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화 〉1-1. NPC를 좀 믿어 주십시오 (2) (2/88)


  • 〈 2화 〉1-1. NPC를 좀 믿어 주십시오 (2)

    에반 플루토는 자신의 새 파견지가 끔찍하게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언제는 마음에 들었던 일거리가 있었냐고 묻는다면 그렇지도 않지만, 적어도 지금까지 맡았던 일거리들은 자신의 특기를 살릴  있었고, 비위를 맞춰야  클라이언트도 없었다. 하지만 이곳은 어떤가?

    이른 새벽부터 시작되는 업무, 전문성이라고는 눈꼽만큼도 필요하지 않은 허드렛일, 거기다가 다른 교직원들의 깔보는 듯한 시선과 노골적으로 자신을 불쾌해하는 여학생들까지.

    안 그래도 본사에서 개량한 새 혈청을 투여한 뒤로 후유증이  사라지지 않아서 찌뿌둥한데, 이렇게 갑작스럽게 휴가를 빼앗기고 학원으로 파견 당하는 건 너무한 처사가 아닌가. 교정의 낙엽을 빗자루로 쓸고 있는 자신을 보자 에반 플루토는 한숨이 절로 나왔다.

    “후우.....”

    “이른 아침부터 한숨을 푹푹 쉬시는 군요. 기껏 쓸어놓은 낙엽이 당신의 숨결에 다 날아가겠네요.”

    기숙사 사감 엘리아가 우편함을 열어보며 에반에게 인사를 건넸다. 빗자루질을 하던 에반은 사감 엘리아에게 삐딱하게 고개를 숙여 목례를 했다.

    “사감인 저보다도 일찍 나와 계시다니, 아침에 약한 타입은 아니신가 보군요.”

    “무슨 말이야? 난 낮밤 가리지 않고 약해. 시키니까 하는 거지.”

    “기숙사의 업무는 조금 익숙해지셨습니까?”

    “뭐 어려운 거 시킨다고 익숙해질 게 따로 있냐? 걱정하지 마.”

    엘리아는 머그잔에 든 모닝커피를 느긋하게 홀짝였다. 그 모습을 본 에반이 한 마디 툭 던지듯이 빈정거렸다.

    “빈속에 커피 마시면 위 다 망가진다.”

    “감사합니다만,  보기보다 튼튼하니까 걱정 마시길. 저보다도 당신이  걱정됩니다.”

    “나? 나 왜?”

    “당신은 파견직 NPC니까 부서에 관계없이 시키는 일이 있다면 그 일을 해야 하지만, 특별한 임무가 없을 때에는 어느 부서에서 상근하며 대기할지 아직 정해지지 않았죠.”

    “어딜 가도 환영 받지를 못하니까 말이지.”

    “그 말대로, 당신의 부서를 기숙사로 배치하는  사생들의 열화와 같은 반대와 맞닥뜨린 상태에요. 근처에 쓰레기 소각장을 설치하겠다고 해도 이 정도로 님비 현상이 심하지는 않을 텐데 어떤 의미로는 대단하시네요.”

    “거  감사합니다. 예....”

    그냥 아무래도 여자 기숙사다 보니 사생활 보호 차원에서 남직원을 배치하지 않는 쪽이 서로 편할 거 같다고 얘기하면 되는 것을 굳이 이렇게까지 체면을 구겨놓는 단어 선택을 하고 싶은 걸까? 에반은 엘리아의 말솜씨를 속으로 탓하며 고개를 저었다.

    “댁들이 날 어떻게 생각하건 말이야, 나도 나름 고급 인력이거든? 이렇게 마당이나 쓸려고 NPC가 된 게 아니란 말이야. 애초에 바닥 쓸기나 정원 관리 같은 거는 마법으로 하는 쪽이 훨씬 간단하고 깨끗하잖아?”

    “기계적이고도 차가운 마법으로 여린 풀꽃들을 돌볼 수는 없지요. 교정은 정성을 들인 만큼 풍경으로 대답해 주기에 따뜻한 손길을 필요로 하니깐요. 그보다도 곧 있으면 사생들의 기상 시간이니 빨리 청소와 정원 손질을 마무리하는 게 서로에게 좋겠군요. 정원 쪽 일이라면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됐어. 그냥 혼자 두는 쪽이 도와주는 거니까.”

    “당신이 그렇게 말한다면 어쩔 수 없지요. 아참 그리고...”

    사감이 우편함에서 꺼낸 편지봉투 중 하나를 에반에게 건넸다.

    “여기요. 당신 회사에서 당신 이름으로 온 편지입니다.”

    “별로 보고 싶지 않으니 적당히 버려주면 고맙겠어. 아, 혹시 사원 복지 부문에서 보낸 편지야?”

    “아니요. 고객 만족 서비스 부문에서 보냈네요.”

    “최악이네. 더 보기 싫어졌어. 빨리 태워버려 줄래?”

    “기숙사 내에서 화기를 취급하는 것은 엄격한 금지사항입니다. 당신이라고 해서 징계 대상에서 제외되지는 않고요.”

    “알았어, 알았어. 말썽 안 일으키고 읽을게. 슬슬 청소도 마무리 되어가니 금방 정원 손질하러 갈 거야.”

    “좋습니다. 그럼 정원은 당신에게 맡겨두고 저는 제 일을 하러 가겠습니다.”

    “그래 할 말 다 끝났으면 이제 가보라고.”

    “기왕 여기서 일하게 된 거 그렇게 딱딱하게 굴지 마시고 학생들에게 인사라도 밝게 해보시는  어떻겠습니까?”

    “노력은 해볼게.”

    “훌륭합니다. 그럼 전 이만.”

    사감 엘리아가 가고 난 뒤 그녀의 뒷모습이 충분히 멀어진 걸 확인한 에반은 다시금 한숨을 깊이 쉬며 편지봉투를 뜯어보았다. 무슨 내용일지 대충 예상은 하고 갔다.

    ----------------
    S등급 NPC 에반 플루토 

    No Problem Company 고객 만족 관리 위원회에서 NPC 에반 플루토에게 전합니다. 금일 우리는 거래처로부터 NPC에 대한 불만사항과 교체 요청을 접수받았습니다. 당신의 현재 파견지이자 당신이 실망시킨 거래처인 루나칼립스 학원은 대륙과 제국을 통틀어서 단연 최고로 꼽히는 마법교육의 성지  한곳입니다. 당연히 학생들도 귀족, 고위 공직자의 자제들, 기사단 장교의 자제들, 부유한 상인의 자제들로 이루어진 상류층입니다. 그리고 당신에 대한 불만사항을 친필로 작성해 고객 만족 관리 부문에 제출한 시리우스 아크륀 님은 안개전쟁의 영웅이자, 존경받는 대마법사라는 사실을 당신이 알고는 있는지 모르겠군요.


    역대급 거물을 고객으로 맞이한 만큼 성의를 보이기 위해 회사에  셋 뿐인 S급 NPC  하나인 당신을 파견했지만 당신이 S급에 걸맞은 품위를 지키지 못하고, 결과적으로 회사의 명예를 크게 실추시켰음이 드러났습니다.

    저희 고객 만족 관리 위원회는 조속히 애프터서비스 관리자를 파견하여 당신에게 행동 개선 교육을 실시할 예정입니다. 성실히 교육에 임해 거래처로부터의 신용과 평가를 회복할 것을 지시하는 바입니다.

    이만 줄이겠습니다. 또 다시 저희 고객 만족 관리 위원회에게 편지를 받는 일이 없도록 주의하시길 바랍니다.

    ~NPC에게 맡겨주십시오~
    ----------------

    “아침부터 기분 잡치네 정말.”

    에반 플루토는 자신의  파견지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이곳은 그보다 훨씬  그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상황이었다.

    에반은 본사에서 보낸 편지를 구깃구깃 구겨버리고는 적당히 쓰레받기에 처박아버렸다. 평소에는 에반이 어디 가서 개차반 같이 굴고 다녀도 맡은 일만 잘 처리하면 위에서 잔소리하는 일은 없었는데, 이렇게 위원회에서 서비스 관리자까지 파견하는 걸 보면 회사 놈들이 어지간히도  시리우스라는 대마법사 영감에게 잘 보이고 싶었던 모양이다.

    “잠시만,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얼리버드 녀석들은 슬슬 등교할 텐데.”

    말을 하기가 무섭게 아침잠이 적은 여학생들이 벌써 기숙사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말끔하게 정돈된 교복 차림, 또각또각 울리는 구둣발 소리에  우아한 걸음걸이.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아도 그저 걷는 모습만으로도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드러내고 있었다. 평소대로라면  고상한 아가씨들과 얼굴 마주칠 일 없게끔 미리 청소를 끝마치고 정원을 다듬으러 가지만, 오늘은 엘리아와 사담을 나누고 편지를 읽는 바람에 시간이 조금 늦어졌다.

    “젠장.....”

    에반이 들리지 않을 만큼 작은 목소리로 궁시렁거렸다. 그러다 문득  전에 엘리아가 했던 말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기왕 여기서 일하게 된 거 그렇게 딱딱하게 굴지 마시고 학생들에게 인사라도 밝게 해보시는  어떻겠습니까?’

    “흠흠!!”

    에반은 목소리를 가다듬고 여학생에게 아침 인사를 던졌다.

    “잘 잤니? 좋은 아침이다.”

    “..........”

    고고한 무표정을 지키고 있던 여학생은 에반의 인사에 대답은커녕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그를 휙 지나쳤다. 다만 빨리 거리를 벌리고 싶었는지 발소리의 템포가 눈에 띄게 빨라졌으니 완전히 없는 사람 취급하는 무반응은 아니였다. 대놓고 무시당한 에반은 자존심이 상했지만 애써 속으로 삭이며 빗자루질을 마저 했다.

    “어머나, 오늘도 날씨가 참 좋다.”

    “정말. 점심은 교실 말고 밖에서 먹는  좋겠어.”

    “그거라면 좋은 자리를 알지.”

    학생 둘이 재잘재잘 담소를 나누며 기숙사 문을 나오고 있었다. 밝게 웃으며 이야기를 하던 두 여학생의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빗자루를 쥔 에반 앞에서 갑자기 싸하게 식어버렸다. 누가 보면 에반이 빗자루로 좋은 분위기를 쓸어버렸나 생각할 것만 같았다. 어정쩡한 침묵에 떨떠름해진 에반이 살며시 인사를 꺼냈다.

    “안녕?”

    “아.....”

     학생은 부리나케 에반을 지나갔다.

    “뭐야. 원래 이 시간에는 여기 없었는데. 내일 부터는 조금 늦게 출발하자.”

    “그래. 그래야겠다.”

    “그보다도 갑자기  하던 인사는 왜 하는 거야? 기분 나쁘게.”

    “그니까.”

    에반은 자신이 괜한 짓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슨 바람이 불었다고 엘리아의 말을 들었던 걸까?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에 또 부지런한 여학생 하나가 마법언어 단어장을 보며 등굣길에 나섰다. 에반은 속는 셈 치고 마지막으로 인사를 하기로 했다.

    “1인칭 단수 rah 복수 raham, 2인칭 단수 rast 복수 rastam, 3인칭은...”

    에반은 단어를 외우는 데에 열중인 여학생에게 넌지시 인사를 건넸다.


    “안녕.”

    “??!!”

    아담한 체구에 리본 머리핀. 인형 같은 외견을 한  자그마한 여학생은 에반이 인사하자 기겁을 하며 뒤로 물러섰다. 겁먹은 작은 소녀, 어두운 안색의 남자. 조합으로 보나, 구도로 보나 유괴 현장으로 오해할 법한 그런 광경이였다.

    “뭘 그렇게 놀라고 그러냐. 안 잡아먹어. 그보다도 아침부터 열공인  보기 좋지만 다칠 수도 있으니 걸을 때는 제대로 앞을 봐야지.”

    “으으... 으....”

    여학생은 보기 안쓰러울 정도로 떨다가 단어장을 떨어트려 버렸다. 에반이 단어장을 주워 주려고 손을 뻗자 그녀는 에반이 자신을 해코지한다고 생각했는지 후다닥 도망쳐버렸다.

    “하아... 이래서 안 하던 짓을 하면  된다는 거야. 대체 뭘 기대했던 걸까 난?”

    에반은 한숨을 깊게 쉬며 땅에 떨어진 마법언어 단어장을 주워들었다.

    “찾아서 돌려줘야겠네. 이름 정도는 써놨겠지?”

    단어장 표지 한 구석 어귀에 써져있는 이름을 찾는  어려운 일이 아니였다. 다만 어찌나 공부벌레인지 이름도 마법언어로 써놓았다. 그것도 마법언어 중에서 가장 사용자가 적고 어렵다고 알려진 아민어였다.

    “아민어잖아? 심지어 전상(殿上) 문자네. 어디 보자. ‘프릴 루에리아’ 라고 읽는 거겠지.”

    몇 학년 몇 반인지는 적혀있지 않았다. 1년 보다가 학년이랑 반이 바뀌면 버릴 게 아니니 당연한 거일지도 모른다.

    어쨌건 이 큰 학교의 널린 학생 중에서 좀 전의  쪼그만한 학생 하나를 찾는 것도 마법의 힘을 빌리지 않으면 간단한 일이 아니겠지만, 그보다도 더 골치 아픈 문제는 이걸 어떻게 전달하느냐다.

    본인에게 직접 찾아가서 돌려준다? 눈만 마주쳐도 무슨 역병 드래곤이라도 본 것 마냥 식겁을 해서 도망치던 꼬마인데, 그런 아이의 교실에 찾아간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좋게 끝날 거 같지는 않다.

    그러면 다른 학생에게 부탁할까? 다른 학생들이라고 해도 다들 조금 전 인사했던 학생들이랑 다 똑같은 부류다. 에반을 개무시하거나, 대놓고 기분 나빠하거나. 겁을 먹는다는 반응은 처음 겪어보는 부류지만.

    그럼 다른 교사들에게 부탁할까? 그건 제일 싫다. 이곳에서 일하는 교직원들은 교사건, 행정 주무관이건, 에반과 같은 지도원이건 다들 명문 학교에서 일한다는 부심 때문에 모가지가 굳어도 단단히 굳어있다. 분명 NPC 따위가 그런 허드렛일을 자신에게 떠넘겼다며 난리를   눈에 선하다.

    “하아.... 오늘도 일진이 더럽구나.”

    “당신은 오늘도 아침부터 혼자서 중얼중얼 거리고 있는 건가요? 보는 사람까지 기운이 빠질 것만 같군요.”

    앙칼진 목소리로 에반을 힐난하는 목소리.  그래도 기분이 좋지 않은데 하필 이런 타이밍에 에반을 가장 싫어하는 학생이 찾아오고 말았다.

    고등부 1학년의 유리아 릴리스. 용모단정, 품행방정, 문무겸비, 학생회장. 시리우스 학원 전체 서열 6위, 고등부 1학년 서열 1위의 우등생. 제국뿐만이 아니라 대륙 전체에 걸쳐 상업로를 꿰차고 있는 백화 상회 회장의 무남독녀. 하지만 그런 화려한 스펙은 에반에게 있어서 조금도 알 바가 아니였다.

    에반에게 있어서 유리아는 그저 성가신 여자애에 불과했다. 유리아는 에반을 개무시하는 부류도 아니고, 겁을 먹고 도망가는 부류도 아니다. 하지만 차라리 그래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에반에게 설교를 일삼았다. 어떻게 보면 그에게 먼저 말을 걸어주는 학생은 유리아가 유일하지만 오히려 외면당하고 싶다고 생각할 정도로 그녀를 귀찮아하는 에반이였다.

    “또 너냐? 아침부터 기운이 넘치니 안녕하냐는 인사는 필요 없겠구나.”

    “지금  너냐고 하신 겁니까? 대단히 실례되네요. 너가 아니라 똑바로 이름으로 부르세요.”

    “그러는  내 이름 똑바로 부른  있냐? 맨날 당신! 당신! 이러잖아.”

    “으음... 알겠습니다. 결례를 범했군요, 이후로 저도 주의하도록 하죠. 에반 플루토 씨.”

    실수했다. 차라리 그냥 당신이라고 부르는 게 나았어. 반사적으로 받아치고 나서 후회했지만 이미 늦었다.

    “그보다도 빗자루를 든 손이 놀고 있군요. 다 큰 어른이 자기 일도 제대로 못하시는 겁니까? 애초에 지금은 청소를 진작에 끝마치고 정원을 돌보고 있을 시간 아닌가요?  큰 어른이 자기 일도 제때에 못하시는 겁니까?”

    “너가 이렇게 계속 방해하면 더 늦게 끝날 거 같다.”

    “전 도저히 당신을 이곳의 지도원으로 인정할 수가 없습니다. 이곳은 아그루스 제국의 자랑거리이자 대륙 전체에서도 손꼽히는 명문 학원. 그 명성에 걸맞게 엄격하게 선별된 최고의 인재들만이 이곳의 지도원으로 임명 받는 것입니다. 당신 같이 돈으로 사온 게으른 용병을 ‘관리 지도원’ 이라고 명명하다니 다른 지도원님들에게 실례가 아닐까요?”

    “어쩜 그렇게 다른 지도원들이랑 똑같이 말하니.”

    “보아하니 당신은 왜 저에게 이렇게 불만을 듣는지 모르는 모양이군요. 하나하나 전부 열거하다가는 시간 맞춰 등교를 못할 테니 제일 마음에 안 드는  몇 가지만 말씀드리죠. 우선 그 생기 없는 눈이랑, 정돈  된 머리, 의욕 없는 표정부터가 교정의 미관과 조화를 이루지 못합니다.”

    “야, 첫발부터 외모 비하라니 그러는 거 아니야.”

    “그리고 당신은 말투도 너무 품격 없고 상스럽습니다. ~야 라던가 ~냐 라던가 이런 말씨는 뒷골목이면 모를까 이곳에서는 들려선 안 될 것입니다. 다른 지도원님들처럼 ~니다, ~까, ~군요, ~십시오 같은 성숙한 말씨를 써야 합니다.”

    “그건 좀 아니다. 나한테 왜 그럴까? 별  가지고 뭐라 하는군요. 이제 제발 저리 가십시오.”

    “아직 안 끝났습니다. 엘리아 사감님에게 예우를 갖추어서 존댓말을 쓰세요. 엘리아 사감님은 등급상으로는 당신과 같은 지도원이지만, 많은 사생들에게 존경을 받고 있는 사감님께서 당신 같은 분에게 반말을 들을 이유는 없습니다.”

    “그래, 그래. 알겠어.”

    “제대로 귀담아 들으세요. 아무튼 당신은 우리 학원에 적합하지 않습니다. 항상 지금처럼 의욕이 없어 보이시던데 그렇게 자신에게 주어진 일이 귀찮다면 당장 사직서를 제출하시죠? 그래준다면 저는 정말 기쁠 거 같군요, 에반 플루토 씨.”

    독설을 마친 유리아는 자기  말을 마치자  돌아서서 가버렸다. 기가  빨린 에반은 구태여 반론하지도, 자신을 변호하지도 않고 그저 그녀의 뒷모습에 대고 빨리 가버리라는 손짓을 훠이 훠이 보냈다.

    “후우.... 아무래도 그때 미운털이 제대로 박힌 모양이네. 자업자득이라면 할 말이 없지.”

    이유가 누구에게 있건 간에 새파랗게 어린 학생에게 꾸지람을 듣는 이 상황이 아직도 에반에게는 어색했다. 그렇다고 해서 어린 학생들을 상대로 서열 정리랍시고 가오 잡으면서 자존심을 챙길 만큼 유치하게 굴 생각도 없었다. 그냥 서로서로 적당히 없는 사람 취급해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 같았다. 특히 유리아.

    “정원 손질은 좀 서둘러서 해야겠다.”

    에반 플루토는 아무리 좋게 생각해봐도 자신의  파견지가 끔찍하게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