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7화 〉1-4. 체스보드 (12) (37/88)



〈 37화 〉1-4. 체스보드 (12)

루나칼립스의 점심시간은 여느 때 보다도 활기가 넘쳤다. 아무래도 자극적이고도 신선한 화제가 던져졌기에 이야기할  많아진  원인인 듯했다.

"정말 킬링 이터가 나타난  맞아? 사칭이거나 가짜인 거 아니야? 사설 전달자들이 출처 불분명한 뜬소문 퍼뜨리는 게 하루 이틀도 아닌데 다들 너무 흥분한 거 같아."

"아니라니깐! 시신을 둘러싼 카그루에서 손톱과 이빨 자국 등 선명한 포식의 흔적이 발견되었다고. 이건 뜬소문이 아니라 수사 당국에서 정식으로 발표한 사실이야!"


"킬링 이터(Killing Eater) 라는 이름 말이야, 카그루를 먹는 괴이한 습성에서 유래되었다지? 카그루는 맛이 어떨까?"

"으윽! 식사 자리에서 그런 역겨운 거 상상하고 싶지 않아."


한창 떠드는 중인 학생들 틈에 도시락을  학생 몇 명이 끼어들었다.


"그 킬링 이터라는 사람. 그렇게 강해?"


"당연한 거 아니야??  살 넘은 사람이면  아는 사실인데."


"세 살?"


"킬링 이터가 단식에 들어가서 종적을 감춘  3년 정도 됐어. 그 3년 사이에 태어난 아기들을 제외하면 모든 이들이 킬링 이터의 악명을 익히 알고 있다는 말이야."


"흐으음."

"그런데 킬링 이터가 한창 활동을 했을 때도 주로 나타나는 출몰 지역은 그롬이였단 말이죠. 3년 만에 다시 활동을 재개하고 모습을 드러낸 곳이 이렇게 학원과 가까운 곳이라니 좀 불안하네요."

샌드위치를 야금야금 베어먹던 루밀리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불안할 게  있어? 이곳 루나칼립스 학원에는 강하고 실력 있는 마법사들이 널려 있는 걸?"


"카그루라는 전신갑주는 마법저항력이 무시무시해서 마법으로는 쉽게 뚫지 못합니다. 게다가 신체능력이 취약한 마법사로서는 카그루 사용자의 격투술에 맞설 능력도 전무하죠."

"그건 어디까지나 우리 같은 풋내기 저학년들에게 해당하는 얘기겠지. 3학년부의 펜시르 님 정도라면 가능하지 않을까?"


"가능하지 않아요."


"즉답?! 고민의 여지도 없는 거야??"


"아무리 펜시르 선배님이라도 역시 킬링 이터와는 상대가 될 수 없죠. 그 분의  상태라면 다들  아시잖아요? 그렇게 허약한 체력으로 이리들의 최상위 포식자를 상대하라니 너무 잔인한 얘기네요."


"그럼 오르토스의 이스민 선배는?"


"누가 상대인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개인 무력으로 킬링 이터를 상대하려는 건 바람직하지 못한 전략이에요. 다른 방식을 찾아서 접근해야 해요."

"복잡하네. 그나저나 루밀리 양은 어떻게 그렇게 킬링 이터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는 거야?"


"네?! 아, 그...그냥 조사를 좀 해봤을 뿐이에요."

"조사? 아! 혹시 루밀리 양도 그거야? 킬링 이터의 열성 팬을 자처하면서 다음 행적을 기대하는?"

"그럴 리가요! 그런 건 다른 사람을 짓누르고 자기과시나 할 생각에 힘을 기르는 오르토스의 철부지들이나 해당하는 거에요!  그런 부류랑 엮지 말아주세요."

"그, 그렇게 까지 싫어할 줄은 몰랐는데 미안해.  그냥 그런 취향도 있으니 말해본 거야. 나쁜 의도는 없었다구."


"그래. 이러니 저러니 해도 일단 멋있잖아? 전신을 덮은 검은 갑주에 카리스마 있는 붉은 눈동자에."


루밀리 라는 이름의 학생은 고개를 마구 저으며 부정했다. 그리고는 뾰루퉁한 얼굴로 말했다.


"멋있다니요. 카그루를 보고 멋을 느끼는  전 이해할 수 없어요. 그런  만약 실제로 눈앞에서 보게 된다면 온몸에 소름이 돋아서 멋같은 거 조금도 느껴지지 않을 거에요."

"에이, 루밀리 양은 걱정 안 해도 괜찮잖아? 아버지는 기사단 고위 장교에다가, 어머니는 상급 수사관이니까."


"맞네, 그렇네! 루밀리 양을 손끝 하나라도 건드렸다간 아무리 킬링 이터라 해도 매운맛 좀 보게 될걸!"

"으으... 부끄러우니 그런 말씀은 하지 마셔요."

루밀리는 그렇게 말하며 얼굴을 붉혔다. 그리고는 유독 올리브가 많이 들어간 자신의 샌드위치를 끄트머리부터 깨작깨작 갉아먹으며 말꼬리를 흐렸다. 동급생에게도 꼬박꼬박 존댓말을 쓰는 정중하고도 고지식한 성격에, 조금만 부끄러워도 귀끝까지 빨개지는 얼굴. 여러모로 놀리는 보람이 있는 그런 캐릭터였다.

"농담 삼아 던진 말이지만 사실 킬링 이터는 루밀리 양의 아버지나 어머니에게도 버거운 상대겠지."


"....."


루밀리는 차마 그렇지 않다며 부정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맞장구치며 긍정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그저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조용히 올리브를 씹었다.

"루밀리 양이 주눅들 필요는 없어. 주둔군도 아니고 무려 왕도에서 파견한 제국군 본대가 대대적으로 토벌 작전을 펼쳤는데도 유유히 빠져나간 게 킬링 이터인걸."

"그, 그래! 게다가 토벌 작전의 지휘관은 황제 직속 특무기사단 중  사람이였다며!"

"정말이지 괴물이야, 괴물. 기사단의 작전은 카그루의 약점이 5분만 넘어가도 사용자의 정신이 붕괴된다는 점이니 장기전으로 끌고 가 압박하는 거였는데, 킬링 이터는 24분 동안이나 카그루를 유지하고도 대화를 통한 이성적 의사 소통이 성립했다잖아."

"기사단 본대도 그렇게 포기한 게 킬링 이터야. 그러니 루밀리 양의 가족들이 당해내지 못하더라도 이상할 건 없어."

루밀리는 먹고 있던 샌드위치를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말했다.

"당해낼 수 있는지 없는지는 따질 부분이 아니에요. 저는  부모님을 믿어요. 그분들은 악당을 결코 놓치지 않을 겁니다."

"응.... 그렇지?"


"미안해. 기분 나쁘게 할 생각은 아니였는데."


"아뇨. 딱히 기분 상하거나 그러진 않았어요."


"그, 그래? 그럼 다행이다."


잠시 어색한 공기가 맴돌았다. 말없이 서로 눈치만 보면서 식사를 깨작이던  학생  명이 다시 말문을 틀었다.

"근데 킬링 이터는 악당이라고 할 수 있나?"


"그게 갑자기 무슨 소리야? 그럼 착한 사람이겠어?"

"킬링 이터가 민간인을 죽였다는 사례는 보고된 적이 없잖아. 뭐 강도짓을 한다거나 범죄에는 연관된  없고, 카그루 소지자를 잡아먹는 식인 행위만 발견됐어. 그런 점에서 보면 오히려 이리들을 잡아먹는 이로운 존재라 봐도 되는  아니야?"

"일리 있는 말이네."

"아뇨! 다들 무슨 말씀이셔요?!"


듣고 있던 루밀리가 갑자기 발끈 소리쳤다. 그 바람에 이야기를 나누던 학생들이 움찔하고 놀랐다.


"킬링 이터는 카그루 사용자에요. 이로운 존재일 리가 없어요!"


"그치만 민간인 피해자는 지금까지 없었고, 킬링 이터의 행동 반경에서는 이리들이나 범죄 조직들이 활동을 사렸다는 건 분명한 사실인걸."


"그게 사실이라고 해서 카그루 사용자를 두둔할 수는 없어요. 카그루는 사람의 몸과 정신을 양분으로 삼아서 뿌리내리는 괴물의 씨앗이에요. 그런 걸 심어서 힘을 얻는 사고를 가진 사람에게서 온전한 선의를 기대할  있을까요? 그런 걸 떠나서 카그루는 황제 폐하의 명령으로 엄격히 금지됐잖아요. 무고한 사람을 해치진 않았다고 해도 범죄자는 범죄자에요. 공공의 이익이 되는 점이 있다고 해서 변명거리를 허락해서는  돼요."


"알았어, 진정해."


"역시 기사 집안의 핏줄은 다르네. 적당히 넘어가는 게 없구나."

시민을 수호하고 제국을 지키는 기사의 집안에서 자라온 영향을 받은지라 루밀리는 강경하고도 강직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좋게 말해서 자기 자신에게 엄격하고, 나쁘게 말하면 융통성이 없는 성격이지만 심지가 곧고 예의 바른 인품의 소유자인 그녀를 미워하는 이는 없었다.


"그나저나 킬링 이터는 정말 사람일까?"


"그건 또 무슨 질문이야?"

"뭐랄까 우리가 킬링 이터를 사람이라는 전제로 생각하고 보는 거 같은데 정말 그 카그루 안에 사람이 들어있는 걸까? 24분 씩이나 카그루를 유지하고도 정신이 무너지지 않는다면 사람이긴 한 건가 의심하는 것도 합리적이라 보는데. 루밀리 의견은 어때?"

"그 말씀대로 카그루 너머에 감춰진 킬링 이터에 대한 정체에 대해서는 가설이 난무하죠. 숙주는 이미 사망했고 인격은 이미 카그루가 지배했다던가, 통제를 벗어난 제국군의 비밀 신병기라던가, 인조인격과 인공지능이 탑재된 아민 제국의 유물이라던가, '리치'를 섬기는 심복이라던가."


"리치?"

리치. 안개를 토하는 창백한 시체 마법사. 안개로 뒤덮혀 사람이 살지 못하는 '꿈꾸는 숲'에 은거하는 수수께끼의 마법사. 아그루스 왕조의 종말을 몰고  것이라고 예언이 지목한 마법사.

"마지막 가설은 너무 음모론이다. 리치라니 그런  실존하는 게 아니잖아."

"그러게. 왕가의 몰락을 바라는 불충자들이나 그런 예언을 믿고 리치를 기다리는 바보짓을 하는 거지."

"정체야 뭐가 되었건 킬링 이터는 강합니다. 그 강함 때문에 진작에 받았어야 마땅할 형벌을 유예받고 있죠. 그러니 달빛왕조의 밤하늘을 어지럽히는 일그러진 별이 된 거예요. 그런 존재가 학원 가까이에 나타났으니 모쪼록 다들 조심해야겠어요."

한편 교실 한 쪽에는 혼자 도시락을 먹으며 그들의 대화를 유심히 듣고 있던 한 학생이 있었다. 프릴 루에리아였다. 프릴은 카그루나 킬링 이터에 대해 얘기를 나누던 그들의 화제가 가벼운 수닷거리로 바뀌자 다먹은 도시락을 정리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프릴의 자리 바로 근처는 루밀리의 자리였다. 지금은 자신의 친구들이랑 모여앉아 점심을 먹기 위해 자리를 비운 루밀리의 책상에는 카그루에 관한 연구서적과 킬링 이터에 대한 자료들이 잔뜩 쌓여있었다. 그리고 책상 한 구석에는 거의  먹은 말린 올리브병이 있었다. 주인의 관심사가 숨김없이 드러나 있는 책상이였다.

자리를 정리하고 교실 밖으로 나온 프릴은 곧 복도에서 멀뚱멀뚱 서있는 자신의 친구를 발견했다. 보아하니 프릴을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드르륵 열린 교실문 너머에서 나온 리본장식이 달린 머리를 보자 반가운 기색을 감추질 못하고 다가온다.

"프릴! 점심은 다 먹었니?"


"소피아구나."


"보고싶었다구!"


"한 시간 전에 쉬는시간에 봐놓고선."


프릴은 자신에게 엉겨붙어오는 소피아를 밀어냈다.


"프릴. 수업이 다 끝나고 시간 돼? 누르워에 놀러가자."

"소피아. 이젠 정말 중요한 시기니까 놀러다닐 생각만 하지 말고 진지하게 공부해야 한다고 말한지 얼마나 됐지?"


"음~ 3일?"

"3시간이야..."

"그랬었나?"


"그랬었어. 그리고 오늘 방과후라면  돼. 가봐야할 곳이 있어."

"나보다도 중요한 일이야?"

"중요한 일인지는 모르겠는데  의지와는 관계 없이 피할 수는 없는 그런 일이야."


"그거 딱 공부 아니야?"

"공부는 중요한 일이야. 피하려고 해서도 안 돼고. 아무튼 오늘은 선약이 있어서 집에 가봐야할 거 같아. 또 편지가 왔거든."

프릴은 편지봉투 하나를 펄럭 흔들며 말했다. 편지에 찍힌 봉인을 보니 꽤나 이름 있는 공작 가문의 문양이 찍혀 있었다. 그걸 본 소피아의 얼굴이  식었다.


"누가 보낸 거야? 남자야? 역시 남자지? 어떤 새끼야?"


"소피아! 복도에서 그런 말을 쓰면 어떡해?! 선생님이나 선도위원회가 지나갔으면 벌점을 받았을 거야!"


"그런 건 상관 없어! 프릴을 뺏기게 생겼는데 벌점 같은 게 무슨 상관이야?"

"뺏기다니 그런 영문 모를 말 하지 말고."


프릴이 말했지만 소피아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소피아는 자그만한 프릴의 몸통을 꽉 끌어안고 질질 늘어질 기세로 매달렸다.


"안  프릴... 가지마... 날 혼자로 만들지 말아줘~!"


"뭐하는 거야?! 소피아! 주변에서 이상하게 보잖아!"

복도  복판에서 프릴에게 매달려 징징대는 소피아와 당황한 프릴의 모습을 지나가는 학생들마다 힐긋 보고 있었다. 분명 다들 속으로는 기품 없다고 생각하고 있겠지? 깐깐한 교사의 눈에 띄기라도 했다가는 품위 유지 권고를 받을 수도 있다.

"남자라면 거리부터 유지하고 보는 중증 이성기피증 환자인 프릴이 혼담이라니! 그런 거 나는 허락 못 한다!"

"왜 소피아에게 허락을 받아야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소피아, 그만하고 좀 풀어줄래?"

소피아의 품에 거의 파묻혀버린 프릴은 자신을 꽉 붙들고 있는 소피아의 팔을 풀어냈다. 시무룩해져서  늘어진 소피아를 본 프릴은 못말리겠다는 얼굴로 한숨을  번 쉬고는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수업 시작하기 전까진 시간이 좀 있네. 산책이라도 한 바퀴 돌까?"

"응!! 좋아!"

언제 그렇게  쳐졌었냐는 듯 다시 기세가 솟아난 소피아였다.

"오늘은 어느 쪽으로 돌까?"

"정원이나 분수대 쪽은 지금쯤 사람이 많을 테니 담쟁이골목으로 갈까?"

"좋네. 그러자."

프릴과 소피아는 소화도 시킬 겸 바람 좀 쐬기 위해 담쟁이골목으로 향했다. 담쟁이골목은 그 이름만 봐도 알 수 있듯이 담쟁이덩굴이 수북히 뒤덮인 벽으로 둘러쌓인 곳이다. 이름은 골목이지만 사실은 운동장이랑 비슷한 면적의 공터가 자리잡은 광장 비슷한 느낌의 공간이다. 그 광장을 에워싸고 있는  교사는 담쟁이덩굴이 완전히 뒤덮어서 벽돌의 붉은색이 보이는 부분이 없을 정도였다. 그렇기에 익숙해지지 않으면 숲과도 같은 인상을 느끼기 쉬운 장소다. 건물이 둘러싸고 있어서 다소 그늘진 데다가  트인 전망이 없다보니 다른 곳에 비하면 찾아오는 사람이 적은 편이다.

"오오 프릴이구나. 점심은 맛있게 먹었니?"

담쟁이골목을 찾아가던 도중 순찰을 돌고 있던 보안지도원이 프릴과 소피아를 보고 인사를 건냈다. 그는 온화하고 인자한 미소가 돋보이는 초로의 신사였다. 프릴은 안전거리를 유지하는 한편 싱긋 웃으며 인사에 답했다.

"윌터 선생님, 안녕하세요."

"그래, 그래. 그리고.... 이쪽에 학생은?"


"소피아입니다."

소피아는 프릴을 대할 때와는 확연한 온도차가 느껴지는 표정과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러나 보안지도원 윌터는 여전히 그 부드러운 웃음을 머금은 얼굴로 소피아에게 인사를 건냈다.


"그래, 맞다. 소피아였지. 항상 프릴과 붙어다니니 이제쯤 이름을 외울 때도 됐는데. 나이가 드니 기억력도 영 못써먹겠어."


"항상 학원을 위해 수고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생님의 수고로 학생들이 안심하고 지낼 수 있어요."

"하하! 프릴이 그렇게 말해주니 없던 기운도 솟는구나. 고맙다. 그럼 좋은 하루."


"네. 선생님도 좋은 하루 되세요."

프릴은 윌터에게 인사를 하고 마저 걸어나갔다. 소피아는 여전히 심술궂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난 저 지도원 마음에  들어."


"왜? 윌터 선생님은 친절하고, 자상하고, 또 근무태도도 성실하셔서 싫어하는 학생들이 없는데."


그 정반대의 케이스로는 에반 플루토라는 지도원이 있다.

"친절하니, 성실하니 그런  아무래도 좋아."

"그럼 뭐 때문에 윌터 선생님이 마음에  드는 거야?"


"너한테 너무 친절해."


응? 프릴의 논리회로가 소피아의 대답을 해석하는 데 실패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대답에 잠깐 어버버하던 프릴이 소피아에게 되물었다.

"그게 뭐가 어때서?"

"그게 뭐가 어떻냐니? 저 지도원은 딱 너한테만 유독 친절하다니깐? 내가 봐서 알아.  비롯한 다른 학생에게 인사할 때랑 너한테 인사할 때는 표정이 달라도 너무 다르다고. 게다가  지도원이 이름 기억하고 있는 학생은 프릴 너뿐이라고."

"내가 기억에 잘 남았나봐."

"왜 기억에  남았겠어? 프릴 네가 마음에 든 거야. 물론 순수한 의미로 마음에 든 게 아니라 음흉한 시선이 담겨있어. 너처럼 쪼그만하고 앙증맞고 귀여운 쪼꼬미가 타입인 게 분명해."


"쪼그만하다고 강조하지 마! 그리고 그 발언은 열심히 일하는 윌터 선생님에게 실례라고. 연세도 있으신 분인데."

"안전거리 유지를 철저히 하는 프릴 답지 않은 걸. 남자는 자기집 문턱 넘어갈 힘만 있으면 다 경계의 대상이라고.  말하다 보니 또 생각 났네. 너한테 편지 보낸 그 남자, 어떤 새끼야?"

"그 얘기는 그만하자고 했잖아. 자꾸 그러면  교실로 돌아갈 거야."


"앗! 알았어, 알았어..."

프릴과 소피아가 담쟁이골목에 도착해보니 아무도 없을 줄 알았던 공터에 학생 한 명이 자리잡고 앉아있었다.


"프릴, 저기 봐. 누가 있어."

"어디? 정말 그러네."


혼자 앉아있는  학생은 식사 중이라기에는 아무것도 손에 가진 게 없었고, 시간을 때우러 왔다기엔 말동무도 없었다. 멀찍이서  모습을 자세히 관찰해보니 눈이 부실 만큼 윤기가 흐르며 찰랑이는 흰색 머릿결이 매력적이였다. 푸른 눈동자는 설국의 얼음보석을 보는  투명하고도 아름다웠고, 피부도 눈이 내린 벌판 처럼 하얗고 곱디 고왔다. 무엇보다도 홀로 앉아 있는 그 모습에서 느껴지는 차디찬 분위기가 흡사 설국의 전설로 전해지는 설녀를 보는듯 했다.


"누구지? 교복은 분명히 우리 학원 고등부 교복이지만 한번도 본적 없는 거 같은데. 혹시 소피아는 누군지 알아?"


"아니. 저렇게 예쁜 애가 있었다면 진작에 내가 알고 있었겠지."

"그럼 누구지?"

공터에 앉아있던 그 수수께끼의 은백색 학생은 자세히 보니 달리기라도 했는지 숨을 헐떡이고 있었고 얼굴은 발갛게 상기되어 있었다. 게다가 표정은 어딘가 초조해보이기 까지 했다.

"으읏!!! 하 젠장!"

그렇게 차갑고 도도한 인상에 어울리지 않는 말투로 소리치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는 허공에 손짓을 했다. 그러자  손짓에 응답하듯 바닥에서 투명한 얼음의 결정이 일어나 빙판길을 만들었다. 이윽고 그 학생은 빙판을 타고 빠르게 미끄러지듯 담쟁이골목을 빠져나갔다.


"빙결 마법. 역시 설국 출신 학생인가봐."


"그러면 더더욱 모르겠네. 우리 학원의 설국 유학생들은 불곰이랑 기싸움 해도 안 밀릴 정도로 터프한 애들 뿐이니까."

그렇게 이야기를 주고 받는 도중 프릴이 갑작스럽게 엄습해오는 본능적인 불안함을 감지했다. 잽싸게 뒤로 돌아보니 그곳에는 피곤한 인상의 남자가 귀찮다는 얼굴을 하고 서있었다.

"예민한 센서가 달렸구나, 루에리아."

프릴과 소피아의 뒤쪽에 다가온 것은 에반 플루토였다. 순간 겁먹고 뒤로 확 돌아본 프릴이였지만 엄습해온 그림자의 정체가 에반이라는  알아보고는 긴장을 풀고 인사했다. 물론 안전거리는 확보한 채로.

"안녕하세요, 선생님."

"안녕 못할 예정이야. 여기서 여장 변태 하나 못봤니? 이쪽으로 왔을 텐데."


"여장 변태요?!! 그런 건 없었어요."


"그럼 여긴 아무도 없었던 거야?"

"아뇨. 좀 전 까진 학생  명이 있었어요."

"인상착의  알려줄래?"

"머리색이나 피부가 하얘서 그런지 전체적으로 하얀색이였어요. 눈동자는 벽안보다도 진한 푸른색이였고요, 체격은 작은 편이고, 말랐고, 아 그리고 빙결 마법을 사용했고요."


"역시! 그놈이야!"

"네........??"

프릴과 소피아가 동시에 얼굴에 물음표를 띄웠다. 그놈이라니? 뭐가?


"그놈이 상습적으로 여장을 하고 여기 숨어들어오는 놈이라고!"


에반은 그렇게 말하고선 빙결 마법의 흔적을 쫓아 달려나갔다. 남겨진 프릴과 소피아는 멍하니 서있다가 이내 망치로 머리를 세게 맞은 듯한 충격에 소리쳤다.

"뭐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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