 한 마디에 곤룡회 대원  명이 쓰러진 시궁쥐를 들어올려서는 가드레일 바깥의 비탈길로 대충 내다버렸다. 비탈길을 따라 데굴데굴 굴러간 시궁쥐는 도랑 한 구석에 늘어졌다.


휙. 허설이 눈을 돌려 관리자를 봤다. 허설의 꿰뚫는 듯한 시선이 향하자 관리자는 오금이 저려와 마치 범을 눈앞에 둔 작은 동물과 같이 움츠러들었다.

"내려라."

허설의 낮은 목소리가 관리자를 무겁게 짓눌렀다. 허설은 겁에 질려 꼼짝도 못하고 있는 관리자에게 다가가 말했다.

"제국어를 알아듣지 못하나? 내려라. 제 발로 내리지 않겠다면 내 손으로 끌어내겠다."

"자, 잠깐!!"


덜컥! 관리자는 허설이 손을 살짝 까딱하기만 했는데 소리를 치며 차문을 열었다. 그리고는 비틀거리며 차에서 내렸다. 풀리기 직전인 다리가 후들거리고 있었다.

"꿇어 앉아라."


관리자는 허설의 지시대로 그 자리에 무릎꿇고 앉았다. 그때 화물칸의 자물쇠를 푼 아선이 허설을 불렀다.


"언니, 짐칸 땄어요. 한 번 보실래요?"

허설이 발걸음을 옮겨서 화물칸 앞에 섰다. 자물쇠를 푼 아선이 화물칸의 문을 활짝 열었다. 문을 열자마자 기분 나쁜 잡내가 확 밀려왔다. 핏물을 빼지 않은 고기의 냄새였다. 악취를 무릅쓰고 살펴보니 고기 담아두는 통 이외에도 갈고리에 매달린 벌거숭이 고기들이 대롱대롱 흔들리고 있었다.

그런데 갈고리에 매달린  고기들은 소나 돼지가 아니였다. 곧게 뻗은 팔다리하며 목매달고 죽은 시체마냥 축 늘어진 자세...

"인육이다..."

"이야, 아그루스에도 이런 엉큼한 식문화가 있었네요. 아그루스 애들은 이걸 무슨 맛으로 먹을까요? 국밥도 없는 녀석들이 말이죠. 으으...냄새 심한데 이제 닫아도 될까요?"


아선은 토막난 사람고기가 갈고리에 걸린  흔들거리는 살풍경한 광경을 눈앞에 두고도 촐싹맞게 농담을 던졌다. 허설은 무릎꿇고 앉아있는 관리자에게 말했다.


"공장으로 안내해라."

"네...?"

"공장으로 길을 안내해라. 지금 당장."


"아아, 그, 그건..."


허설은 화물칸에 실려있던 고기통에서 척추 하나를 꺼냈다. 허설이 관리자가 보는 앞에서 손에 힘을 주자 단단한 사람 척추뼈가 쿠키 마냥 바스라졌다. 허설은 으깨진 척추뼈를 버리고는 손을 털었다.


"안내해라."

"히익!!"

관리자는 완전히 패닉에 빠진 상태였다. 관리자가 혀가 꼬여 횡설수설하자 아선이 허설에게 다가가 말했다.

"아이 참! 언니가 너무 겁주는 바람에 완전히 넋이 나가버렸잖아요! 이래서야 공장 가는 길을 알려주겠어요? 알려주고 싶어도 머리가 새하얘져서 까먹었겠다."

"살려뒀더니만 쓸모 없군."

"어쩔 수 없네요."


아선이 키득키득 웃으며 가드레일 쪽으로 걸어가서는 비탈길 밑에 시궁쥐가 뻗어있는 도랑에 대고 소리쳤다.


"아저씨! 거기 도랑 밑에 자리 하나 있어요?!"

아선은 자세히 들으려고 손을 귀에다 대고 쫑긋거리는 시늉을 했다.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지만 그녀는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히죽거렸다.

"이야~ 널널하니까 얼른 들어오라는데요?"


허설이 관리자에게 등을 돌리고는 시크한 목소리로 한 마디 했다.

"치워라."

"!!"

허설의 한 마디에 대기중이던 곤룡회 대원들이 허리춤에 찬 칼을 뽑고 관리자에게 다가갔다. 관리자는 허설을 향해 엎드려서 필사적으로 소리쳤다.

"안내할께요!!"

허설이 손짓하자 관리자에게로 다가가던 곤룡회 대원들이 일제히 멈췄다. 허설은 돌아서서 관리자를 내려다봤다.

"차는 이쪽에서 준비한다. 공장까지 길을 안내해라. 만에 하나라도 허튼 수작 부리면 어떻게 될지는... 알 일이 없기를 바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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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쿠이르 외곽의 어느 가공육 공장. 이미 꽤 늦은 밤 시간대임에도 공장에서 분쇄기 돌아가는 소리가 쉴틈없이 울렸다. 분쇄기들은 저마다 살코기나 내장을 갈아서 다진 고기를 토해내고 있었고, 곳곳에서 토막난 몸뚱이들이 분쇄기에 들어갈 차례를 기다리며 파리 날리고 있었다.


시궁쥐 몇 명이 분쇄기에서 나온 다진 고기들을 옮기고 있는데 공장 안으로 화물차 한 대가 들어왔다. 시궁쥐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 화물차로 걸음을 옮겼다.


"어이! 직영점에서 차가 왔다."

"드디어 왔네."

작업 중이던 시궁쥐들이 몰려오자 화물차가 멈춰 섰다. 시궁쥐들은 평소에 보던 것과는 다른 생김새의 화물차에 위화감을 느꼈다.


"야, 차가 뭔가 좀 바뀐  같지 않냐? 맥스패티 로고는 어디 갔어?"

"크기도 뭔가  더 커진  같은데."

"이참에  바꿨나보지. 안 그래도 오래 되서 바꿔야 한다고 맨날  나왔잖아."


"그런가...?"

"아, 아무튼 왔으면 됐지. 설마 엉뚱한 차가 잘못 찾아오기라도 하겠냐?"

덜컥! 앞좌석의 문이 열리고 V 하우스의 관리자가 차에서 내렸다.

"거봐. 내 말이 맞잖아?"


시궁쥐들은 관리자에게 다가가 말했다.

"차 바꿨네? 언제 뽑았대?"

"그, 그냥 이것저것 있었지."


"새 차인데 왜 더 늦게 도착한 거야? 기다리다  빠지고 어깨 나가는 줄 알았다고."

"미, 미안... 오다가 일이 좀 있어서..."

"응? 얘 오늘  이렇게 얌전하냐? 평소 성격 같았으면 지랄 말고 냄새 나니까 빨리 나가게 물건이나 실으라고 욕 박았을 텐데."


"조, 조금 피곤한가봐."


"진짜 얌전하네. 니가 맨날 피곤 했으면 좋겠다 야."

"그, 그런가...?"

경직된 관리자의 모습은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시궁쥐들은 쟤가 뭘 잘못 먹었나 싶었지만 신경쓰지 않고 할일이나 잽싸게 해치우기로 했다. 시궁쥐 몇 명이 다진 고기가 담긴 통들을 실으려고 화물칸의 문을 열었다.

콰쾅!!


"크억?!!"

시궁쥐가 문 손잡이를 당기자 갑자기 화물칸 문이 엄청난 힘으로 벌컥 열어 젖혀졌다. 그 바람에 문에 부딪친 시궁쥐가 저만치 튕겨져 나갔다. 박력 있게 문을 걷어차 시궁쥐 하나를 날려버린 허설이 발차기 자세로 들어올린 다리를 척 내려놨다.

"누, 누구야... 크악?!"

빡!! 허설이 화물칸에서 뛰어내리면서 주먹을 휘두르자 막아서고 있던 시궁쥐가 바닥에 쳐박혔다.

"시발?!! 야!! 다들 와!!"


시궁쥐들이 정육칼과 발골용 칼 등 날카로운 것들을 잡히는대로 챙겨서 우르르 몰려왔다. 허설은 몰려오는 적들을 한치도 흔들리지 않는 눈동자로 살펴보며 건조한 목소리로 한 마디 했다.


"위치로."

허설의 한 마디에 화물칸 안에서 대기중이던 곤룡회 대원들이 뛰쳐나왔다. 검을 뽑아든 대원들과 공장 안의 시궁쥐들이 격돌해 패싸움을 벌였다.


곤룡회의 모든 대원들은 동방의 정식 수행자들이다. 동방의 엄혹한 법도를 지키며 수행에 힘쓰는 몸인 만큼 아무리 낮은 등급인 徒(도)급 대원이라고 해도 기량과 경험치 등의 모든 측면에서 시궁쥐 쯤이야 가볍게 상회한다. 그러나 수적 열세를 무시할 정도로 압도적인 역량 차이를 보이지는 못한다. 곤룡회의 인원은  명도 안 되지만 공장 안에 있던 칼잡이 시궁쥐들 머릿수는 수십 명에 달했다. 徒급 대원  명이서 처리하기에는 적의 물량이 너무 많았다.

하지만 낮은 등급의 수행자들이 모인 곳에는 반드시 그들에게 귀감을 보일 상급 수행자들이 따라붙기 마련이다. 腕(완)급 대원의 역할이 바로 그것이다.

"아기 아선~ 뚜루뚜루! 귀여운! 뚜루뚜루 뚜뚜!"

귀감을 보이는 것과는 다소 거리가 멀어보이는 방정맞은 노랫소리와 함께 공장 여기저기에 문양이 나타났다. 아선이 제로식 검을 뽑아들고 폴짝 뛰어오르자 허공에 나타난 문양들이 보랏빛으로 변했다. 공중에 뛰어오른 아선이 보랏빛 도깨비불을 일렁거리며 사라졌고, 그와 동시에 공장 여기저기에 나타난 문양들이 파문을 일으켰다.

파문에 몸을 실은 아선은 눈으로 쫓아가지 못할 만큼 빠르게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그녀가 궤적을 일으킬 때마다 경로에 있던 시궁쥐들이 파죽지세로 우수수 쓰러져나갔다.


"마법이다! 놈들이 마법을 쓴다!"

공장 위층에서 아래쪽 상황을 내려다보던 시궁쥐들이 지원 사격을 위해 멧돼지 잡이 엽총을 꺼내 장전했다. 준비를 마친 시궁쥐 하나가 사격 자세를 취하고 총구를 겨누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싸움에 집중하고 있는 하급 곤룡회 대원  명의 머리가 조준되었다.

푹!! 방아쇠를 당기려고 각을 재던 그때 별안간 시궁쥐의 목덜미에서 핏줄기가 솟구쳤다. 풀썩! 맥없이 총을 놓친 시궁쥐가 쓰러졌다.

"뭐야?! 무슨 일이야!"

"젠장 뭐에 당한 거지?!  갑자기 피 뿜으면서...?!"

"이, 이것도 마법인가?! 진정해! 침착해! 당황할수록 오히려 더..."

뚜두두둑!! 시궁쥐가 말하다 말고 목이 휙 비틀렸다. 풀썩! 또 한 명이 전조도 없이 쓰러지자 시궁쥐들이 패닉에 빠졌다.


"썩 튀어 나와!! 이딴 장난질에 겁 먹을 거 같아?!"

남은 시궁쥐들이 허공에 대고 여기저기 총구를 돌리며 윽박 질렀다. 겁에 질린 시궁쥐가 아무 곳에나 대고 총을 쏴갈겼다. 푹!! 바늘이 그 시궁쥐의 경혈에 박혔다. 풀썩! 온몸이 굳어버린 그가 총을 놓치고 쓰러졌다.

"으... 으아아아!!"


남은 시궁쥐들이 뒤도 안 돌아보고 줄행랑 쳤다. 그러나 어디선가 날아온 바늘들이 그들의 경혈에 파파팍하고 꽂혔다. 모든 시궁쥐들이 쓰러지고나자 사람의 형체가 그림자를 거두듯이 스스슷 모습을 드러냈다.

후드를 뒤집어쓰고 마스크를  눈밑까지 얼굴을 가린 곤룡회 대원이었다. 밑에서 한바탕 칼춤을 추던 아선이  대원을 올려다 보며 소리쳤다.

"명아야! 그쪽은 어때?!"


"위층, 이미 정리됐다. 쥐, 약하다.  이상 기척이 감지되지 않는다. 내려간다. 모두를 돕는다."


스르륵! 명아라는 이름의 대원이 다시 후드를 뒤집어쓰자 그녀의 모습이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다. 얼마 안 있어서 명아가 아래층 아선의 옆에 다시 나타났다. 아선은 기지개를 켜며 자신이 쓰러뜨린 시궁쥐를 발로  밀어 치웠다.

"손맛이 허전해서 영~ 성에 안 차네. 허설 언니, 얼추 마무리 된 거 같은데?"


제압된 시궁쥐들이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고, 관리자는 아연실색해서 그 자리에 굳어있었다. 허설은 목을 졸라 들어올리고 있던 시궁쥐를 바닥에 내던져 버리며 무거운 목소리로 한 마디 했다.


"대기."

일곱 명의 곤룡회 대원들이 허설의 지시를 듣자마자 두 줄로 열을 맞춰 헤쳐모였다. 허설이 마지막 남은 맨앞의 한 자리에 서서 자세를 잡았다.

"수장님. 정리 됐습니다."

허설이 부르자 화물칸 안에서 누군가가 또각또각 하는 굽소리를 내며 걸어나왔다. 독사와 같은 눈과 요사스러운 표정을 감춘 동방의 여인이 부채를 촤라락 펼치며 모습을 드러냈다. 곤룡회의 수장 아라한이었다.

아라한은 인육 가공 처리 기계로 가득한 공장을 둘러봤다.

"이 정겨운 고향의 향기가 참으로... 역겹네요. 숨 쉬기도 싫을 만큼. 동방을 떠나 이역만리에 발을 들여서도 인육의 악취를 맡아야 한다니."

불쾌한 기색을 내비치던 아라한이 곤룡회 대원 한 명을 불렀다.

"윤서 양."


"네, 수장님!"


중학생으로 보이는 자그마한 소녀 하나가 부름을 받고 앞으로 나아왔다.

"천의 양에게 전해주세요. 학관 지하 밑에 뒀던 그 드럼통. 뚜껑을 딸 때가 됐다고요."


"아, 알겠습니다 수장님!"

윤서라는 이름의 작은 대원이 공장 한 구석으로 가서 무언가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작은 찻잔에 물을 받아서는 손가락을 살짝 담구고 찻잔의 수면을 노려보듯이 들여다봤다. 옆에서 아선이  마디 했다.

"그냥 처음부터 인주를 새기고, 화물칸에 실려다닐 필요 없이 바로 그걸 썼으면 안 됐나?"

"아선 언니, 늘 하는 말이지만, 제 능력은 만능이 아니에요. 이제 집중해야 하니까 방해하지 말아주세요."

윤서가 술식을 발휘하는 동안 아라한은 붉은 눈동자로 관리자를 흘겨봤다. 관리자는 그녀의 시선이 닿자 목덜미 뒷쪽이 오싹하게 식는 것을 느꼈다. 허설이 내뿜던 맹수와 같은 살기와는 다른, 마치 독사가 맨살을 타고 기어다니는 것만 같은 요사스러운 눈빛이었다.


"이 시설에 관해서는 묻고 싶은   많아요. 뭐, 당신도 결국은 말단이니까 당신 선에서 알려진  그다지 많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아는 범위 안에 있는 건 성실히 답해주셨으면 하는데."


"네, 네..."

관리자에게는  이외에 다른 선택지가 주어져 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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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 똑. 수조에 담아둔  위로 물방울이 떨어질 때마다 적막한 지하에 물소리가 났다. 국제 교류 학관의 지하실. 어두운 지하실 안에 드럼통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반가운 소식은 아니군요. 뭐, 수장님도 다 생각이 있으시겠죠. 일단은 알겠습니다, 윤서 양. 늦은 시간에 고생이 많아요. 그럼 계속해서 수장님을 잘 보필해 주십시오.  말씀을요. 네, 부탁 드리죠. 조심해서 돌아오십시오. 그럼 이만."

천의가 동방 문자로 인주를 새겨놓은 벽에 손을 짚고 혼자 중얼거렸다. 이윽고 그녀는 벽에서 손을 떼고 드럼통 쪽을 돌아봤다.


"아아, 실례가 많았습니다. 얘기 도중에 이렇게 자리를 비우다니, 부디 양해 바랍니다."


천의가 말하자 곤룡회 대원들이 드럼통의 뚜껑을 열었다.


"그래서... 저희가 어디까지 얘기 했었던가요...? 제이콥 씨."


"읍!! 으으웁!! 우으읍!!!"

드럼통 안에는 입마개를 하고 사지를 결박당한 사람이 있었다. 카일과 함께 루나칼립스 학원과 누르워 뒷골목을 습격했던 갈퀴날들의 이리 중 하나인 제이콥이었다. 뒷골목 깊은 곳의 예배당에 들어가지 않고 밖에서 문을 지키던 그는 에반에게 제압당해 기절한 직후 곤룡회에게 포획당해 학관 지하에 감금되어 있었다.

촤르르르륵!! 곤룡회 대원들이 수조에 있던 물을 드럼통 안에 부었다. 차가운 물이 바로 턱밑까지 차오르자 제이콥이 사지가 묶여 불편한 몸으로 애처롭게 허우적거렸다.

근처에서 어느 곤룡회 대원이 새하얀 가루가 가득 담긴 약통을 개봉했다. 가성소다였다.


"웁?!!! 읍읍읍읍!!! 으으으으읍!!!"

"아, 무슨 얘기를 하던 중인지 생각 났습니다."

천의가 기계 장치 하나를 꺼내서 드럼통 안의 제이콥에게 보여줬다. 꿈꿈 스퀘어였다. 에반이 슈나에게서 받아서는 아라한에게 건네줬고, 아라한은 맥스패티로 출발하기 직전에 천의에게 건네주며 조사를 맡겼던 것이다.

"죽느냐, 바른대로 부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였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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