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62화 〉3-1. 다소 거친 방식 (8) (62/88)


  • 〈 62화 〉3-1. 다소 거친 방식 (8)

    버려진지 오래되어 엉뚱한 용도로 활용되고 있는 폐공장. 수상한 기계들이 무너져 있었고, 우락부락하게 생긴 시궁쥐들이 여기저기 널브러진 채 신음하고 있었다.


    에반 플루토와 아라한은 공장 한구석의 테이블에 앉았다. 두 사람에게 덤볐다가 호된 꼴을 당한 시궁쥐 패거리의 우두머리는 이마에 난 흉터와 거칠게 삐져 나온 턱수염 때문에 인상이 매우 험악했지만 생긴 거에 안 어울리게 생글생글 영업용 미소를 지으며 두 사람에게 차를 대접했다.

    "그.... 어떤 일로 오셨나요?"

    "아까 들어오면서 말했잖아. 뭐  물어보자고."


    "아, 예예! 그랬었죠, 헤헤헤!"

    "안 어울리니까 웃지 마라."

    그는 에반의 지시대로 웃음기를 싹 거두고 정색했다. 그러자 누가봐도 폭력단 우두머리인 흉악범 얼굴이 나타났다. 에반이 눈을 부라리는 그의 뺨을  때려주며 말했다.


    "아 깜짝이야! 얌마! 여기 학생도 있는데 어디서 정서 교육에 안 맞는 낯짝을 들이밀어! 표정 펴!!"


    "아, 알겠슴다! 헤헤!"

    "웃지 말라고!!"

    "어, 어떻게 하라는 거죠??"


    시궁쥐 패거리의 우두머리를 한바탕 농락한 에반은 턱을 괴고 삐딱한 자세로 앉아서는 화제를 돌렸다.


    "암튼 말이야. 니들은 여기서 뭐하는 놈들이냐?"

    "저희는 갈퀴날들 산하의 하부 조직원입니다."


    "산하 하부 조직원은 무슨. 그냥 하청 잡부잖아."

    "그, 그렇죠...?"


    "아무튼 그건 나도 알어. 새삼스럽게 뭘 그런 걸 말하고 앉았냐?"


    "알고 계셨다고요?"

    "그럼 우리가 뭐 여기 지나가는 길에 들려서 깽판 놓는  알았냐?"

    에반이 기숙사에서 V 하우스의 관리자들에게서 받았던 명함을 꺼내서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이거.  전에 여기 배달왔던   녀석에게서 받은 거거든? V 하우스는 가정용 전자제품 회사인데 거기 서비스 관리자들이 왜 너희들에게 센서를 넘기는 걸까?"


    에반이 노려보며 말하자 흉터쥐 우두머리는 말을 잇지 못했다. 에반은 계속해서 추궁했다.


    "갈퀴날들이랑 V 하우스에 어떤 커넥션이 있는 거지? 이제 니들은 이 센서를 누구한테 넘기는 거고? 똑바로 말하는 게 좋아."

    "그건...!! 말씀 드릴 수 없습니다."

    우두머리가 에반의 질문에 답하기를 거부했다. 순간 에반의 표정이 차갑게 굳어갔다. 눈빛 만으로도 온도차이를 조성한다는 게 이런 것인가, 그 서리 내린 칼끝 같은 시선에 우두머리는 물론이고 옆에 있는 아라한까지  뒤쪽이 싸늘하게 시려오는 것을 느꼈다.

    "말 못해?"

    "못합니다! 제발 그것만큼은 봐주세요!! 여기서 주둥이 나불거렸다가는 저 죽어요!! 분명 혀를 뽑힌 다음에 미트볼 기계에 들어가서 다진 고기가  거라고요!!"


    "지금 말 안 하면 내 손에 죽는 거야. 조금이라도  사는 쪽으로 하는  좋지 않겠어?"

    "안 됩니다!! 진짜로 말 못해요! 저흰 그냥 생긴 것만 이렇지 주먹질 밖에 못해 어떻게든 먹고 살려고 갈퀴날들 밑에 들어간 날나리 양아치들이에요! 말단 찌끄레기들이라 아무 힘이 없어요! 갈퀴날들 눈에 잘못 걸리면 저희는 그냥 다진고기라니깐요!!"

    생긴 거는  해도 갈퀴날들 중간보스쯤은 되어 보이는데 에반에게 매달려서 징징거리는 모습이 안타깝기까지 할 지경이었다.

    "그래서 말 못한다고?"

    "네, 이건 저희들 목숨이 달린 일이라 말 못합니다!"


    "알았어. 그럼 하지마. 말  하면 되지."

    "정말인가요?"

    에반은 테이블 밑에 깔려있던 식탁보를 손으로 잡고는 뜯어냈다.  하고 찢긴 식탁보를  다듬어서 띠를 한 줄 만들었다.

    "설마! 그걸로 제 목을 조르실 생각입니까?!"


    "조르긴 뭘 졸라? 이거 니 꺼 아니야."

    에반은 식탁보로 만든 띠를 아라한에게 가져다 대더니 그녀의 눈을 지나 한 바퀴 빙 두르게끔 감았다.

    "지도원 님? 뭐 하시는 거죠?"

    "눈가리개. 잠깐만 이러고 있어줄래?"


    에반은 눈가리개가 풀리지 않도록 매듭을 꽉 쥐었다. 아라한은 갑작스럽게 차단된 시야에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을 했다.

    "어때? 아무것도 안 보여?"


    "시야는 확실하게 차단 되었습니다만... 이유가 있는 행동이신가요 이거?"

    "당연히 있지. 그거 내가 풀어도 된다고 할 때까지 절대로 풀면  된다."

    아라한은 불안한 예감이 들었지만 일단은 에반이 시키는 대로 잠자코 따르기로 했다.

    "아, 귀도 막을래? 아무것도 안 들리게 꽉. 그러고서 속으로 5초 정도만 세 볼래?"

    그 말에 아라한과 우두머리가 두 손으로 양쪽 귀를 꽉 막았다. 에반이 그런 우두머리의 머리를 가볍게 딱 쳤다.

    "너는 말고 임마!"

    귀를 막은 아라한은 완전한 어둠 속에 빠져들었다. 앞은 한치도 보이지 않고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대체 자신이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동안 무슨 짓을 하려는 건가 궁금하긴 했지만 에반이 절대로 봐서는 안 된다고 신신당부했으니 궁금증을 참아두기로 했다. 그녀는 속으로 찬찬히 카운트 다운을 시작했다.


    다섯. 넷. 세.......

    셋을 세려고 했던 그 순간. 주변의 흐름을 읽을 수 있는 그녀의 감각이 비틀려오기 시작했다.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로 강렬한 흐름이 그녀의 감각을 사정없이 관통했다.


    불온함? 불안함? 염려스러움? 그런 단어로는 채 표현 못할 공포가 그녀를 휘감았다. 공포? 무엇에 대한? 모르겠다. 알 수 없었다. 불분명한 무언가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넘치는 바람에 오심이 일어날 것만 같다. 어느 샌가 숫자를 세는 것도 잊었다.

    이 느낌. 낯설지 않다. 처음 느꼈던  국제 교류 학관에서 에반과 처음으로 만났을 때. 직접 얼굴을 보고 눈을 마주치기도 전에, 그가 학관에 발을 내딛던  순간부터 아라한은 세상의 흐름이 비틀리는 것만 같은 낯선 괴리감을 느꼈다.


    그리고 다음은 뒷골목 깊은 곳의 예배당에서. 그때 에반은 아이들에게 고개를 숙이고 눈을 감을 것을 당부했고, 시키는 대로 몸을 숙인 뒤 눈을 감으니 이런 소름 끼치는 느낌이 온몸을 쓸고 지나갔었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때 예배당을 뒤덮은 오염생물이 말라 죽어 있었다.

    '지... 지도원 님??'

    공포의 급류가 턱밑까지 차오른 그 순간 그녀를 집어삼키려 들던 혼란의 파도가 욕조 물이 쑥 빠지듯이 내려가버렸다. 그제서야 그녀는 자신의 호흡이 가팔라져 있고 심장이 두근두근 거리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하아... 하아... 하아...."


    진정이 좀 되고 난 뒤 조심스럽게 귀를 막고 있는 손을 떼었다. 다행이 빈틈을 보인 귓구멍으로 무언가가 파고들어 온다거나 하진 않았다.


    "지도원 님? 이제 눈가리개를 풀어도 될까요?"

    "어 그래. 내가 풀어줄게."


    에반의 손길이 머리 뒤에 있는 매듭을 푸는 것이 느껴졌다. 이윽고 눈가리개가 풀어지고 시야가 돌아왔다. 그녀는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확인하기 위해 주변을 돌아봤다. 천재지변을 방불케 하는 흐름이 느껴졌던 거에 비해 공장의 풍경은 크게 달라진 게 없었다. 아라한이 속으로 의문을 품으며 다시 앞을 보고 앉은  순간 바로 앞에 펼쳐져 있는 광경 때문에 화들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윽....끅...흑흑....으윽...컥....끄으윽....흑..."


    우두머리가 공황 상태에 빠져서 똑바로 앉아있지도 못하고 사지를 비틀며 몸부림쳤다. 입에서는 거품이 질질 새고 있었고, 눈은 초점을 제대로 맞추지도 못한 데다가 안색도 새파랗게 질려있어서 마치 봐선 안 될 것을 보는 바람에 미쳐버린 것만 같았다.

    "지도원 님? 이건 대체...."


    "신경 쓰지마."


    에반은 아라한을 다시 앉힌 뒤 온화한 미소를 지었다. 그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우두머리에게 물었다.

    "말 안 할 거야?"

    "하, 할게요! 하겠습니다!! 말하게 해주세요!! 제발...... 아윽윽!!"

    충혈된  눈에서 눈물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목소리도 너무 떨리는 나머지 말의 강약이 제대로 조절되지 않았다.

    "다 말할 게요. 물어보는 거 제가 아는 대로  말할 테니깐 제발..."

    "읊어."


    에반에게 싹싹 빌던 우두머리가 술술 정보를 토하기 시작했다.


    "높으신 분 중에 V라는 분이 계셔요."

    "V?"

    "잘 알려진 건 없지만 아무튼 높으신 분이에요."


    "뭐야  전래동화 같은 전달 방식은?"

    "그 V라는 분이 어느 연구를 진행하고 계시거든요? 그게 도대체가 무슨 연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심부름  가지만 잘 해주면 라쿠이르에 지부 하나쯤이야 뚝딱 세워주고 기사단 놈들도 함부로 터치 못 하게 커버 쳐준다는데요? 그롬에서 개작살 나고 갈  없어진 갈퀴날들 입장에선 이건  참죠."


    "실세라는 셈이군. 갈퀴날들의 오더는  V에게서 내려온다고 봐야겠네. 그래서 니들은 무슨 일을 하는데?"


    "저희는 그냥 배달 받은 센서를 손질해서 V에게 보내는 하청일 뿐이에요."

    "손질을 해?"


    "네.  센서들을 뚜따하면 안에 판떼기들이 있는데 요걸 저 기계에다 넣으면 꾸부정 꾸부정하게 꺽쇠줄이 쭉 나와요. 요걸 같다가 모아다 놓는 게 손질임다.”

    “센서에 저장된 뇌파 분석 정보를 그래프 형태로 시각화해서  군데에 파일링하는 걸 말하는 건가.”


    “혹시나 엄한 데서 삥땅 치는 일이 없도록 손질 다 끝나면 빵꾸 쳐둬야 하거든요? 그러고 나서 또 다른 곳으로 배달 보냅니다."

    “파일 백업이 끝난 센서는 포맷 절차를 밟아서 백지화시켜 외부 유출을 방지해야 한다는 뜻이군.”


    “용케도 찰떡같이 알아들으시네요, 지도원 님. 무슨 통역원인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손질 끝난 뇌파를 어디로 배달 보내는데? 설마 니들 같은 하청이 직접 V를 대면해서 물건을 전달할 리는 없을 테고. 또 징검다리 하나 건너야겠지."

    "예... 맥스패티라는 곳으로 손질된 뇌지도를 납품하면 저희 일은 끝납니다."


    "맥스패티? 거긴 싸구려 햄버거 체인점이잖아?"


    "햄버거요?"


    햄버거라는 말에 아라한이 인상을 찌푸리며 격한 불쾌감을 표했다.


    "그런 곳에서 왜 우리 학생들 뇌파 분석 그래프를 필요로 하는 거냐? 뭔 소비자 심층심리 분석이야? 아니면 뇌파로 감자 튀기면 더 꼬소한가?"

    "맥스패티 안에서 벌어지는 일은 저희 같은 하청에게 알려진  없습니다."

    "뭐 그렇겠지."


    에반은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V 하우스의 명함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는 그 명함을 우두머리에게 보여주며 또 질문했다.

    "나한테  명함 뿌린 그  관리자 녀석들. 걔들은 어디서 일해?"

    "네! 그 명함에 나와 있는 영업점이라면 여기서 쭉 달려서..."

    "아니 누가 영업점 물어봤어? 내가 이 판국에 가전제품 사러 가게 생겼냐?"

    "그렇다면..."

    "말 그대로다. 그  녀석. 어디서 일하냐고?"

    "......"


    "말 안 하네? 한, 잠시 눈가리개 좀 다시 할래?"

    "잠깐만요! 적을게요! 적어드릴 테니까 제발!"


    우두머리는 다급하게 종이와 펜을 꺼내서는 주소를 적기 시작했다. 글씨를 쓰는 그 머리에서 식은땀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여기 있습니다!!"

    에반은 그가 적어준 쪽지를 받아 읽고는 표정을 구겼다.


    "글씨 봐라. 다섯 살배기도 이거보단 잘 쓰겠다."

    "오! 어떻게 아셨나요? 저가  그 나이  집 나가서 글자를 다 못 뗐습니다! 사실 지금도 철자가 맞는지 긴가민가 합니다."

    "어휴.... 너나 이 폐공장이나 똑같아. 이제와서 다시 고쳐 쓰기 어려울 뿐더러 그럴 수고를 할 가치도 찾아볼 수 없어."

    "헤...헤헤..."


    에반은 쪽지를  접어서 주머니에 챙겨넣었다.

    "가자, 한."

    "잠깐!! 센서도 가져가시는 겁니까?"


    "그럼 당연히 가져가지.”

    “하… 하지만…!"

    “하지만은 뭐가 하지만이야? 애초에 이거 우리 기숙사 애기들 뇌파잖아?"

    "그거 빨리 손질해서 납품하지 않으면 여기 있는 저희들 싹 다 미트볼 되는 거에요! 사람 살려주는 셈 치고 그것 만큼은 참아주세요!!"

    “안 돼. 난 간다.”

    “제발요!!!”


    흉터쥐 우두머리는 에반의 다리를 붙잡고 늘어지며 애걸복걸했다.

    "아 거 참 귀찮게스리... 야, 이거나 챙겨둬."


    에반은 자신의 명함을 우두머리에게 건냈다. 그는 명함을 받아서는 찬찬히 읽어봤다.


    "허드렛일, 힘든 일, 궂은 일, 싫은 일, 위험한 일 모두  NPC에게 맡겨주십시오. 언제나 당신 곁에 있는 우리는 No Problem Crew입니다. 최선을 다하는 S급 NPC 에반 플루토."


    "니들 납품처 애들이 조인트 까러 오면 그 명함을 보여주고 이놈이 털어갔다고 말해. 그리고 아직 몇 군데 더 쑤시고 다닐 예정이니까 장사 초쳐 먹기 싫으면 빨리 나랑 면담 좀 하는  좋을 거라고 전하고.”

    볼일을 마친 에반은 아라한과 함께 폐공장에서 빠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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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폐공장을 나온 에반과 아라한은 흉터쥐 우두머리가 적어준 주소를 향해 차를 타고 달렸다. 학원에서 폐공장까지 달렸던 거리에 비하면 그렇게 멀지는 않은 거리였다. 줄곧 말없이 먼산 바라보면서 부채를 만지작거리던 아라한이 먼저 에반에게 말 걸었다.


    "지도원 님."

    "왜? 화장실 급해?"


    “그런 거 아닙니다.”

    “그럼 왜?”

    "좀 전에 폐공장에서 제 눈을 가리고 무엇을 하셨길래  사람이 그렇게 겁을 먹었던 겁니까?"

    "별 거  했어. 그냥 쬐끔만 겁줬어."


    "어떻게 겁을 줬길래 그 짧은 시간 사이에   고문이라도 받은 얼굴이 되는 건가요? 눈을 가리고 귀를 막은 저조차 형언할 수 없는 공포가 느껴졌습니다.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죠?"

    에반은 운전대를 잡고 전방을 주시한  묵묵히 운전에만 집중했다. 그 옆얼굴을 보던 아라한은 말해줄 생각이 없다는 걸 알고 차창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비밀이 많으시군요. 뭐 됐습니다. 중요한 질문에는 입을 꾹 닫는 사람, 싫지는 않아요."

    “그래서 체스부 회의  입 꾹 닫고 있었냐?”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네요.”

    “네가 국제 학관 지하실 드럼통에 뭐를 숨겨놨는지 체스부 아이들에게 말해줄 걸 그랬나?”

    “…..”


    “알잖아? 부채 하나 가지고 내 눈을 속일 수 없다고. 뭐, 됐어.  얘기는 나중에 하자.”

    운전대를 잡은 에반은 흉터쥐 우두머리가 적어준 주소와 위치 추적 장치에 나와 있는 관리자들의 위치가 어긋나지는 않는지 살피면서 계속해서 미행했다.

    “그 도청 장치로 관리자들이 하는 말을 엿들을 수 있지 않나요?”


    “거리가 너무 멀어서 녹음 신호가 안 잡혀. 주머니에  들어갈 만큼 경량화를 한 대신 가청 거리는 포기해야 했지.”

    “그렇군요.”

    “도청 따위 안 들려도 상관 없어. 어차피 다 내 손바닥 위니까. 보아하니 역시 저쪽도 우리가 뒤를 밟고 있다는  눈치 못 채고 있어.”

    “공장이 습격 당하고, 납품해야 할 물건을 빼앗겼는데 말이죠.”

    “자기들끼리도 연락망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다는 뜻이야. 당연한 일이지. 연관성 없는 잡배들끼리 하청에 하청으로 얽혀있으니까. 갈퀴날들처럼 정식 조직원은 소수 정예화하고 대부분을 하청으로 돌려먹어서 인건비 후려치는 중견 조직들의 약점이다.”

    “하청끼리는 보고 체계가 허술하니 각개격파 당해도 신속한 조치를 취하지 못한다는 뜻이죠?”

    “그래. 시궁쥐나 말단 하급 이리들에게 무슨 의리가 있겠냐, 체계가 있겠냐?”


    “그러니 계속해서 꼬리를 밟아나가려는 겁니까?”


    “계속 밟을 필요가 뭐 있어? 앞으로  군데만 더 밟아주면 그 다음부터는 알아서 나올 거다. 이게 내가 말한 압박이야. 추적이란 뒷꽁무니를 쫓아다니는 게 아니라 알아서 기어 나오게끔 짓누르는 거지.”

    “한두 번 해보신 관록이 아니네요.”


    “이 관록으로 햄버거집 털러 가는 길이라는 점도 웃기지만 말이지.”


    “맥스패티라고 했던가요? 우므나티아에 본점을 두고 있는 햄버거 체인점.”

    “그래. 다소 뜬금 없다고 생각되지? 학원 총기 난사 사건에서 시작했는데 햄버거집이랑 이어지는 게.”


    “솔직히 재미 있습니다. 지도원 님이 지금 어떤 수를 읽고 계신지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거든요. 하지만 그건 그거고, 햄버거 가게에 발을 들여야 한다는 건 썩 반가운 소식이 아니네요."

    "그러고보니  아까도 햄버거집이라는 말에 싫은 티 팍팍 내던데. 햄버거 싫어하냐?"

    "햄버거도 싫고, 감자튀김도 싫고, 탄산음료도 싫습니다. 굳이 제게 먹이겠다면 채소만 따로 빼놓고 나머지는 버리던가 남 주던가 했으면 할 정도로요."


    "뭐야 그게? 편식 역전 세계인가? 네가 정말 맛있는 버거 맛을 못 봐서 그래. 통후추 향이랑 소고기 육즙이 잘 살아있는 패티는 외국인이더라도 입맛을 안 탈 걸?"


    "저는 패티 때문에 햄버거를 극도로 싫어합니다. 풍미나 식감이 문제가 아니라 존재 자체가 거북해요."

    "존재 자체가? 패티랑 무슨 원수를 졌다고?"

    "전 다진 고기를 못 먹습니다. 햄버거 뿐만이 아니라 동방 요리 중에서도 만두나 완자 같은 음식은 젓가락도 안 닿게 피하죠."

    "용혈성 요독 때문에?"

    "그런 의학적인 이유는 아니고요. 심리적인 이유입니다. 다진 고기는... 뭘 섞어놨는지 알 방도가 없으니까요."


    "자기자신 속내도 알 방도가 없는 녀석이 엄한 다진 고기한테 쐐기 박고 있네. 넌 가만 보면 무슨 피곤하게 사는 법 연구해서 논문이라도 쓰는 중인가 싶단 말이지."

    "학생을 놀리니까 즐거우신가요?"


    "어. 여기서 일하면서 느끼는 몇  되는 낙이다."

    아라한은 이런 시답잖은 농담을 주고 받는  싫지는 않았는지 옅은 미소를 지었다. 물론  표정을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으려고 부채로 입을 가린 상태였다. 창 밖의 풍경은 낯설었지만 도심에서 벗어나 있어서 나름 상쾌했다. 무엇보다도 저 멀리 산 너머로 저물어가는 노을이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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