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1화 〉3-1. 다소 거친 방식 (7)
V 하우스의 차를 미행하느라 한참을 운전했는데 아직 도착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진작에 도심에서 벗어난 지 오래라 주변 어디를 둘러봐도 산지뿐이었고, 이런 산속에 쭉 뻗은 직진 차로 어딘가에 차를 세울만한 곳이 보이지도 않는다. 아무래도 목적지가 나오려면 한동안은 계속 이러고 달려야 할 거 같은데 아라한은 말없이 차창에 기대어 저 멀리 뻗어있는 라쿠이르의 산맥들을 감상할 뿐이었다. 어색한 침묵은 질색인 에반이 먼저 말을 걸었다.
"근데 너 말이야. 유리아 싫어하는 거 아니었어? 왜 이렇게 까지 해서 그 녀석에게 협력해주는 거야? 솔직히 넌 체스부에 들어올 정도로 그 녀석에게 지킬 의리는 없잖아?"
프릴이야 개인적인 이유가 있어서라고 하지만 아라한이 체스부에 들어온 이유가 짐작이 되지 않았다. 체스부에 들어온 거 까지야 그렇다 치더라도 의외로 마찰 안 일으키고 협조적으로 나오는 점도 신경 쓰였다.
"그거야 뭐. 이 학원의 치부를 알게 되는 건 곤룡회 입장에서 큰 무기가 되지 않겠습니까?"
"유리아가 가진 약물에 대한 정보만 해도 충분히 무기가 될 거 아냐? 그런데 너 생각보다 입이 무겁던데. 그걸 가지고 유리아를 휘두르려고 하는 기미도 보이질 않고. 약점을 잡는다던가 그런 게 정말 네가 지금 여기 있는 이유야?"
아라한은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그 능구렁이 같던 아라한이 우물쭈물 거리는 모습을 보인다니? 그간의 행보를 생각하면 도무지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머뭇거리는 모습을 보이던 그녀가 나지막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솔직히 저 스스로도 제 행동에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많습니다. 학생회의 약점을 쥐어서 곤룡회가 우위를 쥐는 것이 목적이라고 말은 하지만, 사실 그런 방식은 제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전 유리아 양을 괴롭히는 취미 따위 없으니까요."
"그 살벌하고, 음흉하고, 도도하던 곤룡회 수장님이 이렇게 미지근할 말을 할 줄이야."
"그래요. 사실 전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아요. 하지만 수장인 제가 겉으로나마 과격한 행동을 취하지 않으면 제 밑에 있는 곤룡회 학생들이 동방의 대표자가 아그루스와 화친을 도모한다고 큰 불만을 갖게 될 테고, 그 불만은 곧 곤룡회 분열의 계기가 될 거에요. 이 아그루스에 던져진 저희들은 말이죠, 좋건 싫건 뭉쳐야 살아요. 저희끼리도 뭉치지 못하고 흩어지면 바로 죽는 거에요. 그러니 아그루스라는 미워할 만한 명분이 있는 공공의 적을 열심히 미워해야 하죠. 웃기네요. 이런 게 과연 도리에 맞는 짓일까요?"
에반이 살짝만 떠봤을 뿐인데 아라한은 본인의 속마음을 훌훌 털어놓았다. 어쩌면 그녀는 자신이 짊어진 짐의 무게에 대해 하소연할 말상대가 필요했던 것 같다.
"오해는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전 분명히 아그루스를 증오하고, 유리아 릴리스가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그럼 왜?"
"그냥.... 이젠 증오하는 것도 지겨워진 거 같습니다. 도리니, 의리니, 아그루스니, 곤룡회니 그런 건 나중에 생각하고 그저 잠시만이라도 제 마음이 흐르는 대로 행동하고 싶었습니다. 체스부의 일원으로 있는 동안에는 그렇게 행동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막상 해보니 기대했던 것과는 다르면 어떡할래?"
"들어봐야 분명 섭섭해지기만 할테니 대답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니 부디 제 기대를 충족시켜 주세요."
"나한테 부탁해봤자 너네들 하기에 달렸거든?"
"웃기네요."
"뭐가?"
"지도원 님 같은 사람에게 속내를 털어놓고 후련해하는 저도 참 웃겨요."
"나 같은 사람이 뭐가 어떻다고? 아무튼 아직 다 못 털어놨으면 마저 하라고. 도중에 끊으면 찜찜하잖아."
"저번에 저와 지도원 님이 처음 대면했을 때 기억하시나요? 제 기대에 부응해주시면 저도 그에 맞게 솔직해지도록 하겠다고 말했었죠? 그러니 조금은 솔직한 심경을 내비쳤다고 해두죠."
에반이 백미러로 아라한을 슬쩍 살펴보니 그녀는 미묘하게 웃음짓고 있었다. 다시 요망한 아라한으로 돌아온 표정이었다.
“오늘의 제 진심은 여기까지입니다. 더 궁금하시다면… 아시죠?”
“몰라.”
-----------
추적 장치에 표시된 V 하우스의 차량 위치가 어딘가로 빠지더니 넓은 공터 근처에 멈춰 섰다.
“아무래도 도착한 모양이다.”
에반은 눈에 띄지 않도록 목적지와 조금 떨어진 언덕 쪽으로 차를 몰고 갔다. 언덕 위에서 내려다보니 저만치 떨어진 곳에 V 하우스의 차가 보였다. 차를 타고 한참이나 뒤쫓아 왔으니 당연하지만 본 적이 없는 풍경이었다. 일단 눈에 들어오는 건 낡은 폐공장이었다. 차에서 내린 V 하우스의 두 관리자가 폐공장의 문 앞에 섰다. 손에는 뇌파 분석 센서가 든 수트 케이스 가방이 있었다.
“이 거리에서 저들이 하는 대화가 들릴까요?”
“안 들리면 어때? 도구를 쓰면 된다니깐.”
에반은 제복 가슴팍에 달린 주머니에서 볼펜 한 자루를 꺼냈다. 미묘한 위화감을 느낀 아라한이 자세히 살펴보니 그것은 볼펜처럼 생긴 녹음기였다.
“아까 쟤들한테 줬던 내 명함. 그것도 도청 장치야. 혹시나 버렸을 때를 대비해서 명함 주고받을 때 옷에다 슬쩍 붙여둔 것도 있고. S급 달면 이런저런 연장도 많이 나오니 편하지.”
“수상한 도구들이 계속해서 나오는군요. NPC란 대체 무슨 일을 하는 자들이죠?”
“뭔가 연장 좀 쓰는 애들 중에서 좋은 놈은 수사관, 나쁜 놈은 이리, 이상한 놈은 NPC. 이렇게 생각하면 편해.”
“그럼 지도원님은 S급이니까 특출 나게 이상한 놈이라는 뜻인지요?”
“그러겠지. 나머지 S급 두 놈 생각해 보면 말이야. 그나저나 저 녀석들 슬슬 시작하려는 모양인데.”
에반이 볼펜형 녹음기의 버튼을 누르자 지지직 거리는 잡음 사이로 목소리가 들려왔다.
"배달 왔다!! 물건 받아라!"
관리자 중 한 사람이 폐공장의 문 앞에 서서 그렇게 외쳤다. 잠깐의 시간이 흐르고 곧 거대한 폐공장의 철문이 천천히 열렸다. 철문의 이음쇠가 녹이 슬어서 듣기 거슬리는 마찰음이 울렸다.
폐공장 안에서 나온 것은 한 사람이 아니었다. 험상궂은 얼굴을 한 남자 대여섯 명이 눈을 부라리며 나왔다. 체격은 관리자들이 한없이 작아 보일 정도로 크고, 근육이 우락부락한 데다가 문신이 온몸을 덮고 있었다. 준법 정신 철저한 시민과는 전혀 동떨어진 생김새였다.
"이리들인가요?"
"아니. 겉만 번지르르할 뿐이지 그냥 양아치들이야. 진짜 이리는 너도 상대해 봐서 알겠지만 겉을 요란하게 꾸미지 않아도 살기가 느껴진다고."
"그럼 저 자들은?"
"이리들에게 부려 먹히는 하청 시궁쥐들이지. 언젠가는 정식 조직원으로 승진하겠다는 꿈을 품고 낑낑대는 애처로운 잡배들이라고."
폐공장에서 나온 인상 사나운 남자들은 관리자들을 보자 불평을 늘어놓았다.
"늦었잖아. 위에서 제때 납품 안 하냐고 말이 많단 말이야."
"이쪽도 여유 부린 게 아니라고. 방해하는 것들이 얼마나 많던지."
"물건은 잘 챙겨온 거 맞아?"
"우리가 배달 하루 이틀 했나? 빠트린 거 없이 다 챙겼다고."
"슬쩍 빼돌린 건 없겠지?"
"우리가 뭐 하러 빼돌려? 마법사 꼬맹이들의 뇌파 같은 걸 어디에 쓰겠다고."
"니들이야 못 써먹겠지. 하지만 마법사의 뇌파 지도는 탐내는 놈들이 많다고. 돈을 더 주겠다고 제안하는 놈이 한 둘이겠어?"
"설마 지금 우리가 이중거래를 한다고 의심하는 거야? 와 어이 없네 증말. 좀 늦었다고 이런 의심까지 사야 하나?"
"그만하지. 이러고 서있는 것도 시간 낭비니까 어서 안으로 들어가자고."
관리자들은 뇌파 분석 센서가 담긴 가방을 챙겨서 남자들과 함께 폐공장에 들어갔다. 폐공장의 커다란 철문이 완전히 닫히고 나서도 에반과 아라한은 차에 앉아서 계속 상황을 지켜봤다.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아서 폐공장의 문이 다시 열리더니 관리자 둘이 툴툴거리며 나왔다.
"하여간 말이 말 같지가 않지. 멍청한 시궁쥐 놈들."
"주먹 밖에 모르는 머저리들이 말귀가 통하길 기대한 게 잘못이지."
"어휴 오늘은 왜 이렇게 되는 게 없냐? 짜증나는데 낮술이라도 때릴까?"
"그래야 하나."
관리자들은 타고 왔던 차에 다시 탑승했다. 이윽고 시동이 걸리더니 공장에서 나가는 길을 따라 멀어져 갔다.
"이제 슬슬 내릴까?"
차에서 내린 에반과 아라한이 폐공장 건물을 보았다. 온통 낡고 녹슬어서 오래 방치된 흔적이 역력한지라 무엇을 생산하던 공장인지는 알 길이 없었다. 사람이 왕래할 일 없는 으슥한 숲 속에 버려진 폐공장, 그곳에 모여있는 불량한 패거리들, 수상한 거래. 딱 봐도 저 공장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 떳떳한 생산활동은 아닐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창문이 없군요. 무슨 수로 내부를 엿볼까요?"
"엿보긴 뭘 엿봐? 도둑도 아니고. 멀쩡히 있는 정문을 두고 뭐 하러 창문부터 찾아?"
"그게 대체 무슨 말씀이시죠? 설마 정문으로 당당히 들어가시겠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러면 안에 있는 저 자들이 차라도 한잔 내어오면서 ‘어떤 일로 오셨나요?’ 하고 응대할 거라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겁나면 넌 여기 계속 숨어있어. 난 간다."
"잠깐! 같이 가요!"
에반이 풀숲에서 나가자 아라한도 그의 뒤를 따랐다. 에반은 폐공장의 철문 앞에 서더니 체중을 살짝 실어서 철문을 밀어봤다. 이미 잠금 장치가 걸려 있어서 열리지 않았다.
"하긴. 수상한 일을 꾸미는데 문단속을 안 했을 리는 없겠죠."
"뭐, 상관 없지만."
"상관 없다고요?"
에반이 철문 앞에서 자세를 잡고 서더니 한쪽 손에 주먹을 꽉 쥐었다. 그 모습을 본 아라한의 얼굴은 설마? 하는 표정으로 굳어갔다. 그리고 그 설마는 빗나가지 않았다.
"두드려라. 열릴 것이니."
우지끈!!! 에반이 힘껏 주먹을 휘두르자 커다랗고 두터운 철문이 거의 반으로 접힐 정도로 찌그러짐과 동시에 떨어져나가 버렸다. 그 요란한 파괴음 때문에 공장 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에반과 아라한에게 집중되었다.
공장 안에는 조금 전에 밖으로 나왔던 사람들 보다 훨씬 더 많은 인원수의 사람들이 있었다. 하나 같이 험악한 인상을 하고 있고, 흉터와 문신이 가득했다. 앞치마를 두른 작업복에는 무슨 해체 작업을 했는지 핏자국도 선명했다. 안으로 당당하게 걸어 들어오는 에반을 본 몇 명은 고기를 썰 때 쓰는 길다란 정육칼을 챙겨 들고 에반을 노려봤다.
살풍경하다는 말 외에는 형언할 만한 단어가 달리 없었다. 딱 봐도 위험하게 생긴 아저씨들 열댓 명이 저마다 연장을 손에 쥐고 있고, 주변에는 피 묻은 기계들이 즐비해 있다. 일반인이었다면 잘못 들어왔습니다 라고 소리치며 뒤도 안 돌아보고 줄행랑을 칠 법한 풍경이었다. 그러나 에반은 산책이라도 나온 듯이 가벼운 걸음걸이로 그들을 향해 걸어갔다.
"노크가 거칠어서 미안하게 됐수. 그냥은 안 열어줄 거 같아서 말이지."
에반은 연장을 들고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시궁쥐들을 훑어봤다. 멀리 한쪽 구석에 의자에 앉아있는 뚱뚱한 남자가 하나 보였다. 팔뚝에 근육이 두껍게 꽉 차있고, 얼굴에는 흉터가 선명한지라 앉아서 풍기는 위압감부터가 남달랐다. 에반은 그 험악한 인상의 사내에게 삿대질을 하며 말했다.
"보아하니 댁이 이 떨거지들 우두머리인가 본데. 뭐 좀 물어보자. 좀 전에 여기로 배달부들 둘 왔다 갔지? 걔들이 가져 온 거 우리 학원 학생들 뇌파 분석한 건데... 왜 니들 같은 깡패새끼들에게 배달한 걸까?"
에반이 눈에 힘을 주고 쳐다보자 흉터쥐 우두머리는 의자에 앉은 채로 딱 한 마디 했다.
"야."
그리고는 까딱하고 고개짓을 했다. 그 신호에 에반을 노려보고 서있던 시궁쥐들이 에반을 향해 걸어왔다. 그들은 오면서 각자 가까이에 있는 연장을 챙겼다. 칼, 망치, 각목, 몽둥이. 하나하나 살상력을 보장하는 물건들이였다.
"뭐야 이 비리비리하게 생긴 새끼는? 간이 붓다 못해 배 밖으로 튀어나왔나?"
키가 족히 2m는 될 법한 거구의 사내가 에반을 내려다보았다. 그는 우람한 근육이 빈틈없이 박힌 자신의 팔을 휘둘러 에반의 얼굴을 후려쳤다. 빡! 하는 소리가 났지만 얼굴을 정통으로 맞은 에반의 턱은 추호만큼도 움직이지 않았다.
"뭐야 이 놈?"
손에 감겨오는 감각은 사람의 얼굴을 때렸을 때의 손맛이 아니였다. 흡사 오우거의 복근과도 같은 내구력이었다. 에반이 한번 씨익 웃더니 복부에 한 방 되갚아주었다.
"으억!!!!"
저 작은 체격의 어디에서 이런 힘이 나오는 것인가? 주먹이 아니라 두꺼운 둔기에 가격당한 것처럼 몸을 움추리자 에반은 그 목덜미를 잡더니 그 거구를 한손으로 들어올려서 장난감 던지듯이 집어 던져버렸다.
우당탕!! 거구의 몸통이 휙 날아가서는 미처 피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 서있던 시궁쥐 몇 명을 깔아 뭉개버렸다.
"이... 이 씨!!"
"담궈 그냥!!"
주변에 있던 시궁쥐 세 명이 손에 칼을 쥐고 동시에 달려들었다. 에반이 그 중 한 사람의 복부를 발로 걷어찼다. 억 하는 소리와 함께 뒤로 밀려난 그 시궁쥐가 자재더미 위로 뒹구는 바람에 자재들이 우르르 무너져 내렸다. 다른 한 명이 에반을 향해 칼을 찔렀지만 에반은 칼을 쥔 그 손목을 쥐고는 악력을 살짝 주었다.
"으아아아!!"
손과 손목을 이어주는 뼈 사이의 관절이 빠져나올 것만 같은 격렬한 고통에 비명을 지르며 칼을 쥔 손의 힘을 풀었다. 손에서 빠져 나온 칼을 낚아챈 에반은 그 칼을 그대로 대퇴부에 꽂아버린 뒤 아무렇게나 내팽개쳐버렸다. 나머지 한 명도 칼을 휘둘렀지만 에반이 그 팔을 잡더니 열쇠 돌리듯 돌리자 관절과 어깨뼈가 골격 구조상 돌아갈 수 없는 부분까지 강제로 돌아갔다.
"어어억?!!!"
고통스럽게 비명을 지르며 손에 힘을 풀자 쥐고 있던 칼이 떨어졌다. 에반은 그 칼도 낚아채서는 아직도 팔관절을 쥐고 괴로워하는 놈의 몸통을 몇 군데 그어줬다. 위험한 핏줄은 피해줬으니 죽지는 않을 것이다. 아마도.
"이야아아아!"
에반의 등 뒤에서 시궁쥐 한 명이 소리를 지르며 달려와서는 에반의 머리를 향해 망치를 휘둘렀다. 에반은 휘둘러진 망치를 손으로 막고는 꽉 쥔 뒤 밑으로 훅 내렸다. 망치를 손으로 쥐고 있던 그 깡패의 무게중심도 그와 동시에 밑으로 쏠렸다. 에반은 밑으로 내려온 그 깡패의 턱을 무릎으로 찍어버렸다. 바닥에 쓰러진 시궁쥐는 어떻게든 어질어질한 의식을 되돌리고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지만 이미 그가 놓친 망치를 주워 든 에반이 그의 머리를 깡! 하는 소리가 나게 한 대 뚜드렸다. 에반은 쓰러진 그 시궁쥐의 머리맡에 망치를 대강 던져놓았다.
다른 시궁쥐도 에반에게 달려들었지만 에반은 그의 멱살을 쥔 뒤 그대로 들어올려서는 바닥에 패대기 쳤다. 다시 일어나려고 하는 그의 얼굴을 발로 찍어 밟자 빡! 소리와 함께 머리가 바닥에 다시 쳐박혔다.
"움직이지 마!!"
에반의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에반이 뒤돌아보니 시궁쥐 한 명이 아라한을 뒤에서 붙잡고 그녀의 목에 칼을 대고 있었다. 예리하게 날 선 칼이 아라한의 하얀 목덜미에 맞닿은 상태였다.
"움직이지 마.... 한 발짝이라도 더 설치면 이 년 모가지를 끊어놓을 거야."
아라한이 인질로 잡혔지만 에반은 표정 하나 바뀌지 않았다. 오히려 어처구니 없다는 얼굴로 쳐다봤다.
"니가? 걔를? 함 해보던가."
"뭐라고? 송장 치우고 싶...억?!"
겨드랑이 아래쪽 갈비뼈가 있는 취약한 부위로 아라한의 팔꿈치가 힘껏 파고 들어왔다. 충격으로 자세가 무너진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아라한이 손바닥으로 그의 몸통을 밀듯이 쳤다. 이윽고 방출되는 쇄아. 손바닥에 닿은 부분으로 집약된 압축기류가 한 순간에 폭발하면서 그를 멀찍이 날려버렸다. 날아간 그는 한쪽 벽에 부딪치고는 몸을 공중에 몇 차례 튕기며 데굴데굴 구르더니 드럼통 쌓아놓은 곳에 쳐박혀 버렸다. 곧 아슬아슬하게 쌓여있던 드럼통들이 그의 몸 위로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제기랄!! 마법을 다룰 줄 아는 년이였어!!"
잡동사니 무너지는 소란스러운 소리를 듣고 폐공장 뒷문으로 달려들어온 두 깡패가 권총을 꺼내서 아라한을 겨누었다. 그리고는 망설이지도 지체하지도 않고 방아쇠에 걸친 손가락을 힘껏 당겼다. 탕! 하는 총성이 울렸지만 아라한은 부채로 입꼬리를 감추며 도도한 자세를 유지한 채 서있었다.
"이런 미친!!"
"쏴!! 계속 쏴!!"
탕! 탕! 탕! 수 차례 총성이 울렸지만 탄환은 아라한에게 닿지 못했다. 그녀를 지키고 있는 기류의 장막을 뚫지 못한 채 맥없이 튕겨져 나갈 뿐이였다.
"탄환은 참 단순한 남자 같아요. 무작정 들이밀면 다 뚫을 수 있다고 믿는 점에서 말이죠."
아라한이 그렇게 말하고는 자신의 부채를 펼쳐서 총을 든 깡패들을 향해 휘둘렀다. 부채질 한 번에 일어난 돌풍이 두 깡패를 말 그대로 날려버렸다.
"으아아아!!"
"확실히 지도원 님 말씀대로 저번의 이리들과는 상대하는 느낌부터가 다르군요."
"그치? 아 근데 말이야. 총알은 웬만한 건 다 뚫지 않냐? 그렇다는 건 단순한 남자가 잘 먹힌다는 의미?"
"말이 그렇다는 걸 그런 식으로 해석하시면 안 되죠. 그보다도 조금은 제 걱정을 해주셨으면 했는데 말이죠. 서운해야 하는 건지, 제 실력을 믿어주셔서 기뻐해야 하는지 모르겠군요."
"모르겠으면 좋은 쪽으로 생각하자고."
에반은 그렇게 말하고는 흉터쥐 우두머리 쪽을 보았다.
"말로 묻는 건 이번이 마지막이야. 그 센서. 어디로 납품하는 거냐?"
“…..”
흉터쥐 우두머리는 전멸한 자신들의 부하를 둘러보고는 묵직한 목소리로 한숨을 한 번 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앉아있을 때도 커 보였는데 일어나니 그 거구의 체격이 뿜어대는 위압감이 보통이 아니었다. 흉터투성이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드르르륵… 그는 자신이 앉아있던 접이식 의자를 접고 끌고 왔다. 에반 앞에선 그가 접이식 의자를 꽉 쥐었다.
화악!! 이윽고 흉터쥐 우두머리가 접이식 의자를 힘껏 휘둘러 강렬한 체어샷이 작렬….. 하지는 않았고, 에반 앞에다가 접이식 의자를 펼쳐서 놓은 뒤 손짓했다.
“앉아서 얘기하시죠 형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