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화 〉1-3. 위험한 우등생들 (8)
시궁쥐 무리는 뿔뿔이 흩어졌고 그들이 거점으로 쓰던 폐건물은 텅 비어있었다. 문이 열리고 곤룡회 무리가 안으로 들어왔다. 그들 중 몇 사람이 묵직해 보이는 자루 하나를 질질 끌고 들어왔다.
"영차! 휴우...! 무거워라. 허설 언니는 힘도 좋으시면서 이런 건 전부 우리더러 나르게 시키다니 하여간 치사하다니깐."
자루를 풀썩 내려놓고 나자 아선이 볼멘소리를 내며 툴툴거렸다.
"이 자의 조직이 여기를 찾아올까요?"
"모를 일이죠. 하지만 연락이 두절된 동료를 찾을 생각이라면 그가 원래 있던 장소를 한 번쯤 살펴보는 게 타당하지 않겠습니까?"
"설령 여길 살펴보지 않는다 하더라도 크게 차질이 생기진 않을 테죠. 과정 하나 둘 더하고 빼기의 차이일 뿐."
"그럼 허설 선배님, 이제 이걸 어디다 버릴까요?"
"아무 곳에나 두십시오. 너무 눈에 안 띄는 곳만 아니면 됩니다."
"예, 저쪽에 던져두도록 하겠습니다."
곤룡회 대원들이 자루를 들어올려서 잡동사니 더미가 있는 쪽으로 던져버렸다. 쿵! 우당탕! 자루가 잡동사니 더미에 처박히자 자루 안에서 무언가가 격하게 꿈틀대며 이상한 소리를 냈다.
"우읍..! 읍! 읍읍!"
자루 안에서 입마개 씌워진 사람이 발버둥치는 소리가 났다. 안에 있는 사람이 발버둥 칠 때마다 자루가 푹푹 솟았다 꺼지기를 거듭했다. 자루를 내던진 곤룡회 대원들은 손을 탁탁 털고 그 자리를 떠났다. 그 중 한 사람이 자루가 있는 곳에 쪽지 하나를 남겼다.
"인적 없는 버려진 건물이라지만 누가 찾아와서 발견하지는 않겠죠?"
"뒷골목 바깥의 사람들은 뒷골목에 관심이 전혀 없습니다. 그런데 뒷골목 안의 사람들도 주변에 관심을 주지 않기는 매한가지죠."
“잘 결박해 놓긴 했는데… 혹시라도 빠져 나와서 도망치지는 않을까요?”
“만에 하나 그럴 힘이 남아 있고 운도 따라줘서 도망친다 한들 갈 곳이 어디 있겠어요? 제국의 조직이라는 것들은 지령을 어기거나 쓸모가 없어진 이리에게 가차 없습니다. 어찌보면 제국군의 기사들보다도 상벌이 확실하죠.”
"그러면 이 자는 어떻게 되더라도 끝이 영 좋지 못하겠군요."
"그건 이리가 된 시점에 이미 정해진 운명입니다. 우리가 신경 쓸 필요는 없어요. 그리고 아선 양? 부탁인데 제발 그것 좀 가지고 놀지 말아주실래요? 보는 사람 소름 끼치니까."
"알았어요, 안 그래도 버리려는 참이였다고요. 어이, 아저씨~ 여기 팔 챙겨야지."
아선이 잘려나간 사람 팔뚝 하나를 자루에 대고 던졌다. 팔뚝으로 자루를 정확히 맞추고 득점했다며 흥얼거리는 그 모습은 마치 사람이 죽고 사는 것을 심심풀이 오목 두는 정도의 여흥으로 여기는 것만 같았다.
"근데 왜 팔이에요? 다리를 다치게 했으니까 다리를 잘라놔야 야리카에시(やり返し) 아닌가요?"
"보복은 우리의 용건이 아니에요. 그러니 수장님이 명령하지도 않은 불필요한 상해 행위는 삼가도록 하세요. 천의 님이 화내실 거예요."
"으으 혼나는 건 싫어."
아선이 파르르 떨며 과장된 몸짓을 했다. 그녀는 학원 생활이 따분하던 참에 뒷골목에서 일이 터진 게 퍽 즐거워 보였다.
“이럴 때 내 칼이 없어서 과일칼이나 들고 있어야 하다니. 이렇게는 못 살아! 그건 내가 하사 받은 내 칼이야! 당장 내 칼을 돌려받기 위해 지도원 씨랑 쇼부를 치러…!”
덥썩! 차가운 손아귀가 아선의 뒷목을 감싸 잡았다. 그 익숙한 손맛에 아선은 본능적으로 오싹한 전율이 온몸을 타고 일어나는 걸 느꼈다. 깽판 칠 생각에 신나서 까맣게 잊고 있었다. 허설이 바로 뒤에 있었다는 걸.
“아선.”
“네… 선배님.”
“수장님께서 계신 곳으로 빨리 합류하려면 시간이 넉넉하지 않다. 여기서 널 훈육하고 있을 여유 따위 없어.”
“그, 그렇죠? 휴우!”
“그러니 약식으로 금방 끝내지.”
“네? 그게 무슨…”
우드드드득!
“끄아아악?!!!”
허설이 손아귀에 힘을 주자 야무진 효과음과 함께 아선의 알찬 비명소리가 폐건물 안에 메아리 쳤다. 지켜보던 다른 곤룡회 대원들은 저럴 줄 알았다며 고개를 저었다. 허설이 손에 힘을 풀자 아선이 무너지듯이 풀썩 쓰러졌다. 허설은 아선이 울건 구르건 신경 쓰지 않는지 뒤도 안 돌아보고 폐건물 밖으로 나가려 했고, 다른 대원들도 그녀의 뒤를 따랐다.
“자, 잠깐! 놓고 가지 말아요! 아야얏….”
아선이 앓는 소리를 내며 뒤따랐다. 곤룡회가 떠난 뒤로도 폐건물에 버려진 자루는 꿈틀꿈틀 몸부림쳤지만 이윽고 힘이 다했는지 잠잠해졌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서 누군가가 자루를 발로 툭툭 차는 게 느껴졌다. 자루 안에 든 사람은 다시 몸부림을 쳤다.
"살아있나 본데?"
"꺼내봐."
남자 목소리가 오고가는 걸 보아 곤룡회는 아니었다. 자루를 발견한 누군가가 매듭을 풀고 안에 묶여있는 사람을 끄집어 꺼냈다.
"우읍! 읍!!"
입마개를 한 암피르가 끌려 나왔다. 암피르는 자신의 동료인 마크, 피텔과 제이콥을 발견하자 한층 더 필사적으로 무어라 읍읍 소리를 냈다.
"으휴 이거 이거 븅신섀끼. 꼬락서니 봐라. 야 씨벌 팔 한 짝은 또 어디로 갔어?"
"여깄네. 절단면이랑 뼈 모양새 보니까 뭐 톱으로 켜진 않았고... 도끼나 그런 건데."
"븅신섀끼랬더니 진짜로 븅신 돼 있었네."
"으읍우읍읍!!"
"뭐라는 거야? 이 새끼 어떻게 할까? 카일."
"으읍.....?!!"
카일이라는 말을 듣자 암피르의 표정이 굳었다. 그는 묶인 몸으로 바둥바둥 꿈틀대는 것도 뚝 멈추고 옆으로 눈을 돌렸다.
흉터 투성이의 살벌한 외견을 한 이리가 싸늘한 시선으로 암피르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풀어."
그가 한 마디 하자 마크가 암피르의 입마개를 풀었다. 입마개가 풀리자 암피르가 하소연했다.
"카일, 들어봐! 지령의 검토가 충분하지 않았어...! 역시 조직이 라쿠이르에 손을 뻗는 건 처음이라 계산에 오차가 컸다고! 나 정도의 이리 하나랑 시궁쥐 무리로는 충분하지 않았...."
빡! 카일이 암피르의 머리를 짓밟았다. 바닥에 얼굴을 처박은 채 짓밟힌 암피르가 비참한 목소리로 신음했다.
"크윽....!"
"일을 망쳐놨으면 일단 죄송합니다 하고 대가리부터 박는 게 사회 생활의 기본 아니냐? 입을 열자마자 조직의 지령을 탓해?"
"마법사...! 마법사가 너무 많아! 길거리에도, 빵가게에도, 심지어 뒷골목에도 마법사 하나 정도는 어슬렁거리는 곳이라고 여긴!"
"실패한 이유를 나불대라고 주둥이를 풀어준 게 아니야. 묻는 말에 답하기나 해. 누구 짓이지?"
"동방인 패거리였어. 이곳의 뒷골목을 주무르는 세력이고, 마법학원과도 연결되어 있어. 그 중 한 년은 반죽까지 발랐다니깐?!"
"무슨 시술?"
"무슨 시술? 그걸 척 보면 딱 알겠어? 인체강화 계열 같은데 자세한 건 몰라. 역장을 맨주먹으로 박살낼 정도였으니 어디 싸구려 공방이나 하꼬 병원에서 반죽한 건 아니야."
"동방 놈들이 무슨 연관 관계가 있어서 유리아 릴리스를 보호하지?"
"몰라, 그건 오히려 내가 더 궁금하다고."
"흐음..."
"카일! 예상 외의 방해가 자꾸 들어와서 늦어졌다는 건 나도 인정해. 하지만 내 지령은 아직 유효해... 그렇지? 팔 한 짝으로도 아티팩트는 쓸 수 있어. 금방 유리아를 찾을 거야! 역장을 전부 동원하면 뒷골목에서 빠져나가지 못하게...."
"마크."
탕!! 마크가 방아쇠를 당겼다. 단 한치도 망설일 것도 없이 이뤄진 처분이었다. 카일은 죽은 암피르의 소지품을 뒤져서 아티팩트들만 챙긴 뒤 볼일이 없는 시체를 두고 떠나려 했다. 그러던 그의 눈에 곤룡회가 남긴 쪽지가 들어와서 주워봤다.
"카일? 뭐야 그건? 쪽지?"
"흐음."
쪽지에 적혀있는 건 뒷골목의 어느 구역 주소였다. 기다리고 있을 테니 해당 주소로 찾아오라는 당돌한 글귀가 남겨져 있었다. 그것도 '갈퀴날들에게' 라고 조직 이름까지 딱 짚어서.
"역시 제 목숨 건사하겠다고 조직에 관한 정보를 불었군. 버러지 같으니라고."
카일은 암피르의 시체를 한 번 걷어차고는 쪽지의 주소를 찾아가기로 했다. 주변의 이리들이 의문을 표했다.
"쪽지가 적힌 곳으로 가려고? 지금도 유리아 릴리스는 도망치고 있는데 동방애들의 환영 파티를 받아주느라 허비할 시간이 어딨어?"
"유리아는 뒷골목을 못 벗어난다."
"그럼 좋지. 근데 무슨 근거로?"
"간사한 동방 놈들이 우리에게 개수작을 걸었다. 이럴 때는 저쪽이 걸어놓은 베팅을 이쪽이 역으로 집어 먹어야지."
"뭔 소린지 하나도 모르겠는데 아무튼 너한테 계획이 있다는 거지?"
"우리가 카일 너한테 이의 제기할 입장은 아니지만, 암피르가 시간 줫나 허비해 놔서 지금 살짝 촉박한 건 알지? 뭘 하던간에 일단 서둘러야 할걸?"
"당연히 알지, 아주 잘 알지. 조직의 대가리들이 얼마나 성질머리 급한지는 내가 제일 잘 알지 아무렴."
지체없이 앞장서는 카일의 뒤를 이리들이 따라붙었다.
------------
누르워 구석진 골목의 가게 천설당. 가게의 문이 벌컥 열리자 누가 왔음을 알리는 방울이 짤랑짤랑 빠른 템포로 노래했다. 점장이 채 접객을 하기도 전해 황급히 뛰어들어온 은발의 소년이 가게를 빠르게 훑어보았다.
"시엘? 왜 이렇게 늦었어? 밀가루는 어쨌고?"
"지금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야!"
"뭐? 배달을 시켰는데 빈손으로 와놓고는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야? 아, 주문한 내 밀가루 어딨어?"
"아, 그러니까 지금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라니깐!"
"잠깐만 너 꼴이 왜 그래? 너 뒷골목에서 강도라도 만났어?"
"비슷하긴 한데 그보다도...!"
"그보다도는 뭐가 그보다도야?! 어떻게 된 일인지 자세히 설명해 봐!"
"그럴 시간 없어! 유리아! 유리아 릴리스 봤어? 여기 들리거나 아니면 지나가거나 하지 않았어?"
"그게 누군데?"
"제국에 사업자 등록하고 가게 꾸리면서 백화 상회의 유리아 릴리스를 몰라? 발품 팔러 도와다니는 나도 건너들어서 아는데?"
"몰라, 그런 대단한 아가씨가 뭐하러 이런 구석탱이의 가게까지 오겠어? 근데 그 아가씨가 왜?"
"그게....!"
시엘은 한쪽 구석에서 빙수를 나눠먹고 있는 에반 플루토와 프릴 루에리아를 발견했다. 둘이서 빙수 하나 나눠먹는데 테이블을 따로 떨어져서 앉은 게 그림이 참 이상했지만 지금은 그런 걸 지적할 때가 아니였다.
"어이 당신!! 마침 잘 만났다!!"
시엘은 어디 불이라도 붙은 듯 다급하게 에반 플루토를 향해 달려들었다. 마침 그때 에반은 딱 콩고물을 듬뿍 뿌린 팥을 떠먹던 타이밍이였기 때문에 콩가루 분진이 엉뚱한 길로 들어가서 사래가 들려버렸다.
"쿨럭, 쿨럭!! 컥!! 끄윽끅!! 켁켁, 뭐야 갑자기!"
에반이 거칠게 기침을 할 때마다 누런 콩가루 안개가 피어올랐다. 그러거나 말거나 마음속으로는 이미 경각을 다투고 있는 시엘이 다급히 말했다.
"방해해서 미안한데 혹시 유리아 릴리스 봤어?!"
"보고 자시고 올 때 나랑 같이 왔었는데. 근데 얼마 안 돼서 곧 나갔어. 유리아는 왜 그렇게 다급하게 찾는데? 또 작업 거려고?"
"유리아가 시궁쥐 무리에게 노려지고 있어! 여기 골목의 쥐들은 아니야. 아마 다른 곳의 이리가 끌고 들어온 거 같은데."
에반이 한가로운 주말 좀 누리려는데 왜 자꾸 성가신 일이 벌어지는 거냐며 표정을 구겼다. 가까이에 앉아있던 프릴은 유리아가 위험하다는 소식에 당혹스러운 얼굴을 감추질 못했다.
"허 참. 유리아 그 녀석은 뭔 좋은 구경할 게 있다고 뒷골목을 들어갔대? 기분전환 삼아 재개발 사업 구상이라도 하고 싶었나?"
"선생님, 그걸 궁금해 할 때가 아니에요! 이 여성 분... 이 아니라 남성 분... 아닌가...? 하여튼 이분의 말이 사실이라면 유리아 양을 당장 찾아야죠!"
"주인장. 이 동네가 원래 이리들이 막 설치고 다녀? 그런 위험한 곳이면 이런 사탕가게에 애들이 무슨 수로 놀러와?"
"당연히 전례 없던 일이죠. 라쿠이르는 마법학원 관련 산업 빼면 대자연 속 농업지대 뿐인 곳인데. 이런 깡촌에서 이리들이 무슨 돈을 벌겠다고 판을 벌이나? 괜히 학원의 일류 마법사들에게 잘못 걸렸다가 뚜드려 맞기 밖에 더하겠어요?"
"그럼 얘가 말한 건 뭐지?"
"낸들 알겠습니까? 어디서 또라이 하나 기어들어왔나 보죠."
"아이고 머리야... 나 학원에 파견 온지도 슬슬 일주일 넘어가는데, 왜 자꾸 내가 오기 전에는 원래 안 일어나던 일들이 계속 터지니? 깜짝 이벤트야? 신고식 좀 그만 치르면 안 될까?"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에요!"
보다못한 프릴이 주머니에서 작은 밀봉 실린더를 하나 꺼냈다. 거기엔 마법사들이 술식을 위한 방진을 짤 때 쓰는 수은이 담겨있었다.
"점장님. 급박한 상황이라 그런데 가게에서 간단한 마법을 사용해도 괜찮을까요? 위험하지 않습니다."
프릴은 정중하게 가게주인에게 허락을 구했다.
"같이 온 누구와는 다르게 예의가 바르구나. 그러도록 하렴. 혹시 필요한 게 있으면 말하거라. 우리 가게에 있다면 최대한 제공해주마."
"정말 감사합니다."
"아냐, 저 주인장 아저씨가 감사해야해. 루나칼립스 씩이나 되는 학원에서 쓰는 술식용 수은은 엄청 고도로 가공된 거라 인체에 무해하고 가격도 엄청 비싸다고. 몇 방울 바닥에 흘린 거 잘 주워다 팔면 이틀치 과자 매상이랑 맞먹을 걸?"
"팔지 않고 잘 뒀다가 다음번에 오셨을 때 꼭 과자 안에 넣어 드리겠습니다."
이 와중에도 깐족대는 에반 플루토에게 가게주인이 한소리했다. 그러는 둘을 무시한 채 프릴 루에리아는 수은을 테이블 위에 잉크삼아 쏟은 뒤 손가락으로 찍어 간단한 마법진을 완성했다.
"많이 연습해본 솜씨인데?"
"아직은 많이 부족해요."
"그렇네."
"....."
프릴이 방진을 완성하고 술식을 발동시키자 수은이 빛나면서 허공에 패턴을 띄웠다. 규칙적인듯 하면서도 삐뚤빼뚤하게, 그러나 사이사이에 틈을 두고 늘어선 사각형들의 패턴은 분명 이 근방을 조감도로 나타낸 지도였다.
호오. 제국의 마법을 접할 기회가 많지 않았던 점장은 어린 소녀가 마법을 부리는 모습을 흥미롭게 지켜봤고, 에반은 속뜻 모를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그리고는 프릴에게 물었다.
"그거로 유리아를 찾을 수 있겠어?"
"지도 내에서 생명 징후 반응을 포착할 거예요."
"무조건 오류 난다. 그 범위 내에 사람이 한 둘이 아닌데 한 줄 짜리 술식의 연산 능력으로 부하를 어떻게 감당하려고?"
"마법을 쓸 줄 알거나 아티팩트를 소지한 사람은 필연적으로 활성 회랑 반응을 일으키죠. 이 반응이 있는 생명 징후만 남기고 나머지는 다 소거하면 돼요."
"여럿이 감지되면 어느 게 유리아인지 특정할래?"
"그건 어렵지 않아요. 유리아 양의 마법은 특이하.... 아니, 좀 특별하거든요. 보통의 마법사라면 빛으로 표시되겠지만, 유리아 양은 마치 어둠처럼 표시될 거예요."
"그 범위 내에 있을 거라고 확신해?"
"더 광역으로 술식을 짜기에는 여건이 안 되니 어쩔 수 없죠. 반응이 없으면 최대한 빠르게 좌표를 바꿔가는 수밖에요."
시엘은 프릴과 에반을 멍하니 쳐다봤다. 분명 자기도 마법학원의 학생인데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건지, 무슨 시도를 하는 건지 도저히 따라 갈 수 없었다.
"찾았어요!"
지도 내에서 불필요한 신호의 감지를 차단하고 유효한 반응들을 최대한 이끌어내자 어둡게 점멸하는 신호를 찾아내는데 성공했다.
"제법인데?"
"그런데... 여기는 뭐가 이렇게 많죠?"
유리아로 추정되는 검은 신호가 있는 곳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무수히 많은 빛들이 몰려있는 게 눈에 거슬렸다. 빛들은 프릴의 술식이 오류가 났나 싶을 정도로 기형적인 밀도로 한 장소에 결집되어 있었다. 그 별무리에 네 개의 빛이 다가가는 것이 보였다.
"저게 설마 전부 마법사나 이리라는 건... 아니겠죠?"
"아니라면 그게 더 안 좋은 일 아니냐? 술식에 오류가 난 것이니 이 결과값을 믿을 수 없거나, 아니면 뒷골목 지하에 잠들어 있던 뭐시깽이 언데드 군단이라도 깨어났거나 둘 중에 하나인데."
"제 술식은 분명 틀리지 않았어요."
"그래. 나도 다 지켜봐서 알아. 아무래도 파티를 벌여 놓고 유리아만 초대해 줄 생각인가 본데... 난 S급 심술쟁이라서 나 빼놓고 재미보는 꼴 못 보거든?"
에반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자, 자. 그럼 유리아를 데리러 가볼까? 이거 엄연히 초과 근무인데 나중에 교무부에서 주말 수당 나오려나?"
"선생님? 무기도 아티팩트도 없으시면서 가서 무얼 하시려는 거죠? 설마 유리아 양을 노리는 이리들도 찾을 셈이신가요?"
"놈들을 찾을 셈이냐고? 당연히 아니지. 놈들을 두들겨 팰 셈이다."
에반은 그대로 가게 밖으로 향했다. 나가는 길에 가게 주인에게 지폐 몇 장을 지불했다.
"지금 내가 너무 바빠서 거스름돈을 받을 틈도 없어. 평소에 진상 부리던 거 갚는다고 생각하고 넣어두라고."
"허허. 그런 거라면 금액이 한참 모자랍니다만?"
"쳇."
에반 플루토는 가게 문을 열어젖혔다. 바깥의 날씨는 여전히 얄궂을 정도로 화창했다. 그 맑은 하늘이, 포근한 구름이, 행복한 거리가, 마치 지금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위험에 처했더라도 상관 없다며 외면하는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