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8화 〉2-1. 얕은 잠 (7)
하늘을 날아다니는 교통수단에 대한 연구는 문화적 차이에 구애받지 않고 모든 인류에게 공통으로 해당되는 열망이다. 장기간의 행군이나 경사 가파른 오르막길 때문에 다리 아파본 적이 있다면, 뱃멀미로 정신이 혼미해진 경험이 있다면, 문득 올려다 본 하늘에서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새들을 본 적이 있다면. 그런 육상생물로써 지극히 흔한 경험을 해봤다면 누구나 새들을 따라하고 싶어지기 마련일 것이다.
그러나 비늘도 아가미도 없는 인간이 뱃길을 개척하기 위해 무수한 희생을 치렀듯이, 날개 없이 하늘에 길을 내기 위한 인간의 시도 역시 매번 고난을 맞닥뜨렸고, 지금껏 그 고난들을 뛰어넘지 못해 좌초되었다.
성층권을 영역으로 삼는 수많은 부유생물들과 마수들은 가장 큰 고난 중 하나다. 이들 앞에서 인간의 비행체는 너무도 어수룩하고 연약한 침입자다. 매번 비행할 때마다 사나운 창공의 원주민들과 총력전을 치르기에는 비용은 물론이겠거니와, 인명이 너무도 많이 소비된다.
하지만 부유생물이나 마수보다도 더 큰 고난은 단연 인간이다. 비행체는 날아올랐다고 해서 끝이 아니다. 비행체끼리의 충돌이나 오인 요격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지상 관제 시설 확보, 관제 시설끼리의 통신 조율, 항로 설정 협의, 운항 협약 체결 등등 무수히 많은 체계의 정립이 요구된다.
공학 기술적인 부분의 고난을 극복한다 하더라도 이러한 사회 체계적인 부분의 고난은 극복이 안 된다. 세계는 아직 해결하지 못한 외교적 문제, 군사적 분쟁, 안보적 갈등이 너무도 많아서 무사히 비행체를 하늘로 띄워올릴 수 없다.
적어도 아그루스 제국을 비롯한 물위의 세계는 그렇다.
비행체 하나 띄워올리는 데에도 문명의 슬기를 총동원하고 있는 후대 세계의 날개짓을 비웃기라도 하려는지 아민 제국의 공중도시가 하늘 가득 그 위용을 과시했다. 거대한 도시 하나가 공중에 떠있는 장관에 프릴 루에리아는 그저 압도될 따름이었다.
"뭐 구경이라도 났나? 안 어울리게 눈동자를 반짝이고 말이야."
"하앗?! 네?!"
가면을 쓴 흑복의 남자가 부르는 소리에 멍하니 구경하고 있던 프릴이 흠칫 놀라 움츠러들었다. 그 바람에 가면 쓴 검은 남자도 덩달아 움찔했다.
"얘 왜 이래? 오늘따라 유독 더 상태가 이상한데?"
[MZN : 아아, SHN! 가만히 앉아있는 사람을 왜 놀래키고 그래요!]
"내가 뭘 했다고?!"
[MZN : 뭘 했긴요! 그 온통 시커멓고 음침한 모습으로 말 걸면 당연히 놀라죠!]
"아니 내가 뭐 하루이틀 시커멓고 음침했냐?! 뭘 새삼스럽게!"
[MZN : 시커멓고 음침하다는 건 부정 안 하시네요.]
SHN이 단말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와 투덕거렸다. 프릴은 저 둘의 대화에 섞이지 않으려고 최대한 존재감을 감추면서도 그들이 나누는 이야기를 계속해서 주워들었다. 처음 SHN을 봤을 때는 위협적인 인상을 뿜어대서 겁이 났지만, 저렇게 동료와 시덥잖은 말싸움을 하는 모습을 보니 생각외로 인간적인 면모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휴! 내가 말을 말지!"
[MZN : 라고 말할 때의 SHN 특징 - 뒤끝 장난 아니라서 나중에 꼭 언급한다.]
"시끄럽고, 아무튼간에 황녀의 말이 사실이라면 지금부터 살짝 좀 긴장해야 해. 지금 이게 다 시간낭비에 쓸데없이 사고만 친 셈이 되는 한이 있더라도 사실이 아니길 바라지만... 우리 황녀님이 어디 거짓말 하는 성격도 아니니."
SHN이 프릴을 보며 말했다. 그러고보니 프릴은 저 둘이 자신을 자꾸 '황녀' 라고 부른다는 점이 신경 쓰였다.
[MZN : 공중도시의 영공에 진입합니다. 황녀님, 인공중력과 인공기압의 영향권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좀 많이 어지러울 수 있습니다. 꽉 잡아주세요!]
두 도시의 중력 사이에 걸쳐있던 전투기가 속력을 내서 공중도시의 하늘로 솟구쳐 오른 순간 하늘과 하늘이 역전되었다. 위아래로 마주보고 펼쳐진 두 도시의 지평선이 빙글빙글 돌면서 시야가 아찔해졌다. 그 사이에 위는 아래가 되고, 아래는 위가 되어서, 승천은 추락으로 바뀌었다. 즉, 프릴이 탄 전투기가 곤두박질 치고 있었다.
[MZN : 좋아요, 아주 안정적입니다.]
"떠, 떨어지고 있는데요?!"
[MZN : 안정적으로 떨어지고 있다는 거죠. 이쯤에서 중심 한 번 잡고 갈까요?]
덜컹! 전투기가 재주넘기를 하듯이 몇 바퀴 돌았다. 잠깐 휘청거리긴 했지만 금방 균형을 잡고 평탄한 기류에 올라탔다.
[MZN : 5번 황녀 도시의 영공에 진입했어요.]
"좋아, 그 또라이 황녀의 둥지에 쳐들어왔다. 그것도 망나니 황태자의 전투기를 훔쳐 타고서 말이지."
[MZN : 이제 어떻게 하실 건가요?]
"아까 네가 네 입으로 말했잖아. 사고 치러 가자고."
[MZN : 황녀님이 말씀하신 격납고까지 최단거리로 직행할까요?]
"최단거리라... 얘들이 길을 터줄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데."
[MZN : '얘들' 이요?]
SHN이 조종석을 만지작거리자 전투기에서 반타 흑광(黑光)이 방출되어 주변을 밤하늘보다도 어둡게 물들였다. 100%에 한없이 수렴하는 무시무시한 흡수율로 빛의 반사를 차단해버리는 흑광은 반사나 굴절등의 광공학적 기술을 기반으로 한 은폐 기능을 일시적으로 마비시킬 수 있다. 흑광이 사라지고 검은 장막이 거둬지자 은폐 모듈로 모습을 감추고 있던 무인 전투기들이 드러났다. 그 수가 족히 수십대는 달했다.
[MZN : 5번 황녀의 근위대에요. 잽싸기도 하네요. 숨어서 다가오던 게 들통나서 그런지 통신 신호를 보내고 있는데 연결해 드릴까요?]
"받아봐. 딱히 할 얘기는 없지만 그래도 절차라는 게 있으니."
[MZN : 알겠습니다.]
[SYSTEM : 신호 수신중]
[AEP : 은폐 중인 기체들의 접근을 눈치 채다니 제법이군. 탐지 장치를 사용하는 흔적은 보이지 않았는데.]
"댁들이 이쪽 통신망을 도청하려고 자꾸 회선을 만지작거리니 옆구리 간지러워서 견딜 수가 있어야 말이지."
[AEP : 그런 거였군. 허나 그대가 누군지, 무슨 목적으로 여기에 왔는지 알아내지 못하더라도 상관 없다. 어리석은 짓을 하면 격추해 버리면 그만이니까.]
근위대의 전투기들이 프릴이 탄 전투기 쪽으로 포문을 향하며 정렬했다.
[AEP : 이곳은 아민 제국의 왕좌에 앉을 정당한 혈통과 적법한 자격을 가진 황녀님의 영공이다. 침입자여, 지금이라도 물러난다면 영공을 침범한 그대의 실수에 관용을 베풀어주겠다.]
근위대의 지휘관이 으름장을 놓았다. 엠젠이 잠시 교신에 음소거를 건 다음 SHN에게 물었다.
[MZN : 어떻게 하시겠어요, SHN?]
"어떡하긴? 가라고 해서 갈 거면 처음부터 왔겠어?"
[MZN : 그렇다는 건...?]
"좋은 첫인상을 남기려면 역시 큰 목소리로 인사해야겠지?"
[MZN : 그럼요, 그렇고 말고요!]
엠젠은 전투기의 방향을 돌려 물러나는 시늉을 했다. 어느 정도 거리를 벌렸을 때 전투기는 공중제비를 돌아 다시 근위대를 마주 보더니 곧바로 탑재된 모든 화력을 쏟아부었다.
콰쾅!! 근위대의 전투기 몇 대가 격파되었다. 굉음과 함께 꽤 볼만한 불꽃놀이가 펼쳐졌다.
[AEP : 이게 네놈의 대답인가? 좋다. 네놈이 내린 선택이다. 다만 대가는 네놈 혼자 치르는 게 아니겠지.]
남은 전투기들의 포문에 에너지가 모이는 것이 보였다. 엠젠은 전투기의 방향을 틀어 빠르게 낙하했다. 근위대의 전투기들이 곧바로 그 뒤를 쫓았다.
[AEP : 다들 멈춰라! 저건 눈속임이다!]
낙하하던 엠젠의 전투기가 사라졌다. 흑광의 부산물 광학체로 모듈을 조작해 즉석에서 만들어낸 트릭이였다. 목표가 사라지자 근위대의 전투기들이 허둥댔다.
[AEP : 얼빠진 것들! 아지랑이의 뒷꽁무니나 줄줄 쫓아가기는! 저쪽이다!]
엠젠의 전투기는 반대쪽 방향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근위대는 뒤늦게 쫓아갔지만 연료를 모조리 태워가며 출력을 최대로 끌어올린 전투기는 이미 도시로 진입했다.
[AEP : <황녀의 날개>에서 전파한다. 무장 모듈을 탑재한 외부 비행체가 도시에 진입했다, 무인 기동인지 탑승자가 있는지는 불확실하다. 방위 체계를 갖춰 즉각 요격하라! 다시 한 번 전파한다 도시 내에 외부 비행체가...]
"시끄럽네. 꺼버려."
[MZN : 네, 네!]
[SYSTEM : 통신을 종료합니다. 해당 신호를 차단했습니다.]
[MZN : 지금부터 최단거리, 최고속력으로 격납고를 들이받겠습니다! 황녀님, 모쪼록 즐거운 드라이브가 되시기를.]
"네?! 꺄아앗?!!"
전투기가 어마어마한 속도로 날아가며 마천루 사이를 비집었다. 도시의 풍경과 건물의 간판이 빠르게 휙휙 지나쳐갔다. 프릴은 정신이 아찔해지는 걸 참아냈다. 이런 엄청난 속도로 장애물 투성이인 도시를 비집으며 날아다니는 중에도 SHN은 차분하게 먼곳을 내다보면서 상황을 살피고 있었다.
[MZN : 뭐가 좀 보이시나요?]
"도시 방위 편대가 <강철을 먹는 거미>를 배치했다."
SHN이 가리키고 있는 곳을 보니 길게 늘어나는 다리를 뻗어 벽을 타고 이동하는 거미 모양의 메카닉이 마천루를 타고 기어올라오고 있었다. 그런데 구름이 걷히고 나니 한 대가 아니라 수십 대의 거대한 거미 메카닉들이 떼지어 마천루를 기어오르고 있었다. 주변의 마천루에도 모두 거미들이 떼지어 기어올라가고 있었다. 그 모습이 프릴의 눈에는 몹시도 소름 끼쳤다.
[MZN : 아아, 냠철거미라니. 두툼한 지갑과 악취미가 합쳐지면 저런 흉물이 정규 군수 물품 대신 돌아다니기 마련이죠.]
키이잉! 거미 메카닉들이 특수한 초고열 점성 섬유를 내뿜어 줄을 쳤다. 마천루와 마천루 사이에 쳐진 드넓은 거미줄이 전투기가 걸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엠젠. 비장의 모듈 하나 정도 남겨뒀겠지? 뚫어버려."
[MZN : 두고두고 아껴둔 람소로크 모듈의 포장을 뜯을 차례군요. 그치만 SHN, 이게 이 전투기에 탑재된 마지막 모듈이에요. 다음에 무슨 일이 생기면 몸으로 직접 떼워야 할 겁니다.]
치이이잉!! 최종 화력 모듈을 전개하자 전투기의 포문에 에너지가 모여들었다. 출력을 최대로 끌어올린 전투기가 곧 회심의 필살기를 날릴 준비를 마쳤다.
[MZN : 꼬끼오~~!!]
파지지직!! 콰콰쾅!! 한 줄기의 광선이 뿜어져 나와 거미줄을 산산히 찢어버리고 뒤에 줄지어 서있는 마천루들의 벽에 구멍을 뻥 뚫었다. 거침없이 비행하는 전투기는 마천루에 난 구멍을 직선 경로 삼아 쭉 통과했다.
"저기 보인다. 저 건물에 격납고가 있어."
구멍 뚫린 마천루들을 줄지어 통과해 빠져나오자 목적지인 건물이 보였다. 뒤쪽에는 도시 방위대의 편대가 추격해오고 있었다.
"거의 다 왔어!"
그때 신경을 곤두세우는 날카로운 경고음과 함께 붉은 조명이 점등했다.
[SYSTEM : 동력 고갈 임박. 기체의 작동 가능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에너지를 보충하십시오.]
"동력 고갈?!"
"슬슬 바닥이 날 때지. 이 속도로 계속 달리면서 모듈도 막 써댔으니."
"동력을 어디서 보충하죠?!"
"보충? 아니 이 상황에 어디 들려서 느긋하게 충전한다는 게 말이 되나?"
"그럼 이 전투기는 이제 어떻게 하나요?"
[MZN : 어라? 황녀님, 제가 좀전에 말씀 드렸잖아요? 최단거리, 최고속력으로 격납고를 들이받을 거라고요.]
"드, 들이받아...?!!"
격납고까지 최대한 빨리 가겠다는 뜻의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였던 것인가? 이러는 동안에도 목적지인 건물은 점점 가까워지는데, SHN도 엠젠도 안전히 착륙할 궁리를 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돌아갈 때는 어떻게 하려고요?!"
[MZN : 그거야... 두 분이서 고민하셔야죠? 전 비행기 하나 구해달라 해서 구해다 줬을 뿐, 왕복인지 편도인지는 말씀 안 하셨잖아요? 아무튼 저는 이제 할일 끝났으니 가서 딸기우유나 마실래요. 안 그래도 DPN이 걱정하고 있단 말이에요.]
"그게 무슨...?!"
[MZN : 이따 봐요~]
"어이, 딸기우유 내꺼도 하나 남겨놔라. 저지방으로다가."
"자, 잠깐!!"
[SYSTEM : 원격 조종이 해제되었습니다. 수동 조종으로 변경합니다. 항로를 설정하여 주십시오. 경고! 충돌 위험! 신속히 항로를 설정하여 주십...]
쾅!! 전투기가 그대로 마천루의 벽을 들이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