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OULNET-487화 (487/492)
  • 00487  제 122 장 - 새로운 질서  =========================================================================

    12%라는 높은 실업률로 인해 청년백수가 넘쳐나는 대한민국은 수많은 젊은이와 장년들의 뜨거운 환호성으로 들끓었다.

    수십만의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되는 이 엄청난 프로젝트는 전 국민의 뜨거운 호응과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이루어지며 절정에 달했다.

    큐피에 들어가 튜토리얼만 끝내도 F급 능력자가 된다.

    운이 좋아 E급이상이 되면 바로 서머너즈 길드의 하위 길드로 들어가 능력자로 활동할 수 있다.

    물론 F급 능력자는 능력자로 분류하지 않고 헌터라고 부르기로 했다.

    그러나 헌터라고 해도 그냥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다.

    큐피 안을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고, 최하급 사냥터에서 최하급 몬스터를 안전하게 파티사냥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하급 몬스터인 고블린, 코볼트, 슬라임, 그렘린, 좀비 등만 꾸준히 잡아도 한 달에 천만 원은 넉넉히 벌 수 있다는 것이 능력개발청에서 발표한 예측(통계)이었다.

    능력자와 일반인 사이에 새롭게 헌터라는 계급을 만들어내며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군 ‘능력개발 프로젝트’ 처음부터 초대박조짐을 보이며 많은 청장년층의 가슴을 설레게 만들고 있었다.

    * * * * *

    “마스터, 만나서 영광입니다.”

    “파이랑, 나도 반갑다.”

    이제 갓 성년이 된 앳된 모습의 파이랑이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는다.

    두 사람은 서로 마주 잡은 손을 흔들며 호감을 보였다.

    “한국말을 아주 잘하네?”

    “헤헤, 제가 한국 드라마를 아주 좋아합니다.”

    “그으래?”

    “케이팝도 아주 좋아합니다. 한국 여자 예뻐요. 걸 그룹도 아주 좋아합니다. 소녀시대, 에이핑크, 씨스타, 여자친구, 걸스데이, 마마무…….”

    파이랑은 초콜릿 피부가 상기되도록 열심히 걸 그룹 이름을 외워댔다.

    그 모습에 소울은 절로 미소를 그려졌다.

    ‘이 녀석 참 순수하네. 하긴 한창 걸 그룹을 좋아할 때지.’

    파나마에서 온 S급 능력자 파이랑은 소울을 졸졸 따라다니며 그동안 갈고 닦은 한국어로 신나게 떠들어댔다.

    얼마나 열심히 드라마를 봤는지 한국 사람보다 한국어를 더 잘하는 것처럼 보였다.

    “파이랑, 그런데 언제 자신이 S급 능력자인지 깨달았어?”

    “그냥 어느 날, 능력이 생겨서 알게 됐어요.”

    보통사람이 들으면 참 열받을만한 얘기다.

    자고 일어나니 스타가 됐다는 얘기는 들었어도 그냥 S급 능력자가 됐다는 얘기는 처음이다.

    “넌 참 운도 좋구나.”

    “그럼 마스터도 운이 좋은 거네요? S급 능력자니까요.”

    파이랑의 말에 소울은 깜짝 놀랐다.

    자신이 말한 적이 없는데 파이랑은 이미 소울이 S급 능력자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긴 아는 만큼 보인다고 소울이 파이랑을 척 보니 S급 능력자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쉿! 그건 비밀이야. 당분간 서머너즈 길드에서 S급 능력자는 오직 너 하나뿐이다. 알겠지?”

    소울은 혹시 개성큐피 안에서 누가 들을지 몰라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알겠어요. 그런데 그걸 왜 숨겨야 하죠?”

    “그러게.”

    파이랑의 말을 듣고 보니 자신이 그걸 왜 숨기고 있는지 오히려 궁금해진다.

    굳이 꼭 집어 말하자면 그냥 육감이랄까?

    왜, 꼭 숨겨야만 할 것 같은 예감이 있지 않은가?

    그게 아니라면 아마도 자신감이 부족한 게 아닐까 싶다.

    소울은 파이랑을 데리고 개성큐피로 들어와 변해버린 안의 구조를 유심히 살펴봤다.

    중앙에 분수대나 광장 그리고 각종 편의 시설이 들어와 있는 것은 비슷했다.

    하지만 개성큐피는 확실히 개성큐브였을 때 보다 훨씬 안정적으로 보였다.

    레벨에 맞는 다양한 차원과 세계, 클래스에 맞게 설계된 각 층은 파티와 공격대를 이루며 능력자들이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주고 있다.

    특히 합리적인 보상으로 인기가 폭발하고 있는 퀘스트와 의뢰 시스템은 능력자들의 주머니를 짭짤하게 채워주고 있었다.

    “1층부터 훑어보자.”

    “네, 마스터.”

    소울은 1층의 최하급 사냥터로 분류된 게이트 앞에 섰다.

    “거기 순서가 틀렸잖아? 탱커가 맨 앞으로 서야하는 것 잊어버렸어?”

    “죄송합니다. 제가 처음이라서.”

    “여기 지금 처음 아닌 사람이 누가 있어? 서머너즈 길드의 능력자들 빼고는 어차피 다 초짜야. 거기서 거기란 말이야.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내일 이맘 때 고블린의 똥으로 나오는 수가 있어.”

    막 게이트 안을 통과하려는 오인 파티의 파티장으로 보이는 중년 거한이 아직도 헤매고 있는 신입헌터들에게 호통을 쳤다.

    “조심하겠습니다.”

    “그리고 너, 활 들고 왜 앞으로 나와 있어? 집에서 온라인게임 안 해봤어? 원거리 딜러가 앞에 서면 뭘 어쩌자고? 활 쏘면서 몸빵이라도 하겠다는 거야?”

    “저 말입니까?”

    “미치겠네. 여기 활 들고 있는 사람이 너 말고 누가 있어? 당장 뒤로 안가?”

    “네, 갑니다. 가요.”

    “모두 정신 바짝 차려라. 고블린이 비록 최하급 몬스터라지만 괜히 몬스터라고 부르는 게 아니야. 잠깐 방심하는 사이에 독침을 맞고 순식간에 손도끼에 대가리 뽀사진다.”

    “네.”

    “그럼 출발한다. 내가 게이트 안으로 들어가면 바로 따라 들어온다. 알았지?”

    “네.”

    중년거한은 왼손에 들고 있는 커다란 방패를 단단히 잡고는 게이트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러자 잔뜩 긴장한 신입 헌터들이 그의 뒤를 놓칠세라 빠르게 안으로 들어갔다.

    “신기하네요.”

    “파이랑은 게이트 처음보지?”

    “네, 사실은 이 큐피도 오늘 처음 봐요.”

    파이랑은 지름이 3m나 되는 연두색의 물결이 일렁이는 원형의 게이트에 손을 대보면서 연신 감탄해마지 않았다.

    “그럼 우리도 들어갈까?”

    “네.”

    소울과 파이랑은 게이트를 향해 거침없이 걸어 들어갔다.

    연두색의 물결이 잔잔히 흐르는 게이트를 통과하자, 순간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

    푸른 하늘 아래 녹색 물감으로 칠을 한 것 같은 넓은 평원이 나타났다.

    작은 숲이 띄엄띄엄 있고 중앙에는 하천이 흐르는 모습이 한 폭의 그림 같다.

    서늘한 큐피 안과는 달리 반팔에 반바지만 입어도 될 것 같이, 날씨가 따뜻하다.

    가족들과 도시락을 싸들고 소풍을 오면 딱 좋을 것 같은 풍경이었다.

    차창 창창!

    그때,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싸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온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부터 고블린들과 드잡이 질을 하고 있는 오인파티를 보니 이곳이 결코 놀러오기 좋은 곳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싸움이 시작됐어요.”

    “왜? 가서 구경이라도 하게?”

    “재밌잖아요.”

    “싸움 구경과 불구경이 제일 재미있긴 하지.”

    파이랑은 중년거한이 이끄는 파티가 고블린과 어떻게 싸우는 지 구경을 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소울은 잠시 시간을 내서 구경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어 선선히 허락을 했다.

    그러자 파이랑이 총총걸음으로 걸어 계단을 내려갔다.

    계단 아래로 내려와서 보니 게이트는 파르테논 신전을 축소해서 만든 것 같은, 전면이 탁 트인 신전 안에 위치해 있었다.

    신전 밖은 돌로 만들어진 작은 요새였고 안에는 서머너즈 길드의 능력자로 보이는 게이트키퍼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들은 소울을 보자 말없이 주먹을 가슴에 대고 살짝 고개를 숙이며 군례를 했다.

    소울은 가볍게 한번 손을 들어주고는 요새를 빠져 나왔다.

    게이트가 있는 요새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작은 숲이 있었는데 그 안에서 싸우는 소리는 들려왔다.

    파이랑은 겁도 없이 터벅터벅 숲을 걸어 들어갔다.

    소울은 혹시 몰라 까뮤를 불러들였다.

    [까뮤, 주변을 살펴봐. 그리고 파이랑을 보호하도록 해.]

    [네, 주인님.]

    까뮤가 쌩하고 날아서 숲속으로 들어갔다.

    소울은 그 모습에 느긋한 마음이 되어 파이랑의 뒤를 쫓았다.

    숲 안에는 지금 한창 고블린과 전투가 벌이지고 있었다.

    오인파티의 파티장인 중년거한과 게이트 입구에서 욕을 들어먹던 건장한 청년, 두 사람은 강철방패를 단단히 들고 파티의 전면에서 철벽처럼 버티고 섰다.

    그들의 뒤로 창을 든 중년 사내가 방패 사이로 열심히 고블린들을 찔러대는 모습이 보였다. 그 옆에로 활을 든 청년이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부지런히 화살을 쏘아 날리고 있다.

    맨 뒤에 서 있는 호리호리한 청년은 가끔 단도를 집어 던졌는데 아무래도 힐러 같았다.

    ‘탱커가 둘이나 되니 사냥속도는 느리겠지만 무척 안정적이군. 창을 든 근딜 하나에, 활을 든 원딜 하나, 그리고 힐러까지 있네. 헌터 레벨에서는 나름 최상의 조합이군.’

    소울은 그렇게 한눈에 오인파티를 낱낱이 분석했다.

    중년거한은 고블린 한 마리를 커다란 강철방패로 밀어내다 파이랑이 가까이 다가오자 잔뜩 경계를 했다.

    하지만 파이랑의 뒤에서 걸어오고 있는 소울을 보자 이내 얼굴을 풀었다.

    그가 장비하고 있는 형태변환 최상급 마법갑옷, 둠 플레이트를 보고 소울이 서머너즈 길드의 고위 능력자라는 것을 단박에 눈치 챈 것이다.

    “파이랑, 그들에게 너무 가까이 가지마. 사냥하는데 방해된다.”

    “그런가요?”

    파이랑은 소울의 말에 순순히 뒤로 물러섰다.

    누구에게나 안전거리는 필요하다.

    안 그래도 고블린을 사냥을 하느라 잔뜩 날카로워진 상태인데 모르는 사람들이 가까이 다가오면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소울은 파이랑을 데리고 조금 더 뒤로 물러서서 구경을 했다.

    중년거한은 그제야 안심을 한 듯 다시는 뒤를 돌아보지 않고 고블린 사냥에 집중할 수 있었다.

    파티장의 뛰어난 리드로 인해 파티원들은 점차 고블린 사냥에 익숙해져갔다.

    처음에는 한두 마리씩 따로 떨어져 나온 고블린들을 사냥을 했다.

    조금 익숙해지자 서너 마리를 한꺼번에 잡아도 여유가 생겼다.

    나중에는 같은 숫자의 고블린들과 싸움을 해도 조금도 밀리지 않았다.

    “여기까지가 우리의 한계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고블린 다섯 마리까지만 상대한다는 말이다.”

    “우리 파티의 능력이라면 열 마리도 충분할 것 같은데요?”

    중년거한의 말에 이번 사냥을 통해 부쩍 자신감이 상승한, 방패를 든 청년이 호기롭게 외쳤다.

    하지만 중년거한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우리 파티의 등급은 F급이야. 전원이 헌터라는 말이다. 서너머즈 길드는 물론 능력개발청과 능력자협회까지 헌터로 구성된 오인파티의 동시 사냥 능력한도를 고블린 다섯 마리로 규정하고 있다. 물론 더 많은 고블린 무리를 한번에 잡으려고 한다면 전혀 불가능한 일은 아니야. 하지만 우리가 왜 헌터가 됐는지 생각한다면 앞으로 절대 고블린 다섯 마리 이상이 모인 무리는 사냥하지 않는 것이 좋다.”

    “알겠습니다.”

    “이해했어요.”

    “그런 뜻이 있었군요.”

    그제야 다들 파티장의 말을 이해했다.

    그들이 헌터가 된 것은 돈을 벌기 위해서다.

    백수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서, 실업자라는 타이틀이 싫어서, 미래를 위해서…….

    헌터가 된 이유는 이렇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역시 가장 큰 이유는 고정된 수익이 보장된 직장을 구하는 의미다.

    그러니 다치거나 죽으면 안 된다. 그건 무조건 손해다.

    “그럼 등급이 E급으로 올라가면 고블린 다섯 마리 이상을 잡아도 되나요?”

    “아니, 우리파티는 계속 원칙을 준수한다. E급으로 등급이 오른 사람은 당연히 이 파티를 떠나서 상위 파티로 들어가야지, 뭐 하러 여기서 죽치고 있어? 더 상위 몬스터를 잡으면 더 많은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건 상식 아냐?”

    파티장은 확실하고도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

    물론 이런다고 해서 모두가 말을 다 잘 듣는 것은 아니다.

    가끔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하고, 헌터라는 등급의 차이를 인정하지 못해 무리한 행동을 하는 혈기 넘치는 자들도 있다.

    하지만 그런 자들의 말로(末路)는 하나 같이 다 똑같다.

    바로 몬스터에게 잡혀 죽는 것이다.

    소울은 중년거한이 앞으로 오랫동안 헌터생활을 하면서 안정된 수익을 올릴 것이라는 것을 확신했다.

    자신의 분수를 아는 것도 능력이라면 아주 큰 능력이다.

    “그만 나가자.”

    “네, 마스터.”

    소울과 파이랑은 게이트가 있는 요새로 돌아왔다.

    계단을 걸어 신전에 올라간 그들은 게이트를 타고 큐피로 건너왔다.

    소울과 파이랑은 1층에 있는 다른 게이트들을 하나씩 살펴봤다.

    1층의 게이트들은 큐피레벨 1에서 100까지, 즉 F급 능력의 헌터들에게 딱 적합한 곳으로 보였다.

    2층으로 올라갔다.

    2층도 모양이 1층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각 게이트를 돌아다니며 확인한 결과 확실히 1층 보다 2층 게이트 안의 몬스터들이 강했다. 그러나 여전히 소형 몬스터가 주종을 이루고 있어서 등급에 맞게 들어간다면 그리 위험해보이지는 않았다.

    2층 게이트들은 큐피레벨 101에서 200까지, E급 능력자에게 적합했다.

    그렇게 3층, 4층, 5층, 6층을 돌아보고 7층으로 올라갔다.

    ============================ 작품 후기 ============================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선호작, 추천, 코멘트, 쿠폰, 후원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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