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52화 〉2-1. 얕은 잠 (11) (52/88)


  • 〈 52화 〉2-1. 얕은 잠 (11)

    "미안하다니까."


    에반 플루토가 프릴 루에리아의 뒷모습에 대고 사과했지만 그녀는 뾰루퉁한 얼굴을 하고서는 에반에게 눈길을 주지 않았다.

    "그러지 말고 대화로 해결하자 응? 다음에 또 부탁하는 거 들어줄 테니까. 응? 응?"


    "....."

    프릴은 대꾸하지 않고 어디로 가는지 알려주지도 않은채 묵묵히 걸어가기만 했다. 아무래도 단단히 삐진 모양이다.

    "저기요? 안 들리시나요, 루에리아 공녀님?"

    "그렇게 부르지 말아주세요."

    그제서야 프릴이 반응을 보이고는 에반 쪽으로 돌아섰다. 볼을 뿌우 부풀리고서 눈을  마주치려는 얼굴을 보아 성의껏 달래달라는 눈치였다.

    "제대로 프릴이라고 불러주세요."

    "알았어, 프릴. 내가 잘못했어."


    "뭐를요?"


    "그 몽상가인가 뭔가하는 박사에게 무례하게 굴었던 거."


    "그것도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두 번째에요."

    "그 박사의 명함 가로채가서 안 돌려주는 거?"


    "그건  번째고요."

    "그럼 네가 헤드기어 쓰고 가상 현실 체험하는 동안 베레모를 거꾸로 씌워놓고 낄낄대면서 장난친 거?"


    "뭐라구요?! 정말로 그랬어요?!"


    "아니, 그냥 농담한 거야. 안 그랬어."

    "정말이지 이런 상황에서도 절 놀리시기나 하고!"

    "미안, 미안. 그래서 가장 첫번째 이유가 뭔데?"

    "정말 모르겠어요?"

    "모르겠는데."

    "반성해보셔요."

    "음... 모르겠는데?"


    "제대로 생각해보고 모른다고 하셔요!"

    "으으으음...... 모르겠는데?"

    "정말이지!  전에 버나드 박사님이 선생님한테 저와의 관계를 물어보셨을 때 선생님은 뭐라고 하셨죠? 제 '보호자' 라고 하셨죠? 전 보호자가 필요한 어린 애가 아니에요! 설마 제가 선생님에게 함께 와달라 한  보호자가 필요해서겠어요?"

    "뭐야? 그거 때문에 토라진 거야?"

    "누가 토라졌다는 거에요?! 또 어린애 취급하시고!"

    누가 봐도 토라진  맞구만.

    "그냥 적당히 둘러대느라 보호자라고 말했던 거지 진짜로 보호자 노릇하려는 마음가짐으로 따라다닌  아니야. 별다른 의미는 없었어."

    "그렇죠?"


    "그래, 그래. 잠깐만, 보호자가 아니면 그럼 무슨 사이라고 해야 하나?"

    "그, 그건...! 모르겠네요."

    "뭐야? 자기도 모르면서 나한테 토라져 있었던 거야?"


    "토라진  없다니깐요! 정말!"

    프릴은 입을 삐죽 내밀고 툴툴대면서도 기분이 풀렸는지 에반과 거리를 조금이나마 좁혔다.

    "아, 그거는 그거고, 아까 분명히 다음에 또 부탁 들어주겠다고 말씀하셨죠? 약속 꼭 지키셔야 해요?"


    "뭐? 그냥 한 소리지 내가 언제 약속한다고 했어?"

    "....."


    "아, 알았어. 약속, 약속."


    어쩌면 뾰족뾰족하게 구는 유리아, 루밀리, 슈나 보다도 프릴의 폭신한 미소 쪽이 더 경계해야 할 대상이 아닐까? 분명 단어장 하나만 돌려준다는 게 괜히 오지랖 부리면서 아는  했더니 어찌저찌 하는 사이 이런 박람회에서 데이트까지 하고 있다.

    "아무튼  몽상가 박사의 명함은 돌려줄  없어. 이 부분만큼은 네가 아무리 불만을 표해도 어쩔 수 없다. 너는  박사의 말을 감명 깊게 들었겠지만, 그 자가 얼마나 좋은 취지로 연구를 시작했다 한들 마법에 손을 대고 있는 이상 경계심 없이 다가가서 너에 대한 정보를 노출 시켜서는  돼."

    "마법사라서 경계하시는 건가요? 저 같은 학생들이 모인 마법 학원의 지도원이시면서요?"


    "그거랑은 달라. 잘 들어, 자신만의 신념이 확고한 학자에게 섣불리 다가가서는 안 된다. 학계도 결국은 업계야. 공짜로 열어둔 문은 없어."

    "그냥 명함 한 장일 뿐이에요, 선생님. 박사님 나름대로 예의 차리는 거일 뿐인데 너무 의미부여 하시는  아닌가 싶어요."

    "보호자 노릇 하는 거 같아 미안한데, 그래도  학원의 지도원 이전에 너와 아는 사이인 어른으로서 당부하는 거다. 면식도 없는 학자를 개인적으로 대면하는 것은 삼가도록 해. 반드시 학회를 통해서 공식적인 일정을 잡아둬야 해."

    "알겠어요. 명함은 돌려달라고 하지 않을게요."


    프릴은 납득하지 못하더라도 일단 에반의 말에 수긍하는 눈치였다. 그녀는 한동안 조용히 에반의 옆에서 걷다가, 아까 전에 박사의 말을 듣고난 뒤로부터 계속 마음에 걸리던 점을 에반에게 털어놓았다.


    "아까 버나드 박사님은 우리의 뇌가 복잡한 현악기와 같다고 하셨잖아요? 만약 누군가가  복잡한 구조와 작동 원리를 완전히 이해해서 자유자재로 연주할 수 있게 된다면... 어떻게 되는 걸까요?"

    "연주라는 비유적인 표현을 구체적으로 풀어서 말해봐. 그럼 답이 나오겠지."


    "기쁨이나 슬픔, 애착이나 증오. 이런 감정이 일방적으로 조종 당한다던가, 아니면 기억이 지워지거나 덧칠되거나."


    "연주라고 했지만 실상은 테러네. 후회할  뿐이야, 안 그래?"

    "뇌에 관한 연구가 사람의 정신과 직접 연관된 이상 윤리적인 우려나 비판을 맞닥뜨릴 수밖에 없겠네요."

    "열 중에 아홉 명이 좋은 취지를 가지고 있더라도, 그렇지 않은 엉큼한 놈 하나가 개짓거리 하다가 여러 사람한테 피해를 끼치는 거다. 거기다 좋은 취지를 가진 아홉 명 중에서도 적어도  놈 이상은 실천하는 방식이 개짓거리고. 이거는 비단 뇌과학이 아니더라도 모든 학문과 기술이 공유하는 골칫거리지."


    "무슨 말씀인지 이해해요. 그래도... 으음."

    "네가 하는 노력이 무의미하다던가 위험하다는 말은 아니니까 너무 그렇게 꽁할 필요는 없어. 그저 사람의 행동을 필요로 하는 이상 완전히 거룩한 분야도, 완전히 추악한 분야도 없다는 원론적인 관점일 뿐이니까."


    "네...."

    프릴은 잠시 생각에 잠겼는지 한동안 말이 없었다. 에반은 괜한 말을 해서 애 기죽게 만들었나 싶었지만 그래도 할말은 꼭 해야 한다는 입장이였다.


    "선생님 말씀이 맞아요. 저는 한번 흥미가 동하면 맹목적일 정도로 앞뒤  가리고 파고드는 경향이 있어요. 냉정하게 현실적인 조언을 해줄 사람이 필요한 거 같아요. 선생님이나 유리아 양처럼요."


    "그래. 그렇게 받아들여줘서 고맙구나."

    "역시 선생님에게 같이 와달라고 부탁하기를 잘한 거 같아요."

    "그 얘기 오늘 벌써 스무 번째는 듣는 거 같은데."


    "헤헤."


    “이제 V 하우스인가 뭔가 하는 곳은 거의 다 돌아봤지? 다음은 어디로 갈래?”

    “글쎄요. 으음… 아! 저기는 어때요?”

    “어디?”

    프릴이 가리킨 곳에 있는 건 전시회장이나 체험관이 아니었고, 토론장도 아니었다. 그저 아이스크림을 파는 자그마한 가판대였다.


    “이스티안 아이스크림이래요! 잠깐 근처에 앉아서 간식 먹으면서 쉬었다 갈까요?”

    “그거 듣던 중 반가운 제안이네. 그렇게 하자.”

    “그럼 제가 가서 사올게요! 선생님은 자리를 잡아주시겠어요?”


    “그래. 부탁해.”


    프릴은 가판대를 향해 가벼운 발걸음으로 총총 떠나갔다. 에반은 가까운 벤치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잠시  돌릴 겨를이 생겨서 주변을 둘러보니 지극히 평화롭고 일상적인 풍경과, 아무런 걱정 없이 전시회장을 거니는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렇게 사람 사는 풍경에 녹아들며 지내는 게 얼마만일까? 한동안 목적의식에 눈이 멀어  튀기는 의뢰들을 처리하며 지내다 보니 이렇게 따스한 햇살도 익숙하지 않고, 그를 신경조차 쓰지 않고 제 갈길 가는 행인들의 무관심함도 어색했다. 이런 한적한 곳과는 인연이 없을 줄 알았는데.


    가판대 쪽을 보니 상인이 프릴에게 아이스크림을 주려다 말고 장난을 치고 있었다. 묘기에 가까운 손재주에 아이스크림은 사라지고 텅 빈 콘이 그녀의 손에 남았다.  뒤로 프릴은 계속해서 상인의 장난에 당하기를 반복하다가, 가까스로 컵에 담긴 아이스크림을 받아냈다. 아이스크림을 받아  프릴이 에반 쪽을 보며 활짝 웃어보였다. 그러나 그녀는 아직 알지 못했다. 그녀가 주문한 아이스크림은 두 개니까 아직 한 번 더 농락 당해야 한다는 것을.  다시 아이스크림을 잡으려고 허우적거리는 프릴을 보고 에반이 피식 웃음지었다.


    “뭐… 이건 이거대로 나쁘지 않을지도…. 으윽??”


    그러나 그는 이미 아주 오래 전부터 평온한 생활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됐다. 지끈거리며 밀려오는 두통이 마치 네가 누군지 잊지 말라며 호되게 꾸짖는 것만 같았다.

    “이… 빌어먹을…!”

    에반은 프릴의 귀에 닫지 않도록 작은 목소리로 욕지거리를 하며 손으로 머리를 감싸맸다. 시작은 두통에 불과하다. 하지만 뒤이어 물아(物我)를 허물 정도로 극심한 환각이 덮쳐온다. 현실로 돌아오기 위해 환각을 떨쳐내는 동안 머릿속을 메아리 치는 저주스러운 목소리는 오롯이 에반이 감당해야 할 몫이다. 힘에 대가가 따른다면, 스스로도 떨쳐내지 못하는 힘을 짊어진 이상 대가 또한 그를 떠나지 않을 것이다.

    “아니야. 지금은  돼…”


    후우! 에반이 파르르 떨리는 손을 진정시키기 위해  손으로 반대쪽 손목을 꽉 쥐고 무릎에 대고 짓누르듯 고정시켰다. 그러고 숨을 고르고 있으니 양손에 아이스크림 컵을 든 프릴이 다가와서는 그의 안색을 살폈다.


    “선생님? 왜 그러세요?”

    “그냥 좀 졸았어… 금방 왔네?”

    “금방이라니요?! 가게 아저씨에게 한참을 골탕 먹다가 왔는데. 도대체 아이스크림으로 장난 칠 생각은 누가 처음 했을까요?”

    프릴은 에반이 있는 쪽에 아이스크림 컵을 내려놓고는 살짝 거리를 두고 앉았다. 에반은 환각이 진정되자 다시금 숨을 골랐지만 아직 안심할  없었다.

    "예전에 누르워에도 이스티안 아이스크림을 파는 곳이 있었는데 이제는 안 팔더라고요. 누르워는 잘 안 찾아가는 편이지만 그건 좀 아쉬웠어요."


    옆에서 프릴이 포크로 아이스크림을 살살 휘젓고 있었다. 그대로 포크를 살짝 들어올리자 찐득하게 휘감긴 아이스크림이 포크를 따라 쭈욱 늘어났다. 프릴이 기대에 찬 눈망울을 반짝거렸다.


    "이거 봐요 선생님! 아이스크림이 늘어나요!"


    "그렇게 길게 늘어뜨리면 먹기 불편해진다."

    "아앗."


    프릴은 늘어난 아이스크림을 돌돌 말아서 뭉친 뒤 입에 쏙 집어넣었다.


    "신기해라. 어떻게 아이스크림이 이렇게 씹어도 씹어도 입에 남아 있을까요?"


    "수르비나의 어느 식물은 뿌리에서 점액질 즙이 나와. 그걸 넣은 다음 치대면서 얼리면 이런 쫀득한 식감을 가진 독특한 아이스크림이 탄생하지."

    "허브티, 마시멜로, 민트초코. 이스티아에는 참 특이한 디저트들이 많네요."

    "그것들도 전부 '요정의 밀림' 이라고 불리는 수르비나와 인접해 있기 때문에 얻을 수 있는 특별한 식물들 덕분이다."


    "선생님도 어서 드셔보세요! 그 뿌리즙을 많이 넣어서 그런가 왕도에서 파는 것보다도 씹는 맛이 훨씬 더 좋아요."


    "그래, 그래.  먹을게."

    에반은 프릴이 사다 준 아이스크림을 집어들었다. 그런데...

    툭! 포크를 제대로 쥐지 못하고 땅에 떨어뜨렸다. 진정된 줄 알았던 손이 여전히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머릿속이 또 울리는듯 하다. 숨이 거칠게 흐트러지는 걸 들키지 않으려고 입을 틀어막았다.

    "선생님?"


    "내가 주울게. 신경 쓰지 마."


    "아, 포크라면 이럴 때를 대비해서 하나  챙겨왔어요."


    "그래도... 일단 이거는 주워야지."

    에반은 땅에 떨어진 포크를 집었다. 포크를 집는 순간 따뜻한 무언가가 장갑 낀 그의 손을 적셨다. 누군가의 피였다. 그의 검은 장갑이 붉게 젖었다. 포크인 줄 알고 집어든 그것은 피에 흥건하게 젖은 명왕성이였다.


    푸욱! 그는 명왕성을 뽑으려 했지만 깊게 박아놓은 터라 쉽사리 빠지지 않았다. 반대쪽 손까지 보태서 그녀의 어깨를 잡아 고정시킨  힘껏 뽑자 그제서야 날카로운 명왕성이 빠져나왔다. 푹! 명왕성이 뽑힘과 동시에 그녀의 가슴팍에서 피가 솟구쳤다.

    달빛 담은 은하수 같은 은발이 순식간에 피범벅이 되었다. 그가 어깨를 붙잡고 있던 손을 놓자 그녀는 힘없이 쓰러졌다.

    단말마조차  지르고 엎드러진 그녀의 등에는 온갖 무기가 남긴 상처로 가득했다. 처음부터 적으로 태어나는 존재는 없다. 격렬한 사투였음을 암시하는 그 처절한 상처들은 전부 한때는 친우였던 자들의 검이 새긴 것이다. 그들을 원망할 수는 없다. 그녀 역시 친우였던 자들을 베어내고 쓰러뜨려 여기까지 왔으니까.

    그리고 여기에서 힘을 다해 고꾸라지는, 그저 그뿐인 결말이니까.


    "익숙해지지 않아. 익숙해지지 않는다고."


    그는 명왕성의 피를 털어내며 홀로 중얼거렸다. 반쯤 무너져내려 폐허가 된 아민 황궁에서는 더 이상 장엄한 위용 같은 걸 찾아볼  없었다. 복도는 잊혀지게 될 전사들의 시신으로 가득했고 그들이 남긴 피 때문에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찰박이는 소리가 났다. 정말이지 익숙해지지 않는 짓거리다. 그는 생각했다.


    이런 곳에 그녀를 버려둔 채 제대로 된 장례조차 치르지 못하는 것도 역한 기분이 들 따름이다. 정장도, 구두도 검은 부분보다 붉게 젖은 부분이  많아졌다.

    그는 돌아서서 나아가기로 했다. 빨리 이 자리를 뜨기로 했다.

    덥썩!! 죽은  알았던 그녀가 그의 발목을 붙잡았다. 발목이 잡힌 순간 소름이 온몸을 타고 오르는 기분이 들었다.

    그는 쓰러진 그녀의 은발에 손을 가져다댔다. 그녀에게 저항할 기력은 남아있지 않았다. 발목을 붙잡아 막아세운 것만 해도 마지막 남은 혼신의 힘이었다. 그는 그녀의 은발을 어루만지듯이 쓸었다. 그리고는 머리채를 확 붙잡고 끌어올렸다.

    머리채를 잡아 끌어올리는 동안에도 그녀는 비명 한 마디, 신음 한 마디 없었다. 엉망이 된 얼굴은 눈을 제대로 뜨고 있는지도 살펴볼  없었다.


    "널 다시 보는 것도 이번이 마지막이였으면 좋겠어. 모즈나."


    그는 그녀의 이름을 귓가에 속삭이고는 명왕성을 들어올렸다. 그리고 이번에야말로 확실하게 목숨을 끊어놓기 위해 목덜미를 노리고 내려찍었다.


    "선생님? 선생님!"

    "....!!"

    "괜찮으세요? 갑자기 안색이 안 좋아 보여요."


    피묻은 명왕성은 온데간데 없고 자그마한 포크만이 쥐어져있었다. 가쁜 숨을 진정시키고 옆을 보니 온통 검붉은 색으로 물든 아민 황궁은 사라졌고, 새하얀 은발을 찰랑거리는 소녀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쳐다보고 있었다.

    "프릴..."


    "선생님 혹시... 저 때문에 무리하고 계신 건가요?"

    "아니야. 틈만 나면 졸았더니 잠시 좀 멍했네. 이제 괜찮아."


    "혹시라도 피곤하시거나 어디 불편하시면  말해주세요!"


    "그래, 그래."

    에반은 땅에서 주워든 포크를 쓰레기통에 휙 버렸다. 그리고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아이스크림 안 드시나요?"


    "좀 돌아다니자. 아니면 더 쉬고 싶니?"

    "아뇨, 아뇨. 갈까요?"

    의식과 무의식이 혼재하는 얕은 잠. 눈만 살짝 감았을 뿐인 몸 뿐인 잠. 무릎을 내어주고 노래 부르는 다정한 여인도, 사과나무 그늘도 모두 남아있지 않기에, 영혼의 눈은 부릅뜬 채로 한없이 충혈되어 가는 그런...

    얕은 잠.


    "피곤한 거 아니시죠?"

    "걱정하지 마."


    "아! 선생님 숙소에도 꿈꿈 스퀘어를 하나 장만해 드려야겠어요!"

    "사양할게..."

    에반은 환각을 떨쳐내고 눈에 힘을 줬다. 그리고는 평화롭게 흘러가는 라쿠이르의 주말을 다시 바라봤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